이 책을 쓴 작가의 반려견이다.
작가는 보리 이전에 키우던 '토니'가 하늘 나라로 간 후
개를 마주칠 만한 곳은 일부러 피해다닐 만큼 상실감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물 병원을 지나다
로비 한쪽 구석 철창에 힘없이 앉아있던 강아지를 보게된다.
이 아이는 이미 한 번 파양된 적이 있다는 얘길 듣지만,
'신묘'한 인연의 힘으로 결국 그 아이를 데려오게 되었고
털색깔이 아이보리인데 착안해 이름을 보리라 짓고
그 때부터 둘은 서로의 반려가 된다.
이 책의 내용은 작가와 보리가 함께해온
지난 10년간의 일상속 이야기인 동시에
작가가 보리에게 보내는 찬사와 감사이다.
이 책이 독특한 점은
만화와 에세이가 함께 있다는 점인데
평소에 만화를 거의 본 적 없는 내겐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듯한 귀여운 그림과
따뜻함과 섬세함이 물씬 풍기는 감성적인 에세이들이 조화를 이루며
마음 깊은 곳을 파고 들어 오래된 내 기억을 소환했다.
개에 대한 내 기억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대학 졸업때까지 살았던 우리집에는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는 라일락 나무, 목련 나무, 배나무, 앵두나무, 모과나무, 장미, 사철나무 , 단풍나무 등이 심어져있어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았고
특히 여름이면 마당에 텐트를 치고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바람을 불어 넣어 만든 간이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기도 했다.
하지만, 마당이 있어 가장 좋았던 건 항상 그 곳에 있던 동물들 덕분이다.
그 집에서 사는 동안 우리집엔 언제나 개나 고양이, 새들을 키우곤 했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건 개들인데
동요 가사처럼 학교갔다 집에 오는 나를 보며 꼬치치며 달려와 반갑게 맞아주고
낯선 사람이 우리 집 대문 앞에 얼씬 거리기만 해도 세상이 떠나가라 짖어대던
개들과 놀던 기억은 지금도 소중한 유년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런 기억을 가진 나지만,
요즘 많이들 사용하는 "반려견"이라는 단어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져 온 게 사실이다.
김훈 선생님이 『연필로 쓰기』에서 잠깐 언급한 반려견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에
나 역시 공감해왔고 내가 생각하는 개의 본성과 반려견의 이미지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작가와 보리의 일상을 보면서
인간과 개의 반려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내가 아이를 키우는 마음이나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마음과 다를 바가 없었고
이들 사이에 중요한 것은 인간과 개라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생명들 간에 나누는 따뜻한 교감이었다.
만약 그림이 없이 에세이만 읽는다면
그저 누군가의 육아일기나 연애일기라고 착각할 법한
사랑이 가득한 이야기들을 곱씹어 보면 볼수록
감동적이면서 묘하게 힐링이 되는 책이다.
작가가 보리를 혼자 두고 나갔다 돌아온 날에 느끼는 죄책감이나 짠함,
산책길에 만난 동네 개들과 보리가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는 걱정,
무지막지한 '피곰'의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꾀죄죄한 보리를 목욕시키는 모습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이제껏 가졌던 반려 동물이라는 말에 대한 반감은
어쩌면 그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형식만 보려했기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동물들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에 깃들인 사랑의 마음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에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유머, 보리와의 재미있는 일화들은
감동과 함께 웃음을 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반려견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나같은 사람조차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엔 뭔지모를 따뜻함과 훈훈함이 마음 가득 넘치게 한다.
이 책은 물론,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지만,
내가 정말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은
'반려동물 한 번 키워볼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과연 내가 반려견과 함께 산다면
이런 모습일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자신의 각오를 한 번쯤 돌아보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반려견에 대한 사랑의 방식 역시 다양하니
어떤 방식이 정답이라고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 모든 사랑의 본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믿는다면
이 책의 저자가 보리에게 주는 사랑의 방식은 참고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