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불평등을 말하다 - 완전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젊음에게
서정욱 지음 / 함께읽는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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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 역설적인 제목을 품고 있는 이 책은 제목으로 인해 이 책에 대한 흥미를 배가 시켰다. 온전할 것만 같은 철학 과연 어떤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을까?

  이 책은 철학이 나온 그 시대의 배경과 철학의 근본을 파헤치면서 그것의 불평등함을 말하고 있다. 즉,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또한 그 시대적 배경인 중세와 맞물려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중세는 인간 보다 신이 우세한 시대이며, 즉, 종교의 권위가 왕의 권위 보다 더 컸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시대를 파헤쳐 보면, 사람들은 종교의 근본인 신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닌, 종교를 안내하는 종교적 지도자를 믿고 따랐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신예찬이 나온 것이다. 또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역시 나라를 다스리는 법이 나라의 최고 권위자인 왕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에 비판하여 국가에 대한 회의감에 빠졌다. 그러던 중 이상적 국가에 대한 유토피아가 나온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은 철학이 나온 그 시대의 배경과 함께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완성하기까지 고민한 흔적들을 대화체로 책에 제시하고 있다. 여느 다른 철학책들과는 분명 다른 부분을 제시하려고 저자는 노력하고 있다.

  철학은 분명 그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지금의 시대와 맞는 부분도 혹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들이 그 시대에 저항하며 고뇌하는 흔적을 통해 그들의 사회와 인간에 대한 여러 가지 철학적 고민들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풀어가며 그들이 말하고자 찾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통찰해 나가면서 우리 또한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시대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의 역할이 바로 우리가, 우리가 지금 사는 시대를 통찰해 내고, 그것에서 문제점을 발견하여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볼 수 있는 현명한 시안을 갖게 하는 것일 것이다.

  이 책에는 앞서 말한, 에라스무스, 토머스 모어, 그리고 마키아 벨리, 토머스 홉스, 존 로크, 몽테스키외, 장 자크 루소, 데카르트가 등장하여 그들의 철학과 배경, 그들의 철학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고민이 담겨있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시대를 함께 경험하며,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공통된 사고를 내면화 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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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레인 -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에 진화하는 현대인의 뇌
개리 스몰 & 지지 보건 지음, 조창연 옮김 / 지와사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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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는 진화하고 있다. 뇌에 관한 책은 참 매력적이다. 인간 주변의 현상들을 인간의 뇌와 연관지어 설명한다는 것은 모든 현상들을 인간과 배제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중심이 된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또한 인간 능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맥스웰 몰츠와 같은 위대한 자기 계발서를 쓴 작가들은 이런 뇌의 원리를 이용하여 인간 스스로 성공에 대한 암시와 계발이 가능하다고 독자들로 하여금 믿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지 않은 다른 책들보다 영향력이 무척 크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사는 지금 시대를 테크놀로지 시대라 정의하고 있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2 분류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즉 테크놀로지 이주자, 테크놀로지 원주민으로 말이다. 테크놀로지에 익숙해져서 이미 자신의 뇌가 테크놀로지의 수많은 정보들을 쉽고 빠르게 받아들이도록 적응 시킨 사람들을 테크놀로지 원주민으로 부르고 있으며 테크놀로지 이주자는 아놀로그 적인 것에 뇌가 익숙해진 사람들이 테크놀로지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테크놀로지 이주자를 나쁘다고 여기지도 혹은 테크놀로지 원주민을 좋은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두 개의 좋은 점을 잘 아우를 수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테크놀로지 이주자의 친사회적 기술이나 인간과의 대면적 상황에서의 의사소통기술 등을 배워야하며, 테크놀로지 원주민의 빠른 정보 습득력이나 활용력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뇌를 위 2 가지에 모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컴퓨터 게임 중독에 빠져 있는 아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즉, 컴퓨터 중독으로 인해 그 아이의 뇌는 컴퓨터 게임에 적응하도록 진화되었고, 컴퓨터 밖 오프라인 상황이 되었는데도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처참한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또한 요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24시간 끼고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든 소통을 컴퓨터의 자판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제 오프라인에서 그들 행동과 말투를 살펴보면, 하고자 하는 말을 손으로 변환시키는 것에 익숙해져서 실제 의사소통력이 많이 떨어짐을 볼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의 감정을 직접 대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대면적 상황에서도 타인의 감정을 배려한 친사회적 언어나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컴퓨터상에서 조차 여러 가지 악플을 아무 감정 없이 달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부정적 현상을 막기 위해 테크놀로지 이주자와 테크놀로지 원주민 간의 뇌 격차 줄이기를 강조한다. 사람의 뇌는 우리가 길들이기 마련이다. 유전적인 영향도 있지만 환경적인 영향이 크게 좌지우지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너무 하이테크 시대에 빠져 그것에만 적응하려 하기 보다는 그 밖 오프라인의 아날로그적 문화도 함께 즐기며 사는 것이 필요하겠다.

  뇌와 문화에 관한 이 책을 보면서 저자의 해박함에 놀라웠고, 그것을 연관 지은 참신성에 놀라웠다. 또한 사회 문화와 뇌를 민감한 눈으로 바라본 저자 덕택에 나 또한 그의 생각을 쫓아 읽으며 사회를 보는 시선에 민감해 진 것 같아 기분 좋은 책 읽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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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우 랜드 이모탈 시리즈 3
앨리슨 노엘 지음, 김경순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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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우 랜드

 이 책은 추운 겨울 읽기에 정말 안성맞춤인 책이었고, 그것이 전달하는 주제 또한 계절과 딱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쓸쓸한 바람을 맞으며 영원한 사랑에 대해 고민해 보게 한 나를 문득 낭만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책이었다.

 이 책에는 에버와 데이먼, 주드가 등장한다. 사랑의 이야기에 남녀 셋이 등장한다는 것은 삼각관계를 의미하는 것 일것이다. 이 책도 물론 이 세 명의 사랑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읽는 동안 사랑에 대한 운명적 결정론에 대해 많은 고민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랑을 운명적으로 결정지어 진 것이라 믿는다. 내가 하는 모든 선택들 또한 결국은 그 정해진 운명으로 가는 하나의 길이고 선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즉, 만나게 될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도 주인공들 간의 사랑에 대한 선택과 운명에 대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 책답게 섬세한 심리묘사와 사건전개로 내용이 전달된다. 또한 영원과 환생이라는 환상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인지 사랑도 이 책에서는 환상적인 느낌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한 많은 질문들을 던지며 고민할 수 있었다. 과연 사랑이 운명인가 하는 점과 영원한 사랑이란 있을까 였다. 세상을 살다보니 영원한 사랑이라는 단어에 피식 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사랑에 관한 과학적 분석 책을 읽어도 사랑에 열정을 갖게 하는 뇌의 호르몬도 900일 밖에 지속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후가 되면 그 호르몬이 소멸되기 때문에 사랑에 열정이 식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사랑은 없는 것일까? 흔히 영원한 사랑하면 동반자적 사랑을 말하곤 한다. 열정은 없지만 서로간의 친밀함과 책임과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사랑 말이다. 서로 예의를 지켜가면서 최소한의 사랑 또한 지켜가는 것이다. 이 동반자적 사랑은 영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또 질문이 과연 이 책의 주인공들과 나는 이 동반자적 사랑을 영원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에 만족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이 책의 저자가 주인공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영원한 사랑의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한 나와 우리가 말하는 영원한 사랑은 과연 무엇이고, 그것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어떤 생각인지도 궁금해졌다. 사랑은 진정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이 책에 표현된 것처럼 환상의 어느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늘상 추구하는 것이기에 그것에 대해 좀 더 많은 질문과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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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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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흔들었던 획기적인 사건이 무엇일까? 나에게도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처럼 내 인생을 흔들었던 사물이 있었나?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은 흔히 그것이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문학적 성취를 얻는다고들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어떤 문학적 성취를 그려낸 자전적 내용을 읽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물론 이 책은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의 자신 내부에서 벌이는 치열한 싸움을 통해 작가로서 성장해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치 소설이지만 철학책을 읽는 느낌도 들었다. 인생에 대해 특히 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특별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인생에 대해 오랜 시간 사유할 수 있게 만든 책이었다. 또한 이 책에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카뮈의 이야기와 그의 소설 이방인에 대해 자주 등장한다. 내가 카뮈의 작품들을 읽으며 느끼고 고민했던 것들을 이 책의 작가와 함께 풀어나가는 재미가 나로서는 무척 흥미로웠다.

 이 책의 작가는 카뮈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며 그와 같은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하지만 다시 누군가를 쫓아 따라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과 현상을 보기를 결정했다. 하지만 자신만의 시각을 온전히 쫓고, 그것을 찾아 만들어내기에는 수많은 제약들이 존재했다. 과거 군사정권 시대의 사회문화가 그러했다. 시대적 흐름 앞에서 좌절하며 창작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 책 안에는 저자가 썼던 과거의 글들이 몇 편 담겨 있다. 이 글들 덕분에 이 책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고, 저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길을 정해 길을 만들어나가면서 수많은 고민과 좌절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애쓰고, 힘들게 만드는 그 길도 다른 모든 사람들 또한 그러하고 있는 수많은 길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언젠가 바람에 흙이 날리고, 그 흙이 덮히고 덮히면 또 누군가 새로 만들어야 할 무위의 땅으로 변할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카뮈의 인간에 대한 실존주의적 고민처럼 우리는 무위의 땅으로 변할지 모를 길이라도 계속 가꾸고 또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인생과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고민했듯 그 내용을 함께 따라가다 보니 나의 인생과 나 개인으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진정 행복한 책읽기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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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의 공부 벌레들 - 조선 최고 두뇌들의 성균관 생활기
이한 지음 / 수막새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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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못한다.’ 그리고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강조하던 유교사상이 팽배하던 조선시대에 과연 성균관은 지금 현재의 학교 모습과는 달랐을까?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나의 궁금증이었다. 지금 현재의 학교 모습은 뉴스에서 많이 다루어지다시피 학교 붕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학교 폭력이 난무하고, 온갖 부정한 수단을 통해 입시를 치르려고 하며, 학생이 교사에게 대드는 것은 다반사가 되었고, 아니 이제는 서로 머리채 잡고 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쯤 되면 과거 인의예지를 강조하는 조선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과거 성균관의 모습도 현재의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성균관 내에서도 폭력이 난무했으며, 온갖 부정한 수단을 통해 입시를 치르려고 하였다. 또한 학생이 체벌한 교사에게 대드는 것 또한 다반사였다.

 예를 들어, 괴롭히고자 하는 학생을 정하면 성균관 내 어린 종들이 앞잡이가 되어 분위기를 띄우고, 그 학생을 데리고 나와 성균관 학생 모두가 그 학생을 괴롭히게 되는 왕따 폭행같은 모습도 있으며, 과거 시험장에 땅굴을 파서 외부에서 답이 노끈으로 연결되어 전달되는 모습도 설명되어 있었다. 또한 체벌한 교사에게 대들거나 그 교사를 처벌해달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신입생에 대한 기강잡기나 많은 부분들이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저 유교의 전당으로 여겼던 성균관이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구나 하는 점들을 느끼고, 친숙함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조금은 실망스러움을 느끼게도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균관에서 우리가 본받을 만한 차이는 없는 것인가?’ 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문화 풍토가 조금씩 바뀌었지만, 그 안의 학생과 교사의 신분 개념, 즉 함께 가르치며 배우는 상생적 대등적 신분이면서도 아주 엄격한 상하적 신분 개념을 강조하게 역설적 신분개념과, 그리고 학교의 가장 큰 목표인 입시제도가 그대로 전달되어오면서 학교의 모습은 크게 변할 수 없었다. 아니 변할 수 없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듯 여겨진다. 하지만 과거 성균관은 국가적으로 그들에게 학생의 신분으로서 중요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했다. 즉 왕의 정책이 잘못되었다 여기면, 성균관의 학생들은 모두 하나의 목소리로 왕의 정책을 질타하면 수정을 요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에 왕은 귀를 귀울였다. 즉, 성균관은 그들만의 학생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조선은 이이나 정약용 같은 유명한 인물들도 배출할 수 있었고, 500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과연 학생들이 학생으로서의 막중한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는가? 학생으로서의 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까?

 만약 과거 성균관의 모습으로부터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학생으로서의 신분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질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는 성균관에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모습을 개탄하고 바꾸고자 한다면 교사와 학생간의 역설적 신분개념과 입시라는 제도부터 다시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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