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교과서 - 야구팬과 예비선수를 위한, 개정판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잭 햄플 지음, 문은실 옮김 / 보누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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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전까지 나에게 있어 ' 야구'란 껌이나 씹어가면서 쉬엄쉬엄 방망이나 휘두르는 팔자좋은 공놀이에 불과했다. 그러다 몇 해 전, 류현진 선수가 메이저리그 데뷔무대에서 투구하는 모습을 본 뒤, 그 공놀이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어떤 팀에 어떤 선수들이 있는지, 타자들의 타율은 어떤지 따위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지만, 마운드 위에 서서 무표정으로 무사 1,2루의 위기를 넘어가는 류현진 선수의 모습은 마치 적군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과 같은 당당함이 있었다. 그 당당함이 얼마나 눈부시던지 그 날 이후로 나는 야구경기와 관련 기사를 빠짐없이 챙겨보는 야구팬이 되어 있었다.


  야구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워낙 즉흥적이다보니 야구에 대한 지식도 주먹구구식일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단순한 공놀이라고 생각했던 야구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룰과 복잡한 숫자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찾아 읽게 된 '야구교과서'. 미국 야구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는 저자가 초보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지루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쓴 티가 역력했다. 포스아웃, 태그아웃이라던가, 인필드 플라이, 포심이니 투심이니 하는 패스트볼 종류 등 기본적이지만 그냥 흘려 들어왔던 단어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된 점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요즘은 한국 야구에 빠져 있어 관심이 좀 덜 하긴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모든 야구인들의 꿈의 무대인 만큼 드라마틱한 사연이나 기록들도 많다. 메이저리그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기록, 각 구장별 특징 같은 것들이 유머러스하게 소개되어 있는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감독은 마운드에 올라가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선수들은 무엇을 씹고 있나, 경기중에 나는 소리 같은 페이지 였는데, 어떤 야구관련 저서에서도 다룰 것 같지 않은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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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야구장에 직접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야구장에 대한 소소한 기록들이 현장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야구 룰뿐만 아니라 야구를 보다 폭 넓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해설자 노릇을 톡톡히 해주었다. 단언컨데, 이 책 덕분에 야구가 더 재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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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五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16명 지음, 차일드 하삼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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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12달로 지어진 시화집 시리즈중 한 권이다.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5월"이 처음 내 손에 들어왔을때만 해도 12달이 다 갖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 작은 책 한 권이 5월의 햇살처럼 눈두덩 위를 노곤하게 덥힐때에도 더는 욕심 부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때 쯤엔 야금야금 빼먹던 곶감이 다 떨어진 것처럼 서운한 감정을 추체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난 봄을 지나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떠돌고 말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김영랑, 김상용, 윤동주, 정지용, 백석의 시들을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고, 다시 눈으로 점점이 찍어본다. 봄이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다가 바람이 하도 다정한 탓에 기지개를 쭉 편다. 익히 알던 시도 있고 모르던 시도 있다. 하지만 모든 문장마다 봄 하늘이 있고 봄 꽃이 있고 봄 처녀가 있다. 바람이 부는대로 시어들을 쫓다 보면 어느새 5월의 무르익은 봄을 만끽하고 있다.
 


 

 일반 시집과 달리 시화집이기 때문에 시에 어울리는 그림도 중요하다. 흔히 인상주의하면 19세기 프랑스의 화가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미국에도 인상주의 화가는 있었다. '프레드릭 차일드 하삼'. 수채화나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는 이 화가의 그림은 봄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특히 꽃과 여인이 있는 풍경이 많은데 봄은 그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주의 화가 답게 봄의 빛과 그림자를 잘 살린 그의 아름다운 그림들만 보더라도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대학시절 일본 문학 수업에서 들었던 하이쿠도 반가웠다. 하이쿠는 짧은 문장만으로도 일본의 정서와 정취를 잘 담아 내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원문과 같이 실어 이해와 느낌을 같이 살리려 한 점도 좋았다.


 시화집은 처음이라 기대와 설렘 속에 책을 펼쳤고 결과는 대만족이다. 손바닥 보다 조금 큰 이 작은 책 한 권이 나른한 봄날 오후를 아름다운 꿈 속 처럼 몽환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니면 나 지금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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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고 그려 봐! - 낙서 예술가 존 버거맨과 함께하는, 신나고 재미있는 101번의 창작 수업!
존 버거맨 지음, 공민희 옮김 / 윌스타일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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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 도전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모의 면접을 기획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출연한 양세형과 조세호의 재치넘치는 임기응변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평범 이하를 표방하는 그들이 압박면접의 와중에서도 창의적인 발상들을 술술 풀어 놓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평소 유머 센스는 창의력과 연관이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 화면을 본 이후로 그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이 책의 저자 존 버거맨도 유머가 넘친다. 우울하고 자기만의 생각에 깊게 침잠해야만 창작이 되는 예술가도 있겠지만 존 버거맨은 그 반대다.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고 그러한 와중에 자기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그림들을 찾아낸다. 행위예술과 순수미술의 중간쯤이라고나 할까? 실제 존 버거맨의 작업스타일을 재미있게 엮은 이 책은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시종일관 재밌다. 재밌다는 건 누구나 좋아하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창작에 대해 두려움이 있다. 나부터도 당장 창작이라 하면 무언가 대단한 걸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은 긴장감이 생긴다. 그 두려움을 깨기만 해도 창작은 이루어 진다고, 창작은 연필을 드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존 버거맨은 말한다. 눈, 귀, 입으로 그리기, 종이가 아닌 곳에 그리기, 연필 말고 다른 재료로 그리기, 거꾸로 그리기 등등 여기에서 제시하는 101가지 방법은 결국 시선을 다르게 두는 연습(다양한 방법으로 보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예술이 사람들의 세상과 그 주변까지 바꿀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소개 중


 그의 창작 철학이 마음에 든다. 유머러스한 사람을 만나면 덩달아 유쾌해지듯이, 저자의 의도대로 이 책에 실린 많은 재미있는 시도들이 내 시간과 주변과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아이들과 함께한 몇몇 사소한 시도들은 그 사소함에 비하면 말도 안되게 어마어마한 웃음을 선물해 주었다. 이런 웃음이야말로 창의력이 솟아나는 비결 아닐까. 그러니 당신도 걱정말고 그려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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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나라 엄마 펭귄
이장훈 지음, 김예진 그림 / 51BOOKS(오일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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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에서 흥행할 때도, 한국에서 흥행할 때도, 리메이크가 되어 한국영화가 나온 지금까지도 못 본 영화다. 영화 보는 취미가 없어서 인 것도 있지만 이별에 대한 가족 영화라 아무래도 눈물 콧물 범벅이 될 듯 하여 보기가 꺼려졌던 탓도 있다. 비오는 날, 엄마가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기억을 잃을 채로 다시 돌아 온다는,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은 타임 슬립이라는 큰 줄거리에 일본영화 특유의 감각적인 편집들이 한번 보고 싶긴 했는데...하는 기억만 어렴풋하다.  

 

 

 

 

 '구름나라 엄마 펭귄'. 이 그림책은 극중 소재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모티브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하늘나라로 가기 전 구름나라에 머물던 엄마펭귄이 이유도 모른채 울고 있다. 지상세계로 내려와 이유를 찾아보지만 여전히 눈물은 멈추지 않고 이끌리듯 만난 아기 펭귄을 꼭 끌어안고서야 눈물이 멈추게 된다. 그 후 엄마 펭귄과 아기 펭귄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여러 생각들로 잠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엄마 펭귄은 찰라의 시간 동안 아기 펭귄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그 세상은 널 응원하고 있다는 메세지를 준다. 혼자서도 충분히 조개를 주울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도 하는 법도 알려준다. 만약 내가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남긴다면 저게 전부가 아닐까...



 아이들과 이 책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마음이 일렁였다. 30개월인 둘째는 엄마펭귄이 왜 가느냐고 몇 번이나 묻고 7살인 첫째는 또 빗방울 기차를 타고 내려와 아기펭귄을 만나면 될 일 이라는 듯이 대꾸했다. 가까운 이별을 한번도 목도하지 못한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엄마의 상실에 대해 까마득히 무지했다. 그 까마득함 만큼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상실의 슬픔, 아픔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상실을 겪었을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차곡차곡 쌓아주는 일이다. 엄마 펭귄은 눈물을 멈췄고 아기 펭귄은 엄마가 남겨준 것들을 양분삼아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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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을 위한 여행 - from Provence to English bay
양정훈 지음 / 라이카미(부즈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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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히 방황 중인 것 같다. 그게 처음엔 집앞 이었다가 동네 골목 어귀였다가 지금은 남쪽의 프로방스이거나 북쪽의 유럽이거나 저 멀리 동쪽의 시드니가 되었다. 길 위를 떠돌면서 외로워 하는 일이나 길 밖에 앉아 외로워 하는 일은 조금도 다르지가 않아 보인다. 그나마 길 위에 서 있는 그가 부러운 건 내가 길 밖에 있기 때문인가.


 '오직 한사람을 위한 여행'은 이력도 기괴한 양정훈 작가의 여행수필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작가라는 호칭도 불투명한, 그저 떠돌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의 풍경들을 보며, 이국의 사람들과 인사하면서도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문장들이 낯설지가 않다. 그가 자신의 깊은 곳에 가 닿을 수록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듯말듯한 미소를 짓는다.

  


p.68 저 앞에 정경이 실은 대단할 것이 없다. 수 많은 일상과 그 일상이 모여 만든 저녁이 가만히 지고 있을 뿐이다. 노랗고 환하게 집집이 별이 들고 사람들은 어둠으로 천천히 잠기는 밤. 무언가 크고 엄청난 것이 여행의 어디에 있을 것 같았지만 그건 아주 바보 같은 착각이었다.......(중략).......무언가 자기 바깥에 대단한 것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이 마침내 자신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오래오래 안도했다 

 

 

 

 이 책은 사진이 특별하다. 아니, 특별하게 느껴진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허투로 보이지가 않는다. 그것이 글의 힘인지 사진의 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둘의 조화에 마음이 이끌린다. 외로움이 켜켜히 베인 문장들도 좋다. 그 문장들로 여행과 여행지의 평범한 사람들과 가족과 연인과 사회의 비주류와 실패에 대해 말하는 것도 좋다. 그의 여행에 내가 동참할 수 있어서, 나를 위한 여행이어서 더 좋다.


 p.41 무엇도 될 수 없어서 결국 자신이 되어버린 사람은 안다. 어차피 어른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가여운 자기를 수없이 뭉쳐 만든 사람이 되는 것.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마라. 결코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런 종류의 어른이 되어 가는 것에 대해 너무 오래 부끄럽고 불안해하지 마라.

 아무것도 아닌 어른으로 살아가는 일이 부끄럽고 불안하다. 독심술이라도 한 것 마냥 내 마을을 읽어내려가는 저자의 문장들에 속으로 울었다. 속으로만 울고 있는 자신이 또 한참 슬퍼서 빨래를 개는 손이 느려졌다. 기어코 하얀 빨래 위로 검은 점들이 점점이 박힐 때까지 그의 문장들이 나를 따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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