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사람을 위한 여행 - from Provence to English bay
양정훈 지음 / 라이카미(부즈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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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히 방황 중인 것 같다. 그게 처음엔 집앞 이었다가 동네 골목 어귀였다가 지금은 남쪽의 프로방스이거나 북쪽의 유럽이거나 저 멀리 동쪽의 시드니가 되었다. 길 위를 떠돌면서 외로워 하는 일이나 길 밖에 앉아 외로워 하는 일은 조금도 다르지가 않아 보인다. 그나마 길 위에 서 있는 그가 부러운 건 내가 길 밖에 있기 때문인가.


 '오직 한사람을 위한 여행'은 이력도 기괴한 양정훈 작가의 여행수필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작가라는 호칭도 불투명한, 그저 떠돌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의 풍경들을 보며, 이국의 사람들과 인사하면서도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문장들이 낯설지가 않다. 그가 자신의 깊은 곳에 가 닿을 수록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듯말듯한 미소를 짓는다.

  


p.68 저 앞에 정경이 실은 대단할 것이 없다. 수 많은 일상과 그 일상이 모여 만든 저녁이 가만히 지고 있을 뿐이다. 노랗고 환하게 집집이 별이 들고 사람들은 어둠으로 천천히 잠기는 밤. 무언가 크고 엄청난 것이 여행의 어디에 있을 것 같았지만 그건 아주 바보 같은 착각이었다.......(중략).......무언가 자기 바깥에 대단한 것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이 마침내 자신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오래오래 안도했다 

 

 

 

 이 책은 사진이 특별하다. 아니, 특별하게 느껴진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허투로 보이지가 않는다. 그것이 글의 힘인지 사진의 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둘의 조화에 마음이 이끌린다. 외로움이 켜켜히 베인 문장들도 좋다. 그 문장들로 여행과 여행지의 평범한 사람들과 가족과 연인과 사회의 비주류와 실패에 대해 말하는 것도 좋다. 그의 여행에 내가 동참할 수 있어서, 나를 위한 여행이어서 더 좋다.


 p.41 무엇도 될 수 없어서 결국 자신이 되어버린 사람은 안다. 어차피 어른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가여운 자기를 수없이 뭉쳐 만든 사람이 되는 것.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마라. 결코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런 종류의 어른이 되어 가는 것에 대해 너무 오래 부끄럽고 불안해하지 마라.

 아무것도 아닌 어른으로 살아가는 일이 부끄럽고 불안하다. 독심술이라도 한 것 마냥 내 마을을 읽어내려가는 저자의 문장들에 속으로 울었다. 속으로만 울고 있는 자신이 또 한참 슬퍼서 빨래를 개는 손이 느려졌다. 기어코 하얀 빨래 위로 검은 점들이 점점이 박힐 때까지 그의 문장들이 나를 따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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