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잘 지내고 있어요 - 밤삼킨별의 at corner
밤삼킨별 지음 / MY(흐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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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맑음>이라는 다이어리를 사서 깨알 같은 글씨를 구겨 넣던 때가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다. 한참 20대 후반의 나는 피크까지 치닫던 업무량과 사랑이라 믿어야 했던 어설픈 연애가 끝나가는 일로 쇠진해 있었다. 그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흐릿한 혹은 유난히 선명한 사진들 아래로 엉망으로 흐트러진 감정들을 주워담는 일 뿐이었다. 처음으로 다이어리를 꽉 채워내고 나는 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했었다.


 그 어렴풋한 사진들을 찍어내고 다이어리로 엮어 낸 것이 밤삼킨별이었다. 한번 들으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독특한 필명의 그녀가 지금까지도 꾸준히 잡지에 글과 사진을 연재하고 있었다니 나로썬 마치 알던 친구를 만난 양 반가웠다. <난 잘 지내고 있어요>는 그런 잡지의 한 귀퉁이 같은 문장들과 그녀의 에세이가 합쳐진 독특한 구성의 책이다. 한번에 두 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랄까.

 

 

그녀가 찍은 사진엔 늘 여백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다. 에세이를 읽고 나니 왠지 수긍이 간다. 그녀의 뷰파인더는 늘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숨고르기에 시간을 들이고 남들은 이해 못할 공포를 애써 마주해보려는 그 부단한 노력들이 결국은 그녀 자신만을 위한 여백을 오롯이 바라보고 싶은, 그래서 기어이 살아남고 싶은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p.49  행복하지 않은 이 순간마저도 나는 잘 지내고 싶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을 순간의 여백이 되어줄, 북해도에 찾아왔다.

        앞으로 나에게 잘 지내냐고 물어줄 계절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으로 행복하지 않은 순간에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잘 지낸다는 고백이 실은 잘 지내지 못한다는 고백의 다름 아님을, 그 숨기고 싶었지만 숨길 수 없었던 외로움의 고백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도 그렇게 외로웠다고, 지금도 외로운중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보듬다 보면 외로움도 농담거리가 되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날이 있지 않겠냐고 얘기 하고 싶었다.


두 딸아이를 키우며 비슷한 양의 시간을 건너왔지만 여전히 감성 충만한 그녀의 글을 보며 다이어리를 빼곡히 채운던 나의 감성은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걸까 잠시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좀 더 무방비로, 좀 더 촉촉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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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 - 아직도 망설이는 당신에게 스펜서 존슨이 보내는 마지막 조언
스펜서 존슨 지음, 공경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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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움베르트 에코의 유작 <0>를 읽었는데 이번엔 스펜서 존슨의 유작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이 기막힌 우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많은 지식인들의 책이 전세계인을 열광시키는 동안 난 어디에 있었던 걸까? 세상의 변화에 둔감했고, 늘 뒤쳐졌고, 그래서 더더욱 좁은 내 세상안에 갇혀있던 것은 아닐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한참 베스트셀러로 서점 꼭대기의 기록을 갈아치우던 시절에도 나는 무얼 하느라 그 책을 보지 못했을까? 그렇게 내가 눈길도 안주던 책들에 내 인생을 바꿀만한 메시지가 있진 않았을까? 그 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내 인생은 조금 달라져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자 난 나도 모르게 헴과 똑같은 대사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왜 허와 같이 가지 않았을까?”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의 후속편이다. 헴과 허가 있던 미로에 치즈가 사라졌다. 치즈가 사라지자 허는 어디론가 떠났고 치즈를 얻어왔다. 그리고 다시 떠났다. 헴은 치즈와 허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망연자실 한 채 그동안 해 왔던 자신의 신념대로 고군분투해 보지만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헴의 곁에 둥글고 빨간 돌멩이들과 호프라는 꼬마인간이 나타나는데그 후로 헴의 삶은 급변한다.


전편을 통해 변화에 대해 인지하고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이해 했다면 이번엔 진짜 움직일 차례다. 자기계발서의 가장 큰 덕목은 좋은 문장도, 올바른 매뉴얼도 아닌 독자를 실제로 행동하게 만드는 깨달음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이미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이 단순하고 어쩌면 그저그래 보이는 이야기로 한 사람, 아니 전세계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니… ’이 사람은 천재야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P.61 헴은 그녀가 먹으라고 준 사과들을 떠올렸고,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마워" 헴이 말했다.

        "별 말씀을" 호프가 대답했다.

        헴은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이걸 먹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 믿기지 않아!" 그가 말했다.

        "믿을 수 있어. 그저 내려놓고 시도해보면 어렵지 않아"

       호프가 생긋 웃으며 대꾸했다.


겨우 책 한 권을 읽는 일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난 헴처럼 머뭇거리고, 지난 시절 쌓아온 신념에 집착하고, 낡은 연장으로 헛된 수고를 계속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사실이라고 믿어왔던 진실들이 사실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면 어떨까?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새로운 신념을 가지는 일은, 치즈가 아닌 다른 음식을 먹는 일은, 전에 없던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아주 작은 행동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긍정적인 희망이 저자가 호프라는 꼬마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 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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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들이 노래한다 - 숀 탠과 함께 보는 낯설고 잔혹한 <그림 동화> 에프 그래픽 컬렉션
숀 탠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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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코뼈가 사라진 해골이 음산하다. 채도가 낮은 거무튀튀한 빨강은 해골의 거무스름한 흰색과 대비되어 더욱 어두운 분위기를 풍긴다. 숀탠이라는 미술가는 그림형제의 동화를 원작으로 조형물을 만들어 냈다. <뼈들이 노래한다>는 그림 동화의 짧막한 한 장면과 함께 그 이야기의 함축적인 이미지를 숀 탠의 작품들로 채워 넣은 감각적인 작품집이다. 동화라지만 원작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은 형태는 두리뭉술하고 색상은 채도가 낮고 전해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그림 동화, 그 이야기 원형의 잔혹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림형제가 문헌학자라는 사실도, 그들이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이야기들을 기록해왔다는 사실도, 그 기록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죽을때까지 노력해왔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숀 탠의 전작빨간나무로 인한 기대치 때문이지만, 역사적 사료로써의 그림 동화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가치를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야기의 유명세에 발맞춰 무수히 많은 삽화가들이 그림 형제의 동화에 삽화를 그렸지만 숀 탠의 이번 작업은 좀 특별하게 느껴진다. 첫째 각색, 순화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원작을 기본 스탠스로 했다는 점, 둘째, 그림이 아닌 조형물로 표현해냈다는 점, 셋째, 한편의 줄거리를 구성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압축된 이미지를 통해 거의 모든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림 형제의 동화집이 아니라 그림 동화에 영감을 받은 숀 탠의 작품집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여러 작품 중 가장 인상 깊게 느껴졌던 작품은 노간주나무’, ‘새가 주운 아이’, ‘홀레 할머니.


계모가 아이를 끓여 아버지에게 먹인다는 잔혹성 넘치는 이야기 노간주나무’. 사과 궤짝에 얼굴을 넣게 하고 뚜껑을 닫아 머리를 댕강 잘라버린 후 자신의 소행임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친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최강 막장 계모가 나온다. 이 이야기의 작품은 오히려 섬뜩할 정도로 심플하다. 음영과 색의 대비 만으로도 이렇게 소름 돋는 느낌을 재현해 내는 작가의 대단한 내공을 느낄 수 있다. 나가 떨어진 머리가 새의 얼굴인 것은 새가 곧 아이의 환생이라는 해석 때문일 것이다. 책에 실린 문장보다는 이야기 전체를 아는 것이 이 작품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된다.

 

 

 

 새가 주운 아이새가 주운 아이를 끓여먹으려는 요리사를 피해 아이들이 교회로 변하고 샹들리에로 변한다는 설정도 재밌었지만, 작품에서 나쁜 요리사라는 굴레에 매달려 뾰족뾰족한 가시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고 있는 아이의 표정이 전혀 절망적이지 않은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아이들의 우정 혹은 애정이 너무도 애틋하게 느껴지는 네가 날 안버리면 나도 널 안 버릴 거야라는 텍스트도 인상적이다.

 

 

 


홀레 할머니는 전혀 모르던 이야기였지만 숀 탠의 작품만 봐도 홀레 할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닌게 틀림없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생긴건 험상궃지만 다정한 할머니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림 형제의 다양한 이야기가 실리다 보니 우리에겐 전혀 생소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땐 뒷편에 실린 줄거리를 확인하거나 다른 책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모아본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 전체가 궁금해서 못 견디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야기 줄거리는 모르지만 오른쪽의 작품을 보면 대강 그 이야기의 분위기와 줄거리가 연상되면서 독자 나름의 해석도 가능하다. 텍스트와 미술작품의 절묘한 콜라보레이션이 무척이나 새롭고 즐거운 독서 경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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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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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으로>를 읽다 내팽겨친 이후로 움베르트 에코의 책을 다시 집어들기까지 나름 큰 결심이 필요했다. 난생 처음 보는 기호 같은 문장들로 짜여진 미로에서 또 길을 잃을까 두려웠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0>를 읽게 된 건, 움베르트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지성의 엄숙한 죽음 앞에서 뜬금없이 이 저자의 소설을 죽기전에 한번은 제대로 읽어 보고 싶다는 지적 허영 혹은 호기심이 발동 했다.


 

 

 

영원히 창간되지 않을 신문 도마니를 제작하기 위해 화자 콜론나를 비롯, 6명의 기자들이 모인다. 도마니 예비판 제0호를 제작하기 위해, 이들은 마치 일어날 법한 사건을 가정하거나, 정해진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한 기사, 독자들을 선동하기 위한 고급 기술 같은 것들을 논의한다. 이 신문에서 다루어 지는 모든 기사는 신문사의 지배 주주 콤멘다토레의 의중에 따라 결정된다.  이용가치가 있는 것은 신문의 이름뿐, 신문의 존재는 진실이 아니어도 아무 상관없다. 당연히 진실이나 정의 같은 틀에 박힌 책임감 따위도 애초부터 계산에 없다.

 


 

 

p.80  X는 자기 나름의 세상에서 신이야, 문제는 그 X나름의 세상이라는 것이 똥이라는데 있지.  

 

극중 인물 중 기자 브라가도초가 벌이는 일련의 이야기들은 가장 핵심적인 에피소드임과 동시에 부패한 저널리즘을 관통하고 있다. 읽는 내내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뒤쫓느라 빈곤한 지식에 허덕이던 나는 어느 순간 그의 이야기들이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는다. 정치색 일색에, 편파적이고, 자극적이고, 대중들의 음모론을 선동하고, 심지어 맞춤법조차 엉망인 쓰레기 같은 인터넷 기사들을 오늘도 줄곧 경험하지 않았나.희극적이게도 브라가도초의 영어 뜻은 허풍이다.


 

p.196  우리는 그저 의혹을 널리 퍼뜨리기만 하면 됩니다. 누군가가 수상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누군인지 모르지만, 그자에게 겁을 줄 수 있어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중에 우리에게 이익이 돌아올 겁니다. 때가 되면 우리 발행인이 이익을 볼수도 있겠지요.


소설 도입부의 긴장감이 결말에 가서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급경사면을 활강한다. 중반부의 세계 1,2차 대전 당시의 유럽 동향이나, 무솔리니가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파시즘, 곳곳에 즐비한 문학적 인용어구들을 읽어갈 때까지만해도 이 소설은 대체 어떻게 끝나게 될까 궁금했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기연가미연가하다. 르포 같은 소설인지, 소설 같은 르포인지, 어디까지가 역사적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인지, 현재의 이야기인지.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엔 적어도 미로에 빠지진 않았다는 점이다.


나처럼 독서 경험이 일천한 사람이라면 그의 유작 <0>부터 시작해 거슬러 올라가는 편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을 통해 움베르트 에코의 넘치는 지성과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단번에 수긍하게 되었고 그의 이야기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그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없이 애석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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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무레 요코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김현화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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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동물원에서 보기만 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하겠지만 내 손으로 키워야 한다면 더더욱 반갑지 않다. 1차적으로는 게으른 성격 탓이지만 한 생명이라는 존재가 주는 책임감이 너무 무거워서 싫은 이유도 있다. 그런 나에게 결혼해서 가장 높은 관문은 시댁에서 키우는 애완견이었다. 지나치게 발랄한 이 토이푸들은 처음 본 나에게도 꼬리를 흔들며 서슴없이 달려들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는 무레 요코의 동물에세이다. 키우는 건 별로지만 티비프로인 동물농장을 즐겨보는 애청자로서 무레 요코의 눈으로 바라본 동물들의 일상이 무척 궁금했다. 처음 소개 되는 고양이는 아저씨 고양이 시마짱이다. 눈은 다춧구멍만하고 뚱뚱한데다 아저씨 말투를 쓰는 길고양이다. 자기집도 아닌데 당당하게 들어와 당연하다는 듯이 먹을 것을 요구하는 이 고양이를 대체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얻어먹는 주제에 자기 취향의 먹이를 섬세하게 골라낸다. 생각보다 무례하고 거침없는 시마짱의 도도함에 놀랐고, 무엇이든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무레 요코의 마음 씀씀이에 한번 더 놀랐다.


 

저자가 어렸을 적 길렀던 설치류(, 햄스터등)에 대한 이야기, 지인의 개에 대한 이야기, 산책길에 만나는 여러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저자가 왜 따듯한 이야기를 잘 쓸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하나의 생명을 그저 존재하는 아름다운 생명으로 대할뿐 무거운 책임감을 우선시 하거나 뒤따르는 수고로움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물론 모기는 제외) 이것은 아마도 인간과 동물을 대등한 시선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동물을 나처럼 돌보아 주어야만 하는 존재로 여긴다면 시마짱 같은 고양이는 절대 곁에 둘 수 없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시마짱이 왠지 그립다. 저자의 묘사와 똑 닮은 일러스트를 보며 왠지 집 안 어딘가에서 저런 포즈로 뒹굴고 있을 것만 같다. 시댁에서 사는 개 복실이도 아마 이렇게 그리워 질까. ‘복실이와 어색하게 지내 온지도 벌써 8년이 넘었다. 결혼 전부터 키우던 개라 이미 사람 나이로는 100세정도에 다다랐을 것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달려들지도 않고 특기이던 공받기도 자꾸 떨어트리고, 하루종일 긴 잠을을 자는 개가 되었다. 옆집 고양이 비이짱, 시마짱, 간디의 마지막이 어쩔 도리 없이 나에겐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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