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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들이 노래한다 - 숀 탠과 함께 보는 낯설고 잔혹한 <그림 동화> ㅣ 에프 그래픽 컬렉션
숀 탠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2월
평점 :
표지부터 코뼈가 사라진 해골이 음산하다. 채도가 낮은 거무튀튀한 빨강은 해골의 거무스름한 흰색과 대비되어 더욱 어두운 분위기를 풍긴다. 숀탠이라는 미술가는 그림형제의 동화를 원작으로 조형물을 만들어 냈다. <뼈들이 노래한다>는 그림 동화의 짧막한 한 장면과 함께 그 이야기의 함축적인 이미지를 숀 탠의 작품들로 채워 넣은 감각적인 작품집이다. 동화라지만 원작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은 형태는 두리뭉술하고 색상은 채도가 낮고 전해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그림 동화, 그 이야기 원형의 잔혹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림형제가 문헌학자라는 사실도, 그들이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이야기들을 기록해왔다는 사실도, 그 기록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죽을때까지 노력해왔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숀 탠의 전작 ‘빨간나무’로 인한 기대치 때문이지만, 역사적 사료로써의 그림 동화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가치를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야기의 유명세에 발맞춰 무수히 많은 삽화가들이 그림 형제의 동화에 삽화를 그렸지만 숀 탠의 이번 작업은 좀 특별하게 느껴진다. 첫째 각색, 순화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원작을 기본 스탠스로 했다는 점, 둘째, 그림이 아닌 조형물로 표현해냈다는 점, 셋째, 한편의 줄거리를 구성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압축된 이미지를 통해 거의 모든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림 형제의 동화집이 아니라 그림 동화에 영감을 받은 숀 탠의 작품집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여러 작품 중 가장 인상 깊게 느껴졌던 작품은 ‘노간주나무’, ‘새가 주운 아이’, ‘홀레 할머니’다.
계모가 아이를 끓여 아버지에게 먹인다는 잔혹성 넘치는 이야기 ‘노간주나무’. 사과 궤짝에 얼굴을 넣게 하고 뚜껑을 닫아 머리를 댕강 잘라버린 후 자신의 소행임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친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최강 막장 계모가 나온다. 이 이야기의 작품은 오히려 섬뜩할 정도로 심플하다. 음영과 색의 대비 만으로도 이렇게 소름 돋는 느낌을 재현해 내는 작가의 대단한 내공을 느낄 수 있다. 나가 떨어진 머리가 새의 얼굴인 것은 새가 곧 아이의 환생이라는 해석 때문일 것이다. 책에 실린 문장보다는 이야기 전체를 아는 것이 이 작품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된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1128/pimg_7338931712058848.jpg)
그림 형제의 다양한 이야기가 실리다 보니 우리에겐 전혀 생소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땐 뒷편에 실린 줄거리를 확인하거나 다른 책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모아본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 전체가 궁금해서 못 견디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야기 줄거리는 모르지만 오른쪽의 작품을 보면 대강 그 이야기의 분위기와 줄거리가 연상되면서 독자 나름의 해석도 가능하다. 텍스트와 미술작품의 절묘한 콜라보레이션이 무척이나 새롭고 즐거운 독서 경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