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국수 금지
제이콥 크레이머 지음, K-파이 스틸 그림, 윤영 옮김 / 그린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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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멸치 국물에 노오란 계란 지단이 얌전히 올려진 잔치국수는 우리 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돈까스도 아니고 스파게티도 아닌 국수를 찾는 아이들이 별스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간만의 외식 메뉴로는 소박함이 지나쳐 썩 내키지 않는데 말이다.

   <오늘부터 국수금지>, 그런 이유로 아이들은 이 책의 제목만 읽었는데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투사처럼 분노했다. “말도 안돼 국수가 금지라니…” 주인공 국수광코끼리 만큼이나 볼멘소리를 하는 아이들의 반응이 재미있어 나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는 손이 빨라진다.


루마을에 사는 코끼리는 국수를 좋아한다. 국수광코끼리는 종종 이웃 친구들과 국수잔치를 열곤 했는데 법 만들기 좋아하는 캥거루들은 어느날 국수는 캥거루만 먹을 수 있다는 법이 있으니 더 이상 국수는 금지라고 말한다. 법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 국수광코끼리는 고민끝에 밀가루 대신 여러가지 물건을 국수로 만들어 내는 만능국수기계를 만든다. 다시 국수를 먹을 수 있게 된 코끼리와 친구들은 잔치를 벌이고 이를 알게 된 캥거루들은 코끼리를 감옥에 가두고 유죄를 선언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법, 정의, 공평, 민주주의 같은 단어들을 아이들과 생각해 본다. 어려우니 그냥 두리뭉실하게 흘려듣는 수준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각하는 원초적인 것들이 결국은 가장 본질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공평이라는 건 친구들이랑 사탕을 나눠 먹는 것처럼 똑같아야 해라고 이야기 하는 큰 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본다. 캥거루들의 행동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야 말로 정의그 자체가 아닌가 하고코끼리와 친구들이 벌이는 소소한 소동들이 실은 불공평을 공평하게 만들려는 바로 그 정의’였다고...

 

 

요즘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문제들은 일부 특권층에게 모든 법이 공평하게 작용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불법을 저질러도 그들의 특권으로 무엇이든 무마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함이 마치 법은 우리만 만들 수 있어.”라고 외치는 캥거루들 같다. 정의란 무엇일까? 정의와 공평의 의미가 사라진 법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서 국수광코끼리처럼 용감하게 외칠 수 있을까? 우리는 저 캥거루들과 화해할 수 있을까?

이야기가 좀 무거워 졌지만 <오늘부터 국수금지>가 무거운 그림책은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쪽에 가깝다. 루마을에 얼마나 다양한 이웃들이 살고 있는지, 만능 국수 기계가 뭘로 국수 면발을 만드는지, 국수광코끼리와 친구들이 얼마나 용감한지 읽다 보면 비교적 두툼한 책도 금방 끝이 난다. 물론 나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저녁은 국수를 끓이는 신세가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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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세계 속으로 : 일본편 - 걸세 PD의 일본 여행 베스트 12 걸어서 세계 속으로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제작팀 지음 / 봄빛서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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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애청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요즘처럼 정보 채널이 다양한 시대에 공영 방송사의 게스트 하나 없는 잔잔한 여행프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이 프로만의 매력이 있다는 방증일 테다. 개인적으로 이 프로가 좋은 이유는 보여주기식 여행이 아니라 순수하게 낯선 여행객으로서의 시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를 거닐면서 낯선 나라의 문화, 역사, 풍습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좋고 특히, 그 속의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모습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진정한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은 이런 여행이야 하면서 나 또한 소파 위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일본편>PD들의 일본 여행 중 베스트 12만을 간추려 만든 책이다. 지금까지 기획, 촬영, 편집, 원고작성까지 프로듀서 한 사람이 모두 진행해 왔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 그래서 이 책은 각 챕터마다 지은이(PD)가 다르다. 일본은 가깝고 안전하다는 이유로 우리에겐 너무 식상한 여행지가 되었지만 이 책에 실린12명의 서로 다른 여행가는 우리를 새로운 일본으로 안내한다. 이들은 우동, 올레길, 영화 등 다양한 테마를 가지고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에서 최남단 큐슈(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을 누빈다. 교통비가 비싼 일본에서 실제 이 정도 동선의 여행은 나에겐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12명의 여행기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끌었던 장소는 시코쿠다. 규슈의 올레길도 무척 흥미로웠지만, 시코쿠는 우리나라에 가장 알려지지 않은 일본 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리쓰린 공원의 일본식 정원이나, 예술의 섬 나오시마, 센과 치히로가 튀어 나올 것 같은 도고온천, 나쓰메 소세키가 거닐던 길들, 일본의 아름다운 거리 100선에 뽑힌 우치코 마을 등등 내가 모르는 일본이 즐비하다. 특히 새로웠던 오헨로순례길. 시코쿠섬의 88개의 불교 사찰을 순례하는 일을 오헨로라고 부른다. 순례길이라고는 산티아고밖에 모르던 무식쟁이에게 무려 1200년 전부터 일본에도 순례길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 놀라웠다.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저마다의 사연을 끌어안고 길 위에서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덤덤히 바라보는 여행자의 시선이 뭉클했다. 

  

일본은 가까운 만큼 여행자도 많고 여행정보도 풍부하다.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에 한국어가 쓰여 있을 정도니까. 그러다 보니 정말 일본스러움을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나라 인사동에서 전통적인 느낌을 받기 어려운 것처럼). 이 책은 그런 부분을 다소나마 해소해준다. 시끌벅적한 SNS용 여행정보들이 성에 차지 않을 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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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 꽃과 잎이 그려 낸 사계절 이야기 꽃잎과 나뭇잎으로 그려진 꽃누르미
헬렌 아폰시리 지음, 엄혜숙 옮김 / 이마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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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이다. 미세먼지 덕분에 어느 계절에 와 있는지도 혼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 틈마다 새순이 움튼다. 그 작은 푸른빛은 희망이기도 해서 뿌연 하늘 밑에서도 꽃들이 넘실대는 완연한 봄을 꿈꾸게 해준다. 샘 많은 추위도, 목이 턱 막히는 미세먼지도 그 희망의 빛들을 모으며 견뎌낸다. 그리고 때때로 봄을 닮은 아름다운 책을 보며 버티기도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꽃의 아름다움을 박제하여 사계절의 장면들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해낸 책이다. 꽃과 나뭇잎 같은 식물들을 말려 수분과 공기를 제거하는 전통적인 꽃누르미(압화) 방식으로 보존한 다음, 작가의 스케치에 맞춰 배열하는 순으로 제작되었다. 실제 책을 보면 말린 식물들로만 표현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한데다 유려하고 풍부한 패턴들이 눈을 뗄 수 없을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은 생동하는 기운으로 꿈틀대는 자연의 요소요소를 세심하게 담았다. 노래하는 새들, 움트는 식물들, 들판을 뛰어다니는 산토끼, 개구리와 오리 가족, 꿀이 넘치는 꽃과 나비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여름은 모네의 그림을 잠시 상상하게 되는 밀밭과 양귀비꽃들, 풀숲의 곤충들, 여름밤의 사냥꾼들이 뜨거운 여름을 떠오르게 한다. ‘가을은 가을색으로 변하는 나뭇잎들, 색색의 열매와 버섯들, 이동하는 철새들이 겨울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겨울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과 겨울을 나는 식물들, 혹독한 추위에도 살아남으려는 몸짓들이 다음 봄을 기다린다.   


눌러 말린 꽃들이라 생화의 빛깔보다는 채도가 낮다. 채도가 낮으면 탁하다는 느낌이 들게 마련인데 어쩐일인지 이 책은 수채화처럼 맑다. 물감은 한방울도 쓰지 않았는데 마치 붓으로 그린 것처럼 부드러운 터치감도 느껴진다. 이렇게 섬세한 표현을 하기까지 작가의 수고로움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그래서 더 천천히 들여다 보게 된다. 오리가 지나간 자리나, 왜가리의 벼슬, 토끼의 귀끝 같은 것들을계절의 감각을 더듬는 기분으로 천천히 음미하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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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읽을걸 - 고전 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
유즈키 아사코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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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G폰을 쓰던 시절에는 하루종일 만나고 헤어진 친구와 밤새도록 통화를 하고도 이야기가 남아 내일 만날 약속을 잡곤 했다. 하는 얘기는 대부분 비슷하거나 지난번에 했던 그 얘기지만 뭐가 그리도 재밌었는지 귀가 뜨거워질때까지 깔깔거렸다. 요즘은 스마폰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어서 그 작은 화면을 이러저리 움직이는 일로 밤이 깊어지고는 한다. 핸드폰 화면이 쏟아내는 무한한 정보와 일방적인 이야기들이 의미 없이 느껴지는 어느 날엔 옛날 친구들과 밤새 떨던 수다가 그리워지곤 한다. <책이나 읽을걸>은 그렇게 누군가와 수다를 떠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를 쓴 유즈키 아사코가 쓴 에세이니 대화상대로는 찰떡이다. 뭔가 말이 잘 통할 것만 같다.

 

저자가 프랑스, 일본, 영국, 미국의 고전소설을 읽고 잡지(우리나라로 치면 샘터?)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만든 책이다. 아주 오래된 고전이 아닌 근현대소설을 주로 다뤘고 그중에서도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가 많다. ‘고전 속의 그녀들과 나눈 주관적인 수다라는 표제 문구는 이 책의 모든 것을 명확히 압축한 문장이다. 나도 기꺼이 그 수다에 동참하기로 한다.

 

 

p.13  수도원 출신과 여학교 출신의 공통점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열어주는 너그러움,

        ​이성에게 경계심이 강한 듯 보이면서도 살짝 바보스러운 순진함,

        ​넘어지더라도 꼭 뭔가는 손에 쥐고서야 일어서는 묘한 강인함이다.

 

몇 페이지 읽지 않고도 이 수다가 얼마나 즐거울지 무척 흥분되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읽고 수도원 출신의 주인공과 여중, 여고 출신의 자신의 공통점을 찾는 부분부터 맞아,맞아너무나 완벽한 공감이 이루어진다.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마음껏 야심과 열정을 부린 주인공을 통해 일말의 해방감을 느꼈다는 부분도 쉽게 수긍이 갔다. 나도 요즘 우리는 너무 소진되었다는 핑계로, 권태를 권장하고 손쉬운 위로만이 난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오만과 편견>의 로맨틱한 달콤함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느꼈던 불편함도 <나나>를 한 소녀의 성공스토리로 읽겠다는 그녀의 이상한 다짐에도 수없이 맞장구를 치며 읽어내려갔다. 아는 이야기보다 모르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 그나마도 고전 요약본으로 주제만 간신히 기억하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이야기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무엇보다도 고전 속 주인공들을 매우 인간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다. 마치 옆집 언니처럼 아는 동생처럼 그들의 삶을 기꺼이 이해하려는 태도가 따뜻하기도, 재미있기도 했다. 고전에 대한 사회적 평가, 관습적 통념에 전혀 개의치 않는 그녀의 뜻밖의 생각들이 내 좁은 시야를 트여 주는 느낌도 들었다. 고전의 무거움도 전혀 없다. 그러니 오늘은 침대맡에서 핸드폰 대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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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히어로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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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하다. 상세한 설명이나 섬세한 묘사는 없다. 인물도 배경도 단문형 문장속에서 간단하게 사라지거나 생겨나거나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100페이지를 쏜살같이 관통한다. 이토록 새롭고 이상한 이야기라니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이 이상한 이야기에 순순히 이끌려가고 있는 나도 좀 이상한가?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나의 마지막 히어로>, 저자는 나의 미천한 독서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생소한 이름 엠마뉘엘 베르네임이다. 프랑스의 3대 문학상으로 불리우는 메디치상의 수상작가인 그녀는 100쪽 남짓한 소설 다섯 편만을 남기고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 시나리오나 대본을 주로 접했던 이력 때문인지 그녀의 길지 않은 소설은 어느 시나리오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의 마지막 자전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그녀가 이미 살았거나 혹은 살고 싶었던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나의 마지막 히어로>의 히어로는 다름 아닌 실버스타 스탤론이다. 내 기억에 따르면, 땀에 절은 런닝셔츠,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한 근육질 몸, 눈은 반쯤 뜨다 만 것 같은 스탤론의 외모는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줘도 한 눈에 반할 정도는 아니다. 주인공 리즈가 1도 아니고 2도 아니고 <록키3>를 보고 불현듯 스탤론의 팬이 된 것은 그의 탄탄한 팔뚝 때문이 아니라 영화 속 록키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록키 발보아 처럼 다시 일어나 가슴 뛰는 삶을 살아낼 것이라는 희망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p11. 걸음을 뗄 때마다 허벅지 근육, 종아리 근육이 느껴졌다.

       허리 무릎 발목의 관절이 각각 작동했고,

       ​보도의 탄성이 발바닥에 전해지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뛰지 않았지?

       마르샬 박사의 병원에서 일하는 시간과 미셸과 보내는 시간 사이에

       리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는 아무것도.


p.15  영화 초반의 록키 발보아처럼 그녀는 되는 대로 살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록키 발보아처럼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    스물다섯 살이었다.

​    지금이야말로 다시없는 기회였다.



리즈는 <록키3>를 기점으로 새로운 삶을 꾸리기로 한다. 5년만에 의과 공부도 다시 시작한다. 그녀는 록키 발보아 처럼 다시 일어선다. 그녀의 새로운 선택을 비웃는 가족, 애인은 단칼에 잘라낸다. (특히 이 부분이 얼마나 통쾌하던지…) 리즈의 삶은 그녀가 선택한 일과 사람으로 다시 채워진다. 새 연인 이 생겼고 의사가 되었고 차례로 두 아들이 생겼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는 스탤론의 영화를 모조리 챙겨보리라는 최초의 다짐을 지켜낸다. 스탤론 덕분에 리즈의 인생은 달라졌고 이제 그녀의 삶은 망할 위기에 처한 영웅을 구하기 위해 통장을 만들 정도로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 있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다소 콩트적인 느낌이 든다. 얼핏 새드엔딩처럼 보이지만 실은 해피엔딩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리즈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살아냈다는 점이 가장 인상깊다. 거기에 스탤론의 영화들이 배경처럼 지나간다. 사실 스탤론은 상징일뿐, 그녀의 인생을 본인의 의지대로 지켜낸 것은 그녀 자신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날 리즈가 <록키3>를 보지 않았더라면, 록키 발보아가 챔피언이 되는 순간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리즈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그 한 순간을 운명이라고 부른다면 스탤론, 그는 리즈의 마지막 영웅이 틀림없다.  


이 책에는 나처럼 엠마뉘엘 베르네임이라는 이름이 낯선 독자들을 위해, 영화계와 문학계를 아우르는 대담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다혜 기자와 이종산 소설가의 지적인 대화를 읽다보면 <나의 마지막 히어로>에 대한 다른 면모들을 발견하는 것은 물론, 저자의 전작들이 아주 궁금해진다. 편독 방지를 위해 해외 소설도 많이 읽어봐야지 했던 참에 눈여겨 볼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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