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 수묵 일러스트 그리고 수제 도장
정혜선 지음 / PUB.365(삼육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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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마음을 울리는 문장과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런 문장들은 왠지 꼭꼭 마음에 새겨 놓고 싶고, 어딘가 적어 놓고 싶고, 어느 날 문득 다시 마주쳐서 새롭게 감동하고 싶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요즘은 캘리그라피로 정형된 문자 혹은 문장들을 이미지화한 상품이나 디자인들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온다. 그중에서도 다분히 동양적인 수묵 캘리그라피, 수묵 일러스트에 관심이 생긴 것은 책 속의 깊이 있는 문장들은 왠지 다소 묵직한 느낌이여야 한다는 개인적인 취향의 반영이었다.

캘리 수묵일러스트 그리고 수제도장이 책은 전직 간호사(서예전공자가 아닌)에서 무언가 자신을 이끄는 힘에 이끌려 서예에 빠져들었다는 저자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누구나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차근차근 만들었다는 대목에 믿음이 가는 이유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초심자가 준비해야할 준비물에서부터 붓을 잡는 법, 연습하는 법, 기초적인 표현기법까지 상세한 설명이 차분히 이어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기초에서 벗어나 더 근사한 작품을 위한 다양한 그림예제들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 물감을 묻히는 순서부터 한 획을 긋는 부분까지 하나하나 사진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래도 따라가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요즘 책답게 QR코드로 시청각효과도 높였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캘리그라피와 수제도장은 무슨 연관이 있나 한참을 생각했다.하지만 수제 도장을 만드는 과정을 보며 바로 납득했다. 나는 도장을 팔 때 쓰이는 글씨체를 간과하고 있었다. 어떤 글씨체로 파 내느냐에 따라 수제 도장의 다양한 매력이 생겨난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나 또한 우리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수제 도장을 하나씩 선물했다. 아이들이 앞으로 세상에서 불리우게 될 이름을 공표하는 나만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멋진 글씨체에 멋진 몸체를 가진 도장이여야 했다. 그런 뜻깊은 도장을 내가 직접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캘리 수묵일러스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진 책임은 틀림 없으나 이 책은 일러스트 위주의 설명이 많으므로 글씨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면 저자의 첫번째 책 캘리 아름다움을 쓰다를 먼저 보는게 좋을 것 같다. 캘리그라피에 전혀 문외한인 내가 좀 후회 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어찌됐건 글씨, 그림 어디서부터 시작하든 캘리그라피에 도전해 보고 싶은 의지가 마구마구 생기게 하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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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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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인 책이라거나 부도덕적인 책이라는 것은 없다.

책은 잘 썼거나 잘못 썼거나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어떠한 예술가도 결코 병적이지 않다. 예술가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예술가에게 생각과 언어는 예술의 도구이다.

예술가에게 악덕과 미덕은 예술을 위한 재료이다.

                    -  오스카 와일드 서문 中

오스카 와일드는 동화 행복한 왕자를 쓴 영국의 유명한 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번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작품을 접하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게 되었는데 알면 알수록 이 소설이 그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강력하게 긍정해주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그야말로 엄친아인 오스카 와일드는 심미주의, 유미주의에 심취한 채 상류사회에서 유명한 극작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고, 41세에는 부인과 아들을 두고 미성년과의 동성연애에 빠져 2년간 수감생활을 한 뒤, 프랑스 어딘가에서 뇌수막염으로 쓸쓸히 죽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런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갈망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름다운 미소년 도리언 그레이,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말투로 도리언 그레이를 사로잡는 헨리 워튼, 아름다움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자 바질 홀워드, 이 세 사람의 중심 인물을 둘러싼 기괴한 이야기가 소름 끼치게 펼쳐진다.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미에 대한 욕망으로 자신의 초상화에 그려진 아름다움까지 질투하게 된 도리언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거치며 윤리, 도덕, 인간성에 대한 본질을 망각하고 오로지 욕망과 쾌락에만 의지한 채 파국으로 치닫는다. 끝내 자신의 초상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얼굴로 최후를 맞기까지도 그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꿈꾸었다.


 세 인물은 언뜻 너무도 다른 성향을 가진 듯 하지만, ()에 대한 갈망, 찬양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도덕적 선 안에서 지키려고 애쓰는 일, 아름다운 것 외에는 무가치하다고 믿는 냉소적 인간성, 아름다움을 가지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악무도함, 이 모든 것이 오스카 와일드라는 뿌리에서 세 가지 인물로 자라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이 소설이 자전적이라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다. 바질이 도리언에게 느끼는 애틋한 감정 묘사나 헨리 워튼이 가진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도 작가의 동성애적 성향에 대한 반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결말을 보면서 그가 윤리적, 사회적 잣대에 반감은 가지고 있을지언정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소설에 쓰인 문장들은 다소 장황하고 길어서 한번에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엄청난 것이어서 역시 극작가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책을 한번 잡으면 중간에 잠시 내려놓기가 매우 어려웠다. 소설에 삽입되는 그림은 장면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 시킨다는 면에서 별로 달갑지 않지만, 이 책의 경우, 물고 물리는 살인사건들이 미스테릭하고 몽환적인 박희정의 그림체와 맞물려 이 소설에 대한 완벽한 몰입을 돕는다. (물론, 박희정 작가의 그림에 대한 높은 애정도도 어느 정도 관여했음을 시인한다.)


오랜만에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나, 등등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재미도 있는데 진지하게 생각할 화두까지 던져주는 매력적인 책을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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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 - 사랑받는 여자, 인정받는 여자의 조건
데일 카네기 지음, 미리내공방 옮김 / 정민미디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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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살이 되던 해였나.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고 내 인생의 자기계발서는 이 책 이상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수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쏟아져 나온던 때지만 카네기의 문장들만큼 나를 의욕적으로 만든 책은 없었다. 그런 그가 여자들을 향해 던진 문장들을 따로 모아 출판된 책이 있다니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침착' 이라는 제목은 왠지 카네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지만 표지 컬러와는 썩 잘 어울린다.

 


 이 책의 기본적인 목소리는 "여성도 사회에 나가 본인의 욕망을 성취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내면과 행복한 자아를 끊임없이 가꾸어나가야 한다, 그것이 결국은 아름다운 여성으로서의 삶을 지속하는 길이다."이다. 데일 카네기는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전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런 진보적 여성관을 가졌다는 부분이 일단 놀라웠다. 근시대적 여성관과 혐오 포비아에 빠진 사회적 흐름을 등에 업고 '여혐'이 판을 치는 요즘 시대에 이런 발언을 하는 남성이 있다면 박수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p.187

    지혜로운 여자는 침착하고 여유롭다. 그들은 초조해하거나 불안에 떨지 않으며 자기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인다. 또한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카네기의 이야기들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귀에 잘 박히는 이유는 풍부한 사례에 있는 것 같다. 루즈벨트 대통령, 나폴레옹 같은 위인에서부터 주변의 친근한 이웃까지 그가 사례로 든 수 많은 삶들이 그의 문장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물론 지금에 와서 읽는 카네기는 예전의 그것만큼 마음을 흔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내가 그만큼 현실과 많이 타협된 상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여전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며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지 않는 강인한 내면을 길러 매력적인 여성으로 거듭나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나. 카네기의 메세지를 새겨 들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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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교과서 - 야구팬과 예비선수를 위한, 개정판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잭 햄플 지음, 문은실 옮김 / 보누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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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전까지 나에게 있어 ' 야구'란 껌이나 씹어가면서 쉬엄쉬엄 방망이나 휘두르는 팔자좋은 공놀이에 불과했다. 그러다 몇 해 전, 류현진 선수가 메이저리그 데뷔무대에서 투구하는 모습을 본 뒤, 그 공놀이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어떤 팀에 어떤 선수들이 있는지, 타자들의 타율은 어떤지 따위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지만, 마운드 위에 서서 무표정으로 무사 1,2루의 위기를 넘어가는 류현진 선수의 모습은 마치 적군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과 같은 당당함이 있었다. 그 당당함이 얼마나 눈부시던지 그 날 이후로 나는 야구경기와 관련 기사를 빠짐없이 챙겨보는 야구팬이 되어 있었다.


  야구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워낙 즉흥적이다보니 야구에 대한 지식도 주먹구구식일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단순한 공놀이라고 생각했던 야구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룰과 복잡한 숫자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찾아 읽게 된 '야구교과서'. 미국 야구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는 저자가 초보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지루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쓴 티가 역력했다. 포스아웃, 태그아웃이라던가, 인필드 플라이, 포심이니 투심이니 하는 패스트볼 종류 등 기본적이지만 그냥 흘려 들어왔던 단어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된 점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요즘은 한국 야구에 빠져 있어 관심이 좀 덜 하긴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모든 야구인들의 꿈의 무대인 만큼 드라마틱한 사연이나 기록들도 많다. 메이저리그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기록, 각 구장별 특징 같은 것들이 유머러스하게 소개되어 있는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감독은 마운드에 올라가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선수들은 무엇을 씹고 있나, 경기중에 나는 소리 같은 페이지 였는데, 어떤 야구관련 저서에서도 다룰 것 같지 않은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
  아직 야구장에 직접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야구장에 대한 소소한 기록들이 현장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야구 룰뿐만 아니라 야구를 보다 폭 넓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해설자 노릇을 톡톡히 해주었다. 단언컨데, 이 책 덕분에 야구가 더 재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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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五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16명 지음, 차일드 하삼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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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12달로 지어진 시화집 시리즈중 한 권이다.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5월"이 처음 내 손에 들어왔을때만 해도 12달이 다 갖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 작은 책 한 권이 5월의 햇살처럼 눈두덩 위를 노곤하게 덥힐때에도 더는 욕심 부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때 쯤엔 야금야금 빼먹던 곶감이 다 떨어진 것처럼 서운한 감정을 추체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난 봄을 지나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떠돌고 말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김영랑, 김상용, 윤동주, 정지용, 백석의 시들을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고, 다시 눈으로 점점이 찍어본다. 봄이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다가 바람이 하도 다정한 탓에 기지개를 쭉 편다. 익히 알던 시도 있고 모르던 시도 있다. 하지만 모든 문장마다 봄 하늘이 있고 봄 꽃이 있고 봄 처녀가 있다. 바람이 부는대로 시어들을 쫓다 보면 어느새 5월의 무르익은 봄을 만끽하고 있다.
 


 

 일반 시집과 달리 시화집이기 때문에 시에 어울리는 그림도 중요하다. 흔히 인상주의하면 19세기 프랑스의 화가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미국에도 인상주의 화가는 있었다. '프레드릭 차일드 하삼'. 수채화나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는 이 화가의 그림은 봄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특히 꽃과 여인이 있는 풍경이 많은데 봄은 그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주의 화가 답게 봄의 빛과 그림자를 잘 살린 그의 아름다운 그림들만 보더라도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대학시절 일본 문학 수업에서 들었던 하이쿠도 반가웠다. 하이쿠는 짧은 문장만으로도 일본의 정서와 정취를 잘 담아 내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원문과 같이 실어 이해와 느낌을 같이 살리려 한 점도 좋았다.


 시화집은 처음이라 기대와 설렘 속에 책을 펼쳤고 결과는 대만족이다. 손바닥 보다 조금 큰 이 작은 책 한 권이 나른한 봄날 오후를 아름다운 꿈 속 처럼 몽환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니면 나 지금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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