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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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인 책이라거나 부도덕적인 책이라는 것은 없다.

책은 잘 썼거나 잘못 썼거나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어떠한 예술가도 결코 병적이지 않다. 예술가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예술가에게 생각과 언어는 예술의 도구이다.

예술가에게 악덕과 미덕은 예술을 위한 재료이다.

                    -  오스카 와일드 서문 中

오스카 와일드는 동화 행복한 왕자를 쓴 영국의 유명한 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번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작품을 접하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게 되었는데 알면 알수록 이 소설이 그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강력하게 긍정해주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그야말로 엄친아인 오스카 와일드는 심미주의, 유미주의에 심취한 채 상류사회에서 유명한 극작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고, 41세에는 부인과 아들을 두고 미성년과의 동성연애에 빠져 2년간 수감생활을 한 뒤, 프랑스 어딘가에서 뇌수막염으로 쓸쓸히 죽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런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갈망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름다운 미소년 도리언 그레이,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말투로 도리언 그레이를 사로잡는 헨리 워튼, 아름다움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자 바질 홀워드, 이 세 사람의 중심 인물을 둘러싼 기괴한 이야기가 소름 끼치게 펼쳐진다.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미에 대한 욕망으로 자신의 초상화에 그려진 아름다움까지 질투하게 된 도리언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거치며 윤리, 도덕, 인간성에 대한 본질을 망각하고 오로지 욕망과 쾌락에만 의지한 채 파국으로 치닫는다. 끝내 자신의 초상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얼굴로 최후를 맞기까지도 그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꿈꾸었다.


 세 인물은 언뜻 너무도 다른 성향을 가진 듯 하지만, ()에 대한 갈망, 찬양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도덕적 선 안에서 지키려고 애쓰는 일, 아름다운 것 외에는 무가치하다고 믿는 냉소적 인간성, 아름다움을 가지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악무도함, 이 모든 것이 오스카 와일드라는 뿌리에서 세 가지 인물로 자라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이 소설이 자전적이라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다. 바질이 도리언에게 느끼는 애틋한 감정 묘사나 헨리 워튼이 가진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도 작가의 동성애적 성향에 대한 반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결말을 보면서 그가 윤리적, 사회적 잣대에 반감은 가지고 있을지언정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소설에 쓰인 문장들은 다소 장황하고 길어서 한번에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엄청난 것이어서 역시 극작가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책을 한번 잡으면 중간에 잠시 내려놓기가 매우 어려웠다. 소설에 삽입되는 그림은 장면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 시킨다는 면에서 별로 달갑지 않지만, 이 책의 경우, 물고 물리는 살인사건들이 미스테릭하고 몽환적인 박희정의 그림체와 맞물려 이 소설에 대한 완벽한 몰입을 돕는다. (물론, 박희정 작가의 그림에 대한 높은 애정도도 어느 정도 관여했음을 시인한다.)


오랜만에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나, 등등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재미도 있는데 진지하게 생각할 화두까지 던져주는 매력적인 책을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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