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 꽃과 잎이 그려 낸 사계절 이야기 꽃잎과 나뭇잎으로 그려진 꽃누르미
헬렌 아폰시리 지음, 엄혜숙 옮김 / 이마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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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이다. 미세먼지 덕분에 어느 계절에 와 있는지도 혼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 틈마다 새순이 움튼다. 그 작은 푸른빛은 희망이기도 해서 뿌연 하늘 밑에서도 꽃들이 넘실대는 완연한 봄을 꿈꾸게 해준다. 샘 많은 추위도, 목이 턱 막히는 미세먼지도 그 희망의 빛들을 모으며 견뎌낸다. 그리고 때때로 봄을 닮은 아름다운 책을 보며 버티기도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꽃의 아름다움을 박제하여 사계절의 장면들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해낸 책이다. 꽃과 나뭇잎 같은 식물들을 말려 수분과 공기를 제거하는 전통적인 꽃누르미(압화) 방식으로 보존한 다음, 작가의 스케치에 맞춰 배열하는 순으로 제작되었다. 실제 책을 보면 말린 식물들로만 표현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한데다 유려하고 풍부한 패턴들이 눈을 뗄 수 없을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은 생동하는 기운으로 꿈틀대는 자연의 요소요소를 세심하게 담았다. 노래하는 새들, 움트는 식물들, 들판을 뛰어다니는 산토끼, 개구리와 오리 가족, 꿀이 넘치는 꽃과 나비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여름은 모네의 그림을 잠시 상상하게 되는 밀밭과 양귀비꽃들, 풀숲의 곤충들, 여름밤의 사냥꾼들이 뜨거운 여름을 떠오르게 한다. ‘가을은 가을색으로 변하는 나뭇잎들, 색색의 열매와 버섯들, 이동하는 철새들이 겨울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겨울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과 겨울을 나는 식물들, 혹독한 추위에도 살아남으려는 몸짓들이 다음 봄을 기다린다.   


눌러 말린 꽃들이라 생화의 빛깔보다는 채도가 낮다. 채도가 낮으면 탁하다는 느낌이 들게 마련인데 어쩐일인지 이 책은 수채화처럼 맑다. 물감은 한방울도 쓰지 않았는데 마치 붓으로 그린 것처럼 부드러운 터치감도 느껴진다. 이렇게 섬세한 표현을 하기까지 작가의 수고로움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그래서 더 천천히 들여다 보게 된다. 오리가 지나간 자리나, 왜가리의 벼슬, 토끼의 귀끝 같은 것들을계절의 감각을 더듬는 기분으로 천천히 음미하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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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읽을걸 - 고전 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
유즈키 아사코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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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G폰을 쓰던 시절에는 하루종일 만나고 헤어진 친구와 밤새도록 통화를 하고도 이야기가 남아 내일 만날 약속을 잡곤 했다. 하는 얘기는 대부분 비슷하거나 지난번에 했던 그 얘기지만 뭐가 그리도 재밌었는지 귀가 뜨거워질때까지 깔깔거렸다. 요즘은 스마폰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어서 그 작은 화면을 이러저리 움직이는 일로 밤이 깊어지고는 한다. 핸드폰 화면이 쏟아내는 무한한 정보와 일방적인 이야기들이 의미 없이 느껴지는 어느 날엔 옛날 친구들과 밤새 떨던 수다가 그리워지곤 한다. <책이나 읽을걸>은 그렇게 누군가와 수다를 떠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를 쓴 유즈키 아사코가 쓴 에세이니 대화상대로는 찰떡이다. 뭔가 말이 잘 통할 것만 같다.

 

저자가 프랑스, 일본, 영국, 미국의 고전소설을 읽고 잡지(우리나라로 치면 샘터?)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만든 책이다. 아주 오래된 고전이 아닌 근현대소설을 주로 다뤘고 그중에서도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가 많다. ‘고전 속의 그녀들과 나눈 주관적인 수다라는 표제 문구는 이 책의 모든 것을 명확히 압축한 문장이다. 나도 기꺼이 그 수다에 동참하기로 한다.

 

 

p.13  수도원 출신과 여학교 출신의 공통점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열어주는 너그러움,

        ​이성에게 경계심이 강한 듯 보이면서도 살짝 바보스러운 순진함,

        ​넘어지더라도 꼭 뭔가는 손에 쥐고서야 일어서는 묘한 강인함이다.

 

몇 페이지 읽지 않고도 이 수다가 얼마나 즐거울지 무척 흥분되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읽고 수도원 출신의 주인공과 여중, 여고 출신의 자신의 공통점을 찾는 부분부터 맞아,맞아너무나 완벽한 공감이 이루어진다.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마음껏 야심과 열정을 부린 주인공을 통해 일말의 해방감을 느꼈다는 부분도 쉽게 수긍이 갔다. 나도 요즘 우리는 너무 소진되었다는 핑계로, 권태를 권장하고 손쉬운 위로만이 난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오만과 편견>의 로맨틱한 달콤함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느꼈던 불편함도 <나나>를 한 소녀의 성공스토리로 읽겠다는 그녀의 이상한 다짐에도 수없이 맞장구를 치며 읽어내려갔다. 아는 이야기보다 모르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 그나마도 고전 요약본으로 주제만 간신히 기억하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이야기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무엇보다도 고전 속 주인공들을 매우 인간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다. 마치 옆집 언니처럼 아는 동생처럼 그들의 삶을 기꺼이 이해하려는 태도가 따뜻하기도, 재미있기도 했다. 고전에 대한 사회적 평가, 관습적 통념에 전혀 개의치 않는 그녀의 뜻밖의 생각들이 내 좁은 시야를 트여 주는 느낌도 들었다. 고전의 무거움도 전혀 없다. 그러니 오늘은 침대맡에서 핸드폰 대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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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히어로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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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하다. 상세한 설명이나 섬세한 묘사는 없다. 인물도 배경도 단문형 문장속에서 간단하게 사라지거나 생겨나거나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100페이지를 쏜살같이 관통한다. 이토록 새롭고 이상한 이야기라니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이 이상한 이야기에 순순히 이끌려가고 있는 나도 좀 이상한가?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나의 마지막 히어로>, 저자는 나의 미천한 독서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생소한 이름 엠마뉘엘 베르네임이다. 프랑스의 3대 문학상으로 불리우는 메디치상의 수상작가인 그녀는 100쪽 남짓한 소설 다섯 편만을 남기고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 시나리오나 대본을 주로 접했던 이력 때문인지 그녀의 길지 않은 소설은 어느 시나리오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의 마지막 자전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그녀가 이미 살았거나 혹은 살고 싶었던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나의 마지막 히어로>의 히어로는 다름 아닌 실버스타 스탤론이다. 내 기억에 따르면, 땀에 절은 런닝셔츠,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한 근육질 몸, 눈은 반쯤 뜨다 만 것 같은 스탤론의 외모는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줘도 한 눈에 반할 정도는 아니다. 주인공 리즈가 1도 아니고 2도 아니고 <록키3>를 보고 불현듯 스탤론의 팬이 된 것은 그의 탄탄한 팔뚝 때문이 아니라 영화 속 록키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록키 발보아 처럼 다시 일어나 가슴 뛰는 삶을 살아낼 것이라는 희망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p11. 걸음을 뗄 때마다 허벅지 근육, 종아리 근육이 느껴졌다.

       허리 무릎 발목의 관절이 각각 작동했고,

       ​보도의 탄성이 발바닥에 전해지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뛰지 않았지?

       마르샬 박사의 병원에서 일하는 시간과 미셸과 보내는 시간 사이에

       리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는 아무것도.


p.15  영화 초반의 록키 발보아처럼 그녀는 되는 대로 살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록키 발보아처럼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    스물다섯 살이었다.

​    지금이야말로 다시없는 기회였다.



리즈는 <록키3>를 기점으로 새로운 삶을 꾸리기로 한다. 5년만에 의과 공부도 다시 시작한다. 그녀는 록키 발보아 처럼 다시 일어선다. 그녀의 새로운 선택을 비웃는 가족, 애인은 단칼에 잘라낸다. (특히 이 부분이 얼마나 통쾌하던지…) 리즈의 삶은 그녀가 선택한 일과 사람으로 다시 채워진다. 새 연인 이 생겼고 의사가 되었고 차례로 두 아들이 생겼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는 스탤론의 영화를 모조리 챙겨보리라는 최초의 다짐을 지켜낸다. 스탤론 덕분에 리즈의 인생은 달라졌고 이제 그녀의 삶은 망할 위기에 처한 영웅을 구하기 위해 통장을 만들 정도로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 있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다소 콩트적인 느낌이 든다. 얼핏 새드엔딩처럼 보이지만 실은 해피엔딩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리즈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살아냈다는 점이 가장 인상깊다. 거기에 스탤론의 영화들이 배경처럼 지나간다. 사실 스탤론은 상징일뿐, 그녀의 인생을 본인의 의지대로 지켜낸 것은 그녀 자신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날 리즈가 <록키3>를 보지 않았더라면, 록키 발보아가 챔피언이 되는 순간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리즈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그 한 순간을 운명이라고 부른다면 스탤론, 그는 리즈의 마지막 영웅이 틀림없다.  


이 책에는 나처럼 엠마뉘엘 베르네임이라는 이름이 낯선 독자들을 위해, 영화계와 문학계를 아우르는 대담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다혜 기자와 이종산 소설가의 지적인 대화를 읽다보면 <나의 마지막 히어로>에 대한 다른 면모들을 발견하는 것은 물론, 저자의 전작들이 아주 궁금해진다. 편독 방지를 위해 해외 소설도 많이 읽어봐야지 했던 참에 눈여겨 볼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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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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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를 읽고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단박에 좋아졌다. 천명관의 <고래>를 앉은 자리에서 읽어버렸던 것과 비슷한 기억이다. 그야말로 타고난 이야기꾼. 개인적으로 인물관계가 복잡한 장편보다는 한번에 몰입할 수 있는 짧은 단편들을 선호하지만, 이렇게 술술 읽히는 이야기들은 어쩔수 없이 예외가 된다. 엄청나게 가독성 있는 문장들, 그것을 전제로 쏟아내는 드라마의 향연. 허구와 리얼, 그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서 늘 승리하는 작가다. 독자들은 그가 쏟아내는 이야기에 꼼짝없이 걸려든 거미줄 위의 무당벌레 같다.


  그의 전작 <베어타운>이 그들의 전부였던 하키팀, 그중에서도 가장 유망한 스타 선수가 한 여자 아이를 성폭행하면서부터 아니, 그 사실을 폭로하면서부터 작은 숲속 마을이 와르르 와해되는 이야기였다면,< 우리와 당신들>은 그 후 하키라는 상징성을 잃고 절망에 빠진 베어타운과 옆 동네 헤드의 충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레오는 열두 살이고 올해 여름에 사람들은 항상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거짓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짓에는 비교를 불허하는 장점이 있다.

진실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반면 거짓은 쉽게 믿을 수만 있으면 된다.

p.31

 

  베어타운 하키팀의 감독이자 성폭행을 당한 소녀의 아버지 페테르는 어떻게든 하키팀만은 지키고 싶다. 하지만 그에게는 피해자임에도 가해자 취급에 시달리는 딸 마야와 하키에 빠진 남편의 뒷바라지에 질려가는 아내 미라, 누나를 지키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들 레오가 있을 뿐이다. 어느날, 그런 그에게 한 정치인은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그 일당이라 불리우는 훌리건들을 하키장에서 몰아내겠다고 공표만 해주면 하키팀의 후원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당은 페테르가 감독에서 쫓겨날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 이들이다. 베어타운의 하키팀은, 그 속에 속한 사람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것인가.


  저자는 독자들이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의심하고 추론할 수 있도록 군데군데 힌트 같은 문장들을 부러 던져놓는다. 무언가 벌어질 것이라는 각오는 해보지만 누구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여전히 마음을 졸이며 페이지를 넘긴다. 베어타운은 소설의 배경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현실의 축소판이다. 부패한 정치, 빈부격차, 일자리 문제, 계층 사다리, 성폭력, 성소수자 등 우리가 처한 세계의 불편한 단면들을 발견한다. 특히, 다수라는 이름의 집단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망가트릴 수 있는지 목격하는 일은 내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리고 어린 소녀 마야와 가족들이 고통받던 그 모든 상황들이 현실 속의 미투(me too)가 어떤 선언이나 고백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아픈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리샤르드 테오는 날이면 날마다 기사를 옮겨다니며 가장 잘하는 일을 했다. 갈등을 일으키고 반목을 조장했다.

시골 대 대도시. 병원 대 하키. 헤드 대 우리.

우리 대 너희들

베어타운 대 나머지 전부...

p.210

 

진실 vs 거짓”, “vs ”, “다수 vs 소수”. 사건이 진행될수록 대립은 심해지지만 그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다. 항상 공평하고 항상 불공평하다. 피해자인 마야를 유일하게 보듬던 아나가 베어타운의 주장 벤이를 비슷한 곤경에 빠트린다. ‘그 일당들은 폭력과 범죄의 아이콘처럼 불리지만 마을에서 한번이라도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헤드팀 관중은 베어타운 선수들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지만 사실 그것은 다수를 가장한 소수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세상엔 완전한 선도 완벽한 악도 없다. 어제는 진실이었던 것이 오늘은 거짓이 되기도 하고, 늘 다수가 옳거나 소수가 틀린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은 우리 대 당신들우리와 당신들이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너무 비극적이거나 모두가 해피엔딩은 아닌 결말로 세상의 모든 반목하는 관계들에게 화해를 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희망이 베어타운으로부터 모락모락 피어난다. 현실 세계의 나도 안도하며 600페이지의 마지막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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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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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은 박완서 작가를 오마주로 한 한국의 대표작가 29인의 콩트 모음집이다. 박완서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읽을 때 까지만 해도 콩트라는 장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짧은 소설 정도로 여기고 때론 큭큭거리며, 때론 피식거리며, 때론 코웃음도 치며 읽어내는 것이 즐거운 독서였다. 하지만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읽으면서는 콩트가 엄청나게 매력적인 장르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굳이 문단소설과 장르소설을 나누지 않고도 두 가지가 공평하게 존재하는 평화로운 문장의 놀이터였다. 무한하게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나 젊은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놓으니 뷔페 음식처럼, 31아이스크림처럼 맛도 색도 무엇하나 같은 것이 없다. 똑같이 박완서라는 글자를 말풍선에 띄우고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이토록 각양각색일 수 있다니 독자로서는 기쁨과 동시에 놀라움이 크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에 남아 있는, 절망이라는 유리는 조금씩 두꺼워진다. 유리는 두꺼워질수록 불투명해지고 차가워질 것이다. 서로에 대한 실망을 학인하는 것 외에 발견되는 삶의 열정이라고는 없는 그들은 남매처럼 닮아 있다

p.53  김성중  <등신, 안심>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멜랑콜리 해피엔딩>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가족안에서 조약돌처럼 깍여나갔던 이모의 생을 그린 조경란 작가의 <수부이모>, 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장난감을 보란듯이 사줄 수 없어 애틋한 부자의 어느 밤을 그린 이기호 작가의  <다시 봄>은 감성적으로 박완서 작가의 작품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을 했던 작품은 타성적으로 결혼한 부부의 권태에 대한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룬 김성중 작가의 <등신, 안심>, 전업맘, 워킹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면서 그들의 화해를 도모했던 윤이형 작가의 <여성의 신비>였다. 박완서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속에 나온 여성들과도 그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 많았다.



 


 

한 몸으로 여러 개의 역할을 하며 살아내야 하는 처지도 같고, 능력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것도, 언제나 시간이 부족해 발을 구르는 것도 똑같은데.

너의 과거가 내 현재이고, 내 현재가 다시 너의 미래가 될 수도 있으며, 그런 서로에게 굳은 의리를 느끼는 것도 사실인데……

너의 행복을 나의 불행으로, 너무도 쉽게 치환해버린다.

p.170  윤이형 <여성의 신비 

 



김숨 작가의 <비둘기 여자>나 이장욱 작가의 <대기실>, 최수철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같이 짧은 호흡으로 긴 여운을 주는 작품도 있고 윤고은 작가의 <첫눈 마중>, 권지예 작가의 <안아줘> 같이 가볍게 미소짓고 지나갈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오한기 작가의 <상담>이나 한유주 작가의 <집의 조건>, 손보미 작가의 <분실물 찾기의 대가3> 처럼 끝까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 수 없는 스릴러(?)도 있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은 주인공 평모를 보는 타자의 시선이 줄곧 소개되다가 마지막에 평모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게으름에 대한 명백한 반전이 일어나는데 그 반전이 기가막히게 우화적이어서 한참 이야기를 곱씹기도 했다.   


정세랑 작가의 <아라의 소설>, 함정임 작가의 <그 겨울의 사흘 동안> 처럼 작품 속에 박완서 작가를 직접 드러낸 소설도 있었지만, 대부분 노작가의 작품들이 전해준 메시지나 감동이 재해석 되어진 경우가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공통의 관심사를 두고 마음이 통하는 지인들과 즐거운 수다를 떠는 느낌과 비슷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또한 그 수다에 동참할 수 있어서, 이 멜랑콜리한 이야기들의 해피엔딩을 목격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정은은 곧 사라져버릴 것 같은 조그마한 몸을 만져보면서 생각하곤 했다.

나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왔을까.

정은에게는 자신의 근원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체 세계가 처음부터 없었다.

p.83  박민정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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