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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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은 박완서 작가를 오마주로 한 한국의 대표작가 29인의 콩트 모음집이다. 박완서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읽을 때 까지만 해도 콩트라는 장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짧은 소설 정도로 여기고 때론 큭큭거리며, 때론 피식거리며, 때론 코웃음도 치며 읽어내는 것이 즐거운 독서였다. 하지만 <멜랑콜리 해피엔딩>을 읽으면서는 콩트가 엄청나게 매력적인 장르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굳이 문단소설과 장르소설을 나누지 않고도 두 가지가 공평하게 존재하는 평화로운 문장의 놀이터였다. 무한하게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나 젊은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놓으니 뷔페 음식처럼, 31아이스크림처럼 맛도 색도 무엇하나 같은 것이 없다. 똑같이 박완서라는 글자를 말풍선에 띄우고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이토록 각양각색일 수 있다니 독자로서는 기쁨과 동시에 놀라움이 크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에 남아 있는, 절망이라는 유리는 조금씩 두꺼워진다. 유리는 두꺼워질수록 불투명해지고 차가워질 것이다. 서로에 대한 실망을 학인하는 것 외에 발견되는 삶의 열정이라고는 없는 그들은 남매처럼 닮아 있다

p.53  김성중  <등신, 안심>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멜랑콜리 해피엔딩>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가족안에서 조약돌처럼 깍여나갔던 이모의 생을 그린 조경란 작가의 <수부이모>, 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장난감을 보란듯이 사줄 수 없어 애틋한 부자의 어느 밤을 그린 이기호 작가의  <다시 봄>은 감성적으로 박완서 작가의 작품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을 했던 작품은 타성적으로 결혼한 부부의 권태에 대한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룬 김성중 작가의 <등신, 안심>, 전업맘, 워킹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면서 그들의 화해를 도모했던 윤이형 작가의 <여성의 신비>였다. 박완서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속에 나온 여성들과도 그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 많았다.



 


 

한 몸으로 여러 개의 역할을 하며 살아내야 하는 처지도 같고, 능력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것도, 언제나 시간이 부족해 발을 구르는 것도 똑같은데.

너의 과거가 내 현재이고, 내 현재가 다시 너의 미래가 될 수도 있으며, 그런 서로에게 굳은 의리를 느끼는 것도 사실인데……

너의 행복을 나의 불행으로, 너무도 쉽게 치환해버린다.

p.170  윤이형 <여성의 신비 

 



김숨 작가의 <비둘기 여자>나 이장욱 작가의 <대기실>, 최수철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같이 짧은 호흡으로 긴 여운을 주는 작품도 있고 윤고은 작가의 <첫눈 마중>, 권지예 작가의 <안아줘> 같이 가볍게 미소짓고 지나갈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오한기 작가의 <상담>이나 한유주 작가의 <집의 조건>, 손보미 작가의 <분실물 찾기의 대가3> 처럼 끝까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 수 없는 스릴러(?)도 있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은 주인공 평모를 보는 타자의 시선이 줄곧 소개되다가 마지막에 평모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게으름에 대한 명백한 반전이 일어나는데 그 반전이 기가막히게 우화적이어서 한참 이야기를 곱씹기도 했다.   


정세랑 작가의 <아라의 소설>, 함정임 작가의 <그 겨울의 사흘 동안> 처럼 작품 속에 박완서 작가를 직접 드러낸 소설도 있었지만, 대부분 노작가의 작품들이 전해준 메시지나 감동이 재해석 되어진 경우가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공통의 관심사를 두고 마음이 통하는 지인들과 즐거운 수다를 떠는 느낌과 비슷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또한 그 수다에 동참할 수 있어서, 이 멜랑콜리한 이야기들의 해피엔딩을 목격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정은은 곧 사라져버릴 것 같은 조그마한 몸을 만져보면서 생각하곤 했다.

나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왔을까.

정은에게는 자신의 근원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체 세계가 처음부터 없었다.

p.83  박민정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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