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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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를 읽고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단박에 좋아졌다. 천명관의 <고래>를 앉은 자리에서 읽어버렸던 것과 비슷한 기억이다. 그야말로 타고난 이야기꾼. 개인적으로 인물관계가 복잡한 장편보다는 한번에 몰입할 수 있는 짧은 단편들을 선호하지만, 이렇게 술술 읽히는 이야기들은 어쩔수 없이 예외가 된다. 엄청나게 가독성 있는 문장들, 그것을 전제로 쏟아내는 드라마의 향연. 허구와 리얼, 그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서 늘 승리하는 작가다. 독자들은 그가 쏟아내는 이야기에 꼼짝없이 걸려든 거미줄 위의 무당벌레 같다.


  그의 전작 <베어타운>이 그들의 전부였던 하키팀, 그중에서도 가장 유망한 스타 선수가 한 여자 아이를 성폭행하면서부터 아니, 그 사실을 폭로하면서부터 작은 숲속 마을이 와르르 와해되는 이야기였다면,< 우리와 당신들>은 그 후 하키라는 상징성을 잃고 절망에 빠진 베어타운과 옆 동네 헤드의 충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레오는 열두 살이고 올해 여름에 사람들은 항상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거짓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짓에는 비교를 불허하는 장점이 있다.

진실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반면 거짓은 쉽게 믿을 수만 있으면 된다.

p.31

 

  베어타운 하키팀의 감독이자 성폭행을 당한 소녀의 아버지 페테르는 어떻게든 하키팀만은 지키고 싶다. 하지만 그에게는 피해자임에도 가해자 취급에 시달리는 딸 마야와 하키에 빠진 남편의 뒷바라지에 질려가는 아내 미라, 누나를 지키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들 레오가 있을 뿐이다. 어느날, 그런 그에게 한 정치인은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그 일당이라 불리우는 훌리건들을 하키장에서 몰아내겠다고 공표만 해주면 하키팀의 후원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당은 페테르가 감독에서 쫓겨날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 이들이다. 베어타운의 하키팀은, 그 속에 속한 사람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것인가.


  저자는 독자들이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의심하고 추론할 수 있도록 군데군데 힌트 같은 문장들을 부러 던져놓는다. 무언가 벌어질 것이라는 각오는 해보지만 누구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여전히 마음을 졸이며 페이지를 넘긴다. 베어타운은 소설의 배경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현실의 축소판이다. 부패한 정치, 빈부격차, 일자리 문제, 계층 사다리, 성폭력, 성소수자 등 우리가 처한 세계의 불편한 단면들을 발견한다. 특히, 다수라는 이름의 집단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망가트릴 수 있는지 목격하는 일은 내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리고 어린 소녀 마야와 가족들이 고통받던 그 모든 상황들이 현실 속의 미투(me too)가 어떤 선언이나 고백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아픈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리샤르드 테오는 날이면 날마다 기사를 옮겨다니며 가장 잘하는 일을 했다. 갈등을 일으키고 반목을 조장했다.

시골 대 대도시. 병원 대 하키. 헤드 대 우리.

우리 대 너희들

베어타운 대 나머지 전부...

p.210

 

진실 vs 거짓”, “vs ”, “다수 vs 소수”. 사건이 진행될수록 대립은 심해지지만 그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다. 항상 공평하고 항상 불공평하다. 피해자인 마야를 유일하게 보듬던 아나가 베어타운의 주장 벤이를 비슷한 곤경에 빠트린다. ‘그 일당들은 폭력과 범죄의 아이콘처럼 불리지만 마을에서 한번이라도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헤드팀 관중은 베어타운 선수들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지만 사실 그것은 다수를 가장한 소수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세상엔 완전한 선도 완벽한 악도 없다. 어제는 진실이었던 것이 오늘은 거짓이 되기도 하고, 늘 다수가 옳거나 소수가 틀린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은 우리 대 당신들우리와 당신들이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너무 비극적이거나 모두가 해피엔딩은 아닌 결말로 세상의 모든 반목하는 관계들에게 화해를 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희망이 베어타운으로부터 모락모락 피어난다. 현실 세계의 나도 안도하며 600페이지의 마지막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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