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빛나고 있어요 웅진 모두의 그림책 19
에런 베커 지음, 루시드 폴 옮김 / 웅진주니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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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책은 더 이상 읽는게 아니라 경험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책이다. <당신은 빛나고 있어요>는 환상적인 이야기로 유명한 에런 베커의 신작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매번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다. 유명한 상(칼데콧) 하나쯤 받았으면 안주하고 싶어질 만도 할텐데 그는 이렇게 놀라운 책을 또 우리 앞에 내놓았다. (게다가 루시드폴의 번역이라니 한층 더 몽환적이다.) 그가 빛으로 부리는 마법에 흠뻑 빠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여름날의 오후가 지나간다.

 

 

<당신은 빛나고 있어요
>라는 제목을 보면서 작가는 작정하고 우리를 위로할 셈인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히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귀한 존재 인지 일깨워 주는 그런 책일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하지만 책을 천천히 넘겨 보는 동안 생각이 좀 달라졌다. 그가 책 속에 담은 빛은 온 우주의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빛이 나를, 이 우주를 아름답게 보듬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서 한참을 헤어나오지 못했다. 크게는 새벽을 깨우는 빛과 밤을 불러오는 빛, 대지와 하늘을 아우르는 빛에서부터 작게는 작은 나뭇잎 한 장과 꿈틀거리는 곤충 한 마리에서 나오는 빛까지, 그 모든 빛들이 눈으로 느껴지는 듯한 기묘하면서도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평소에 내가 이렇게나 많은 빛에 둘러싸여 있다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동요했다. 이 우주의 아름다움에 눈과 귀를 기울이는 일은 곧 라는 빛이 어떻게 빛나고 있는지 아는 일이기도 했다. 모든 존재는 빛에서 태어난다는 에런 베커의 말을 빌어 내가 속한 세상도, 나도 눈부신 빛으로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뭐든지 과한 세상 속에서 내 빛이 자꾸 꺼져가는 기분이 들 때, 한번씩 꺼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순간은 오니까

 


 
  얼마 전, 아이들의 방학을 핑계 삼아 친정에 다녀왔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파랗고, 공기는 더웠고, 녹색 식물들은 끝도 없이 줄기를 피웠다. 정원에서 물을 주던 큰 아이가 물 호스를 낑낑대며 옮기더니 하늘을 향해 물을 뿌린다. 저 나무는 너무 목이 말라 보인다는 아이의 손가락 끝을 쳐다본다. 봄에 피었다가 지금은 가지만 앙상히 남은 인동덩굴이 아무렇게나 엉켜 있었다. 이렇게 예쁜 생각을 하는 저 아이는 지금 어떤 빛으로 빛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시원하게 뿜어지는 물줄기 사이로 작은 무지개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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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하드커버 에디션)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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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암환자 혹은 시한부의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언제 죽을지 알수 없는 삶을 살고 있으나 그들은 죽음이 목전에 와 있음을 매 순간 경험하며 살아간다. 늘 기대치보다는 짦은 그들의 수명 앞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슬픔을 느끼고 동정을 하게 되지만 사실은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십대 소녀 헤이즐은 자신을 동정하는 사람들에 질려하지만 달리 도리가 없지 않느냐 변명하고 싶어진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이나 절망의 깊이를 그저 추측할 뿐이니까.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아주 특별하다. ‘시한부라는 소재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신파로 흘러가기 쉽상이지만 이 책은 다르다. 신파 이전에 삶과 죽음,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질척거리는 슬픔이 아니라 먹먹한 여운이 길다. 슬픔이라기 보다는 감동에 가까운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상 범위 안의 진부한 신파를 철저히 배반한 멋진 이야기 한편이 여기에 있다.

 


p.21

?”

내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왜 그런 식으로 날 쳐다보는데?”

어거스터스가 반쯤 미소 지었다.

왜냐하면 네가 예쁘니까. 난 예쁜 사람들을 보는 게 취미인데, 얼마전부터 삶의 단순한 기쁨을 부정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거든.”

  


아직 죽음을 이야기 하기엔 너무 이른 16살 헤이즐. 갑상선 암이 폐로 전이되어 줄곧 산소통을 끌고 다니지 않으면 숨을 쉴 수가 없는 소녀다. 헤이즐은 엄마를 위해 꾸역꾸역 나가던 암환자 모임에서 어거스터스를 만나게 되는데, 이 남자, 말도 안되게 멋있고 낭만적이다. 골육종으로 다리 한쪽을 잘라내긴 했지만 엄청나게 섹시한 우리의 어거스터스는 헤이즐에게 예쁘다는 돌직구를 던지며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 뒤 두 사람이 헤이즐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장엄한 고뇌>를 쓴 작가를 만나러 가는 여정은 이 책의 클라이 막스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비극적인 일을 맞닥뜨린다.

 


아픈 현실에서도 헤이즐은 자신으로 인해 남겨져 고통 받을 사람들 때문에 괴롭고, 어거스터스는 자신이라는 상징이 세상에서 영영 잊혀질까 두렵다. 하지만 둘은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누며 헤이즐의 소원을 이루어 나가는 동안 각자를 괴롭히던 명제들로부터 서서히 놓여간다. 헤이즐은 자신의 선택에 더 이상 상처 받지 않을 것이고, 남은 사람들의 고통을 덤덤히 받아 들일 것이다. 그리고 어거스터스는 헤이즐과 작은 무한대 안에서 영원한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사랑한 시간이 유한한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p.163

 난 널 사랑해. 사랑이라는 게 허공에 소리를 지르는 거나 다름없다는 것도 알고, 결국에는 잊히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우리 모두 파멸을 맞이하게 될 거고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아. 태양이 우리가 발 딛고 산 유일한 지구를 집어삼킬 거라는 것도 알고. 그래도 어쨌든 너를 사랑해.”

 


십대들의 언어로 삶과 죽음, 시간과 상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유쾌하지만 시니컬하고, 장난같지만 진지했다. 특히,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은유들이 가득했다. 비록 산소통과 의족에 매여 있는 몸이지만 무한대보다 더 큰 무한대를 꿈꾸는 그들의 사유는 너무도 자유로웠다. 나는 소소한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비유적 상징을 이야기하는 이 어린 연인이 못견디게 사랑스러웠다. 비록 비극적 결함은 끝까지 반전을 거듭하지만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그저 서로의 곁을 묵묵히 지킬 뿐이다. 유한한 시간을 무한한 영원으로 바꾸어 버린 이들의 사랑이 책을 덮은 다음에도 내내 그리울 것 같다.

 


p.272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더 커요. 저희가 예전에 좋아하던 작가가 이걸 가르쳐줬죠. 제가 가진 무한대의 나날의 크기에 화를 내는 날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전 제가 가질 수 있는 숫자보다 더 많이 원하고, , 어거스터스 워터스에게도 그가 가졌던 것 보다 더 많은 숫자가 있었기를 바라요. 하지만, 내 사랑 거스, 우리의 작은 무한대에 대해 내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어. 난 이걸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거야. 넌 나한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줬고 난 거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

 


서로에게 추모사를 지어주는 그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한참을 펑펑 울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말해 줄 수 있을까. 남은 자의 오만함은 지우고 죽음에 대한 편견도 숨긴채너희들은 아무 잘못이 없단다. 기만적인 시간 앞에서 그저 교차하는 별들일 뿐.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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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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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낭자한 피에 다소 하드코어한 미스터리 소설일까 싶어 지례 겁을 먹었다. 일본에서는 본격 미스터리 작가로 알려진 구라치 준이기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난 아직 미스터리 초심자라 중간에 책을 덮어버릴 지도 몰랐다. 그런데 제목이 좀 독특하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누구나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될 만한 문장이다. 사람이 두부 모서리에 부딪혀서 죽을 수 있나? 접시물에 코를 박고 죽는 일 만큼 어려운 일 아닌가? 아마 이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누구도 이 제목에 대한 물음표를 지울 수 없을 것이다.

 


p.116.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터무니 없을 정도로 거대한 광기와 맞서야 한다. 우리의 정신도 삼켜버릴 수 있는 엄청나게 크고 어두운 광기와. 나카모토 경부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에 또 다시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 <파와 케이크의 살인현장 중>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총 6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어느날 학도병으로 차출된 주인공이 나가노현의 극비 연구시설로 발령을 받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2-13호 실험실에서 이유도 모른채 자전거 페달을 밟는 이즈카는 교대하기 위해 들어간 실험실에서 같이 근무하던 가게우라 이등병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실험실은 완전한 밀실 구조고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나 흉기도 없다. 산산이 부서진 두부가 흩어져 있을 뿐전쟁 막바지, 가미가제로 젊은 병사들이 무수히 죽어나가도 제국주의라는 기치 아래 그 모든 죽음이 영웅시 되던 시기에 겨우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한 이등병의 시체는 말 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불러 일으킨다. ‘구라치 준식의 블랙코미디란 이런 것인가.


 

 p.157 앞으로 쓰러진 시체와 그 주변에 흩어진 두부. 게다가 시체의 후두부는 사작물체의 모서리로 구타한 상처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194412월 초순. 제국 육군특수과학연구소 2-13호 실험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중>

 

 

 

 

 

 

불안을 안고 첫 장을 열었으나 결국 내가 중간에 책을 덮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어두웠으나 이야기는 가벼웠고, 사건은 복잡하게 얽혀있으나 결론은 심플했다. 게다가, 살인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연쇄살인, SF, 인공지능, 태평양전쟁, 시골집 고양이까지 아우르는 작가의 이야기에 흠뻑 매료되었다. 같은 살인이지만 풀어내는 방식은 너무도 각양각색이라 이런 미스터리 소설도 있구나 하며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각 단편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를 유지 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놀라웠다. 그 중에서도 <밤을 보는 고양이>, <사내편애>가 가장 놀라움을 주는 단편이었고 마지막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은 이 작가의 네코마루 시리즈를 찾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흥미진진함과 재미가 있었다.

 


두부 모서리에 부딪혀 죽어라는 일본의 라쿠고에서 인용된 말로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지식하기가 이를데 없는 사람을 빈정거리는 말로 사용된다. ‘에라이, 두부 모서리에 머리 부딪혀 죽을 놈아정도로 사용되려나구라치 준이 선사하는 반전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해답 (바카미스:황당한 트릭이나 논리의 미스터리)을 핵심으로 하는데 이 책의 제목이야 말로 그 핵심을 찌르는 듯한 명징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이쯤되면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그래. 잘 들어, 더 유연하게 생각해보자.(p.308)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라고!’ 유머와 위트를 잃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반전 메세지가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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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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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마치 암호문 같은 이 제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어야 한다. 그 단 몇 줄로 이 난해한 제목이 이해됨과 동시에 가슴 언저리께부터 슬슬 핑크빛 온기가 돈다.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상처받지 않겠다는 그 천진하고도 귀여운 선언에 나도 모르게 흡족한 미소가 새어나왔다. 그리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눈 앞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한 모금 쭉 들이켰다. 이 책이 점점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카카오프랜즈 라는 캐릭터가 가진 대중성, 딱 그 정도의 기대감만 있었다. 무심코 집어든 제품의 사은품이 마침 어피치의 탐스런 분홍색이였을 때의 기쁨 정도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다. 책 표지만으로도 이미 많은 여성들이 지갑을 열테다. 그런데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서귤이라는 이름도 요상한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나보는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잘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나를 아스라한 감정으로 이끈 것은 뜨겁게 붉은 것도 아닌, 차갑게 푸른 것도 아닌, 이제 막 발그레 해진 정도의 핑크빛 온기다. 어쩌면 위트 있는 문장에 온기까지 얹어 내놓는 저자의 글솜씨에 매료된 것일지도 모른다.  

 


p.120

어째서 미처 무엇이 되지 못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쉽게 저리게 만들까.

너와 내가 한 번도 누군가가 되지 못한 채 늘 과정 위에 선 사람이어서일까.

넌 브로콜리가 사실 열리기 직전의 꽃봉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니?

채 피우지도 못하고 밑동이 잘려버린, 뜨거운 물에 들어가버린, 초장에 찍혀버린,

커다란 꽃봉오리.

자신의 꽃 색깔을 영원히 알지 못한 채 영원히 푸르게 데쳐진 브로콜리 한송이가,

꼭 우리의 젊음에 대한 은유 같아서.

난 도저히 브로콜리를 못 먹겠어.

 

 

얼렁뚱당 써내려간 듯한 문장들에 묘하게 설득되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선풍기의 플라스틱 날개, 지하철역 어느 거울 앞, 브로콜리의 정체, 얼린 숟가락, 수제버거 먹는 법 같은 것들이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평소엔 눈치 채지 못했던 작고 사소한 것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린다. 오글거리다 킥킥거리고, 뚱해졌다가 피식 웃어버리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다. 짧고 긴 문장들 속에서 젊음의 탄력과 생기가 넘쳤다. 만약 어피치가 정말 살아있는 생물에 글까지 쓸 수 있었다면 아마 이런 책을 쓰지 않았을까. 캐릭터와 문장의 매칭이 딱 맞아 떨어지는 덕에, 책을 읽는 내내 핑크색 엉덩이와 마주앉아 있는 기분이다.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 에세이 시리즈에서 라이언에 이어 두번째로 책을 내게 된 어피치.  인기 캐릭터 디자인과 작가의 콜라보레이션을 생각해낸 출판사도, 캐릭터의 입을 빌어 책을 써낸 작가들도, 그 젊은 감각들이 눈부시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낸 한 명의 독자로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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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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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몸이 아픈 사람보다 마음이 아픈 사람 찾기가 훨씬 쉽다. 당장 나부터도 몸이 아픈 시간보다 마음이 아픈 시간을 훨씬 더 많이 견뎌오지 않았나.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되면괜찮아 지겠지.’ 그 철썩같던 믿음들에 의문부호만 찍은 채, 불혹을 앞둔 지금까지도 어른의 시간은 아직 요원하다. 그렇게 나이만 먹은 성인들에게, 몸보다 마음이 아픈 그들에게 약이 되는 책이 나왔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처음엔 김혜남님의 저서라 무조건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고나니 기침에 잘듣는 용한 시럽처럼 마음 아픈 곳을 가만히 들여다 보게 해주는 알약을 하나 삼킨 기분이다.

 

정신건강 전문의 김혜남, 박종석 공동 저자에 의해 집필된 이 책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각종 정신 질환에 대한 소개와 사례, 그에 대한 전문의적 견해 등이 실려 있다. 흔히들 겪는 우울증에서부터 각종 강박증, 공황장애, 무기력, 화병, 자해 등 뉴스 헤드라이트를 장식하는 각종 정신병까지 우리의 마음을 좀 먹는 병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정신분석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도 어렵지 않게 풀어져 있고, 편집자의 능력인지 아니면 두 저자의 문장이 조화로워서 인지 마치 한 사람이 쓴 것 처럼 통일감 있는 흐름도 좋았다.

 


p.50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나는 혼자여서 좋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함께이고 싶다는 마음의 역설적인 표현 같아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거절당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고통, 실망감, 상실감을 경험하기 싫어서 일부러 혼자가 좋다라고자기 최면을 거는 사람도 분명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요즘은 혼자를 독려하는 분위기다. 나를 애쓰게 하는 모든 관계로부터 벗어나라고 조언하는 책들도 많다. 나 또한 귀찮음을 이유로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관계에 소극적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함께이고 싶은 마음의 역설이라는 말도 수긍이 간다. ‘혼자는 관계로부터 상처 받지 않기 위한 차선책일지도 모른다. 외로움만 감수하면 되는 혼자보다는 상처를 각오해야하는 후자가 훨씬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건강한 어른이 되려면 혼자라는 단어 뒤로 숨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관계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p.163  “우리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었다네 제대로 난 길을 몰랐기 때문이라네.”라는 단테의 시 구절처럼 우울은 길을 잃은 상태와 비슷하다. 이런 무기력한 상태에서 길을 잃고 두려움과 고통에 짓눌려 헤매고 있을  , 우선은 그 어두운 안개 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그들에겐 필요하다.

 


무기력, 권태, 우울 이라는 감정이 한 줄 기차를 타고 나를 찾아오던 시기가 있었다. 마치 세트 같은 이 감정들은 불안이라는 뿌리를 두고 동시에 뻗어나오는 특징이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나의 상황에서는 산후 우울증이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가 없겠다. 그 긴 터널을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분명치는 않지만 아이들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사실이 강력한 의지가 되었던 것 같다. ‘학습된 무기력에 대해 읽어내릴 때 가슴이 철렁 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나의 감정이 아이들에게 배출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는 않으니 어른이 되는 일은 참으로 갈 길이 멀구나 싶다. 그래도 이 책의 저자들처럼 좋은 어른이고픈 사람들에게 손 내밀어 주는 진짜 어른이 있다는 건 마음 든든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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