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정리인은 보았다 - 개정증보판
요시다 타이치.김석중 지음 / 황금부엉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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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을 모두 결혼 시키자 마자 친정 부모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은퇴를 선언하시고는 작은 시골 마을로 귀촌을 하셨다. 텃밭이나 일구고 사시고 싶다는 희망이셨으나 거리가 멀어 자주 왕래 할 수 없는 나는 지금도 하다못해 대형 병원이라도 가까운 도시에 사셨으면 하는 마음을 품곤한다. 자식 걱정 끼칠까 아파도 아픈 내색을 안하시는 분들이기에 혹여 쓰러지시기라도 한다면 이 멀리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울컥 울컥 가슴이 치받히는 기분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 부부 또한 두 딸이 커서 분가를 하고 나면 부부만의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운명의 앞날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 둘 중 누군가는 혼자 남겨지게 될 것이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 독거 노인인 셈이다.



p.257 가만히 기다리면 죽기 싫어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런데 기다리다 보면 점점 죽기 싫어진다. 

         그것이 인생이다.


 

<유품정리인은 보았다>라는 책이 보고 싶었던 이유는 잠재적 독거 노인이 실제 독거 노인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죽은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남길까. 나는 어떤 죽음을 맞게 될까. 어떤 것들을 남겨야 할까 하는 질문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 책은 독거인들의 처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므로서 나는 내 질문들이 얼마나 감상적인 것이이었나 하는 후회로 쓴 입맛을 삼켜야했다.


<유품정리인은 보았다>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나, 옆나라 일본에서는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은 유품정리사가 겪은 에피소드들을 묶어 놓은 책이다. 우리 나라보다 먼저 1인 가구가 보편화 되었고 평균 수명도 긴 일본의 인구구조가 사회적으로 고독사의 문제를 먼저 맞닥뜨렸고 동시에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고독사의 문제는 사실 1인가구의 증가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노인빈곤, 노인복지, 청년실업, 주거불안 등 여러가지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낳은 합작품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노인, 청년, 나이를 불문한 1인 가구의 고독사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고 그러므로 쉽진 않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대안을 찾아야할 문제다.    


유품정리사들이 겪는 작업 환경은 듣기만 해도 등줄기가 오싹 해진다. 같은 고독사라도 죽음의 형태는 여러가지라 병사나 돌연사 같은 경우도 있지만, 자살이나 살인 현장 같은 공포스러운 상황도 마주하게 된다. 구더기가 들끓는 방, 피가 낭자한 벽, 피와 살점이 둥둥 떠다니는 욕조, 그런 곳에서 동요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유품을 정리하려면 대단히 강력한 멘탈과 인간에 대한 예의, 배려, 사명감, 같은 것들이 필수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거기다 가족, 친척, 이웃주민의 이기적인 언사와 행보를 고스란히 겪어야 하니 인간적인 회의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의 정신관리도 필요하겠다.


우리나라는 아직 고독사에 대한 논의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논의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겠지만 이 문제가 단순히 사회 정책이나 일회성 복지로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섬 처럼 외따로이 떠서 타인과의 교류를 극도로 제한하는 현대인들에게 고독사는 소통의 단절, 부재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당장 나부터도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혹은 지금 내 생활이 너무나 중요해서 주위의 고마운 사람, 소중한 사람들은 늘 뒷전이었다. 오늘은 연말이라는 시간을 핑계삼아 가까운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라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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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후회하는 삶을 그만두기로 했다 - 내 뜻대로 인생을 이끄는 선택의 심리학
쉬나 아이엔가 지음, 오혜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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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마케팅 문구를 보고 이 책은 시각장애인의 장애 극복기 혹은 독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자전적 에세이 쯤으로 생각했다. 처음 프롤로그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그 예상은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고등학교때 완전히 시력을 잃었고 힘 없는 인도계 미국 이민자였다. 그런데 내가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렇다. 시각장애는 저자가 가진 스토리 일뿐, 이 책은 그저 한 심리학자의 선택에 대한 학문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쓰여진 심리학 책이다.   



p.47   자신이 병을 다스릴 힘을 가졌다고 믿고 싶어 하는 환자의 욕구는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거나 젊거나 본능적  으로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의 갈망을 그대로 반영한다. 우리는 가장 암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자신에게 선택과 통제의 가능성을 준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선택을 통해 자기가 가진 통제력 확인한다. 이 통제력이라는 것은 실제 존재 하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믿을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 시각장애인이 최고의 심리학자가 되기도 하고 망망대해에 남겨진 표류자가 구사일생으로 구출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반대 역시 가능한데, 릭키의 쥐실험이나 동물원 사례등을 통해 선택이라는 욕구가 억제된 삶이나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동물들의 무기력함이 소름끼치게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선택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국가, 지리와 종교, 정치체계, 인구학적 요인 등을 두루 연구했다. ‘선택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가 들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연구들을 통해 우리가 왜,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토대로 선택의 기준을 잡는데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그 내용들이 당장 나의 선택들을 쉽게 하거나, 선택에 따르는 어려움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방대한 실험연구와 사례조사, 문학적, 철학적 사유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들이 나의 선택,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p.178 결정하면서 깍고 파내는 바로 그 행위가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해준다. 우리는 선택의 결과 속에서 자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선택 행위의 진화를 거치면서 자아를 발견해가는 조각가다. 사고의 틀을 바꿔 선택을 좀 더 유동적인 과정으로 보면 선택은 우리가 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해체하려는 노력, 즉 파괴하려는 힘이 아니라 해방시켜주는 지속적 창조 행위가 된다.

 


생각해보면 삶은 선택의 연속인데 선택은 문제의 경중을 떠나 늘 어렵고 무겁다. 그 결과에 대한 예측 불가능,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선택을 어렵게만 보지말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대하길 조언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만큼 충분히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본인의 삶이 온 몸으로 그렇게 증명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무한한 긍정과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앞으로는 후회보단 (내 선택들에 대해) 유~해지길 바란다.              



p.396 선택한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다음 시간, 다음 해, 또는 그 너머를 살짝 엿보고 거기서 보는 것에 근거해 결정을 내린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나 아마추어 점쟁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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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잘 지내고 있어요 - 밤삼킨별의 at corner
밤삼킨별 지음 / MY(흐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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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맑음>이라는 다이어리를 사서 깨알 같은 글씨를 구겨 넣던 때가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다. 한참 20대 후반의 나는 피크까지 치닫던 업무량과 사랑이라 믿어야 했던 어설픈 연애가 끝나가는 일로 쇠진해 있었다. 그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흐릿한 혹은 유난히 선명한 사진들 아래로 엉망으로 흐트러진 감정들을 주워담는 일 뿐이었다. 처음으로 다이어리를 꽉 채워내고 나는 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했었다.


 그 어렴풋한 사진들을 찍어내고 다이어리로 엮어 낸 것이 밤삼킨별이었다. 한번 들으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독특한 필명의 그녀가 지금까지도 꾸준히 잡지에 글과 사진을 연재하고 있었다니 나로썬 마치 알던 친구를 만난 양 반가웠다. <난 잘 지내고 있어요>는 그런 잡지의 한 귀퉁이 같은 문장들과 그녀의 에세이가 합쳐진 독특한 구성의 책이다. 한번에 두 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랄까.

 

 

그녀가 찍은 사진엔 늘 여백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다. 에세이를 읽고 나니 왠지 수긍이 간다. 그녀의 뷰파인더는 늘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숨고르기에 시간을 들이고 남들은 이해 못할 공포를 애써 마주해보려는 그 부단한 노력들이 결국은 그녀 자신만을 위한 여백을 오롯이 바라보고 싶은, 그래서 기어이 살아남고 싶은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p.49  행복하지 않은 이 순간마저도 나는 잘 지내고 싶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을 순간의 여백이 되어줄, 북해도에 찾아왔다.

        앞으로 나에게 잘 지내냐고 물어줄 계절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으로 행복하지 않은 순간에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잘 지낸다는 고백이 실은 잘 지내지 못한다는 고백의 다름 아님을, 그 숨기고 싶었지만 숨길 수 없었던 외로움의 고백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도 그렇게 외로웠다고, 지금도 외로운중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보듬다 보면 외로움도 농담거리가 되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날이 있지 않겠냐고 얘기 하고 싶었다.


두 딸아이를 키우며 비슷한 양의 시간을 건너왔지만 여전히 감성 충만한 그녀의 글을 보며 다이어리를 빼곡히 채운던 나의 감성은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걸까 잠시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좀 더 무방비로, 좀 더 촉촉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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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 - 아직도 망설이는 당신에게 스펜서 존슨이 보내는 마지막 조언
스펜서 존슨 지음, 공경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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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움베르트 에코의 유작 <0>를 읽었는데 이번엔 스펜서 존슨의 유작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이 기막힌 우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많은 지식인들의 책이 전세계인을 열광시키는 동안 난 어디에 있었던 걸까? 세상의 변화에 둔감했고, 늘 뒤쳐졌고, 그래서 더더욱 좁은 내 세상안에 갇혀있던 것은 아닐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한참 베스트셀러로 서점 꼭대기의 기록을 갈아치우던 시절에도 나는 무얼 하느라 그 책을 보지 못했을까? 그렇게 내가 눈길도 안주던 책들에 내 인생을 바꿀만한 메시지가 있진 않았을까? 그 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내 인생은 조금 달라져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자 난 나도 모르게 헴과 똑같은 대사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왜 허와 같이 가지 않았을까?”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의 후속편이다. 헴과 허가 있던 미로에 치즈가 사라졌다. 치즈가 사라지자 허는 어디론가 떠났고 치즈를 얻어왔다. 그리고 다시 떠났다. 헴은 치즈와 허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망연자실 한 채 그동안 해 왔던 자신의 신념대로 고군분투해 보지만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헴의 곁에 둥글고 빨간 돌멩이들과 호프라는 꼬마인간이 나타나는데그 후로 헴의 삶은 급변한다.


전편을 통해 변화에 대해 인지하고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이해 했다면 이번엔 진짜 움직일 차례다. 자기계발서의 가장 큰 덕목은 좋은 문장도, 올바른 매뉴얼도 아닌 독자를 실제로 행동하게 만드는 깨달음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이미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이 단순하고 어쩌면 그저그래 보이는 이야기로 한 사람, 아니 전세계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니… ’이 사람은 천재야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P.61 헴은 그녀가 먹으라고 준 사과들을 떠올렸고,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마워" 헴이 말했다.

        "별 말씀을" 호프가 대답했다.

        헴은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이걸 먹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 믿기지 않아!" 그가 말했다.

        "믿을 수 있어. 그저 내려놓고 시도해보면 어렵지 않아"

       호프가 생긋 웃으며 대꾸했다.


겨우 책 한 권을 읽는 일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난 헴처럼 머뭇거리고, 지난 시절 쌓아온 신념에 집착하고, 낡은 연장으로 헛된 수고를 계속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사실이라고 믿어왔던 진실들이 사실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면 어떨까?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새로운 신념을 가지는 일은, 치즈가 아닌 다른 음식을 먹는 일은, 전에 없던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아주 작은 행동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긍정적인 희망이 저자가 호프라는 꼬마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 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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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들이 노래한다 - 숀 탠과 함께 보는 낯설고 잔혹한 <그림 동화> 에프 그래픽 컬렉션
숀 탠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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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코뼈가 사라진 해골이 음산하다. 채도가 낮은 거무튀튀한 빨강은 해골의 거무스름한 흰색과 대비되어 더욱 어두운 분위기를 풍긴다. 숀탠이라는 미술가는 그림형제의 동화를 원작으로 조형물을 만들어 냈다. <뼈들이 노래한다>는 그림 동화의 짧막한 한 장면과 함께 그 이야기의 함축적인 이미지를 숀 탠의 작품들로 채워 넣은 감각적인 작품집이다. 동화라지만 원작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은 형태는 두리뭉술하고 색상은 채도가 낮고 전해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그림 동화, 그 이야기 원형의 잔혹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림형제가 문헌학자라는 사실도, 그들이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이야기들을 기록해왔다는 사실도, 그 기록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죽을때까지 노력해왔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숀 탠의 전작빨간나무로 인한 기대치 때문이지만, 역사적 사료로써의 그림 동화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가치를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야기의 유명세에 발맞춰 무수히 많은 삽화가들이 그림 형제의 동화에 삽화를 그렸지만 숀 탠의 이번 작업은 좀 특별하게 느껴진다. 첫째 각색, 순화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원작을 기본 스탠스로 했다는 점, 둘째, 그림이 아닌 조형물로 표현해냈다는 점, 셋째, 한편의 줄거리를 구성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압축된 이미지를 통해 거의 모든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림 형제의 동화집이 아니라 그림 동화에 영감을 받은 숀 탠의 작품집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여러 작품 중 가장 인상 깊게 느껴졌던 작품은 노간주나무’, ‘새가 주운 아이’, ‘홀레 할머니.


계모가 아이를 끓여 아버지에게 먹인다는 잔혹성 넘치는 이야기 노간주나무’. 사과 궤짝에 얼굴을 넣게 하고 뚜껑을 닫아 머리를 댕강 잘라버린 후 자신의 소행임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친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최강 막장 계모가 나온다. 이 이야기의 작품은 오히려 섬뜩할 정도로 심플하다. 음영과 색의 대비 만으로도 이렇게 소름 돋는 느낌을 재현해 내는 작가의 대단한 내공을 느낄 수 있다. 나가 떨어진 머리가 새의 얼굴인 것은 새가 곧 아이의 환생이라는 해석 때문일 것이다. 책에 실린 문장보다는 이야기 전체를 아는 것이 이 작품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된다.

 

 

 

 새가 주운 아이새가 주운 아이를 끓여먹으려는 요리사를 피해 아이들이 교회로 변하고 샹들리에로 변한다는 설정도 재밌었지만, 작품에서 나쁜 요리사라는 굴레에 매달려 뾰족뾰족한 가시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고 있는 아이의 표정이 전혀 절망적이지 않은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아이들의 우정 혹은 애정이 너무도 애틋하게 느껴지는 네가 날 안버리면 나도 널 안 버릴 거야라는 텍스트도 인상적이다.

 

 

 


홀레 할머니는 전혀 모르던 이야기였지만 숀 탠의 작품만 봐도 홀레 할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닌게 틀림없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생긴건 험상궃지만 다정한 할머니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림 형제의 다양한 이야기가 실리다 보니 우리에겐 전혀 생소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땐 뒷편에 실린 줄거리를 확인하거나 다른 책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모아본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 전체가 궁금해서 못 견디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야기 줄거리는 모르지만 오른쪽의 작품을 보면 대강 그 이야기의 분위기와 줄거리가 연상되면서 독자 나름의 해석도 가능하다. 텍스트와 미술작품의 절묘한 콜라보레이션이 무척이나 새롭고 즐거운 독서 경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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