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다섯 마리의 밤 -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채영신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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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신 작가의 소설인 <개 다섯 마리의 밤>은 다채로운 소재들을 활용하여 서사의 힘을 끝까지 이끌어 나가는 강력한 힘이 있는 작품이다. 알비노(백색증)이라는 병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소년 세민이와 엄마 박혜정의 애달프고도 비극적인 이 작품은 사회 비극적이면서 종교, 문학, 신화적인 요소까지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개 다섯 마리의 밤의 뜻은 호주 원주민들이 아주 추운 계절인 밤이 되면 개 다섯 마리를 껴안을 때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의미로 혹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상징한다. 이는 혜정과 세민의 삶을 은유하는 묘사이다. 

이 소설은 ‘요한’이라는 인물이 아이들을 살해하고 살해현장을 재연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겠지만, 이는 성경에 등장하는 ‘요한’을 뜻하며, 성경에서 요한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세우는 일이다. <개 다섯 마리의 밤>을 움켜쥐고 있는 서사는 성경의 이야기다. 기독교의 서사를 굴절하여 마치 성경에서 찾는 ‘선별자’인 구원자인 예수를 현대에서 찾게 되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틀리다고 핍박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린 어떤 소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암흑, 그리고 핍박에 대한 전유이며 이단 종교로 추측되는 그 단체에 속한 ‘요한’은 ‘세민’을 선별자로 선택한다. 태생적인 병으로 ‘핍박’을 받는 세민,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태생적으로 핍박이 강제되어졌던 그 지점을 작가는 지적하며 ‘세민’ 뿐만 아니라 사회가 합의한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 실력만능주의에 대한 비범한 통찰과 은유들을 통해 결국 핍박은 파멸을 향해 치닫게 된다. 

소설을 구성하는 인물들, 특히 세민과 혜정과의 대립을 이루는 그룹들은 두 그룹정도로 축약된다. 첫 번째로 혜정과 다른 엄마들이다. 학교에서 세민이가 유별난 외모와 공부 성적 또한 우수한 이유로 다른 엄마들의 질투를 사고 있었는데, 그 중에 안빈의 엄마는 그녀의 어려운 사정들을 내심 알고 처음에는 그녀를 도와줄 작정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눴지만, 세민이가 학교 성적이 높아지면서 그것이 질투심으로 변화된다. 결국 그녀에 대한 적대적인 마음과 대척점에 서는 인물이다. 두 번 째로는 세민과 아이들이다. 세민은 그 나이 때에 가질 수 없는 유능함 때문에 아이들의 질투를 받게 된다. 그는 이를 방어하기 위한 기제로써 알비노를 이유로 조롱하는 아이들에게 지지 않도록 지식을 쌓는다. 그리고 세민이와 이단 종교의 관계는 <개와 다섯 마리의 밤>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아우라’다. 벤야민이 말한 그 ‘아우라’는 공간과 시간, 전통이 시대를 관통하여 계속 계승되며 갱신되는 형태. <개와 다섯 마리의 밤>에서는 그것이 ‘종교’적인 형국으로 들어선다. ‘요한’과 ‘에스더’는 종교적인 이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들이다. 아이를 살해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마지막에 이 종교가 단체로 벌이는 한 사건은 한국에 있었던 충격적인 사건을 연상시키면서 끝나지 않을 혹독한 추위에 대한 명멸. 이어지는 서늘한 마무리가 삶의 과녁에 명증하게 꽂힌다. 

어떠한 소설은 상처가 부어서 생긴 부스럼들을 약을 발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면, <개 다섯 마리의 밤>은 상처가 벌어진 그 곳을 들여 다 보고 표현하는 소설이다. 어떠한 상처는 끝났거나 끝나지 않을 것처럼 몸에 체화된다. 한편으로 세민이와 혜정이가 공통적인 습관은 ‘술’을 마시는 것이다. 상처를 잊기 위해 마셨던 그 술은 몸에 고통의 순간들을 반영하는 체화된 습관이다. 결국 세민이와 혜정이 수용한 식별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끝에 받아들이는 핍박은 영광 스럽지 않고 가련하다. 고된 삶의 끝에 하느님의 영광이 인간의 삶에 진실로 깃들 수 있는 것일까. 결국 에스더의 마지막 독백은 그렇게 고되고 고된 삶에 대한 의문, 그리고 그 의문은 우리의 것이 되어 부유한다. 끝날 것 같다가도 종 잡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선의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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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비순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권예리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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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순수 :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순수”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순백색의 옷을 입고 밝은 미소를 장착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순수는 성격이라는 무형의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순수는 칭찬으로 받아 들여진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그렇다면 순수와 비순수를 구분하는 책인가?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순수라는 정의에 대한 인문학적인 해석일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 <순수와 비순수>는 서술할 수 없는 비언어적인 개념임을 인지하게 된다. 무엇이 순수한 것인가? 순수에 대한 물음은 <순수와 비순수>에서 모호함과 딜레마, 혹은 아이러니들이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함께 유려한 문체로 펼쳐진다. 곧 저자인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가 주목했던 관심사가 사회적인 관습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시대를 관통하여 존재하는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인 발상들을 뛰어 넘는 인물들과 대화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화의 대상은 실존 인물들이다. 대화의 대상이 갖고 있는 직업의 특성이나 정체성은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존재하는 카사노바, 남장 여자, 동성애자등이다. 이는 순수와 비순수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출발하며, 그렇다면 그들이 사유하는 쾌락과 관능이 어떻게 발화하고 있는지를 과감한 방식으로 분석한다. 잘 알려지다 시피 이 소설을 보통 LGBT 로 정의하기도 하는데, 장르의 형식을 너머 어떠한 삶이 그들의 정체성을 추동해 왔는지를 정신 분석학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분석은 이 작품을 현학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부분중에 하나이다. 마치 플라톤의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야기의 결론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를 토대로 쌓아가는 이야기들은 이내 마무리 되는 것 같다가도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흐릿해진다. 이는 완결된 구조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내러티브를 포착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이런 구조는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장점을 부각시키는데, 내러티브를 희생하는 대신에 감각적인 문체와 시적인 표현들은 그녀의 언어를 활용하는 감각에 감탄을 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그녀의 글은 내면 깊숙이 들어와 인간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인 르네 비비앵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화자가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들은 시대의 모멸감속에 살아가던 소수자들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바라 보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가 담겨 있다. 책을 차분히 읽어보면서 나는 인간에게 어떠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순수와 비순수로 나눌 수 없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들에 대해서, 그리고 니체가 말한 보편 혹은 일반성이라 불리 우는 지배 계층이 축적해 온 은폐 된 관계에 대해 깊이 이해해보고 싶어졌다. 콜레트의 마지막 말을 상기한다면 우린 더욱 순수의 의미에 밀접해진다. 

“순수”라는 말은 내게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드러낸 적이 없다“라고 말이다. 순수한 관계는 편견 없는 순수함으로 형성된다. 순수와 비순수라는 관습을 파괴하고 싶어 했던 콜레트에게 이러한 구분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숙제와 같은 것으로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역설적인 존재여서 일지 모르겠다. 인간 관계의 역설은 매순간 나와 다른 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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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딸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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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의 존재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내 글이 주는 마력 같은 힘에 자석처럼 이끌려 버릴 때가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가령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보고 주인공인 한스에게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물론 한스는 세상에 어떠한 형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한스와 같은 자기 번민과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이들을 글을 통해 세상의 어려움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내러티브의 서술 없는 메시지, 편지라 부를 수 있는 형식을 어떤 방식으로 감응할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독자들은 편지의 수신자가 삶에 대한 내용과 동기를 생각해 볼 것이고, 수신인에 대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찾아보게 될 것이다. 이는 어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딸>은 전형적이지 않고, 기존의 장르에서 벗어난 글로 난해하게 읽혀지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아니에르노의 글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주로 자전적인 소설을 집필해 왔는데, <세월>이란 책을 출판하고 난 후 인터뷰에서 그녀는 작가라는 것이 무엇인지, 글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밝힌바 있다. 

“작가가 우리 내면을 항상 그리고 이미 사회적이라고 본다.”

“높이도 소재도 다르게 이어 붙여진 역사의 직조물”

이는 개인의 내면을 깊이 파고 들면 결국 사회적인 층위에서의 이념과 감정들이 드러나고, 결국 이것을 소급해서 살펴보면 알 수 없는 역사의 진행 방식에 의해서 글이 구성 된다는 것이다. 아니에르노의 <다른딸>은 편지라는 양식을 통해 어른이 된 그녀가 이전에 할 수 없었던 내면의 이야기를 비범한 문체와 깊은 사유를 밀도 있게 적었다. 언급했듯이 그녀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당신’이란 호칭을 통해 사회적 맥락으로 개방되어 드러나기도 한다. <다른 딸>은 그녀의 내면에 깊게 잠식하고 있었던 존재하지도 않고, 기억할 수조차 없는 자신의 혈육인 언니에게 작성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선 한스와 같은 불우한 상황에 대한 서사들이 없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들려 왔던 언니의 이야기들에 대한 공백들을 채우기 위한 아니에르노의 진심이 유려하게 마음에 전해진다.

글을 쓰면 쓸수록 마치 꿈을 꾸듯 이끼만 잔뜩 돋은 인적 없는 습지에서 걸음을 내딛는 듯하고, 단어들의 틈새를 헤치고 나아가 불분명한 것들로 가득 찬 공간을 넘어가야 할 것만 같아요. 내겐 당신을 위한 언어도, 당신에게 말해야 할 언어도 없으며, 부정적인 방식을 통해 지속적인 비존재 상태로 있는 당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정과 정서의 언어 바깥에 있는 당신은 비언어입니다. - 61p

<다른딸>에서 ‘언니’는 ‘당신’으로 불러지며, 매개될 수 없는 존재인 ‘언어’로 비유된다. 그리고 이는 그녀에게 글쓰기라는 행위로 발화한다. 결국 우리는 이 글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해야 한다”를 넘어선다. 그녀가 곧 감정과 정서가 언어 바깥에서 배회한다고 말할지라도 이를 침묵이 아닌 ‘비언어’를 ‘언어’로 말한다는 점에서 이는 간파할 수 없는 내면의 소리가 되어 부유한다. 결국 그녀가 말하는 당신이라는 대상의 텅 빈 형체도 이제는 텅 빈 형체가 아니라 책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선언하는 ‘당신’이란 말로 대체 된다. 이 소설은 너무나 분명하게 마지막 페이지에 수신의 기록 목적을 밝힌다. 이는 보이지 않는 모든 ‘당신’에게 송부하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내 글을 읽는 ‘당신’이란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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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인간 - 팬데믹에 대한 인문적 사유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효형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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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아감벤은 이탈리아의 철학자, 비평가, 미학자로 신학적이며 철학적인 독특한 문체로 전 세계에 주목을 받고 있는 학자 중에 한명이다. 마르틴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미셸 푸코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서는 한 챕터를 할애해 하이데거의 사유(세계-내-존재, 현사실성, 현존재, 두려움 등)들을 언급하며 치환할 수 없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가치의 중요성을 이끌어 낸다. 부제목인 ‘팬데믹에 대한 인문적 사유’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1년 이상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회·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담론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얼굴 없는 인간>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철학적 의제는 아래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메시지만 오가고, 가능한 한 기계가 인간 사이의 모든 접촉, ‘모든 전염’ 가능성을 대체해 버렸다.” <얼굴 없는 인간> p42

결국 접촉의 상실은 잠재적인 바이러스 전파자로써 관계의 분열을 초래하고, 이는 바이러스가 나라의 정치적인 도구로써 선동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점철 된다. 이 두가지의 차원을 아감벤은 염려하면서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그의 물음에는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자유, 정치의 범위 등이 요청된다.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방역을 어긴 이들에게 어떠한 법적 조치가 이뤄져야 할까? 이는 사회 시스템하고도 결부되어 있다. 그는 현 시대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결합 된 형태로 인간의 존엄성을 마음만 먹으면 박탈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자본이라는 경쟁이 형성하는 인간의 얼굴이란 건 표정 없는 기계화 된 얼굴처럼 보인다. 키케로의 말과 같이 인간의 얼굴은 성격을 표상한다. 그러나 이제 마스크가 잠식해버린 인간의 표정은 부속품에 불과하다. 무의식적으로 발화하는 표정을 포착할 수 없게 된 인간은 소통의 절멸을 경험한다. 

“공동체의 즉각적이고 세밀한 지침을 따라 직접적인 메시지만 교환할 수 있다. 더 이상 얼굴 없는 이름으로” <얼굴 없는 인간> p148

그러나 나에겐 의문이 든다. 아감벤이 말하는 ‘자유’라는 것은 얼마나 광범위한 구술로써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위’의 가치의 무게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구체적으로 논술할 수 없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아감벤은 ‘인문학자’이지 과학자, 의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통계와 사례들은 축적되어 가고 있으며, 각 나라마다 코로나에 얼마나 현명하게 대처를 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상황을 고찰하게 되면 아감벤의 글들은 그렇게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물론 그가 자신이 바이러스학자도, 의사도 아니며, 윤리적, 정치적 변화에 대한 관심만을 내비쳤지만, 안타깝게도 아감벤의 <얼굴 없는 인간>은 나에겐 인간의 존엄만을 위시한 공허한 외침으로 읽혀졌다. 아무래도 그가 코로나로 인해 범국가적인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단 이로 인해 발생하게 된 사회적·정치적·문화적인 결핍을 아감벤의 사유의 틀 안에서 설명하기 위해서 그러한 것 같다. <얼굴 없는 인간>을 통해 아감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책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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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이 되어 줄게 - 할아버지가 엄마에게는 해 주지 못했던 말
한기호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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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이 되어줄게는 한기호 작가님의 자전적 성격을 지닌 에세이로 자신의 딸의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묶어서 출판 된 책이다. 출판 평론가로 살아온 지난 생활을 돌아보면서 그간 책을 통해 바라 본 세상을 책의 대상자인 아이뿐만 아니라 읽는 독자들에게도 따뜻한 격려와 위로, 한편으로는 날카롭지만 사려 깊은 태도로 삶을 조언하면서 인생의 방향성을 지시해 준다. <네 편이 되어줄게>라는 책 제목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난 네 편이야”라고 말하는 가족주의적 편향에서 벗어나 세상을 지혜롭게 바라보는 방법과 세상에서 올곧게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어떠한 지를 객관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한기호 작가님이 출판 평론가이기 이전에 책을 사랑하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인쇄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세상에 대한 관심 혹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바 있다. 

“세계는 하나의 도서관 혹은 한 권의 거대한 책이 될 것이다.”

그렇다. 책의 세계화를 진작부터 보르헤스는 예견 했다. 이제는 책이 번역되는 속도도 이전보다 가속화 되고, 다양성이 확대되어 한국의 문학들이 해외 저명한 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길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책은 시대를 불문하고 세계를 바꾸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것은 한 개인과 공동체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의 매개체이다. 우리가 탐색할 수 없던 사유의 깊이를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에 대한 생각을 대변 하듯 <네 편이 되어 줄게>에서는 아주 열렬하게 책읽기의 중요성, 점차 변화 되는 세계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미래 사회의 발전 가능성과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세계화의 전도사’라고 불리는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국경과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구촌 경제 체제, 즉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회와 자유가 주어지는 세계화를 거스를 수 없다고 했어‘ p25

‘앞으로 인간은 인공 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을 꼭 기억하렴.’ p87

‘주어진 정보를 엮고 해석하여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런 능력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책을 읽으며 함께 토론하고 상상하는 능력을 키운 사람만이 갖출 수 있단다. 할아버지가 늘 강조하는 얘기지.’ p175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떠오른 생각은 아버지란 무엇일까라는 점이었다. 한기호 작가님이 자신을 삶을 회고하면서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반성하지만, 아버지가 된다는 것,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 엄마, 아빠가 된다는 첫 번째 경험은 누구에게나 어색한 것이다. 작가님의 딸이 자녀를 갖게 된 계기를 통해 ‘아버지’가 바뀌었다고 서두에 말한다. 다정한 아버지가 되었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를 보면 한가지 물음을 하게 된다. 책을 통해서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를 바꾼건 책이 아니라 세상에 입성한 선물과도 같은 손주였다. 생명은 사람의 삶을 바꾼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변하지 않는 '진리'를 배웠다. 그것은 누군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세상을 바꿀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책에서 나는 ‘책’을 읽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네 편이 되어줄게”라는 창조주가 나에게 선언하는 신탁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네 편이 되어 줄게>는 세상의 어려움에 도망가지 않고 이겨내는 방법을 말해준다. 나는 책을 통해 좋은 아버지, 좋은 할아버지, 그것도 아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는 다짐과 함께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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