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딸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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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의 존재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내 글이 주는 마력 같은 힘에 자석처럼 이끌려 버릴 때가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가령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보고 주인공인 한스에게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물론 한스는 세상에 어떠한 형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한스와 같은 자기 번민과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이들을 글을 통해 세상의 어려움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내러티브의 서술 없는 메시지, 편지라 부를 수 있는 형식을 어떤 방식으로 감응할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독자들은 편지의 수신자가 삶에 대한 내용과 동기를 생각해 볼 것이고, 수신인에 대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찾아보게 될 것이다. 이는 어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딸>은 전형적이지 않고, 기존의 장르에서 벗어난 글로 난해하게 읽혀지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아니에르노의 글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주로 자전적인 소설을 집필해 왔는데, <세월>이란 책을 출판하고 난 후 인터뷰에서 그녀는 작가라는 것이 무엇인지, 글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밝힌바 있다. 

“작가가 우리 내면을 항상 그리고 이미 사회적이라고 본다.”

“높이도 소재도 다르게 이어 붙여진 역사의 직조물”

이는 개인의 내면을 깊이 파고 들면 결국 사회적인 층위에서의 이념과 감정들이 드러나고, 결국 이것을 소급해서 살펴보면 알 수 없는 역사의 진행 방식에 의해서 글이 구성 된다는 것이다. 아니에르노의 <다른딸>은 편지라는 양식을 통해 어른이 된 그녀가 이전에 할 수 없었던 내면의 이야기를 비범한 문체와 깊은 사유를 밀도 있게 적었다. 언급했듯이 그녀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당신’이란 호칭을 통해 사회적 맥락으로 개방되어 드러나기도 한다. <다른 딸>은 그녀의 내면에 깊게 잠식하고 있었던 존재하지도 않고, 기억할 수조차 없는 자신의 혈육인 언니에게 작성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선 한스와 같은 불우한 상황에 대한 서사들이 없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들려 왔던 언니의 이야기들에 대한 공백들을 채우기 위한 아니에르노의 진심이 유려하게 마음에 전해진다.

글을 쓰면 쓸수록 마치 꿈을 꾸듯 이끼만 잔뜩 돋은 인적 없는 습지에서 걸음을 내딛는 듯하고, 단어들의 틈새를 헤치고 나아가 불분명한 것들로 가득 찬 공간을 넘어가야 할 것만 같아요. 내겐 당신을 위한 언어도, 당신에게 말해야 할 언어도 없으며, 부정적인 방식을 통해 지속적인 비존재 상태로 있는 당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정과 정서의 언어 바깥에 있는 당신은 비언어입니다. - 61p

<다른딸>에서 ‘언니’는 ‘당신’으로 불러지며, 매개될 수 없는 존재인 ‘언어’로 비유된다. 그리고 이는 그녀에게 글쓰기라는 행위로 발화한다. 결국 우리는 이 글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해야 한다”를 넘어선다. 그녀가 곧 감정과 정서가 언어 바깥에서 배회한다고 말할지라도 이를 침묵이 아닌 ‘비언어’를 ‘언어’로 말한다는 점에서 이는 간파할 수 없는 내면의 소리가 되어 부유한다. 결국 그녀가 말하는 당신이라는 대상의 텅 빈 형체도 이제는 텅 빈 형체가 아니라 책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선언하는 ‘당신’이란 말로 대체 된다. 이 소설은 너무나 분명하게 마지막 페이지에 수신의 기록 목적을 밝힌다. 이는 보이지 않는 모든 ‘당신’에게 송부하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내 글을 읽는 ‘당신’이란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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