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와 비순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권예리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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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순수 :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순수”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순백색의 옷을 입고 밝은 미소를 장착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순수는 성격이라는 무형의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순수는 칭찬으로 받아 들여진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그렇다면 순수와 비순수를 구분하는 책인가?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순수라는 정의에 대한 인문학적인 해석일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 <순수와 비순수>는 서술할 수 없는 비언어적인 개념임을 인지하게 된다. 무엇이 순수한 것인가? 순수에 대한 물음은 <순수와 비순수>에서 모호함과 딜레마, 혹은 아이러니들이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함께 유려한 문체로 펼쳐진다. 곧 저자인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가 주목했던 관심사가 사회적인 관습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시대를 관통하여 존재하는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인 발상들을 뛰어 넘는 인물들과 대화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화의 대상은 실존 인물들이다. 대화의 대상이 갖고 있는 직업의 특성이나 정체성은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존재하는 카사노바, 남장 여자, 동성애자등이다. 이는 순수와 비순수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출발하며, 그렇다면 그들이 사유하는 쾌락과 관능이 어떻게 발화하고 있는지를 과감한 방식으로 분석한다. 잘 알려지다 시피 이 소설을 보통 LGBT 로 정의하기도 하는데, 장르의 형식을 너머 어떠한 삶이 그들의 정체성을 추동해 왔는지를 정신 분석학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분석은 이 작품을 현학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부분중에 하나이다. 마치 플라톤의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야기의 결론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를 토대로 쌓아가는 이야기들은 이내 마무리 되는 것 같다가도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흐릿해진다. 이는 완결된 구조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내러티브를 포착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이런 구조는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장점을 부각시키는데, 내러티브를 희생하는 대신에 감각적인 문체와 시적인 표현들은 그녀의 언어를 활용하는 감각에 감탄을 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그녀의 글은 내면 깊숙이 들어와 인간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인 르네 비비앵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화자가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들은 시대의 모멸감속에 살아가던 소수자들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바라 보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가 담겨 있다. 책을 차분히 읽어보면서 나는 인간에게 어떠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순수와 비순수로 나눌 수 없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들에 대해서, 그리고 니체가 말한 보편 혹은 일반성이라 불리 우는 지배 계층이 축적해 온 은폐 된 관계에 대해 깊이 이해해보고 싶어졌다. 콜레트의 마지막 말을 상기한다면 우린 더욱 순수의 의미에 밀접해진다. 

“순수”라는 말은 내게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드러낸 적이 없다“라고 말이다. 순수한 관계는 편견 없는 순수함으로 형성된다. 순수와 비순수라는 관습을 파괴하고 싶어 했던 콜레트에게 이러한 구분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숙제와 같은 것으로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역설적인 존재여서 일지 모르겠다. 인간 관계의 역설은 매순간 나와 다른 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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