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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에는 이름도 특이한 소라(小蘿) ,나나(娜娜), 나기(鏍基) 세사람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각기 다른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라와 나나는 애자와 함께 산다. 애자는 남편이 공장에서 기계에 딸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갈려 죽은 뒤로 그녀의 삶도 죽었다. 소라가 열 살, 나나가 아홉 살때 아버지(김금주 金金紬)가 돌아가시고 사고 합의금도 할머니와 친척들이 다 가져간 후 가계가 어려워 살림을 처분하고, 단촐한 가방만 챙겨 이사를 갔다. 그곳에 나기가 살았고 그곳은 반지하에 벽을 사이에 둔 둘이자 하나의 공간으로 두 집이 하나의 화장실을 사용하는 곳이다. 애자는 나날이 말라 갔고, 소라와 나나를 두고 죽으려고도 했다. 소라와 나나는 그런 애자를 이해하고 서로를 챙겼다. 나기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나기의 어머니는 나기와 애자가 챙기지 않는 소라, 나나의 도시락까지 싸주었다. 소라와 나나는 직장을 다니고 애자가 사랑하던 나이쯤 되었다. 소라는 애자를 더 이상 돌보지 못할 것 같아 요양원에 맡기고, 나나는 직장 동료 모세의 아이를 가졌다. 아이를 낳을 거지만, 결혼은 안한다고 한다. 소라와 나나와 나기와 순자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무의미하고 하찮은 삶이지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티며 살아 가고 있다.
애자는 본인의 이름 그대로 사랑으로 가득하고 사랑으로 넘쳐서 사랑뿐인 사람이었습니다. 사랑뿐이던 애자는 그 사랑을 잃자 껍질만 남은 묘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88p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104p
간장을 싫어하는 부족, 간장을 좋아하는 부족, 간장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은 부족.
부족이 되나, 하고 소라는 물었지. 나 하나뿐인데? 하나뿐인 부족도 있는 거기 세상엔. 201p
그럼 이게 그거야. 그거로 하자 낮에도 날고 밤에도 나는 것. 낮에 날고 밤에도 나는데 그런데 이건 뭐야.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이름을 붙일까. 붙이자. 나비와 나방이 전부 있는 것으로, 나비와 나방. 나방비 나비방. 나나비. 나나바. 나비바가 될까. 나비바가 되자. 나비바. 소라, 나나, 나기가 합체하면, 나비바. 나비바가 도지. 나비바. 소라나나나기나비바. 죽었니 살았니. 살았다. 나비바. 소라나나나기나비바. 203p~204p
애자는 요즘도 밤에 전화를 걸어옵니다. 가엾게도. 애쓰지 마. 의미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애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찬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 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찬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 하나거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227p
애자와 순자는 남편을 잃은 공통점이 있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보인다. 애자는 사랑을 잃자 모든 삶의 의미를 잃고 살고, 순자는 어려운 역경을 맞서 살아간다. 하지만 경우가 틀리듯 두사람의 삶 또한 다를 수 있다. 소라는 나나가 임신한 것에 생각을 많이 한다. 나나가 엄마가 된다는 거이 싫고 두렵다 생각한다. 나나 또한 아이가 아버지 없이 자라고 태어나게 해서 자신을 원망할까봐 걱정한다. 그래도 아이를 낳길 바란다. 나나가 살아온 환경을 모세나 모세의 부모님이 받아들이기 힘들고 자신의 모든 걸 보여줄 만큼 모세와의 사랑 그 만큼은 안되어서 결혼을 안한다고 한다. 나나의 용감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나나와 모세는 서로 다른 세계에산 사람들이니까, 언젠가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다. 정말 하찮은 삶은 없다. 모두가 저마다 소중한 삶이고 아름다운 삶이다. 소라나나나기나비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