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 위 키스?
엠마뉴엘 무레 감독, 미카엘 꼬엔 외 출연 / 대경DVD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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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키스도 하고나면 그 다음은 아무도 모른다.. 며, 그저 '작별인사'일 뿐이라는 남자의 키스를 거절한 여자, 물론 벅차오르지만 그럴수밖에 없었던 여자의 이야기가 영화 속 '액자'에 담겨져 또 하나 등장한다. 프랑스 낭트에서 우연히 만난 에밀리,와 가브리엘. 우연한 만남이 영화 속에서 대개 그렇듯 피할 수 없는 '로맨스'가 되려하는데, 그 로맨스가 시작되려는 순간, 여자는 키스를 거부하는 '얼척없는' 짓을 하는 것. 사연이 있노라, 근데 그 사연을 다 말하기엔 밤이 너무 늦었다고 말은 하지만, 이미 그 이야기로 밤을 같이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감 그대로, 밤새 이야기는 이어진다. 액자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니콜라, 와 주디트, 의 이야기.

이른바 절친, 베프, 였던 니콜라, 와 주디트, 시시콜콜 별별 숨김없는 대화가 가능했던 이들. 어느날 애인과 헤어진 후 영화의 표현대로라면 '육체적 애정결핍'에 시달리던 니콜라, 가 주디트에게, 자신의 결핍을 치료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유부녀인 주디트에게, 더욱이 그야말로 절친, 이었던 그녀에게 그런 부탁을 하고서 어쩔줄 모르는 니콜라.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말은 '친구인데 돕고 살아야지 어쩌겠어'. 돕고 살자고 시작한 일이, 근데 사단이 난 것. 키스해서 기분 나쁘면 안할 수도 있다는 전제, 가 무색하게, 완전 속궁합 만족도, 백프로. 그 이후 새로 생긴 애인과도, 그리고 남편과도 관계가 '시시껄렁' 해진 두 절친. '그러면 다른 쪽 가슴도 만져도 되? ' 물으며 시작했던, 어색하기 짝이 없던 그들이 이제는 그 끌림에 어쩔수없이 애인과의 헤어짐, 남편과의 이혼을 생각하기에 이르며, 그러기 위해 벌이는 ' 참 없어보이는 짓'이 웃음을 터뜨릴만큼, 이어진다.

제일 좋았던 장면. 호텔 앞에서 헤어질듯 말듯 하다가 누군가의 용기로 갖게 되는 에밀리, 와 가브리엘의 저녁식사 그리고 술자리. 허리를 질끈 묶었던 그녀의 바바리코트가 정말 맘에 들었고- 이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은 죄다 바바리코트를 그렇게 질끈 허리를 묶고 입고 나온다 - 슬쩍 올린 머리며, 헐렁한 터들넥도. 영화를 보면서 여배우에게 반해보기는 간만인 듯싶게, 참 매력적인 얼굴과 분위기를 가진 에밀리. 영화전반에 걸쳐,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차이코프스키의 '작은 백조의 춤' 그리고 베르디, 모짜르트, 슈베르트-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슈베르트이다 - 에 이르기까지 스토리와  딱딱 맞아떨어지는 클래식 선율이 내내 함께한 탓일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던 낯선 여행지에서의 '로맨스'  혹은 '원나잇스탠드'여도 과히 상관없을 다소 발칙한 '일탈'에 대한 꿈이 은근 '품격' 있는 무엇인 것처럼 느껴져서 심지어 우쭐한 기분도 들게 만드는 영화. 그 키스가 가벼울지 무거울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키스가 두려운 여자와의 마지막 헤어짐의 장면이 그간의 웃음을 먹먹함으로 '지고지순'하게 마무리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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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화장실 - The Pope's Toile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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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루과이와 브라질의 국경지대인 작은 마을 '멜로'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간만에 '지대로' 남미영화인, 우루과이 영화이다. 국경지대에서 밀수한 물품을 동네 식료품 가게에 공급해주는 것으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나가던 이 마을 주민들에게, 교황의 방문은 그야말로 '대박'의 기회가 열린 셈. tv와 라디오에선 연일 5만이 될지 10만이 될지 모를 신도들과 관광객 인파들을 예상하여 떠들어대고 있으며, 이날 하루 '인생역전'의 기회를 노려 일일장터, 를 궁리하는 이 순진무구한 시골 사람들은 그야말로 '과부딸라빚'을 내가며 고기를 사고, 소시지를 사면서 먹거리 장터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의 아빠, '비토'는 독자적인 아이템을 떠올리고 생각만으로도 의기양양해진다. 이름하여 '유료화장실'.  

그 품격있는 분들이 우리처럼 길에다가, 그럴리가 없지. 확신은 더해만가는데, 문제는 과연 ' 변기'라는 그 럭셔리한 물건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라는 것. 이번 한껀만 성공하면, 더 많은 식료품들을 실어나를 수 있는 자신의 모터사이클과 와이프의 소원인 '세탁용 녹말풀' 그리고 밀린 전기세를 해결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남몰래 라디오를 들으며 방송기자의 꿈을 키우는 딸이, 시내로 나가 공부를 할 수 있게도 되는데, 그넘의 변기를 구해오는 일, 정확히 말해 변기값을 구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 전전긍긍. 어쩔수없이 비토는 가족들이 환멸해마지않는, 야비한 국경 기동순찰대와 야합, 그들의 밀수를 대행해주면서, 변기값을 벌게 되는데.  

언론은 연일 이 마을에 '기적'이 일어날 것처럼 떠벌리고, 드디어 교황이 오시는 날, 작은 마을 '멜로'엔 전운마져 감돈다. 그러나 비토는, 변기값을 내주기로 한 국경수비대, 가 전날 밤 배신을 때려버리고, 가족마져 그가 야합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빠를 등지는 난국에 처해, 허겁지겁 일단 국경지대로 변기를 가지러 떠나고. 그가 변기를 가지러 간 사이, 몇날며칠이고 머물면서 흥청망청 지내줄 것 같던 교황방문단은, 2시간도 안되는 행사를 마치고, 말끔하게 사라져버리시고 말았다는. 5월 8일 방문이셨는데, 크리스마스까지 온마을이 다 먹고도 남을 소시지,는 어쩔 것이며, 과일튀김은 이미 새들의 먹이가 되고 있고, 몇날며칠을 반죽해만든 빵, 은 온집안에 쓰레기처럼 굴러다니게 된 판국.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허탈함과 처연함이 줄줄 흐르는 장터의 비참한 파장.. 이날 교황연설회의 참석인원은 8천여명. 그 중 90프로가 멜로, 의 주민들. 참석한 브라질 '내빈' 분들은 4백여명, 다시 그 중 3백여명은 교황이 움직이면 즉시 함께 이동해야하는, 저널리스트. 장터에 눈길한번 줄 여유없이 그들은 그렇게 떠나갔던 것이다. 언론에서 떠들었던 몇만의 관광객을 실어나를 버스들의 행렬 따위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다. 낙후된 후진국을 방문하는 교황의 일정이 매스컴에 의해 지독하게 선동되었던 것일 뿐, 로또당첨과 같은 대박, 은 허상이었던 것. '교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떠나셨습니다' 라는 앵커의 보도에 격분한 비토가, tv를 향해 맥주병을 날렸던 것, 그렇게나 방송기자가 꿈이었던 딸 실비아, 가 끼고 살았던 오래된 구형 라디오를 '버리게' 되는 일련의 행위는 언론의 명확한 '범죄'에 그들이 분노하고 있음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먹거리 장터를 준비했던 이웃보다 비토, 의 경우는 나름 양호하여, 팔자에 없이 그 마을에서 '변기'를 둔 유일한 집이 되었고, 두번 다시 야비한 기동순찰대원과 야합하지 않기 위해, 자전거마져 빼앗겨버린 아버지, 이제는 터벅터벅 걸어서 식료품을 구하러 국경을 향해 걸어가는데, 라디오를 내다버린 실비아, 가 말없이 아버지의 뒤를 따른다. 아버지랑 같이 이 일을 하자고 꼬드길 때도 방송기자 할꺼라며 까딱안하던 딸이, 비로소 아버지를 따라 함께 걸으며 일을 떠나는 것.

부녀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자막은 '그 후로 교황은 두번다시 그곳을 방문하지 않았다' 였다. 가족을 위해서 자전거를 빼앗긴 채, 변기를 어깨에 둘러메고 이미 휑해진 교황연설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이 가슴을 많이 울렸고, 우둔하다고 해야할지 순박하다고 해야할지 모를, 멜로,의 주민들이 겪은 이 해프닝과 같은 일이 '실화'라는 사실이 참 안쓰러웠다는. 그러나 덧붙이자면, 정말 하늘과 땅이 늘 맞닿아있는 남미의 광활한 풍경은 그렇게 '당하고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스스로 행복을 만들려는 멜로, 의 주민들에게 내리는 신의 조용한 축복과도 같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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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마리온 이야기
여러 아티스트 (Various Artists) 감독 / EBS미디어센터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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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8년 포르투갈의 항해사 바스코 다가마는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지나 마다가스카르, 레위니옹, 모리셔스, 세이셸 등 인도양의 크고 작은 섬들을 발견한다. 처녀섬의 발견, 누군가에게는 최초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최후가 되기도 했다.." 다소 비장한 나래이션으로 시작하는 EBS 다큐 프라임 '마리온 이야기', 는 바다가 신화가 되고 섬이 전설이 되던 시절, 이 그만 끝나버린 그 때, 마지막 전설이 되버린 육지거북 '마리온' 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화로운 세이셸 섬에서 한가족을 이루어 살던 마리온과 수컷, 그리고 아가거북. 갑작스럽게 등장한 인간들이, 항해기간 동안 배에 싣고다니면서 언제든 '먹을 수' 있었던 식용,으로 이들 육지거북을 취급하게 되면서 그들의 멸종이 시작된다.

일명, 코끼리 거북, 이라고도 불리는 이 육지거북은 무게가 300kg에 달하고 그 수명은 무려 200살. 100년에 단 한번 있는 짝짓기로 비로소 가정을 이룬 마리온이, 하루를 백년같이, 백년을 하루같이 자연의 시간 속에 순응하며 살고 있던 중, 그만 사람들에게 포획이 되어 팔려간 곳은 '안나'라는 소녀가 살고 있는 집. 비록 식용이 아닌, 안나의 친구, 로 팔려 생명은 보존했지만, 세이셸 섬에서 헤어지던 순간의 아가거북의 눈망울을 잊지 못하는 마리온, 은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한다. 하루 온종일 걸려 탈출하였지만, 사람들은 한걸음에 그를 잡으러 오고, 이렇게 탈출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마리온의 고향섬에 대한 향수와 아가거북에 대한 그리움은 깊어만 가는데, 우연히 마을을 방문한 동물학자로부터 마리온이, 희귀의 멸종동물인 '세이셸 코끼리거북' 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안나, 는 결국 마리온의 탈출을 도와주게 된다. 

안나의 도움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무사히 마을을 벗어나는 것에 성공한 마리온, 바다에 가면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아가거북이 있는 자신의 고향 세이셸 섬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하나로 그 천근같은 느린 걸음을 재촉,, 마리온의 그 힘겨운 발걸음 하나하나엔, 가족들과의 행복했던 시간들, 꼭 돌아오겠다고 눈으로 약속했던 아가거북에 대한 미안함, 이 사무친다. 드디어 바다에 도착한 마리온, 그러나 마리온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은 바다를 헤엄칠 수는 없는 '육지거북' 이라는 사실.- 이런 멍청한 거북이가 있나, 솔직히 안타까왔다는. 바다를 건너지 못하는 마리온, 은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바다 건너 아가거북이 있는 자신의 섬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또다른 희망에 자꾸만 더,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되고, 드디어 바다 끝 절벽 꼭대기에 올라선 마리온의 눈 앞엔 그렇게나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어했던 세이셸 섬이 저 멀리 펼쳐졌다. 그러나 오랜 굶주림과 고행과 같던 탈출과정으로 이미 탈진해버린 마리온은 절벽 위에서 그만 돌아올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버린다.. 

" 기록에 의하면 마리온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죽었다고 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지구상 동물중 최고령인 200세였다. 120년 동안 무려 33번의 탈출을 시도했던 마리온은 결국 1918년, 120년 간의 고독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고에 의한 죽음이었는지 혹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지막 나래이션이 자막으로 올라가면서 다큐멘타리, 는 끝이 나는데, 보고나서의 기분이 어찌나 먹먹한지. 예약주문을 해야만 했고, 주문하고도 몇주를 기다려야했던 이유가 있긴 있구나 싶기도 하였고, 이런 것에 감동을 아무리 먹어도, 딱히 나로선 '할 수 있는 일' 이 없는데, 어쩌라고, 싶은 마음도 울컥 들기도 하는, 하여튼, '한반도의 공룡' 에 이어 괜히 또한번 눈물을 찔끔거리게 하는 다큐. 지구상에 있었던 5차례의 대량 멸종 - 운석의 충돌,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그리고 천재지변 등- 에 이은 또 하나의 멸종이 바로 이 다큐멘타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종' 에 의한 '종'의 멸종, 이다. 인류의 발견이 동물에겐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고,, 허나, 이를 '경고'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싶은.. 답이 없다라는 생각.. (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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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보 두다멜 - 프로미스 오브 뮤직 - 한글자막 포함
Gustavo Dudamel / DG (도이치 그라모폰)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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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구스타보 두다멜, 에 대하여 들은 것은, 지난 봄에 런던필을 이끌고 왔던 내 나름대로의 표현을 쓰자면 '막장싸가지' 블라드미르 유롭스키, 에 대한 탐색 중에서였다. 유롭스키를 비롯한 '너무나' 젊은 지휘자, 의 명단 중에, 75년 생 다니엘 하딩과 더불어 무려 81년 생,구스타보 두다멜, 이 있었고, 2009-2010 시즌 LA 필을 맡게 됬다는 설명과는 어울리지 않게 참으로 장난끼가 가득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어리다고 하기에는 참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할까. 그가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유스오케스트라' 의 지휘자였다는 사실, 아니 그것보다 그가, 그 유명한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왜 그런 얼굴을 갖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것은 기적이다, 그들이 온다.." 와 같이 엄청스런 카피를 물고, 다다음주 진짜 구스타보 두다멜과 그의 '시몬 볼리바르 유스오케스트라' 가 예술의 전당에 온다. 2007년 이던가, 2004년이던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영국 BBC 프롬스에서의 연주가 참 많이 유투브에 올라와있는 덕에 본 것은 있는지라, 그 유명한 '맘보'를, 그 유명한 베네수엘라 국기가 그려진 점퍼를 입고, 노다메칸타빌레, 가 먼저인지 이들이 먼저였는지 잘 모르겠는, 첼로 돌리기, 바이올린 쳐들기 등등의 퍼포먼스가 우리나라의 예술의 전당, 에서 펼쳐질 것이다. 유투브로 보았을 때, 왜 그들이  잠시 '암전' 을 하는 참 드문 짓을 하면서까지, 자기나라 국기가 그려진 그 퍼런 점퍼로 갈아 입고 앙콜연주를 하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바로 이 'The Promise Of Music' 을 보고나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1975년,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이며 문화부 장관을 지낸 사회 운동가,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한,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Abreu) 박사가  폭력과 마약, 빈곤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총 대신 악기를 쥐어주자는 '엘 시스테마(El Sistema)' 운동을 주창했고 이 '엘 시스테마'가 3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베네수엘라에는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이백여개가 넘으며, 그 중 정예멤버들만을 뽑아 만든 오케스트라가 바로 시몬 볼리바르 유스오케스트라. 이들 멤버중에서 베를린필 연주자로 뽑혀간 사람도 있고,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도 제각각 활동을 하고 있으며, 두다멜 역시 이곳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다 지휘의 세계에 눈을 뜬 경우.. 최근 음악계에서는 그래서 이렇게들 말하곤 한다고 한다. "앞으로 미래의 세계적 음악가는 모두 베네수엘라에서 나온다 ", 세계최고의 미인 배출국에 이어 베네수엘라는 이제 세계적 음악가들을 탄생시키는 요람이 된 것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DVD는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있기까지의 '엘시스테마'의 소개와 엘 시스테마 산하의 어린이 오케스트라,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소개할뿐만 아니라, 정말 그곳에서 악기를 처음 쥐고 배우는 학생들의 열악한 삶의 환경, 처지도 숨김없이 보여주는 가운데, 악기가, 음악이, 무엇보다 국가가 어떻게 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루 먹을 것이 없던 처지의 아이들에게 악기가 왠말이냐 싶기도 했지만, 국가가, 정부가 든든하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탓에, 괜한 상처라든지, 헛바람 같은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정말이지 저런 세상도 있나 싶은,, 천국의 아이들을 만나고 온 듯한 기분.. 뛰어난 실력으로 세계로 활동영역을 넓혀간 시몬 볼리바르 유스오케스트라 출신 단원들은, 그야말로 이제 '먹고살만한' 처지가 되었지만, 틈만 나면 베네수엘라로 달려와 십년전, 오년전의 자기, 였던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한다. "내가 없으면 아이들을 누가 가르치나 걱정도 되구요,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는게 당연한거라고 보니까요.."

2007년 독일 본에서 열린 베토벤 페스티벌에서의 연주 실황을 담고 있는데, 연주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타면서 '첫비행기' 라 설레이는 모습, 시차 극복하려고 밤새미네이터 하는 모습.. 공항 로비에서 두다멜과 우리식으로 따지면 '족구' 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어느새 공연장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연주자의 모습이 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주곡은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연주가 끝나고, 엘시스테마의 창시자인 아브레우 박사가, 휘청거릴만큼 이제 노년의 할아버지가 된 그가, 손자뻘 되는 연주자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며 흐뭇하게 짓는 웃음은... 정말이지 눈물도 찔끔..베네수엘라 만세네.. 가 저절로 튀어나올뻔도 했다는. 우리나라에도 부산 소년의 집 교향악단이, 정명훈 선생 아들인 정민, 군에 의해서 근근히,이어져가고 있지만, 어째 매번의 연주가 '기금모금' 연주인지.. 우리나라가 '부의 배분' 을 조금만 더 현명하게 할 줄 알았으면 싶은 생각이 들더라만,, KBS 교향악단이 오년도 넘게 같은 단복을 입고, 심지어 월급도 안나와서 단원들이 떠나는 바람에 말러 같은 건 꿈도 못꾸고 프로그램 변경을 습관처럼 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 참 어렵다는 생각..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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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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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기도 했고, 이런저런 준비로, '읽었음을 알려야 하는' 책, 이 유난히 몰리는 때인지라, 더 팍, 꽂힌 책이다. 해보지 않고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것, 에 대해서, 그것도 단지 '짐작' 이나 '추측' 수준이 아닌, '안해봐도 다 안다' 식에 질색인 면이 다소 있는 나로서는, 참 무례하기 짝이 없는 작가의 작명, 이었다 싶지만, 한편으론 마치 무슨 비법을 혼자만 알수 있게라도 되는 양, 대출부터 은밀히 서둘렀다는 것. 작가는 사람들이 '비독서'에 가지고 있는 일종의 죄의식의 근거로, 이 사회에 존재하는 독서의 의무, 정독의 의무 그리고, 책들에 관한 담론과의 관계,를 언급한다. 수긍이 절대적으로 가는 대목이다. 더불어 비독서를 권장하는 텍스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서 비독서의 경험을 전달하는 일이 요구할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용기' 를 발휘한 작가에 대한 자찬도 은근히 봐주고 넘어갈만 하다.

무엇보다도, 읽는이들을 위해 그가 작성해서 따로 올린 4가지의 약호가 압권이다. 이 책에 언급된 모든 책들에 적용되어 각주처럼 달려있는 그것은, UB(Unknown Book), SB(Skimmed Book), HB(Heard Book), FB(Forgotten Book) 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 약호는 이 책의 1부에서 정의한 '비독서의 방식들' 인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경우, 책을 대충 흟어보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 각각에 해당되기도 한다. 판단하건데, 작가가 이 책을 쓰면서 인용한 여러권의 책들 대개가, 철저하게 비독서의 방식에 따라 이루어진 책읽기였다. 비독서의 방식으로 접한 책들을 사례로, 비독서를 설명하는 재치, 자신 스스로가 비독서의 방식 추종자임을 절대로 숨기지 않는 그 면모가 한박자 늦은 '박장대소'를 일으키게 할만큼 너무나 유쾌하더라는. 

무질, 의 소설 '특성없는 남자'에 등장하는 도서관 사서처럼, 책을 읽지 않는 아주 극단적인 방식인 '전혀 읽지 않는 경우', 어떤 책을 읽는 것보다는, 소장되어 있는 책들의 리스트만을 숙지함으로써, 책의 개별성을 넘어 그 책이 다른 책들과 맺는 관계들에 관심을 갖는 즉,  책들 전체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갖는 것의 중요함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고, 저명한 문학비평가인 폴 발레리, 의 경우, 그런 총체적 시각 외에 작품에게 저자란 그저 지나쳐가는 하나의 장소에 불과하다는 작품과 저자의 '분리'와 저자제거에 만족하지 않고 텍스트에서도 벗어날 것을 주장하면서 '책을 대충 흟어보는 경우' 를 몸소 실천했다고 전하고 있다. 폴 발레리, 란 사람은 흟어본 중에선 최고, 이지 싶게 무려 프루스트,와 베르그송, 에 대해서 '주옥'과 같은 평론들을 남겼으니, 이쯤하면, 그동안 나는 책을 헛읽었던가, 생각에까지 미칠 수밖에.

세번째의 경우, 어떤 책에 대해 누군가가 한 이야기를 듣거나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공감할만한, '다른 사람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 에 대한 이야기로서, 이 경우 책이 파생시키는 다양한 담론, 에서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효능이 있음이 입증되고 있고, 마지막으로,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는 우리가 읽었지만 잊어버린 책,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책을 과연 읽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하여, 누구나 책이란 것은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실은 망각에 빠지게 되는 '비독서자'로 가는 과정을 겪고 있으며, 이는 궁극의 '탈독서'에 이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는 시작임을 조심스레 선포하는 가운데 '어제 일도 나는 몰라', 망각이 날로 심해가는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참으로 황송스런 다독임도 주고 있는 것 같다.

이후 이어지는 2부에서는 사교생활, 선생님 앞, 작가 앞. 사랑하는 사람 앞, 과 같은 있을법한 담론발생의 상황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마지막 장인 3부에서는 부끄러워하지 말 것,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책을 꾸며낼 것, 자기 얘기를 할 것, 과 같은 그에 대한 대처요령, 그러니까 일종의 팁, 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못알아먹을까바' 조곤조곤 서술되어 있다. 작가가 '비독서' 에 대해서 대담하게 적어내려간 것을 귓등으로 들은양, 이 책을 그야말로 '정독'하자고 하니, 뭔가를 '거역'하는 것만 같아, 주어진 비독서의 방식 4가지 중, 가장 실현가능한 '대충 흟어보는' 비독서 방식을 차용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나의 경우는 궁극의 '탈독서'의 경지까지 오르지 못하고, 매번 읽는 책마다 메모를 달아놓았다던 몽테뉴, 처럼, '책의 내용을 잊어버리는 경우'만큼은 끝내 용납이 안되는 사람인 듯 이렇게 정리하고 기록하고 있다. 안하던 짓을 새삼 하기보다, '하던 대로 하고 사는' 것이 훨 수월하다는 것을 어쩔수없이 알게되버린 나이, 에 접어든게 맞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의 후유증 하나를 들자면, 읽고 있는 여러 논문은 물론 간간히 접하는 신간서평 등에, 물증은 없지만 심증 백프로인, '비독서 방식' 추종혐의 의혹이 자꾸 보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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