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화장실 - The Pope's Toile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루과이와 브라질의 국경지대인 작은 마을 '멜로'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간만에 '지대로' 남미영화인, 우루과이 영화이다. 국경지대에서 밀수한 물품을 동네 식료품 가게에 공급해주는 것으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나가던 이 마을 주민들에게, 교황의 방문은 그야말로 '대박'의 기회가 열린 셈. tv와 라디오에선 연일 5만이 될지 10만이 될지 모를 신도들과 관광객 인파들을 예상하여 떠들어대고 있으며, 이날 하루 '인생역전'의 기회를 노려 일일장터, 를 궁리하는 이 순진무구한 시골 사람들은 그야말로 '과부딸라빚'을 내가며 고기를 사고, 소시지를 사면서 먹거리 장터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의 아빠, '비토'는 독자적인 아이템을 떠올리고 생각만으로도 의기양양해진다. 이름하여 '유료화장실'.  

그 품격있는 분들이 우리처럼 길에다가, 그럴리가 없지. 확신은 더해만가는데, 문제는 과연 ' 변기'라는 그 럭셔리한 물건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라는 것. 이번 한껀만 성공하면, 더 많은 식료품들을 실어나를 수 있는 자신의 모터사이클과 와이프의 소원인 '세탁용 녹말풀' 그리고 밀린 전기세를 해결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남몰래 라디오를 들으며 방송기자의 꿈을 키우는 딸이, 시내로 나가 공부를 할 수 있게도 되는데, 그넘의 변기를 구해오는 일, 정확히 말해 변기값을 구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 전전긍긍. 어쩔수없이 비토는 가족들이 환멸해마지않는, 야비한 국경 기동순찰대와 야합, 그들의 밀수를 대행해주면서, 변기값을 벌게 되는데.  

언론은 연일 이 마을에 '기적'이 일어날 것처럼 떠벌리고, 드디어 교황이 오시는 날, 작은 마을 '멜로'엔 전운마져 감돈다. 그러나 비토는, 변기값을 내주기로 한 국경수비대, 가 전날 밤 배신을 때려버리고, 가족마져 그가 야합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빠를 등지는 난국에 처해, 허겁지겁 일단 국경지대로 변기를 가지러 떠나고. 그가 변기를 가지러 간 사이, 몇날며칠이고 머물면서 흥청망청 지내줄 것 같던 교황방문단은, 2시간도 안되는 행사를 마치고, 말끔하게 사라져버리시고 말았다는. 5월 8일 방문이셨는데, 크리스마스까지 온마을이 다 먹고도 남을 소시지,는 어쩔 것이며, 과일튀김은 이미 새들의 먹이가 되고 있고, 몇날며칠을 반죽해만든 빵, 은 온집안에 쓰레기처럼 굴러다니게 된 판국.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허탈함과 처연함이 줄줄 흐르는 장터의 비참한 파장.. 이날 교황연설회의 참석인원은 8천여명. 그 중 90프로가 멜로, 의 주민들. 참석한 브라질 '내빈' 분들은 4백여명, 다시 그 중 3백여명은 교황이 움직이면 즉시 함께 이동해야하는, 저널리스트. 장터에 눈길한번 줄 여유없이 그들은 그렇게 떠나갔던 것이다. 언론에서 떠들었던 몇만의 관광객을 실어나를 버스들의 행렬 따위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다. 낙후된 후진국을 방문하는 교황의 일정이 매스컴에 의해 지독하게 선동되었던 것일 뿐, 로또당첨과 같은 대박, 은 허상이었던 것. '교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떠나셨습니다' 라는 앵커의 보도에 격분한 비토가, tv를 향해 맥주병을 날렸던 것, 그렇게나 방송기자가 꿈이었던 딸 실비아, 가 끼고 살았던 오래된 구형 라디오를 '버리게' 되는 일련의 행위는 언론의 명확한 '범죄'에 그들이 분노하고 있음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먹거리 장터를 준비했던 이웃보다 비토, 의 경우는 나름 양호하여, 팔자에 없이 그 마을에서 '변기'를 둔 유일한 집이 되었고, 두번 다시 야비한 기동순찰대원과 야합하지 않기 위해, 자전거마져 빼앗겨버린 아버지, 이제는 터벅터벅 걸어서 식료품을 구하러 국경을 향해 걸어가는데, 라디오를 내다버린 실비아, 가 말없이 아버지의 뒤를 따른다. 아버지랑 같이 이 일을 하자고 꼬드길 때도 방송기자 할꺼라며 까딱안하던 딸이, 비로소 아버지를 따라 함께 걸으며 일을 떠나는 것.

부녀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자막은 '그 후로 교황은 두번다시 그곳을 방문하지 않았다' 였다. 가족을 위해서 자전거를 빼앗긴 채, 변기를 어깨에 둘러메고 이미 휑해진 교황연설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이 가슴을 많이 울렸고, 우둔하다고 해야할지 순박하다고 해야할지 모를, 멜로,의 주민들이 겪은 이 해프닝과 같은 일이 '실화'라는 사실이 참 안쓰러웠다는. 그러나 덧붙이자면, 정말 하늘과 땅이 늘 맞닿아있는 남미의 광활한 풍경은 그렇게 '당하고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스스로 행복을 만들려는 멜로, 의 주민들에게 내리는 신의 조용한 축복과도 같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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