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죽이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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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이디푸스는 운명의 장난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합니다. 후에 그 사실을 알고 제 눈을 뽑고 장님이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납니다.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비극과 자신의 패륜으로 인해 테베에 내렸던 재앙의 원망을 안고서 괴로워하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여기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이 생겨났는데요. 아들은 아버지를 질투하고 자신이 어머니의 짝이 되길 원한다는 것인데, 실제로도 그러한 기간이 있는지 어떤지는 제가 아들인 적도 없고, 아들을 키워 본 적도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들을 때마다 오이디푸스가 억울해 할 것 같습니다. 신의 예언 때문에 아버지에 의해 내쳐졌고, 자라서는 아버지인 줄 모르고 죽게 했으며, 스핑크스를 퇴치한 공으로 부재중인 왕의 자리에 앉아달라는 국민들의 바람을 들어 왕이 되었으며, 그러니 당연히 왕비가 자신의 것이 되었을 뿐 어머니일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그런데 나라에 재앙이 생기자 그것이 오이디푸스의 패륜 때문이라는 신탁을 내리다니. 애초에 '신' 네가 벌인 일이잖아.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질투한 적도 없고, 어머니를 성적으로 원한 적 없습니다. 죽인 사람이 아버지였고, 결혼했는데 어머니였을 뿐. 알았더라면 그랬을 남자는 아니었습니다. 알고도 그랬다면 부모를 못 알아봤다며 자기 손으로 눈을 뽑았을까요. 세상에 어떻게 알아봅니까.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한 것을.

<아버지 죽이기>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니 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오이디푸스를 위해 잠시 변호를 해 봤는데요. 이 책의 주인공 '조'와 오이디푸스는 다르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었던 거예요. 조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릅니다. 엄마의 수많은 남자들 중 하나일 텐데, 엄마조차 그의 아버지가 누군지 잘 몰라 합니다. 안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겠죠. 조는 아버지가 필요했습니다. 엄마의 남자 중 하나가 아버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는데. 엄마에게 동거남이 생겨 그를 아버지로 여기고 싶었으나, 그는 조가 독학으로 익힌 마술 기술을 비웃고 비난합니다. 말대꾸를 하는 조의 따귀를 날린 엄마는 집에서 나가서 살라며 내쫓습니다. 한 달에 천 달러는 주겠다고 하는군요. 겨우 열다섯인 조는 바에서 카드 마술을 하다가 한 남자를 만납니다. 그는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으라고 하고 조는 노먼이라는 마술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생활하며 마술을 배우지요. 이제야 겨우 제대로 된 가족이라는 걸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자 아버지 역할을 해주는 노먼과 다정하고 아름다운 그의 아내 곁에서 제자이자 아들로서 생활하던 조는 노먼의 아내 크리스티나를 사랑하고 마침내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 애는 당신을 굉장히 좋아해요! 」
「그래. 열다섯 살 먹은 아이가 아버지를 좋아하듯 나를 굉장히 좋아하지. 그래서 나를 죽이고 싶어 해.」
「그러는 당신은, 당신은 그 애를 아들처럼 여겨요?」
「그런 점도 있어. 나는 조에게 무척이나 감탄하고, 애정도 갖고 있어. 집을 떠나 있으면 그 애가 보고 싶어. 하지만 막상 집에 돌아오면 그 애 때문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나.」
「당신, 그 애를 겁내는군요.」
「아니야. 그 애가 걱정돼서 겁이 나는 거야.」
「그렇다면 그 애는 당신 아들이에요.」

-p. 42-43

그 뒤로 조는 사사건건 노먼과 대립합니다. 사실 좀 울컥했어요. 이 녀석이 정말 말 그대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현하고 있잖아요. 어이없을 정도로 뻔뻔합니다. 사춘기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이 가족 내에서 알파 수컷이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요. 단 한가지 무척 대단한 점은 있습니다. 내면의 비뚤어짐은 둘째 치고라도, 무언가를 해내야겠다고 생각하면 끈질기게 노력해서 반드시 해낸다는 건데요. 시간이 아무리 들어도 꼭 해내고 맙니다. 머리도 좋고요. 그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 건 아니라서 아쉽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조의 행동에 황당했습니다. 멋진 척, 의연한 척, 조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노먼이 안쓰러웠습니다. 아니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으며 어떻게 저럴까요. 마지막의 반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소름 끼쳤어요. 지금까지 조의 행동이 그런 거였다니! 

아멜리 노통브의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도 파격적이었는데 후속작들도 인상적입니다. <아버지 죽이기>는 제목부터가 자극적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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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 아르테 미스터리 10
오리가미 교야 지음, 서혜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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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방울이라는 강아지를 키웠습니다. 엄마가 퇴근길에 구조해 온 아이였는데요.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 걸 보고 엄마가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강아지를 아꼈고, 방울이도 저를 무척 따랐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정말 방울 같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지독한 독감에 걸렸습니다. 너무 아파서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열이 펄펄 끓었었죠. 이모의 남자친구가 놀러 와서 그런 저랑 남동생이랑 방울이랑 함께 있는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사진들을 찍었었죠. 그리고 다음날, 갑자기 감기가 싹 나은 거예요. 몸이 무척 가벼웠어요. 일어나자마자 방울이를 찾았는데, 방울이는 부엌 문 뒤쪽에서 피와 이상한 것들을 토하고 죽어있었습니다. 놀라 울면서 외할머니를 불렀어요. 나는 가뿐해졌는데, 어제까지 멀쩡했던 방울이가 갑자기 죽어버리다니. 게다가 며칠 후 현상된 사진을 가지고 이모의 남자친구가 다시 놀러 왔는데요. 방울이와 함께 찍은 사진만은 현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일만으로도 기이하다고 여기며 살았는데, 15년쯤 흘러 엄마와 이모들께 방울이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외할머니 조차도요. 남동생과 저만 기억하고 있었어요. 잠깐 있다가 간 것도 아니고 그래도 몇 달은 같이 살았는데, 어째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걸까요? 시간이 지난다고 잊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닌데... 누군가가 방울이의 기억을 먹어버린 걸까요? 당시에 혹시 방울이가 나 대신 죽은 건 아닐까 하고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에 저만은 또렷이 기억하는 걸까요? <기억술사>의 작가 오리가미 교야도 혹시 저와 비슷한 기억이 있는 걸까요?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준다는 도시 전설 '기억술사'라는 걸 탄생시켰으니 말이에요.

<기억술사>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개인의 기억의 일부만을 지워버립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아무 기억이나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의뢰받은 일을 신중하게 지웁니다. 그를 도시전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기억이 지워진 사람은 자신이 기억술사를 만났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기에 누구의 누가 그러는데... 하는 형태로 전해질뿐이라 기억술사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주인공 '료'는 어릴 적 소꿉동무이자 여동생처럼 여기는 마키에게서 기억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도시전설 기억술사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게다가 반복되는 이상한 꿈. 대학생이 되어 마음을 주었던 선배도, 우연히 알게 된 변호사의 지인도 기억이 사라져버리자 기억술사에 대한 집착은 더욱 심해지는데요. 그를 꼭 만나서 자신의 기억을 지우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지워진 기억에 포함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상실감이 생기기에 상처가 되지요.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좋아한다고 했던 여자가 오늘은 나를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합니다. 슬프지 않나요. 

기억을 지우길 원했던 사람은 어쩜 저렇게 이기적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아픈 것과 즐거운 것들이 층층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이니, 모든 건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소설에 등장해 기억을 지우기 원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상대방을 위해서 기억을 지웠으니 그건 안타깝고 슬픈 사랑이라고 해야 좋을지,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정말이지 울컥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소설의 첫인상은 일본의 정적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는데요. 나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푹 빠져 읽게 됩니다. 2,3권도 챙겨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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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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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좀머 씨 이야기>로 유명한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집입니다. 무척 얇은 책인데요. 세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수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아직 <향수>조차 읽지 않아서, 이번이 쥐스킨트와의 첫 만남입니다. 집에 얌전히 꽂혀 있는 향수는 언제쯤 꺼내 읽을까요.

단편집의 맨 처음 수록되어 있는 <깊이에의 강요>는 작품에 '깊이가 없다'라는 비평가의 말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진 데다가 예민해진 한 화가가 비극적인 결말을 선택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정말 어이가 없는 건, 그녀가 죽은 후 '깊이가 없다'라고 했던 평론가가 한 이야기입니다. 깊이가 없다는 말 때문에 자신에게 없는 깊이가 무언인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그녀의 인생이 죽음으로 끝났으니 깊이가 생긴 거라면, 그런 깊이는 필요 없어요. 그녀도 비평가의 말에 너무 귀를 기울였죠. 자존감을 가졌어야 했는데요. 저 사람은 내 그림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며 정신 승리를 했더라면, 비극은 없었을 텐데 하는 마음에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그런 일들이 참 많아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드러내는 방법은 - 온 오프라인을 통해 참 많죠. 사람들이 몰려와 칭찬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비평도 있겠지만, 그냥 심심해서 몰려오는 악플러들도 있어요. 알아서 걸러내야 합니다. 비난과 비평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 비평가라는 이름으로 근거 없는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수용할 것과 버릴 것을 알아서 구분하고 챙겨야겠죠. 

간혹 출판사나 작가가, 블로거가 쓴 리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찾아와 이런저런 덧글을 달거나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있는 걸로 압니다. - 저는 아직 그런 일이 없었지만요, 그리고 없길 바랍니다. - 너무나 파괴적이고, 편파적이고, 모독적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수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당신의 엄마가 아니니까 오구오구 할 수는 없잖아요. 기분이 나쁠 겁니다. 하지만 정신 승리하면 되잖아요. 고든 램지의 키친 나이트 메어에선 지나친 정신 승리로 제정신이 아닌 식당 주인이 많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적정한 선에서 수용과 거부를 잘 조절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노력해야겠죠. 

나머지 작품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은 긴장감 있는 단편이었습니다. <승부>에선 사람들의 짐작과 실제의 마음이 전혀 다르다는 걸 긴장감 있게, 위트 있게 보여주는데요. 그렇죠. 어떻게 알겠어요.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라고 확대해석해도 좋을는지. <장인 뮈사르의 유언>은, 그래요. 우리는 조개였어요. 맞아요. <...... 그리고 하나의 고찰>과 더불어 공감 가고 납득되었어요. 특이한 시선이더군요. 그런 거 무척 좋아해요. 맞아요. 우리는 어쩌면 조개인지도 몰라요.

책은 무척 얇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요.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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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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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에게 맞는 여자를 본 적이 있었고, 때리는 남편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단수로 표현했지만, 그 단수들은 모여 복수를 만들고, 그 복수는 또다시 커다란 하나의 단수를 만듭니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단수를 말이에요.

맞는다는 물리적 폭력도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어느 정도는 폭력이 아니라고 여기고, 언어적, 정신적 폭력은 아예 폭력의 범주에 넣지 않는 모양입니다. 어쩌다 뺨 한 대 맞은 거 가지고 폭력을 당했다고 말하지 않거든요.(어쩌다는 괜찮은 겁니까?) 게다가 여자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한 경우, 맞을만했다고 여기고 서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해서 살아가는 사이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건 살다가 지겨워져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놀랍게도 결혼 후 3개월 이내에 첫 번째 폭력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는데요. 어디다 하소연해도 이만한 일로 흥분하는 거 아니라며 여자 보고 참으라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아주 친밀한 폭력>은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의 개정판인데요. 처음 그 책이 출판된 지 11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상황이 좀 나아졌을까요? 아뇨.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11년 전이라고 하니 갑자기 가슴이 아프네요. 저는 당시, 가정 폭력의 피해를 입고 긴급 피난한 분들과 함께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연도 정말 다양하더군요. 주먹세례부터 성적인 모멸감까지 고통의 종류도 다양했습니다만, 깊은 상처를 갖게 되었다는 것만큼은 공통적이었어요. 가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길게 하지는 않지만 눈빛에서 느껴지는 우울감과 불안감만큼은 서로가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요. 그것은 상담으로도 치유되지 않습니다. 단지 그 피난처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생각하고 안정을 취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죠. 그리고 몇 달 뒤 각자의 길로 떠납니다. 독립하는 경우도 있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원에 실려가야 할 정도로 맞고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것도 일종의 학습된 무기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들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전자레인지를 사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말을 예쁘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술 먹고 들어왔는데 귀찮아했다는 이유로, 성관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김을 밀폐 용기에 넣어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력 후 며칠이 지나 미안한 마음에 화해를 시도했지만, 거부했다는 이유로, 된장찌개가 먹고 싶었는데 오므라이스를 했다는 이유로. 그냥 비위 맞춰주면 맞을 일도 없을 텐데 왜 매를 버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핑계일 뿐이에요. 맞을 만한 짓은 도처에 널려있고, 이번에 잘 넘어가더라도 다음에는 맞을 일로 치부될 수 있으니 장단을 맞출 수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폭력의 모습들도 너무나 다양했는데, <아주 친밀한 폭력>을 통해 바라본 아내 폭력의 세계는 끔찍하고 슬펐습니다. 그리고 화가 났습니다. 머리말부터 슬프면 어쩌자는 건가요. 여자를 때리는 놈은 쓰레기라는 인식이 생겨서 이젠 때리는 남자가 줄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때리지는 않고 목을 조르거나 벌을 세우더군요. 그건 때리지 않았으니 폭력이 아니라고요. 무슨 소리입니까. 본인이 당해보세요. 폭력인가 아닌가.

부부간의 지독한 폭력의 희생자는 주로 아내이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니 아이 때문에 참고 산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주세요. 아이는 자라면서 때리는 아빠가 아니라 맞는 엄마를 원망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엄마가 좀 조심하면 집안이 조용할 텐데 왜 풍파를 일으킬까 하면서 말이에요. 왜 그런 생각을 할까요? 무섭기 때문입니다. 아빠를 원망하기엔 너무 크고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력한 엄마를 원망하는 거죠. 물론 엄마를 안타깝게 여기고 아빠에게 분노를 키우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정상일까요? 

<아주 친밀한 폭력>은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사이좋게 잘 살아가는 부부도,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부부도. 가부장적이라고 말하며 그냥 넘어가버리는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과연 옳은 것인가도 생각해보고, 가정폭력이 은폐되거나 부부 사이의 일로 여기며 더 큰 사단을 만드는 이 사회의 흐름이 옳은 것인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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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잠든 숲 1 스토리콜렉터 5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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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미스터리가 함께하는 본격 막장 드라마 같습니다. 그리 넓지도 않은 지역에서 어쩌면 이다지도 흉악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걸까요. 이러다 마을 주민 중에서 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한 다리 건너 한 명 꼴이라도요. 전작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책이 바로 그 느낌 그대로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을 줄은 전혀 상상 못했거든요. 게다가 주인공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의 지인들 마저도 이럴 수가. 코난의 지인은 안전해도 김전일의 지인은 미유키를 빼고는 안전하지 못한 것처럼 그들 역시 안전에서 멀어져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동창이나 그들의 부모, 신부님까지,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용의 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보덴슈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힘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뭐하나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이런 괴로운 상황이라니, 이제 곧 안식년을 가지려 하는 그에게 시련도 이런 시련이 없습니다. 너무 안됐지 뭐예요. 작가를 좀 원망했지만, 사건이 해결된 후엔 오래 묵었던 가슴의 응어리를 털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쉴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40년 전 절친 아르투어와 사랑하는 여우 막시가 함께 실종되고 결국 친구가 살해된 것으로 결론지어졌으나 시신도 못 찾았던 사건으로 인해 상실감과 더불어 TV를 보느라 집에 바래다 주지 않아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죄책감에 그 뒤로도 누구에게도 완전히 마음을 열 수 없었습니다. 막시와 아르투어를 동시에 잃은 경험은 또다시 사랑하는 것을 잃을까봐 염려하는 두려움을 만들었던 것이죠. 당시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레오는 자살 실패로 지능이 모자라고 거동이 불편해 완전한 사건 조사가 불가능했고, 현재는 시청에서 잡일을 하고 있으나 지난 40여 년간 아동 성애자에 살인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점점 그 일은 잊힌 듯했지만, 보덴슈타인도, 한때 어울렸던 패거리들도 그 일을 잊고, 아니 잊으려 애쓰며 살아갔습니다. 모든 비밀은 비밀로 한 채 이렇게 죽을 때까지 시간이 지나갔더라면 모두가 편했을지도 모르겠지만 - 마음에 남은 암과 같은 덩어리는 어떨지 몰라도 - 갑자기 벌어진 캠핑장 화재 사건으로ㅡ 클레멘스가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줄줄이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회고록을 쓴다던 클레멘스, 암 때문에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그의 엄마 로지, 심지어 신부님까지 어떤 연유로 살해되었고, 과거의 사건과는 어떤 연관이 있었을까요.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 아르투어가 단 하루 저녁에 겪어야 했던 모진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상상하니 어린아이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보덴슈타인은 어땠을까요. 아르투어와 막시의 유골을 발견한 날에도 무척 가슴이 아팠는데.
 사건의 해결 후 휴직을 하는 보덴슈타인, 그 뒤를 이어 반장이 된 피아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여우가 잠든 숲>은 예전의 시리즈보다 훨씬, 아주 훨씬 분위기가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등장인물이 여전히 무지 많긴 한데, 예전보다는 덜 산만합니다. 초기작은 산만함이 좀 있었던 데다가 잠시 지나가는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영혼을 주입하는 바람에 그렇잖아도 익숙하지 않은 독일의 지명과 인명 때문에 힘들어하는 저를 더 힘들게 했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곁가지가 줄어들고 캐릭터 설정도 뚜렷해서 좋았습니다. 게다가 출판사에서 친절하게 권두에 타우누스 지도와 더불어 등장인물을 정리해주어서 무척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미미 여사의 에도 시리즈와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가 등장인물 헷갈리기에 쌍벽을 이루거든요. 이번에도 한참 잘 읽다가 얘가 누구였지? 하는 건 여전했지만 괜찮았어요. 역시 이런 소설은 이름을 적어가며 읽거나 출판사에서 마련해준 등장인물 페이지를 이용해야 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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