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잠든 숲 1 스토리콜렉터 5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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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미스터리가 함께하는 본격 막장 드라마 같습니다. 그리 넓지도 않은 지역에서 어쩌면 이다지도 흉악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걸까요. 이러다 마을 주민 중에서 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한 다리 건너 한 명 꼴이라도요. 전작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책이 바로 그 느낌 그대로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을 줄은 전혀 상상 못했거든요. 게다가 주인공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의 지인들 마저도 이럴 수가. 코난의 지인은 안전해도 김전일의 지인은 미유키를 빼고는 안전하지 못한 것처럼 그들 역시 안전에서 멀어져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동창이나 그들의 부모, 신부님까지,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용의 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보덴슈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힘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뭐하나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이런 괴로운 상황이라니, 이제 곧 안식년을 가지려 하는 그에게 시련도 이런 시련이 없습니다. 너무 안됐지 뭐예요. 작가를 좀 원망했지만, 사건이 해결된 후엔 오래 묵었던 가슴의 응어리를 털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쉴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40년 전 절친 아르투어와 사랑하는 여우 막시가 함께 실종되고 결국 친구가 살해된 것으로 결론지어졌으나 시신도 못 찾았던 사건으로 인해 상실감과 더불어 TV를 보느라 집에 바래다 주지 않아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죄책감에 그 뒤로도 누구에게도 완전히 마음을 열 수 없었습니다. 막시와 아르투어를 동시에 잃은 경험은 또다시 사랑하는 것을 잃을까봐 염려하는 두려움을 만들었던 것이죠. 당시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레오는 자살 실패로 지능이 모자라고 거동이 불편해 완전한 사건 조사가 불가능했고, 현재는 시청에서 잡일을 하고 있으나 지난 40여 년간 아동 성애자에 살인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점점 그 일은 잊힌 듯했지만, 보덴슈타인도, 한때 어울렸던 패거리들도 그 일을 잊고, 아니 잊으려 애쓰며 살아갔습니다. 모든 비밀은 비밀로 한 채 이렇게 죽을 때까지 시간이 지나갔더라면 모두가 편했을지도 모르겠지만 - 마음에 남은 암과 같은 덩어리는 어떨지 몰라도 - 갑자기 벌어진 캠핑장 화재 사건으로ㅡ 클레멘스가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줄줄이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회고록을 쓴다던 클레멘스, 암 때문에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그의 엄마 로지, 심지어 신부님까지 어떤 연유로 살해되었고, 과거의 사건과는 어떤 연관이 있었을까요.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 아르투어가 단 하루 저녁에 겪어야 했던 모진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상상하니 어린아이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보덴슈타인은 어땠을까요. 아르투어와 막시의 유골을 발견한 날에도 무척 가슴이 아팠는데.
 사건의 해결 후 휴직을 하는 보덴슈타인, 그 뒤를 이어 반장이 된 피아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여우가 잠든 숲>은 예전의 시리즈보다 훨씬, 아주 훨씬 분위기가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등장인물이 여전히 무지 많긴 한데, 예전보다는 덜 산만합니다. 초기작은 산만함이 좀 있었던 데다가 잠시 지나가는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영혼을 주입하는 바람에 그렇잖아도 익숙하지 않은 독일의 지명과 인명 때문에 힘들어하는 저를 더 힘들게 했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곁가지가 줄어들고 캐릭터 설정도 뚜렷해서 좋았습니다. 게다가 출판사에서 친절하게 권두에 타우누스 지도와 더불어 등장인물을 정리해주어서 무척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미미 여사의 에도 시리즈와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가 등장인물 헷갈리기에 쌍벽을 이루거든요. 이번에도 한참 잘 읽다가 얘가 누구였지? 하는 건 여전했지만 괜찮았어요. 역시 이런 소설은 이름을 적어가며 읽거나 출판사에서 마련해준 등장인물 페이지를 이용해야 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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