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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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물 마니아입니다. 그렇지만 추리물에서 별로 내키지 않는 두 분야가 있는데요. 암호와 밀실이 그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여겨보았던 저자의 이름이 걸린 소설이라면 읽지 않을 수 없지요. 제가 즐기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방식이나 얼개를 보면 매료되고 마는 탓입니다.

기시 유스케의 <유리 망치>도 작가의 이름 때문에 읽었습니다.
<검은 집>이나 <악의 교전> 같은 인간 내면의 이그러짐으로 인한 공포를 끌어올리는 소설뿐만 아니라 정교한 밀실 트릭을 보여주는 본격 추리물의 대가이니 그냥 스치듯 지나 보내긴 힘들었습니다. <유리 망치>는 일전에 읽었던 <도깨비불의 집> 보다 전에 출판되었던 본격 미스터리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10여 년 전에 출간되었던 이력이 있지만 출판사와 판형을 달리해 재출판되었습니다. 그래서 리뷰도 별점도 없나 봅니다. 읽을만한 분들은 전에 다 읽으셨을 테니까요. 저는 이번이 첫 만남입니다. 사실 <도깨비불의 집>은 제가 생각했던 기시 유스케 풍이 아니라서 시큰둥 했었는데요. 내심 아오토 준코와 에노모토 케이에게 매력을 느꼈었는지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아니 그들의 첫 만남을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어딘가 허술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데다 자신의 목소리를 확실히 낼 수 있는 매력적인 변호사 아오토 준코와 방범용품 사장에 추리력 최고이지만 도둑의 전력이 있는 에노모토 케이의 조합은 세상의 모든 밀실의 미스터리를 풀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한 간병 회사 사장이 불가능해 보이는 밀실 - 사장실에서 낮잠을 자다가 살해당합니다. 휴일이었기에 회사 내에는 비서 세명, 전무, 부사장만이 출근했는데요. 사장실 입구에서는 세 명의 비서가 근무 중이었고 자리를 비운 것은 불과 초 단위였습니다. 적외선 센서까지 있는 감시 카메라, 방탄 유리창, 암호를 알아야만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까지 식상한 표현으로 개미 한 마리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에서 누군가에게 머리를 맞고 사망한 사장. 경찰은 사장실과 이어져 있는 집무실에서 낮잠을 잤던 히사나가 전무를 체포합니다. 그 외에 범행이 가능한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떻게 사장을 살해했는가는 밝히지 못하고, 전무는 내내 무죄를 호소합니다. 아오토 준코가 속해있는 로펌에서 이 사건을 맡고, 준코는 선배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방범 컨설턴트 케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에 서서히 접근해 가는데...

초반에 혹시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하고 콕 찍어 본 사람이 있었는데요. 역시 그 사람이 범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외엔 범행이 가능할 사람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도대체 왜? 어떻게? 하는 것이 내내 궁금해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은 두 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요, 첫 번째 장은 사건과 추리 과정의 장이고, 두 번째엔 주인공을 달리해 범인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의 사연은 안타깝습니다만, 그것이 남을 죽여도 좋을 정도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짝이는 것에 매료되었으면 그냥 그것만 가질 것이지. 

기시 유스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무척 다양한 분야의 것들을 취재하고 공부했겠다 여겨지는 부분들이 작품 전반에 쫙 깔려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트릭이나 추리가 정교했지만, 조금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지적 피로도라고 해야 좋을까요? 

결론. 이 책은 무척 흥미로운 밀실 미스터리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준코와 케이의 콤비 플레이를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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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병동 병동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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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선 그런 걸 본 적이 없지만 육지의 지하상가 공중 화장실이나 터미널 같은 곳에서 간혹, 장기를 산다는 스티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찜질방 화장실에서도요. 솔직히 살짝 혹한 적도 있는데, 본래 잘 붓는 체질인 저는 신장 같은 거 하나를 누군가와 나눠 봤자 저도 손해, 그도 손해라는 걸 10초 만에 깨닫고 포기했지요. <레드마켓:인체를 팝니다(스콧 카니)>라는 책을 보면 우리 몸의 다양한 부분들이 레드 마켓에서 거래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시세도 보통이 아닙니다. 심지어 세계 보건 기구 (WHO)에 따르면 전 세계 장기 이식의 약 10%가 불법 암시장에서 구한 것이라고 하니 암암리에 일어나는 것치고는 무척 큰 시장입니다. 납치나 유인 같은 무서운 방법으로 장기를 도둑맞는 일도 있지만 돈이 필요해서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경우도 있으니 결코 가벼이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겁니다. 인간에게 있는 장기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겁니다. 신장이 한 쌍인 이유도, 일반 체세포와는 달리 복수의 분열을 하는 세포로 되어 있는 간도. 그러니 함부로 거래되어서는 안됩니다. 선의의 도너에게서 자발적으로 제공되는 경우를 제외하고선 말입니다. 얼마 전 <장기농장(하하키기 호세이)>을 읽으며 장기 거래에 대해 다시 한번 묵직하게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역시 신중히 생각해야 하고, 윤리적으로는 어떤가에 대해 고민할 여지가 있었습니다. 거래는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법에도 저촉되는 일이죠. 아무래도 수요와 공급을 마주려면 줄기세포의 연구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치넨 미키토의 <가면 병동>은 앞서 말한 것처럼 무겁게, 심도 있게 접근하는 소설은 아닙니다. 장기 이식이나 밀거래라는 주제가 심겨있긴 하지만요. 작가가 현직 의사이기 때문에 병원의 모습은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용어를 잔뜩 써가며 현학의 티를 내거나 젠체하지 않습니다. 많은 지식 속에 간결한 표현이 뇌를 편하게 만들어줍니다. 의학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표현이 독자에게 신뢰를 주었습니다. 

당직 대타로 근무하게 된 하야미즈 슈고는 말도 안 되는 사건에 휘말려버렸습니다. 피에로 가면을 쓴 남자가 편의점을 털다 여자에게 총상을 입혔는데요. 이 친절한 강도는 그녀를 데리고 다코도로 병원에 침입, 모두를 위협하고 점거해버립니다. "당장 이 여자를 치료해!!" 같은 거였죠. 총을 쏘긴 했지만 살인범이 되긴 싫었다나 뭐라나. 감금된 사람은 환자 60여 명과 두 명의 간호사 사사키, 히가시노, 당직의 슈고와 뜻밖에 야근을 하던 다코도로 원장, 그리고 가벼운 총상을 입은 그 여자 미나미였습니다. 원장은 환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라며 저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피에로가 원하는 금품을 제공하는데요. 피에로는 새벽까지 이곳에 머물다 나가기로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드러나는 이상한 점들. 피에로는 돈만을 노린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다코도로가 걱정하는 건 환자들의 안위만이 아닌 것 같고요. 이 상황에 미나미와 슈고는 썸을 타고 있으니 젊은 청춘 남녀는 흔들 다리 위에서 사랑을 느낀다죠?
도대체 이 낡은 요양형 병원엔 무슨 비밀이 있길래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수상한 건지.
최신식의 수술실과 나란히 놓인 수술대의 장면에서 이미 장기 이식인가 보다!하고선 뭐야 좀 식상한 거 아니야?라는 의문을 품었지만, 이 소설의 묘미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와 메디컬 서스펜스의 만남이라는 것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겁지 않으면서 가독성 좋은 이 소설은 무더위 속에서 한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책이었습니다. 시원하고, 맛있고, 그리고 씁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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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라이언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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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작가 정신 출판사의 블로그에서 본 카드 뉴스 때문이었습니다. (http://blog.naver.com/jakkapub/221040360236)

강렬한 주홍빛과 검은색이 대비되는 이미지에 나열된 활자들은 뜨겁게 저를 유혹했습니다.

폐농장의 사일로에서 발견된 공중을 나는 듯한 아름다운 시신이라니!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범인은 그런 괴상하고도 고생스러운 방법으로 시신을 감추어 두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소설은 설화 같은 동화로 시작합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한 여자아이가 날아다니다가 발견한 행복한 마을. 그 마을 사람들은 걱정근심 없이 아주 행복합니다. 여자아이도 그 안에서 함께 행복했었죠. 뱀에게 자신을 바쳐야 하는 그날까지는요. 마을 사람들에게 속아서 뱀에게 먹힐 위기에 처한 소녀는 그들의 행복이 일 년에 한 번씩 한 사람을 뱀에게 바치는 것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자기를 먹지 말고 마을의 행복도 거둬가길 소원합니다. 다음날 수몰된 마을을 떠나는 소녀는 마치 민들레의 홀씨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자란 유메와 에미 쌍둥이 자매는 각기 다른 성격과 성향을 지녔지만 누구보다 사이가 좋습니다. 어린 시절 병약했던 유메는 학교에 다닐 수도 없었지만 언젠가는 하늘을 날겠다는 꿈을 키워왔습니다. 민들레가 피어있는 행복한 마을을 찾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그 꿈을 간직한 채 대학생이 됩니다. 몸이 약했던 그녀가 대학생이 된 것만도 기적인데요. 어릴 적 읽었던 동화 같은 민담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는지, 무척 열심입니다. 우연히 만난 남자의 손에 이끌려 동아리도 가입하고요. 동아리의 이름은 '민들레 모임' 게다가 그는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런 몹쓸 운명 같으니라고!  그로부터 5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실종되었고, 16년 후 폐 사일로에서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그런 식으로 하늘을 날려고 했던 건 아닐 텐데.


<데드맨>을 시작으로 <드래곤플라이>를 거쳐 <단델라이언>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감과 상상력, 그리고 추리력을 지녔지만 어딘가 좀 허술한 구석이 있는 가부라기와 그의 사단 중 단연 매력이 돋보이는 귀공자 히메노의 콤비 플레이는 여기서도 여전했습니다.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기묘한 화음은 사건을 해결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강장제 같은 것인데요. 멋지지만 형사 오타쿠인 바람에 약간의 개그 성향이 있는 히메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이 소설의 굵은 흐름 중 하나입니다. 

어린 시절 경비원인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와 셋이 살고 있던 영리한 아이 히메노는 연립주택에 이사해온 에미 누나와 친하게 지냅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비밀 기지나 다름없었던 '민들레 모임'의 -장래의- 유토피아인 농장으로 데리고 갑니다. 넓은 부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민들레는 어린 히메노의 마음에도 환하게 펼쳐지는데요. 바람이 불어 화아악 하고 꽃씨가 날리자 에미는 히메노에게 사실 자신은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살짝 이야기해 줍니다.  그래서 16년 뒤, 바로 그 장소에 서 있는 사일로에서 그녀의 시신을 보게 되자 히메노는 "에미 누나, 진짜였구나.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거......."라고 말하고 기절합니다.                               


탑 형 사일로 안에는 19세의 소녀, 에미가 마치 살아있을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통풍과 습기 유지가 잘 되는 사일로였기 때문이었는지, 그녀의 시신은 부패하지 않고 거의 원형 그대로였는데요. 시신에서 지문을 채취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명치 부근에 꿰어진 쇠 파이프는 두 개의 창구멍에 걸쳐져 있어서 마치 공중을 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요. 기이한 것은 사일로의 안쪽에도 빗장이 걸려 있었으며, 바깥쪽에는 맹꽁이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과연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간 것일까요. 정말로 날아서 천창을 통해 나간 걸까요? 하지만 천창마저 판자로 봉해져 있었는데요. 날아서 나가는 것도 불가능한 - 애초에 가능할리도 없지만 - 이 밀실의 트릭은 어떻게 된 걸까요.


시신이 발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의원의 비서가 고층 호텔의 옥상에서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바로 출동했지만 옥상에서 발견한 건 불에 탄 시신과 휴대전화뿐. 범인이 공중으로 날아서 사라진 게 아니라면 가능할 리가 없는. 그래요. 개방형 밀실 사건입니다. 

이 두 건의 밀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가부라기 팀이 움직이는데요. 과연 그들은 죽음의 비밀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까요?


이 소설 <단델라이언>은 <데드맨>시리즈의 마지막 권입니다. 가부라기와 히메노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 시리즈는 마치 괴담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오컬트적인 사건을 가부의 감과 히메노의 덕력, 사와다의 프로파일링을 통해 실제의 세상으로 끄집어 내어 결국엔 인간의 일이었다는 것을 밝혀내는 그 과정이 정말 매력적이거든요. <데드맨>도 그랬고 <드래곤플라이>도 그랬는데요. 사건의 이면에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슬픔을 극복하여 제대로 성장하고, 누군가는 그 괴로움에 묻혀서 악에 물들고 맙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걸 깨닫겠지만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또 다른 슬픔을 낳고 맙니다. 

전작들도 좋았지만 가장 정교하고, 가장 섬세했던 <단델라이언>이 가부라기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니 정말 정말,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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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 - 위험정보 독해력, 불량지식 해독력
최낙언 지음 / 예문당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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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척 오래전부터 식품이나 영양, 건강 같은 것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제 나이에서 10년을 빼면 남는 세월만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남들은 지금 제 나이 때부터 관심이 급증한다던데 저는 오히려 관심이 줄었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TV나 인터넷에서 떠드는 이야기엔 거의 귀를 닫았다고 해야 옳을 거예요. 책으로는 꾸준히 찾는 걸 보면요. 그렇게 귀를 닫고 있어도 아마씨가, 퀴노아가, 렌틸콩이, 병아리콩이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걸, 굳이 찾아가며 볼 필요가 없어요. TV나 인터넷에서 하는 이야기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멀리하는 것인데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정부 시책에 따라 떠들어대는 학자, 남들과 다른 견해를 과장되게 말함으로써 인기를 먹고사는 이른바 쇼 닥터 같은 이들이 꼴보기 싫은 것도 있지만, 어떤 식품이 좋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가격이 급상승하는 걸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현미 같은 경우, 지금은 가격이 많이 안정화되었지만, 백미는 몸을 망치고 현미가 좋다는 것이 이슈가 되자 현미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백미보다 도정 공정이 적은데 - 겨만 벗겨낸 것이 아닌가! - 도 말인데요. 가장 겉층에 있는 잔류 농약은 어쩔 셈인지. 유기농이 아닌 다음에야 농약 걱정을 안 할 수 없잖아요. 그렇다면 유기농은 괜찮을까요. 약을 쓰지 않고 기르는 데에는 오리나 다슬기 같은 친환경 방법이 사용되고 농부의 수고로움도 훨씬 클 테지만 식물 자체(벼)도 살아남기 위해 많은 피토케미컬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반드시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현미의 이로움을 주장한 학자조차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겁니다. 100% 안전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장이 약하면서 치아도 약한 사람은 현미밥이 잘 맞지 않습니다. 어차피 쌀에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다 채우지 못하므로 귀리나 보리 같은 다른 곡류를 섞어 밥을 짓는 것이 훨씬 맛도 좋고 영양 밸런스도 좋습니다.

예를 든다는 것이 무척 길어지고 말았네요. 하지만 저건 단적인 예일뿐입니다. 지구 상의 인구 중 많은 (70~90%) 사람들이 대부분 15종의 곡류와 5종의 육류만을 섭취(기타 채소, 어패류는 따로 두도록 하고) 하는데, 옥수수를 많이 먹거나 밥을 많이 먹는다고 큰일 나는 것처럼 떠드는 현대에선 먹거리에 대해 현명하게 식탁을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기 좋고 친환경 식자재가 많은 제주가 성인병, 비만율 전국 1위라는 건 상상과 현실에 괴리가 있다는  이야기 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보다도 영양이나 식품군에 관심이 있는 저조차 비만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식까지 비만이거든요.

식품 선택에 관심이 많은 나머지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무언가가 TV에 등장했다고 해서 찾아다니며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근조차 과량 섭취하면 간 기능에 과부하가 걸려 사망할 수 있는데 여타 다른 음식 - 게다가 약효가 있는 (혹은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죽하겠습니까. 적당히 지혜롭게 경제적인 면도 고려하며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옳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첨가물, 가공식품 없는 세상에서는 살기 글렀는데 TV나 인터넷의 정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줏대를 단단히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이라는 책을 읽어봅시다. 
이 책에는 식품에 관한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고 앞으로 흘러들어 올 것들에 대한 판별을 할 수 있도록 논리적인 문장으로 고정관념을 깨부숩니다.
하지만 주의합시다. 혹시 이 책 역시 한쪽으로 치우친 건 아닌가 의심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불안감을 전도하는 마케터나 쇼 닥터를 비난하면서 이 책 역시 '믿을 만한 정보가 없다는 불안감'을 전도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남들과 다른 이야기로 주목을 받으려 한다는 관점에서는 그들 - 마케터, 쇼 닥터, 일부 학자 -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식품 공학과 영양학, 의약학, 마케팅에 대해 두루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자가 그 모든 것들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 역시 문헌이나 자료를 자신의 판단으로 수용 혹은 배제하며 지식과 이론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요. 그러니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 후에도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제발 휘둘리는 것은 이제 그만.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하면 이미 사람들은 선동당해있다 - 괴벨스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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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 쉰다섯, 비로소 시작하는 진짜 내 인생
서정희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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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 아는 PD와 저녁을 먹으며 잡설을 하다가 서정희 씨(이하 존칭 생략)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뭐, 결론은 비호감이다, 주는 것 없이 얄밉다, 완벽주의자라서 피곤하다, 깍쟁이다 등등의 부정적인 이야기였는데, 저야 간혹 CF에서 보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제가 관심 두는 연예인이 있기나 했나요. 호감이 있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였을 뿐, 별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뿐인가 하면 연예인 누가 연애를 하건 결혼을 하건 이혼을 하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랑 무슨 상관이라고. 남의 일이라고 쉽게 입방아를 찧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가십 기사나 지라시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거든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하지만 아무리 그런 저라도 서세원이 서정희를 폭행한 사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잘 모른다지만 소문난 잉꼬부부인데다가, 서정희의 완벽주의 때문에 서세원이 피곤하게 산다는 이야기도 주워들은 터라 처음 폭행 사건을 접했을 때엔 뭔가 무지 열받게 했나 보다 생각하면서, 그래도 어떻게 때릴 수 있냐며 분노했습니다. 그 사건이 수십 번 폭행의 종장이었다는 것도 모르고요. 

그들의 첫 단추는 애초에 잘 못 끼워져 있었습니다. 어린 서정희를 그가 낚아챈 그날부터 말이에요. 약간의 결벽증을 가지고 있던 그녀였으니 순결에 대한 마음가짐은 어땠을지 말하지 않아도 뻔합니다. 지금과는 무척 다른 시대였으니 더요. 그러니 시댁의 모진 반대와 폭행에도 그와 헤어지기는커녕 쫓겨날까 두려워했겠죠. 그의 폭력성은 시댁에서 기인한 건 아닐까요. 처음부터 폭력적인 건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말이에요. 
끊임없는 언어폭력, 자존감 파괴, 그런 게 어떤 건지 아는 저는 그녀가 그런 환경에서도 CF 모델이나 살림 고수의 모습을 TV에서 보여주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쉽지 않았을 텐데. '난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재능이 있다 해도 머릿속 저 귀퉁이에서 '네까짓 게'라는 말이 울리게 마련인데 그걸 이겨낼 만큼 가족 사랑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건 오직 가족이었고, 자신이 좀 더 노력하면 가능할 거라 믿었습니다. 그게 허상이라는 걸 조금 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정희>를 읽으며 답답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서정희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였습니다. 얄미운 그녀. 글에 다 드러납니다. 
어쨌든 그녀는 여전히 비호감입니다. 저랑은 죽어도 안 맞는 스타일이에요. 지나치게 꼼꼼한 것도, 교회에 그렇게 열성적인 것도, 이혼 후 무너져 정신 못 차린 시간도. 저랑은 에너지도 아우라도 정반대의 것입니다. 
아아아... 싫다. 정반대인데 어째서 닮은 구석이 있는 걸까요. 바보같이. 그 닮은 부분이 있다는 게 정말 싫습니다. 왜 하필 그런 걸 닮아서.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렇게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다면, 그이에게서 자신과 닮은 단점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저는 그래서 여전히 그녀가 싫은가 봅니다. 그래요. 여전히 호감가지는 않지만 그녀의 새로운 출발만큼은 응원하고 싶습니다. 
서정희 씨, 잘 될 거예요. 당신에겐 달란트가 있잖아요. 반짝반짝 빛나는.

** <정희>는 서정희의 에세이로 그녀의 삶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어릴 적 성격도, 서세원을 만나 결혼 생활과 파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새로운 발돋움을 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실려있으나,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녀는 왜 해피엔딩을 꿈꿨던 시나리오를 폐기했을까요. 지금까지 해피 하지 않았으니 아직은 엔딩을 향하는 연장선상에 서 있는 건데요. 해피엔딩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는 거라고 누가 정했다고. 지금부터 해피한 엔딩을 만들어 가면 되는 거예요.

**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거나 같은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요. 그러니 저랑 정반대인 서정희의 성격이나 삶의 방식도 존중합니다. 다만 좀 더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가주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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