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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7년 5월
평점 :
저는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물 마니아입니다. 그렇지만 추리물에서 별로 내키지 않는 두 분야가 있는데요. 암호와 밀실이 그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여겨보았던 저자의 이름이 걸린 소설이라면 읽지 않을 수 없지요. 제가 즐기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방식이나 얼개를 보면 매료되고 마는 탓입니다.
기시 유스케의 <유리 망치>도 작가의 이름 때문에 읽었습니다.
<검은 집>이나 <악의 교전> 같은 인간 내면의 이그러짐으로 인한 공포를 끌어올리는 소설뿐만 아니라 정교한 밀실 트릭을 보여주는 본격 추리물의 대가이니 그냥 스치듯 지나 보내긴 힘들었습니다. <유리 망치>는 일전에 읽었던 <도깨비불의 집> 보다 전에 출판되었던 본격 미스터리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10여 년 전에 출간되었던 이력이 있지만 출판사와 판형을 달리해 재출판되었습니다. 그래서 리뷰도 별점도 없나 봅니다. 읽을만한 분들은 전에 다 읽으셨을 테니까요. 저는 이번이 첫 만남입니다. 사실 <도깨비불의 집>은 제가 생각했던 기시 유스케 풍이 아니라서 시큰둥 했었는데요. 내심 아오토 준코와 에노모토 케이에게 매력을 느꼈었는지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아니 그들의 첫 만남을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어딘가 허술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데다 자신의 목소리를 확실히 낼 수 있는 매력적인 변호사 아오토 준코와 방범용품 사장에 추리력 최고이지만 도둑의 전력이 있는 에노모토 케이의 조합은 세상의 모든 밀실의 미스터리를 풀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한 간병 회사 사장이 불가능해 보이는 밀실 - 사장실에서 낮잠을 자다가 살해당합니다. 휴일이었기에 회사 내에는 비서 세명, 전무, 부사장만이 출근했는데요. 사장실 입구에서는 세 명의 비서가 근무 중이었고 자리를 비운 것은 불과 초 단위였습니다. 적외선 센서까지 있는 감시 카메라, 방탄 유리창, 암호를 알아야만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까지 식상한 표현으로 개미 한 마리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에서 누군가에게 머리를 맞고 사망한 사장. 경찰은 사장실과 이어져 있는 집무실에서 낮잠을 잤던 히사나가 전무를 체포합니다. 그 외에 범행이 가능한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떻게 사장을 살해했는가는 밝히지 못하고, 전무는 내내 무죄를 호소합니다. 아오토 준코가 속해있는 로펌에서 이 사건을 맡고, 준코는 선배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방범 컨설턴트 케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에 서서히 접근해 가는데...
초반에 혹시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하고 콕 찍어 본 사람이 있었는데요. 역시 그 사람이 범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외엔 범행이 가능할 사람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도대체 왜? 어떻게? 하는 것이 내내 궁금해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은 두 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요, 첫 번째 장은 사건과 추리 과정의 장이고, 두 번째엔 주인공을 달리해 범인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의 사연은 안타깝습니다만, 그것이 남을 죽여도 좋을 정도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짝이는 것에 매료되었으면 그냥 그것만 가질 것이지.
기시 유스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무척 다양한 분야의 것들을 취재하고 공부했겠다 여겨지는 부분들이 작품 전반에 쫙 깔려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트릭이나 추리가 정교했지만, 조금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지적 피로도라고 해야 좋을까요?
결론. 이 책은 무척 흥미로운 밀실 미스터리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준코와 케이의 콤비 플레이를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