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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라이언 ㅣ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평점 :
처음에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작가 정신 출판사의 블로그에서 본 카드 뉴스 때문이었습니다. (http://blog.naver.com/jakkapub/221040360236)
강렬한 주홍빛과 검은색이 대비되는 이미지에 나열된 활자들은 뜨겁게 저를 유혹했습니다.
폐농장의 사일로에서 발견된 공중을 나는 듯한 아름다운 시신이라니!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범인은 그런 괴상하고도 고생스러운 방법으로 시신을 감추어 두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소설은 설화 같은 동화로 시작합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한 여자아이가 날아다니다가 발견한 행복한 마을. 그 마을 사람들은 걱정근심 없이 아주 행복합니다. 여자아이도 그 안에서 함께 행복했었죠. 뱀에게 자신을 바쳐야 하는 그날까지는요. 마을 사람들에게 속아서 뱀에게 먹힐 위기에 처한 소녀는 그들의 행복이 일 년에 한 번씩 한 사람을 뱀에게 바치는 것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자기를 먹지 말고 마을의 행복도 거둬가길 소원합니다. 다음날 수몰된 마을을 떠나는 소녀는 마치 민들레의 홀씨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자란 유메와 에미 쌍둥이 자매는 각기 다른 성격과 성향을 지녔지만 누구보다 사이가 좋습니다. 어린 시절 병약했던 유메는 학교에 다닐 수도 없었지만 언젠가는 하늘을 날겠다는 꿈을 키워왔습니다. 민들레가 피어있는 행복한 마을을 찾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그 꿈을 간직한 채 대학생이 됩니다. 몸이 약했던 그녀가 대학생이 된 것만도 기적인데요. 어릴 적 읽었던 동화 같은 민담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는지, 무척 열심입니다. 우연히 만난 남자의 손에 이끌려 동아리도 가입하고요. 동아리의 이름은 '민들레 모임' 게다가 그는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런 몹쓸 운명 같으니라고! 그로부터 5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실종되었고, 16년 후 폐 사일로에서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그런 식으로 하늘을 날려고 했던 건 아닐 텐데.
<데드맨>을 시작으로 <드래곤플라이>를 거쳐 <단델라이언>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감과 상상력, 그리고 추리력을 지녔지만 어딘가 좀 허술한 구석이 있는 가부라기와 그의 사단 중 단연 매력이 돋보이는 귀공자 히메노의 콤비 플레이는 여기서도 여전했습니다.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기묘한 화음은 사건을 해결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강장제 같은 것인데요. 멋지지만 형사 오타쿠인 바람에 약간의 개그 성향이 있는 히메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이 소설의 굵은 흐름 중 하나입니다.
어린 시절 경비원인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와 셋이 살고 있던 영리한 아이 히메노는 연립주택에 이사해온 에미 누나와 친하게 지냅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비밀 기지나 다름없었던 '민들레 모임'의 -장래의- 유토피아인 농장으로 데리고 갑니다. 넓은 부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민들레는 어린 히메노의 마음에도 환하게 펼쳐지는데요. 바람이 불어 화아악 하고 꽃씨가 날리자 에미는 히메노에게 사실 자신은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살짝 이야기해 줍니다. 그래서 16년 뒤, 바로 그 장소에 서 있는 사일로에서 그녀의 시신을 보게 되자 히메노는 "에미 누나, 진짜였구나.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거......."라고 말하고 기절합니다.
탑 형 사일로 안에는 19세의 소녀, 에미가 마치 살아있을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통풍과 습기 유지가 잘 되는 사일로였기 때문이었는지, 그녀의 시신은 부패하지 않고 거의 원형 그대로였는데요. 시신에서 지문을 채취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명치 부근에 꿰어진 쇠 파이프는 두 개의 창구멍에 걸쳐져 있어서 마치 공중을 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요. 기이한 것은 사일로의 안쪽에도 빗장이 걸려 있었으며, 바깥쪽에는 맹꽁이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과연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간 것일까요. 정말로 날아서 천창을 통해 나간 걸까요? 하지만 천창마저 판자로 봉해져 있었는데요. 날아서 나가는 것도 불가능한 - 애초에 가능할리도 없지만 - 이 밀실의 트릭은 어떻게 된 걸까요.
시신이 발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의원의 비서가 고층 호텔의 옥상에서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바로 출동했지만 옥상에서 발견한 건 불에 탄 시신과 휴대전화뿐. 범인이 공중으로 날아서 사라진 게 아니라면 가능할 리가 없는. 그래요. 개방형 밀실 사건입니다.
이 두 건의 밀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가부라기 팀이 움직이는데요. 과연 그들은 죽음의 비밀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까요?
이 소설 <단델라이언>은 <데드맨>시리즈의 마지막 권입니다. 가부라기와 히메노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 시리즈는 마치 괴담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오컬트적인 사건을 가부의 감과 히메노의 덕력, 사와다의 프로파일링을 통해 실제의 세상으로 끄집어 내어 결국엔 인간의 일이었다는 것을 밝혀내는 그 과정이 정말 매력적이거든요. <데드맨>도 그랬고 <드래곤플라이>도 그랬는데요. 사건의 이면에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슬픔을 극복하여 제대로 성장하고, 누군가는 그 괴로움에 묻혀서 악에 물들고 맙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걸 깨닫겠지만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또 다른 슬픔을 낳고 맙니다.
전작들도 좋았지만 가장 정교하고, 가장 섬세했던 <단델라이언>이 가부라기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니 정말 정말,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