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면병동 ㅣ 병동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평점 :
제주에선 그런 걸 본 적이 없지만 육지의 지하상가 공중 화장실이나 터미널 같은 곳에서 간혹, 장기를 산다는 스티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찜질방 화장실에서도요. 솔직히 살짝 혹한 적도 있는데, 본래 잘 붓는 체질인 저는 신장 같은 거 하나를 누군가와 나눠 봤자 저도 손해, 그도 손해라는 걸 10초 만에 깨닫고 포기했지요. <레드마켓:인체를 팝니다(스콧 카니)>라는 책을 보면 우리 몸의 다양한 부분들이 레드 마켓에서 거래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시세도 보통이 아닙니다. 심지어 세계 보건 기구 (WHO)에 따르면 전 세계 장기 이식의 약 10%가 불법 암시장에서 구한 것이라고 하니 암암리에 일어나는 것치고는 무척 큰 시장입니다. 납치나 유인 같은 무서운 방법으로 장기를 도둑맞는 일도 있지만 돈이 필요해서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경우도 있으니 결코 가벼이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겁니다. 인간에게 있는 장기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겁니다. 신장이 한 쌍인 이유도, 일반 체세포와는 달리 복수의 분열을 하는 세포로 되어 있는 간도. 그러니 함부로 거래되어서는 안됩니다. 선의의 도너에게서 자발적으로 제공되는 경우를 제외하고선 말입니다. 얼마 전 <장기농장(하하키기 호세이)>을 읽으며 장기 거래에 대해 다시 한번 묵직하게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역시 신중히 생각해야 하고, 윤리적으로는 어떤가에 대해 고민할 여지가 있었습니다. 거래는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법에도 저촉되는 일이죠. 아무래도 수요와 공급을 마주려면 줄기세포의 연구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치넨 미키토의 <가면 병동>은 앞서 말한 것처럼 무겁게, 심도 있게 접근하는 소설은 아닙니다. 장기 이식이나 밀거래라는 주제가 심겨있긴 하지만요. 작가가 현직 의사이기 때문에 병원의 모습은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용어를 잔뜩 써가며 현학의 티를 내거나 젠체하지 않습니다. 많은 지식 속에 간결한 표현이 뇌를 편하게 만들어줍니다. 의학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표현이 독자에게 신뢰를 주었습니다.
당직 대타로 근무하게 된 하야미즈 슈고는 말도 안 되는 사건에 휘말려버렸습니다. 피에로 가면을 쓴 남자가 편의점을 털다 여자에게 총상을 입혔는데요. 이 친절한 강도는 그녀를 데리고 다코도로 병원에 침입, 모두를 위협하고 점거해버립니다. "당장 이 여자를 치료해!!" 같은 거였죠. 총을 쏘긴 했지만 살인범이 되긴 싫었다나 뭐라나. 감금된 사람은 환자 60여 명과 두 명의 간호사 사사키, 히가시노, 당직의 슈고와 뜻밖에 야근을 하던 다코도로 원장, 그리고 가벼운 총상을 입은 그 여자 미나미였습니다. 원장은 환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라며 저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피에로가 원하는 금품을 제공하는데요. 피에로는 새벽까지 이곳에 머물다 나가기로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드러나는 이상한 점들. 피에로는 돈만을 노린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다코도로가 걱정하는 건 환자들의 안위만이 아닌 것 같고요. 이 상황에 미나미와 슈고는 썸을 타고 있으니 젊은 청춘 남녀는 흔들 다리 위에서 사랑을 느낀다죠?
도대체 이 낡은 요양형 병원엔 무슨 비밀이 있길래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수상한 건지.
최신식의 수술실과 나란히 놓인 수술대의 장면에서 이미 장기 이식인가 보다!하고선 뭐야 좀 식상한 거 아니야?라는 의문을 품었지만, 이 소설의 묘미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와 메디컬 서스펜스의 만남이라는 것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겁지 않으면서 가독성 좋은 이 소설은 무더위 속에서 한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책이었습니다. 시원하고, 맛있고, 그리고 씁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