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네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그림은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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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시로 문을 엽니다.

이별을 오래 붙잡고 있는 편이 아닌 저는, 몇 번의 이별을 했어도 이 시만큼 아려본 적은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반복된 '이별하는 순간'에 견딜 수 있게 단단한 갑옷을 입은 탓일까요.

그래도 이 글에 스며있는 아픔은 알고 있습니다. 이별 직전까지 그 후에도 괜찮으려는 수많은 준비를 마음속으로 마쳤기 때문입니다.

모두 잊고자 잠을 청하고, 청하고, 청해본다.

흐르는 기억을 막으려 애써본다.

-p.49

그림이 예뻐서 더 아픈 책입니다.

<한번쯤 네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는 그라폴리오에서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은의 첫 번째 에세이집으로 감성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은은하고 아름다운 그림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리는데, 글귀마저도 가슴을 적십니다. 팬텀싱어 음악을 들으며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오늘 같이 맑은 날 다시 펼쳐보아도 여전히 마음속에 비가 내립니다.

사랑을 해본, 이별을 해본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책입니다.

이별로 문을 연 감성 에세이집은 두 번째 방에서 마음을 다독이며 눈물로 찬 가슴을 덜어냅니다.

누가 뭐래도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가면 조금씩 나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있겠죠.

인생은 어쩌면

나를 찾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p.135

마지막 네 번째 방에선 희망을 보았습니다.

사랑도 꿈도 다시 나아갑니다.

어쩌면 깎이고 깎인 진심이 담긴 말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어."

-p.184

저도 그가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흐름이 참 좋은 책입니다.

감성에 젖어 커피 그리고 음악과 함께 조금씩 읽어나가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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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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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며 깨달았다. 아아, 또 실수했구나.

사람은 언제나 잃고 나서야 후회한다.

언제나 읽고 나서야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알고 있었는데. 행복은 반드시 망가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또 실수하고 말았다.

-p.60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았던 '나' 사쿠라 신지의 행복은 열다섯 살에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발 빠른 축구 선수로 매니저와 사귀기도 했고, 단란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었거든요. 중학교 3학년 때 어떤 이유로 다리를 다쳐 달릴 수 없게 된 후로 불행은 연이어 그를 찾아왔습니다. 한때 정치를 했던 아버지가 회사를 운영하던 중 폭력 사고를 쳐서 체포되고 신용 하락으로 회사는 도산하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어머니는 친정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운송업에 종사하게 된 탓에 집에 자주 들어올 수도 없는 데다 막대한 빚 때문에 정말이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울한 날을 살아가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엉뚱한 제안을 받습니다.

사신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시급은 겨우 300엔, 학생이니 하루 4시간 근무. 임금은 매일 선지급.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조건인데다가 추가 근무나 주말 근무를 하게 되더라도 추가 수당은 없다고 합니다. 계약 조건을 따지기 전에, 사신 아르바이트라니. 엉뚱한 사이비 종교 권유인지도 모릅니다. 권유하는 사람이 미소녀인 하나모리니까 더 수상한데요. 함께 파트너가 되어 아르바이트를 해보자니... 돈을 모아 쓸데가 있었던 나는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결국 사인하고 맙니다. 반신반의 끝에 사인을 했지만 정말로 '사신' 일일 줄이야.

사쿠라가 해야 하는 사신 아르바이트는 우리의 강림이나 해원맥, 덕춘처럼 사람을 염라대왕에게 데리고 가는 일도 아니고, 블리치의 이치고처럼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호로와 싸워야 하는 일도 아닙니다. 세상에 미련이 있어 아직 떠나지 않은 '사자'와 함께하며 그의 미련을 찾아내고 해결해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나갈 수 있게 돕는 일입니다.

'사자'는 자신이 죽은 그 시점에서 추가된 시간을 계속 살아갑니다. 자기가 죽지 않았더라면 살아갈 수 있던 날들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인데요. 평행이론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때 죽었더라도 미련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계속 삶을 살아가며 고등학생으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거죠. 그게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몰라도요. 결국 미련을 해결하고 세상을 떠나면 추가로 살았던 시간은 사라집니다. 그동안 남겨두었던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그게 당연한 일인데도 그것을 기억하는 사신에게는 추억 혹은 아픔으로 남겨집니다. 접촉했던 모든 이들의 기억에서는 사라져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지만 사신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사신 아르바이트는 육 개월 한정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사신의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고, 사신도 원래의 시간 속으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접촉했던 많은 사자들의 일은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사쿠라도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과, 많은 사연과, 많은 아픔과, 많은 사랑을 저쪽 편에 두고 이쪽으로 돌아옵니다.

사신은 '사자'를 구원하는 자. 이 생각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아무래도 진실은 하나가 아닌 듯하다.

사신이 '사자'를 구원한다.

덧붙여 '사자'를 통해 사신도 구원받는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진실 아닐까.

-p.183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은 라이트 노벨 느낌이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무겁습니다. 세미 라이트라고 해도 좋을까요.

사자가 재구성한 세상과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의 접점을 넘나드는 사신. 임무의 시간이 끝나면 기억은 사라지겠지만 육 개월간 느꼈던 감정들은 분명 사신을 성장시킬 겁니다. 생전의 미련을 해결하고, 그때 몰랐던 것들을 비로소 깨닫고 세상을 떠나는 사자에 비하면 얼마나 은혜로운가요. 사랑도 눈물도 모두 자신의 것이니까요.

너무 즐거워서 행복이란 잃고 나서야 깨닫는 법임을 깜박했다.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p.226

일상이 갑자기 사라져 사자가 된다면 저는 시간을 재구성해 계속 이곳에서 살아갈까요... 아마도 그렇겠죠... 아직 미련이 너무너무 많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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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3 : 세종·문종·단종 - 백성을 사랑한 사대부의 임금 조선왕조실록 3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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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제는 더 이상 역사를 모른다는 소리를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마음가짐으로 펜을 들고 시작했습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역사를 차곡차곡 읽다 보면 내게도 얻어지는 무언가가 있겠지 싶었거든요.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정신 바짝 차리고 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읽다 보면 흐름이 느껴지고 왕과 대신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거든요. 조금 심각한 소설을 읽듯이 자연스레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건 펜이 아니라 놓치기 싫은 마음으로 붙일 플래그 스티커뿐이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만족하며 내려놓는 걸 보고 아이가 "책이 아니라 고슴도치네?"라고 말할 정도로 페이지마다 플래그가 덕지덕지. 그렇게 즐거웠습니다.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전편은 읽지 못한 채 3권- 세종, 문종, 단종 편 - 을 먼저 접하게 되어서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역사는 흐름이라더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에 마음을 맡기기만 하면 되었거든요.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과 노상왕인 정종, 그리고 세종까지 세 왕이 함께 연회장에서 춤을 추는 장면, 게다가 신하도 함께 춤을 추었다니 상상하며 크게 웃었습니다. 근엄한 모습의 왕들만 상상해왔기에 서로 함께 춤을 추는 대목에서 현대식 춤으로 상상되어서 괜히 웃겼거든요. 그렇지만 늘 즐거웠던 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왕실은 늘 시끄러웠잖아요.

책의 초반부터 깜짝 놀랄만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세종 하면 백성을 위하는 왕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금부민고소법'이라는 수령고소금지법을 예조에 명하다니. 충격적이었어요. 수령고소금지법이라는 건 말하자면, 아전을 포함한 백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고을 수령을 고소할 수 없는 법인데요. 만일 이를 어긴 자는 장 100대에다가 3000리 유배를 보낸다는 겁니다. 세종의 이미지는 후세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후에 한글이라 불리는 언문을 만들고 재주(능력)만 출중하다면 신분 차별 없이 등용하여 썼다는 점 등으로 존경해 마땅하지만, 수령고소금지법이라거나 노비제에 있어서 종모법으로 개혁을 시도했다는 건 전혀 몰랐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대하는 명나라가 종부법인데도, 사대부의 이권이 보장되는 - 나아가서 나라의 세금이나 병력에 손실이 되는 종모법을 추진했다는 것은 모른 채 노비에게 출산휴가 주었다는 점만 부각시켜서 '애민 군주'라고 말하다니. 얼마 전 출산휴가와 관련된 기사를 읽으며 감동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조선의 건국을 눈으로 보고 몸소 체험했던 태종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세종은 그렇지 않았기에 전형적인 재벌 2,3세 마인드였던 것 같습니다. 과거와 현재 시비의 기준이 다르니 지금의 잣대로 잴 수는 없겠지만, 현대를 사는 백성인 제 기준으로는 백성을 사랑했다기보다는 사대부를 사랑한 왕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젠 세종이 싫어졌다는 건 아닙니다. 눈에 씐 콩깍지가 떨어졌을 뿐입니다. 누가 뭐래도 세종은 역사 덕후였고, 언어 학자로서의 자질을 발휘해 한글을 만드셨기에 제가 한자를 잘 몰라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역시 세종도 사람이었구나 하여 인간미도 느꼈습니다. 100 퍼센트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걸 다시금 느꼈죠.

세종의 아들 문종은 문무를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도 아주 좋아했고, 소문난 미남이었다던데 일찍 죽어서 참 안타깝습니다. 오래도록 살아서 나라를 다스렸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단종이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즉위했다면... 아... 제가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군요.

이 책은 흥미롭고 즐겁습니다. 오랜만에 머리에 쏙쏙 박히고 감정을 오르내리게 하는 역사 책을 만났어요. 조선왕조실록 1, 2권도 구해서 읽어야겠어요. 근간 출간될 후속들도 모아야겠습니다. 읽고 들려주고 권하고 싶은 책이거든요.

실은 이 책이 어려울까 봐 사두고 묵혀둔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을 먼저 읽을까 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니 설민석의 책도 읽어서 큰 흐름을 알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사가 스포라지만, 제가 알고 있던 일들의 배경이라거나 내막을 알고 나니 시야가 조금 넓어진 것 같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과거를 판단하여 옳니 그르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과거를 알고 고찰을 한다면 미래의 향방을 고민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는 것을 이번에 실로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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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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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한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교사 출신이고 자식들은 모두 SKY 대학을 갔습니다. 그중 둘은 의사입니다. 할아버지는 진행이 빠른 파킨슨 증상과 치매가 왔습니다. 거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형제는 화를 내며 연락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미 이십여 년 전 인연을 끊길 원했던 자식들은 여전히 등 돌린 채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별거를 시작한 아내도 연락을 원치 않았습니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제가 돕는 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나라의 도움으로 요양병원에 갔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과거가 어땠는지 모르기에 형제, 자녀들을 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자식들은 부양 포기 각서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도 요양병원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무척 위독하다고요. 재작년 가을에도, 작년 8월에도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었는데, 이번에도 다시 살아나셨나 봅니다. 여전히 그 할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생명을 간신히 유지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모든 피붙이가 나에게 등을 돌렸는데,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그렇게라도 살고 싶을까... 혹시 이젠 그만 가고 싶은데 여러 기계 장치와 줄들이 억지로 생명을 붙들어 놓는 건 아닌가... 가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라면 떠나고 싶을 텐데,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으신가 봅니다. 어쩌면 자식들이 마지막으로 한 번 찾아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버티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거동은커녕 의사표현조차 할 수 없어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십니다. 공허한 눈으로 알 수 없는 어딘가를 보고 있을 뿐.

은모든의 소설 <안락>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후인 근미래입니다.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리겠다는 할머니와 그렇게 보낼 수 없다는 '엄마'의 갈등이 심화됩니다. 화자이자 손녀인 지혜는 할머니의 뜻을 존중하며 '자두 술' 빚는 법을 배웁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그 맛은 자신이 지키겠노라고. '자두 술'자체는 별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익어갈 때 함께 느끼는 감정이 중요한 것이죠. 지혜는 할머니의 뜻을 존중하지 않는 엄마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깁니다. '자신을 위해' 반대한다는 건데요. 할머니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는 건데...

저라면, 역시 이기적인 이유로 엄마의 '존엄사'를 막고 싶습니다. 만일 너무너무 편찮으셔서 이대로는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엄마의 뜻대로 보내드리겠지만, 아직 그저 불편하신 정도인데, 미래에 힘든 모습으로 살아있기만 할까 봐서 사망일을 스스로 정한다는 건 결사반대에요.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내가 죽을 날을 정해야 하는 할머니의 입장이라면, 저 역시 누군가를 힘들게 하기 전에 가야겠다고 결정할 것 같아요.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힘듭니다. 나는 엄마이자 딸이니까요.

문득 요양병원에 계신 그 할아버지의 자식들에게 묻고 싶어졌어요.

그대들은 어떤 결정을 하실 건가요? 자식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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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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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의 열차에는 조반니와 캄파넬라가 타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듣지만 종착역에 이르러 조반니와 단둘만이 남았을 때 캄파넬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조반니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캄파넬라가 남긴 말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기묘하고도 슬픈 동화를 손에서 내려놓고 묘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박솔뫼의 <인터내셔널의 밤>의 기차엔 한솔과 나미가 타고 있습니다. 둘의 사연은 열차에서 시작됩니다. 조반니와 캄파넬라가 만난다면 그들의 사연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 둘은 내 주변엔 없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없지는 않을 사연을 안고 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읽은 게 분명하다면, 한솔은 여자였지만 성전환을 통해 남자가 되어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트랜스젠더입니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가야 하는가 고민하며 어쨌든 결혼식이 열리는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부산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고민과 넋두리가 있지만 우연히 옆에 앉은 나미에게 털어놓지는 않습니다. 그녀에게 전한 것은 탐정 소설 한 권뿐.

나미는 사이비 교단에서 탈출해 부산으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지는 혼란스러운 중에 이모와 이모 친구의 말은 한 줄기의 희망 같은 것이 됩니다. 평생 무언가를 믿으며, 의지하며 살았기에 그녀는 또 다른 믿음을 갈구합니다. 이번엔 올바른 방향이길 기원하면서요.

캄파넬라와 조반니의 여행은 현실로 돌아오면서 끝이 나버렸지만,

그들의 여정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겐지의 동화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아름다운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르테 출판사에서 새로 시작한 작은 책 시리즈의 첫 두 권 중 한 권인 이 <인터내셔널의 밤>은 결말이 딱 떨어지는 소설이 아니기에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읽은 후에도 여운이 자꾸만 남는 것은 나 역시 열차를 타고 여행하고 있는 여행객이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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