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았던 '나' 사쿠라 신지의 행복은 열다섯 살에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발 빠른 축구 선수로 매니저와 사귀기도 했고, 단란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었거든요. 중학교 3학년 때 어떤 이유로 다리를 다쳐 달릴 수 없게 된 후로 불행은 연이어 그를 찾아왔습니다. 한때 정치를 했던 아버지가 회사를 운영하던 중 폭력 사고를 쳐서 체포되고 신용 하락으로 회사는 도산하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어머니는 친정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운송업에 종사하게 된 탓에 집에 자주 들어올 수도 없는 데다 막대한 빚 때문에 정말이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울한 날을 살아가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엉뚱한 제안을 받습니다.
사신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시급은 겨우 300엔, 학생이니 하루 4시간 근무. 임금은 매일 선지급.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조건인데다가 추가 근무나 주말 근무를 하게 되더라도 추가 수당은 없다고 합니다. 계약 조건을 따지기 전에, 사신 아르바이트라니. 엉뚱한 사이비 종교 권유인지도 모릅니다. 권유하는 사람이 미소녀인 하나모리니까 더 수상한데요. 함께 파트너가 되어 아르바이트를 해보자니... 돈을 모아 쓸데가 있었던 나는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결국 사인하고 맙니다. 반신반의 끝에 사인을 했지만 정말로 '사신' 일일 줄이야.
사쿠라가 해야 하는 사신 아르바이트는 우리의 강림이나 해원맥, 덕춘처럼 사람을 염라대왕에게 데리고 가는 일도 아니고, 블리치의 이치고처럼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호로와 싸워야 하는 일도 아닙니다. 세상에 미련이 있어 아직 떠나지 않은 '사자'와 함께하며 그의 미련을 찾아내고 해결해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나갈 수 있게 돕는 일입니다.
'사자'는 자신이 죽은 그 시점에서 추가된 시간을 계속 살아갑니다. 자기가 죽지 않았더라면 살아갈 수 있던 날들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인데요. 평행이론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때 죽었더라도 미련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계속 삶을 살아가며 고등학생으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거죠. 그게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몰라도요. 결국 미련을 해결하고 세상을 떠나면 추가로 살았던 시간은 사라집니다. 그동안 남겨두었던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그게 당연한 일인데도 그것을 기억하는 사신에게는 추억 혹은 아픔으로 남겨집니다. 접촉했던 모든 이들의 기억에서는 사라져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지만 사신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사신 아르바이트는 육 개월 한정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사신의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고, 사신도 원래의 시간 속으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접촉했던 많은 사자들의 일은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사쿠라도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과, 많은 사연과, 많은 아픔과, 많은 사랑을 저쪽 편에 두고 이쪽으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