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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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한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교사 출신이고 자식들은 모두 SKY 대학을 갔습니다. 그중 둘은 의사입니다. 할아버지는 진행이 빠른 파킨슨 증상과 치매가 왔습니다. 거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형제는 화를 내며 연락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미 이십여 년 전 인연을 끊길 원했던 자식들은 여전히 등 돌린 채였습니다. 같은 시기에 별거를 시작한 아내도 연락을 원치 않았습니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제가 돕는 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나라의 도움으로 요양병원에 갔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과거가 어땠는지 모르기에 형제, 자녀들을 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자식들은 부양 포기 각서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도 요양병원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무척 위독하다고요. 재작년 가을에도, 작년 8월에도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었는데, 이번에도 다시 살아나셨나 봅니다. 여전히 그 할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생명을 간신히 유지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모든 피붙이가 나에게 등을 돌렸는데,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그렇게라도 살고 싶을까... 혹시 이젠 그만 가고 싶은데 여러 기계 장치와 줄들이 억지로 생명을 붙들어 놓는 건 아닌가... 가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라면 떠나고 싶을 텐데,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으신가 봅니다. 어쩌면 자식들이 마지막으로 한 번 찾아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버티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거동은커녕 의사표현조차 할 수 없어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십니다. 공허한 눈으로 알 수 없는 어딘가를 보고 있을 뿐.

은모든의 소설 <안락>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후인 근미래입니다.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리겠다는 할머니와 그렇게 보낼 수 없다는 '엄마'의 갈등이 심화됩니다. 화자이자 손녀인 지혜는 할머니의 뜻을 존중하며 '자두 술' 빚는 법을 배웁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그 맛은 자신이 지키겠노라고. '자두 술'자체는 별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익어갈 때 함께 느끼는 감정이 중요한 것이죠. 지혜는 할머니의 뜻을 존중하지 않는 엄마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깁니다. '자신을 위해' 반대한다는 건데요. 할머니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는 건데...

저라면, 역시 이기적인 이유로 엄마의 '존엄사'를 막고 싶습니다. 만일 너무너무 편찮으셔서 이대로는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엄마의 뜻대로 보내드리겠지만, 아직 그저 불편하신 정도인데, 미래에 힘든 모습으로 살아있기만 할까 봐서 사망일을 스스로 정한다는 건 결사반대에요.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내가 죽을 날을 정해야 하는 할머니의 입장이라면, 저 역시 누군가를 힘들게 하기 전에 가야겠다고 결정할 것 같아요.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힘듭니다. 나는 엄마이자 딸이니까요.

문득 요양병원에 계신 그 할아버지의 자식들에게 묻고 싶어졌어요.

그대들은 어떤 결정을 하실 건가요? 자식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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