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언가를 갈망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걸 느꼈습니다.

저에겐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로또 당첨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도 로또를 사지 않는 것처럼, 무언가를 꿈꾸면서 그걸 그냥 꿈으로 둡니다. 현실로 만들기 위한 그 무엇도 하지 않습니다. 나태하죠. 게으름은 이제 몸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완전히 씻어버렸다고 착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끈적끈적한 그것은 웬만한 세제로는 씻겨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부지런히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위대해 보일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더라도 그 노력 자체만으로도 멋있습니다.

권기태의 <중력>은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는 자신의 꿈인 우주인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그들 네 명뿐만 아니라 몇 번의 예선을 거쳐간 사람들 모두 꿈을 꾸고 노력을 했을 겁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우주의 꿈을 펼칩니다. 우리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 혹은 그다음 세대에는 지금 우리가 여객기를 타고 세계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듯이 특수한 훈련이나 시험을 거치지 않고서도 우주 여객기를 타고 가까운 별로 여행을 하거나 별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관광을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현재 과학력으로는 굉장한 훈련과 선발과정을 거쳐서 선택된 자만이 우주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모르는 일이에요. 선발되었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감기에 걸린다거나 컨디션이 나쁘다면 우주인이 될 수 없어요. 백업으로 뽑힌 사람이 대신 우주로 가야 합니다.

주인공인 이진우는 어린 시절부터 한결같았던, 우주를 향하는 꿈을 꾸고 있는 생태 연구원이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 선발 공고는 그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정말로 어렵고 어려운 예비과정을 거쳐 최종 4인에 들었을 때부터 소설은 본격적으로 그들을 힘들게 합니다. 어느새 이진우를, 김태우를, 정우성을, 김유진을 응원하던 저는 그들 중 누구도 탈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단 한 명만이 우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명은 백업으로 뽑힙니다. 나머지 둘은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 명은 가가린이 될 것이고, 또 한 명은 티토프가 될 것입니다.

소설은 가가린 센터에서의 강도 높은 훈련을 보여줍니다. 무한도전에서 체험했던 훈련은 정말 예능일 뿐이었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비행기 내에서의 무중력 체험도 즐거운 것이 아니라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에 당황하는 뇌의 혼란을 이겨내는 무서운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해상 비상착륙 후 탈출 훈련을 보며 이진우가 그랬듯이 과연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들을 힘들게 했던 건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가가린 센터의 인간관계도 회사에서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 소설은 구상하고 취재를 시작한 지 십삼 년 만에 나왔고 집필하는 사 년 동안 적어도 서른다섯 번 개고했습니다. 이토록 오래 걸리리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과연 과감하게 첫발을 떼고 첫 문장을 쓸 수 있었을까(p.448) 작가는 스스로 궁금해합니다. 작가 자신도 우주에 가고 싶었습니다만 시력이 좋지 않아 포기했고 대신 자신처럼 우주를 꿈꾸는 사람을 책에 담고 싶었습니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우주인 선발 과정을 취재하고, 그들의 훈련을 관찰하고 일부는 직접 참여해보기도 했습니다. 많은 우주 관련 책을 읽고 영상물을 톺았습니다. 작가역시 이진우였고 김태우였고, 정우성이었으며 김유진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생생합니다. 스릴러도 아닌데 스릴이 있습니다. 심각하긴 하지만 어쩐지 무겁다기보다는 타이트합니다. 주인공인 이진우를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합니다. 주인공이라고 우주인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은 이소연이 되었습니다. <중력>에서는 누가 우주인이 될까요.

우주인으로 선발된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년 면역력을 키우는 짠맛의 힘 - 원인 모를 염증과 만성질환에서 탈출하는 최강의 소금 사용설명서
김은숙.장진기 지음 / 앵글북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는 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혹은 세뇌되었던 것을 완전히 뒤집을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지방에 관한 것도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에 대해 거의 정설처럼 알고 있던 것에 대한 반대되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을 활짝 열고 두뇌를 부드럽게 하지 않고서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의 3크리를 맞던 날 병원에서 덜 짜게 먹고 규칙적으로 무리가 안 가는 운동을 꾸준히 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원래 짜지 않게 먹고 있었던 터라 여기서 뭘 어째야 하는지 좀 난감했습니다. 간이 안 맞으면 맛이 없잖아요. 그래서 간은 적당히. 대신 약간의 칼륨 증가를 꾀하면서 채소 섭취를 조금 늘렸습니다. 어차피 당뇨관리 때문에 채소를 먼저 먹고, 단백질을 먹고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순차적 식사를 - 하려고 늘 노력합니다. 좀 짭짤한 걸 먹으면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지지만 제 판단이 옳길 바라면서 제멋대로의 식사 규칙을 만들어 지키고 있습니다. 뭐 나쁘지 않았는지 혈액검사 결과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약과 식사, 생활 태도 수정이 합이 잘 맞았나 봅니다. 그렇다면 무리해서 저염식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런 의문이 들던 차에 <짠맛의 힘>이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짠맛이 문제가 된 것은 소금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인스턴트식품이나 간편식, 외식, 매식을 통해서 각종 첨가물과 과식, 폭식으로 쓸데없이 많은 - 그러니까 모든 성분의 총량이 늘어났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스러운데요. 이 책의 저자들이 정말 전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소금'이야기가 아니라 소금이 좋은가 나쁜가, 얼마를 먹어야 하는가 하는 무수한 논쟁 뒤에 빠져 있는 몸의 지혜. '생명의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p.14)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1부는 소금에 대한 오해, 소금과 소금 섭취 논쟁에 대한 이야기, 2부는 우리 몸과 소금의 관계, 소금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소금이 부족할 때의 증상과 생리학적 원리를 실제 좋아진 사람의 사례와 함께 다룹니다.(p.12,13)

책의 초반(p.22,23)에 소금력 테스트라고 '내 몸의 짠맛 부족 신호'를 체크해보는 리스트가 있는데요. 저의 경우엔 7개가 해당되어서 소금력이 줄어들고 있으니 평소보다 좀 더 간간하게 먹으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괜찮을까 살짝 걱정하면서도 과하게 염분을 보충하지는 말고 미역국 같은 무기질이 많은 국 종류를 조금 더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납득이 가는 부분이 꽤 많았습니다. 우리 몸은 항상성이 있어서 스스로 알아서 균형을 잘 맞춥니다. 병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나트륨과 칼륨의 균형을 잘 맞추며 건강하려고 노력하죠. 저염식을 하면서 지나치게 칼륨이 많이 든 음식을 먹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왕왕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의도적으로 참고 안 먹고 과잉 섭취하는 문제는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항상성 유지를 스스로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또한 이건 비단 염분 섭취나 나트륨 권장에 관한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데, 무슨 무슨 통계에서 이렇다더라, 임상 검사를 해봤더니 이렇다더라 하는 통계치는 숫자 장난이 아닌가, 통계 장난에 놀아나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적 근거라는 이름 아래 화려한 통계 수치를 제시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가설이자 추정이고 확률일 뿐이다. 목적에 따라 의도한 부분을 증명하기 위해 숫자는 얼마든지 재가공될 수 있다(p.136)고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조작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빈번하게 일어남을 주의해야 합니다. 문제는 소금이 아닙니다. 소금을 바라보는, 소금을 둘러싼 불량 과학, 가짜 지식입니다.(p.144)

<짠맛의 힘>은 소금이 몸에 아주 좋으니 무조건 소금을 많이 먹자는 책은 아닙니다. 평소에 소금을 제대로 섭취하자는 내용과 더불어 몸에 이상이 있을 때는 소금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 이를테면, 신맛이나 쓴맛을 증상에 맞게 - 것들을 보충해야 좋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특히 함께 먹으면 좋은, 구하기 쉬운 것들을 제시해줍니다. 특히 168 페이지의 염증이 있을 때 염증의 종류, 소금과 함께 추가로 먹으면 좋은 음식을 소개 해둔 것은 따로 메모해서 엄마께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이 책을 통해 소금에 관한 오해를 좀 풀었습니다. 예전부터 생명 유지에도 필수불가결했던 짠맛, 식품의 보존 및 좋지 않은 기운을 몰아내는 데에도 사용되었던 소금이 어쩌다가 이렇게 악한으로 취급 당하게 되었는지 좀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좀 만병통치처럼 나와서 거부감이 들기도 한데, 혹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소금을 먹을 때 소금과 물, 그리고 다른 영양소와의 균형을 맞추는 게 무척 중요한 것처럼요.

소금 섭취에 관한 죄책감을 내려놓고 올바른 식염 섭취하는 법을 슬기롭게 판단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소금에 관한, 짠맛에 관한 오해가 있으신 분은 <짠맛의 힘>을 통해 소금이란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며 무조건적인 저염식이 과연 좋은 것인가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가능하다면 부록의 소금 디톡스 2주 프로그램도 해보고 싶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말리시겠지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로스 사이언스 -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서가명강 시리즈 2
홍성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독서를 하면서 과학을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사람일수록 인문, 철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과학만을 위한 과학은 자칫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얻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연구하는 것이 인류 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윤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맹목적이거나 편협된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각과 적합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방향의 독서나 영화 감상 등을 통해 시야를 넓히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독자 입장에서, 그냥 즐겼던 영화나 책, 때로는 미술 작품을 과학자의 눈으로 분석해 준 걸 좋아합니다. 물론 과학 영화를 철학자나 심리학자가 분석해준 책도 좋아하고요. 학생 때 똑똑 나뉘었던 교과목이 경계 없이 넘나드는 것 자체를 즐거워합니다.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융합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21세기북스의 새로운 시리즈 '서가명강'의 두 번째 <크로스 사이언스>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홍성욱 님의 강연입니다. 전부터 홍성욱의 책을 좋아하고 있었기에 이 책 역시 큰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요.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책을 들고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짬짬이 읽다가 마침내 자리를 잡고 단숨에 읽어버렸거든요. 이 책은 소설, 영화 등을 통해 과학자와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냅니다. 프랑켄슈타인을 다루면서 대중매체에 드러난 과학자의 모습도 이야기하고 퀴리 부인의 위인전(혹은 소설)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당시 과학하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 게다가 퀴리 부인에 관한 만들어진 이미지도 알려줍니다.

과학이라는 게 도덕이나 철학과 마찬가지로 시대적 윤리 기준이 다르기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나 연금술사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과학자들도 있었습니다. 현재 연구되는 줄기 세포라거나 AI 연구 같은 것도 미래가 되면 미친 짓, 잘 못된 짓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이것이 옳은 행동인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겉이 단단해 보존력이나 유통성이 좋은 토마토를 만들어 낸 지 30여 년, 지금은 당연하게 그 토마토를 먹고 있지만, 책을 통해 토마토에 나방의 유전자를 섞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자 어쩐지 먹고 싶지 않아졌거든요. 어릴 때만 하더라도 뿌리엔 감자, 줄기엔 토마토인 식물이 개발될 거라는 미래 과학 이야기를 읽고서 눈을 빛냈는데요. - 모리나가의 <타로 이야기>에서 주인공 타로도 그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걸 보면 이런 식품에 관한 기대를 한 건 저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과학자들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가해 좀 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었지만 현재는 GMO에 관한 불신이 더 많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들었냐고 욕을 먹고 있지만, 처음에는 좋은 의도였다고 -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인류를 위한 연구만 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차별을 위한 과학 연구도 행해졌으니까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연구라거나 흑인은 열등해서 원숭이에 가까운 생물로 노예로 부려도 된다는 연구, 영화 <가타카>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우생학 같은 정신 나간 연구도 있었으니까요.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 기준으로 제정신 아닌 연구이지 당시엔 올바른 연구였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연구들은 모두 옳은 연구일까요. 누구나 쉽게 구입해서 실험해볼 수 있는 크리스퍼 키트가 있을 정도로 유전자 조작은 흔한 일이 되었고, 인간과 유사한 판단을 하는 AI, 더 뛰어난 결과를 도출해내는 AI, 사이보그, 안드로이드의 개발 등이 인류와 지구를 위해 좋은 결과만을 얻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는 미래의 모습을 유토피아로 그리기도 하고 디스토피아로 그리기도 합니다.

<크로스 사이언스>에서는 대중매체를 통해 과학을 이야기하고 과학자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그립니다. 읽어보았던 책이나 관람했던 영화의 이야기가 나오면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고, 낯선 작품의 이야기를 다룰 때는 그 책을 읽어보고 싶고, 영화를 보고 싶어졌습니다. 참 좋은 강연, 좋은 책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스토리콜렉터 7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를 읽은 분께는 <속죄의 소나타>를 권해왔습니다. <속죄의 소나타>를 읽은 분께는 역시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를 권했구요. 두 소설 모두를 읽은 분은 알고 계시겠지만 각 소설에는 한 소녀의 피아노 연주를 통해 인생이 달라진 한 사람과 결국 그 선율에 묶여버린 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저는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를 먼저 읽었기에 <속죄의 소나타>를 읽다가 소녀의 연주 장면을 본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았습니다. 아무런 감정 없이, 사람을 왜 죽이면 안 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어린아이를 죽여 시신을 여기저기에 전시해두었던 미코시바 레이지가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새사람이 되어 출소 후에는 변호사로 일하며 피해자의 가족에게 속죄를 하거든요.

하지만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에서는 그 반대입니다. 스포일러를 피하려면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에서는 아주 잔인한 연속 살인이 발생합니다. 제목은 연쇄 살인마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연속 살인입니다. 아무튼, 초등학생의 일기와 같은 쪽지가 현장에 떨어져 있었는데요. 개구리를 가지고 놀 듯 - 저는 개구리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도 무척 싫지만,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전시합니다. 범인이 잡히긴 하지만, 일본의 형법 39조에 의거 정신이상자라는 이유로 감형되어 병원에서 수형생활을 하는데요. 원통하게도 10개월 만에 출소합니다. 50음도 순으로 살인을 하던 범인이 - 전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더 이상 범행이 연속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 아행의 마지막인 '오'를 완성하고 싶었던 것인지, 오에자키 교수가 자택에서 폭사합니다. 처참한 현장에 남아있는 개구리 남자의 쪽지가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데요.

다음번 범행은 '카'행이 되어야 하는데 건너뛰고 '사'행의 사람들이 희생되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무엇이고 희생자 간의 연관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게다가 범행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벌어지기에 추적하기도 어렵습니다. 역시 이 책에서도 고테가와는 고생고생. 와타세 경부는 까칠하지만 예리하기 그지없습니다.

소설은 내내 심실상실자, 심신미약자에 의한 범죄는 어째서 강하게 처벌할 수 없는가 묻습니다. 판단력이 없거나 흐린 상태에서 벌인 짓이라면 아무리 흉악한 범죄라도 처벌받지 않아도 좋은 것인지. 과거에 잠시 시행되었던 우생학에 의한 강력한 처벌을 사용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도 고개를 듭니다. 잔인한 범죄에 희생된 피해자의 가족은 어디서 그 원통함을 달래면 좋을까요. 심지어 이 법을 악용해서 심신미약자인 척하는 범죄자가 없다고 할 수 없잖습니까. 뉴스에도 그런 의심이 가는 범죄자들도 종종 보이던데요.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은 전편보다 더 잔인합니다. 장면을 상상해서는 안 됩니다. 온존된 시신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 뿌려져있는 악의와 기망이 피처럼 책장에 배어납니다. 고테가와를 응원하는 걸 잊고 범인은 왜 저런 짓을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만, 심신미약자에게 무슨 생각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생각이 있으니 저런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위스퍼러가 없는 이 마당에 단독으로 계속 살인을 저지를 수는 있는 건가, 뭔가 최면 같은 게 걸려 있는 건가 방황하게 합니다.

정신없이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만나는 반전 장치.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역시 나카야마 시치리의 세계는 대단해요.

참, 피아노 연주로 서로 다른 운명을 걷게 된 그들이 이 소설에서 만납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뻤어요. 등장인물이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불멸할 것이라 여깁니다. 완전한 불멸은 아니더라도 죽음이 늘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죽음을 맞이하는 준비를 좀처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설 명절 직전, 서울에 계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신기하게도 몇 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과 음력으로 같은 날입니다. 자손들이 같은 날 모일 수 있게 도와주신 모양입니다. 두 분다 언젠가는 돌아가실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죽음에 대한 대비를 하셨나 봅니다. 자손들은 편안하게 어른의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어른의 죽음을 맞이하며 '내가 죽을 때는 이런 절차를 밟아야겠고, 연명 치료에 관한 문서도 준비해두어야겠다.' 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저희 어머니와 이모, 외삼촌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설 연휴 전에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읽었던 저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는 데 순서 있어도 가는 데엔 순서가 없다지만 어쩐지 아직은 갈 것 같지 않고, 가고 싶지도 않은데 나의 장례식이라거나 존엄사에 대해 생각하는 건 재수 없는 일 아닌가 싶다가도 인간다운 모습으로 죽으려면 최소한의 의견은 미리 주변에 말해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인 유성호 님이 쓴 책으로 서가명강 시리즈 제1권입니다. 우리나라의 법의학자는 40여 명으로 (인터넷에서는 50여 명) 영화나 CSI 같은 드라마와는 다른 현실적인 일이기에 후배 양성도 힘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제1호 법의학자 문국진 님의 저서를 여럿 읽어 막연하게 법의학자에 대한 존경과 동경을 갖고 있는 저는, 과연 법의학자가 말하는 죽음은 어떤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죽음을 만나는 우리와는 달리, 수많은 죽음, 여러 형태의 죽음을 만나는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책의 1부에서는 법의학자로서 만났던 여러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문국진 님의 저서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것과 같은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만, 아무래도 근래에 일어났던 일인데다가 뉴스에서 접했던 사건도 있어서 마냥 흥미로워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릴 적 알고 지냈으나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신 지인의 이야기와 같은 에피소드도 실려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2부에서는 우리는 왜 죽는가에 관한 강의를 읽을 수 있었는데요. 생명의 시작부터 죽음, 그리고 죽을 권리에 대해서, 자살에 관해서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3부로 이어지면서 연명치료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각종 줄에 의지해서 목숨만 이어가는 삶을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예전 같으면 사망했을 것을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상태로 살아있는 건 나 자신과 남은 사람 모두에게 슬픈 일인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지킨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죽음을 죽음답게, 인간의 모습으로 그렇게 맞고 싶습니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가지의 죽음이 있다. 나만의 고유성은 죽음에서도 발휘되어야 하지 않을까?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이다. 이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p.2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