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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ㅣ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불멸할 것이라 여깁니다. 완전한 불멸은 아니더라도 죽음이 늘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죽음을 맞이하는 준비를 좀처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설 명절 직전, 서울에 계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신기하게도 몇 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과 음력으로 같은 날입니다. 자손들이 같은 날 모일 수 있게 도와주신 모양입니다. 두 분다 언젠가는 돌아가실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죽음에 대한 대비를 하셨나 봅니다. 자손들은 편안하게 어른의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어른의 죽음을 맞이하며 '내가 죽을 때는 이런 절차를 밟아야겠고, 연명 치료에 관한 문서도 준비해두어야겠다.' 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저희 어머니와 이모, 외삼촌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설 연휴 전에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읽었던 저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는 데 순서 있어도 가는 데엔 순서가 없다지만 어쩐지 아직은 갈 것 같지 않고, 가고 싶지도 않은데 나의 장례식이라거나 존엄사에 대해 생각하는 건 재수 없는 일 아닌가 싶다가도 인간다운 모습으로 죽으려면 최소한의 의견은 미리 주변에 말해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인 유성호 님이 쓴 책으로 서가명강 시리즈 제1권입니다. 우리나라의 법의학자는 40여 명으로 (인터넷에서는 50여 명) 영화나 CSI 같은 드라마와는 다른 현실적인 일이기에 후배 양성도 힘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제1호 법의학자 문국진 님의 저서를 여럿 읽어 막연하게 법의학자에 대한 존경과 동경을 갖고 있는 저는, 과연 법의학자가 말하는 죽음은 어떤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죽음을 만나는 우리와는 달리, 수많은 죽음, 여러 형태의 죽음을 만나는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책의 1부에서는 법의학자로서 만났던 여러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문국진 님의 저서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것과 같은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만, 아무래도 근래에 일어났던 일인데다가 뉴스에서 접했던 사건도 있어서 마냥 흥미로워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릴 적 알고 지냈으나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신 지인의 이야기와 같은 에피소드도 실려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2부에서는 우리는 왜 죽는가에 관한 강의를 읽을 수 있었는데요. 생명의 시작부터 죽음, 그리고 죽을 권리에 대해서, 자살에 관해서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3부로 이어지면서 연명치료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각종 줄에 의지해서 목숨만 이어가는 삶을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예전 같으면 사망했을 것을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상태로 살아있는 건 나 자신과 남은 사람 모두에게 슬픈 일인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지킨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죽음을 죽음답게, 인간의 모습으로 그렇게 맞고 싶습니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가지의 죽음이 있다. 나만의 고유성은 죽음에서도 발휘되어야 하지 않을까?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이다. 이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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