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 정치를 없애고자 탕평책을 펼친 영조는 백성을 위한 왕이라는 면에서는 분명 훌륭한 왕입니다. 보통의 선한 백성 뿐만 아니라 죄수의 인권마저도 생각했을 정도였는데요. 삼복법, 사적형벌금지등이 그런것인데, 신문고 제도도 부활시켜서 백성의 소리를 듣고자 노력했습니다. 게다가 균역법도 시행했지요. 국방도 든든히 하는 한편 왕 스스로 흥미가 있어서였는지 문화도 꽃피운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역대의 조선왕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집안 사정에는 답답할 정도였는데요, 탕평을 하려는 왕이 노론의 음모라지만 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다니, 이런 슬픈일이 다 있을까요.
역린이란, 용의 비늘 중 목덜미에 거꾸로 난 비늘을 말합니다. 군주가 노여워 할 만한 약점, 혹은 군주의 노여움을 일컫지요. 그렇다면, 영조에게 있어서의 역린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에게 있어서 역린이란 '양위'라는 두글자요 '태상왕'이라는 세글자였습니다. 책에서의 왕은 천년만년 살면서 왕권을 누리길 바라지만 세자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던 것이지요. 영조와 사도세자와의 사연은 사도세자가 정말로 방탕하고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설과 그런척 했다는 설, 혹은 노론파의 거짓상소로 인한 누명이라는 설등 아직까지도 개운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 노론의 입김이 작용했으며 당파 싸움에 휘말려 운명을 다한 것만은 사실일겁니다.
당파 싸움을 종식시키고 싶어했지만 결국엔 자식을 죽인 아비라는 오명을 천년만년 안고 가야만 한 왕 영조. 책의 제목은 그리하여 역린이지만, 이 책 역린 1의 주인공은 단연 세자 이선, 사도세자입니다.
영조 36년 (1760) 온천행차를 하던 세자 일행이 불어난 한강때문에 물을 건너지 못하자 백성들이 선창에 발이 묶인 왕세자를 위해 배들을 연결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돕습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용주를 따라 천세를 외치는 백성들의 긴굽이가 강변을 따라 꿈틀거리는 교룡으로 보였고, 백성들 하나하나가 용의 비늘로 보였습니다. 그날 이후 이선은 그간 억눌러왔던 자신의 마음을 펼치기로 합니다.
이런 굵은 역사의 흐름- 정치적인 흐름 중에도 백성들의 역사도 흐르는 법이지요.
황율이라는 무관은 살수 광백의 검에 부상을 당하고 아비의 칼을 뺏기고 의녀 개울의 정성스러운 간병을 받으며 사랑을 키우게 됩니다.
광백은 내관 안국래의 분부로 고아 아이들을 주워다가 산중에서 아주 잔인한 방법을 사용해 살수로 키워가고 안국래는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청부 살수 청탁을 받습니다.
광백이 주워다가 살수로 육성하는 아이 중 칠십칠노미 갑수는 산채에서의 첫날 동생 을수를 잃고 독하게 살아 남습니다. 그러다가 죽은 동생과 꼭 닮은 아이 쥐똥이에게 을수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동생처럼 아낍니다. 한편 황율은 평양에서 세자를 구하다 결국 광백에게 죽고, 하룻밤의 정으로 임신한 개울은 딸을 낳고 죽습니다.
책은 교룡을 꿈꾸었지만, 승천하지 못하고 뒤주안에 갖혀죽은 세자의 죽음까지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한권의 이야기는 영화 <역린>을 보기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할 것입니다. 영화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스토리를 풀어 낼 줄지는 모르겠지만, 화려한 액션과 현빈의 사극 변신만으로도 마음이 혹합니다. 영화의 카피에는 '24시간의 싸움'이라고 되어있는데요. 아마도 실패로 끝난 정조암살 시도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24시간의 싸움이기에 등장인물들의 인과 관계를 잘 알고서 영화를 본다면 영화의 맛이 더 살아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듭니다. 그러므로 책을 읽고서 영화를 본다면 더 맛깔나겠죠.
소설은 마치 강물과 같았습니다. 평탄하게 흐르기도 하고, 샛강으로 빠지기도 하는가하면, 어디선가 시냇물이 흘러들어와 큰물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급류를 만날때도 있지만 빠르게 흘러가다가 다시 전환되기도 했습니다. 역사, 상황, 액션 묘사등 하나도 빠질 것이 없는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아아, 너무나 초조합니다. 원래 1권만 읽고 리뷰하는 법이 없는데, 여러권으로 된 책은 본디 다 읽고 한번에 리뷰하는데, 안타깝게도 2권은 5월에 나온다고 하네요. 앞으로 그들의 시간은 어떻제 흘러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 무척 궁금합니다.
검은 후드티 소년은 동화입니다. 읽고서 괜찮다면 딸에게 권하려고 읽었지요. 하지만, 이 책은 동화 이상이었습니다. 어린이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이야기였습니다.
책의 초반에는 마틴과 주변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가 우리나라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주인공은 제이라는 한국계 입양아였지요. 책의 초반은 금새 지나가고 마틴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단지 후드티를 입고 밤길을 걸었을 뿐인 그 아이의 죽음 말이지요. 사건 이후엔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마틴의 친구였던 아이들은 마틴의 억울한 죽음과 가해자인 짐머만을 처벌해 달라는 후드티 시위를 합니다. 결국 백만 후디스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을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트레이본 마틴 사건은 오래전 사건이 아닙니다. 2012년에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지요.
당시 후드티를 입고 편의점에 들렀다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길을 걷던 마틴은 자경단원인 짐머만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그러나, 짐머만은 그대로 풀려나고, 이를 탄원하고자 백만 후디스 운동이 벌어집니다. 책에서는 가상의 아이 세명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아이들 이외엔 거의 모두가 실제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화가납니다. 뿌리깊은 인종차별. 마틴이 죽어야했던 이유는 흑인 소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에서는 백만 후디스 운동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만, 실제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짐머만이 작년 무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조지 짐머만 무죄 평결에 미국 100여곳에서 항의 시위가 일어났지요.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중 백화점에서 쇼핑하다가 보안 요원들이 뒤따라 오는 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레이본 마틴은 자신의 35년전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고, 자신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이 아이를 닮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짐머만은 당당하게 거리를 쏘다니며 또 다른 사건을 치지요. 이혼 소송중인 자신의 아내를 찾아가 총기 난동을 벌였음에도 아내가 고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풀려나고, 동거중인 애인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고 총기난동을 벌여 현재는 수감중인모양입니다.
흑인 소년을 살해하고도 무죄평결을 받았기에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걸까요? 이런 시한폭탄 같은 인간을 거리에 풀어놓은 미국사회가 이해가지 않습니다. 비무장 흑인소년을 권총살해한 짐머만이 정당방위로 무죄가 되는 그런 사회. 인종차별이 아직도 이렇게 심각하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종차별 국가입니다. 언제쯤이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그런 일이 없는 세상이 올까요?
처음부터 결말을 알고 읽는 책 만큼 지루하거나 허무한 소설은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저를 사로잡았고 두근거림에 현기증을 일으켰습니다.
폼페이 멸망 불과 4일간의 기록이지만 그 시간이 결코 짧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며칠후면 끝나버릴 운명이라는 것을 저는 알지만, 소설속의 그들은 몰랐기 때문에 정치적, 경제적인 탐욕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며칠 남지 않은 그 생.. 좀 더 충실하게 보낼 것이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그들의 잔인한 운명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렇다면, 나 역시 한치 앞도 모르면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폼페이>에 등장하는 인물은 무척 다양합니다.
신념과 정직을 신조로 삼는 수도기사 아틸리우스, 노예 출신이었으나 부정한 수단으로 졸부가 되어 잔인하고 고집스러운 권력자가 된 암플리아투스, 그의 딸이지만 정의로운 여전사 타입의 코렐리아, 암플리아투스의 주인이었으나 결국 돈에 굴복되어 꼭도각시 노릇을 하는 포피디우스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최후의 날에 죽지 않았더라도 지금은 이 세상에 없을 - 당연하게도 - 그들이지만 아틸리우스와 코렐리아만은 살아남아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에 그들은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요?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움직입니다. 그렇기에 책을 읽고 있는 저는 마치 인물들이 실존했던 것처럼 느끼고, 안타까워하며, 때로는 화를 냈습니다. 인물 묘사 뿐만 아니라 화산이 진행되어가는 과정을 전조부터 최후까지,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내는데, 영화 <단테스 피크>나 <볼케이노>와는 다른 긴장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었고 이내 공포감까지 느꼈습니다. 휴화산지대인 제주에 살고 있어서 그랬을까요?
폼페이는 수도시설이라거나 체육관, 목욕탕, 빵집, 관공서, 광장 등등 편의시설을 잘 갖춘 무척 세련된 도시였지만 아무리 문명이 발달했다하더라도 자연의 힘은 이겨낼 수 없었고, 결국 회색빛 화산재에 갇혀 1600여년간 지하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천여년이 지난 지금이라면 그들과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있을까요? 폼페이에 대해 알게 된 딸아이가 겁을 집어먹었기에 지금은 지질조사 등으로 미리 잘 알수 있으므로 괜찮다고 말했지만 실은 별로 그렇지 않다는 걸 압니다. 현대는 화산폭발과는 또 다른 인간으로 인한 재해도 있지 않나요.
인재와 자연재해.. 과연 어느쪽이 우리를 더 괴롭게 할까요
<사족>
폴란스키 감독 올랜도 볼룸,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로 제작된다고 표지에 나와있지만, 영화는 없던일로 되었고..
이번에 개봉한 폼페이:최후의 날 과는 다른 내용입니다.
험악한 인상과 어린시절 학대의 영향으로 바르게 살지 못한 야가미가 난생 처음 좋은 일을 하고 새사람이 되어보려는데, 뜻밖의 사건이 그의 앞을 막습니다.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 이식을 위해 입원하기로 한 하루 전날 벌어진 끔찍한 사건. 골수이식이라는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이지만 며칠간의 입원비는 부담해야하기에, 자신과 집을 바꾸어 살고 있는 지인에게 돈을 빌리러 갑니다. 그러나 거기서 야가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양 엄지가 반대쪽 엄지 발가락에 묶여있는데다가 뜨거운 물에 삶겨죽은 시신이었습니다. 무슨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닫기도 전에 그를 추적하는 의문의 조직M, 게다가 이 사건은 연쇄 살인사건이었던 관계로 주요 참고인으로서 수배되어 경찰에게도 쫓깁니다. 둘만도 버거운데, 그레이브 디거라는 은빛마스크의 사내에게도 쫓기지요. 어쩌라고. 도쿄 최고의 인기남이 되어버렸네요.
야가미는 그들을 반드시 따돌려야 합니다. 도대체 너희들은 왜 나를 쫓는거냐. 야가미는 기필코 골수이식의 도너가 되어야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24시간 쉬지도, 먹지도 않으며 숨가쁜 도주전을 펼칩니다.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액션 추격전. 서스펜스.
톰과 제리 이후 최고의 추격전이라고 말한다면 실례가 될까요?
아무튼 소설의 중후반까지도 그를 쫓은 조직 M과, 그레이브 디거와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채 그의 행적을 따라 제 시선도 이동했습니다. 잘 알지도 모르는 도쿄를 누비기는 야가미나 저나 마찬가지. 그래도 추격신은 최고입니다. 영화를 보듯, 아니 어쩌면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쫓고 쫓깁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직접 읽어봐야만 그 맛이 제대로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긴박한 상황과 느닷없이 마주치게 되는 적들에 대한 긴장감과 스릴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안데르센의 동화들을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천천히 읽어보면, 어린시절 아름답다고 여겼던 그 동화들이 사실은 너무나도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들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해피엔딩인 동화들도 그 주인공들이 겪어야만 했던 시련들은 그저 몇 줄의 묘사로 끝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지요.
드라마 <신의 선물>에 소개되었던 어머니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어린시절에는 그냥 무서운 이야기처럼 여겨져서 죽음도, 거기에서 아이를 되찾으려는 어머니의 모습도 모두 무섭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어머니이기 때문일까요. 이야기의 어머니는 제 자신이 되어 가슴 안 깊은 곳에서 심장 가득 뿌리내리고 있는 사랑의 줄기를 잡고 흔들어대며 뽑아내려는, 그런 고통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아이가 어서 낫기를 제발 살아나서 발그레한 볼을 내 뺨에 부비며 뽀뽀하며 사랑한다 말해주길 바라는 것이 과분한 소망이었나요. 가난한 어머니가 깜빡 조는 사이 죽음은 아이를 데려가버리고 맙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되찾으러 죽음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가며, 목이터져라 노래도하고, 눈도 잃고, 흑단같던 머리도 하얗게 맞바꾸며 아이를 되찾길 소망합니다.
"어떻게 나보다 먼저 여기에 올 수 있지?"
"전 엄마니까요!"
어머니는 단지 자신이 어머니라는 이유만으로 초인적인 힘을 내어 죽음보다도 먼저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고,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놓았지만 아이를 돌려주지 않는 죽음에게 아이를 돌려주지 않으면 이 곳의 모든 꽃, 다른 아이들의 생명의 꽃을 꺾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자신과 같은 슬픔을 다른 어머니들에게도 느끼게 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했고, 아이가 다시 살아나 자신과 함께 가난한 삶을 사는 것과 이대로 하나님의 정원에서 행복하게 뛰어 놀 수 있게 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선택이지요.
저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욕심같아서는 괴롭더라도 나와 함께 해주었으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