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밀리언셀러 클럽 147
야쿠마루 가쿠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악당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아. 그래서 용서라는 성가시기 짝이 없는 걸 구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아. 악당은 자신이 빼앗은 만큼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도 잘 알아. 그래도 기어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마는 인간, 그게 바로 악당이라는 거다.

-p.243


정말 그런 걸까요? 죄를 저지르고 형을 사는 동안에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피해자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자신 역시 잃는 것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마는 걸까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의 경우 소년범 문제가 무척 심각한 모양입니다. 일본의 뉴스를 자주 접하지 않아 소설이나 만화에서 보는 것이 고작이지만, 허구를 실제라고 여겨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어느 정도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년범이나 성인범(?)이나 그 죄의 질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님에도 단지 미성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감형을 받거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특별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권 때문이라고 하던데,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우선시 되는 인권이라니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해자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살고... 그러면서 제대로 갱생해서 나오면 좋겠습니다만, 감옥에서 더 질 나쁜 사람과 의기투합해서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어 나오기도 한다니 한숨이 나옵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그렇다고 알 고 있습니다.


<악당>에 등장하는 많은 악당들의 대부분도 여전히 나쁜 짓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누나를 잃은 사에키 슈이치는 경찰이 되어 근무 중 납치 강간범에게 총을 들이대는 바람에-발포는 하지 않았지만- 일을 그만두고 현재는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누나는 미성년이었던 세 명에게 강간 살해당했습니다. 아픔은 계속해서 그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근무하는 탐정사무소에 노부부가 찾아옵니다. 11년 전 아들을 살해하고 소년원에 들어갔던 사카가미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그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그 이유를 찾아달라고 합니다. 사에키는 사카가미에게 접근해서 그를 관찰하지만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노부부에게 그대로 보고합니다. 사카가미를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친구가 되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소년범들에게 누나를 잃은 사에키로서는 처음부터 사카가미에게서 용서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을는지도 모릅니다. 

소설은 연작 단편처럼 진행됩니다. 매 장마다 각각의 의뢰인이 등장, 사에키가 사건을 조사하고 의뢰인에게 보고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누나를 죽인 범인들의 뒷조사도 하는데요. 사에키 역시 그들을 용서할 이유를 찾고 싶어서였던 건 아닙니다. 그는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그의 마음을 녹여줄 하루카. 그녀는 사에키를 사랑합니다. 사에키는... 글쎄요.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범죄 피해자가 가장 괴로운 순간은 가해자가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알았을 때다. 가해자가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를 눈곱만치도 반성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다.

-p.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 - 병, 캔, 상자에 담긴 쾌락
게리 S. 크로스.로버트 N. 프록터 지음, 김승진 옮김 / 동녘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오래전에 사람들을 중독시켰던 것들이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아도 분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여기서 중독이라는 건 독극물에 해를 입는다는 뜻이 아니라 특정한 그것이 없으면 안절부절하며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을 갖게 되는 걸 말하지요. 금방 떠오르는 건 알콜 중독, 마약 중독....또 요새 문제가 되는 인터넷 혹은 스마트폰 중독이 있을텐데요. 그런 것들에 중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며칠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건 제가 책에 중독되었기 때문일겁니다.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에서는, 말 그대로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제목만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에서는 상자, 용기, 포장재로 인한 (그 내용물에 대한) 중독, 혹은 의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그 분야가 무척 다양합니다.


 

 이 책은 포장된 쾌락이 어떻게 부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미국에서 매스 마케팅과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달로 독특한 상품 집단이 등장한 과정을 다룬다. 이는 '현대 소비사회의 부상'이라는 더 큰 주제의 한 측면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 측면은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한 세기의 기간을 빨리감기로 돌려보면 윤곽을 더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본 상품들은 당시에 떠오르고 있던 '소비사회'의 일부였다. 즉 사람들이 물건을 만들기보다는 구매하게 되고, 또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물건을 소비하게 된 '쇼핑 문화'의 일부였다. 한때는 쾌락이 희소한 것이었고, 대게 사회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심지어 공짜였지만, 기계화와 매스 마케팅을 거치면서 상품화되고, 대량생산되고, 개인 용량 단위로 판촉되고, 개인적 차원에서 소비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은 우리 정체성의 일부가 돼, 우리가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는 방식과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을 재구성했다. 나아가 소비사회는 우리의 감각 경험도 변모시켰다.

-p.360

 


이 책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장과 2장의 내용을 정독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두 장에서는 우리의 문명의 순간이 어떻게 보존되고 그것들이 튜브에 들어가기 시작한 후로부터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포장재의 급격한 발달 이전과 이후로 문명이 나뉘는 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데요. 통조림, 우유 팩, 콜라 병 같은 것들이 등장함으로서 식품의 유통 구조와 식품산업의 형태가 달라졌다는 걸 생각하면 그 뒤의 내용들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안전한 유통을 위한 포장재가 개발됨으로서 상표나 포장 디자인도 생겨났으니 새로운 직업군도 생겨났을테고요.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초기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겠지만 점점 산업화, 자동화의 진행으로 오히려 실직자가 늘었겠지요. 모든것은 문화의 흐름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담배조차 씹는 담배나 파이프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그 중독성이 덜했지만 종이담배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좀 더 깊게 들이마시게 되고 남녀노소 누구나 접할 수 있도록 향과 맛을 첨가하는 바람에 독성과 중독성 모두가 증가하고 말았습니다. 

포장되는 것에는 식품뿐만 아니라 추억도 있는데요. 예전에 사진이 없던 시절엔 온전히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며 과거를 추억해야만 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어릴 적에는 어땠는데 하면서요. 하지만 사진이 생겨남으로써 객관적으로 과거를 저장할 수 있게(일부겠지만요)되었습니다. 우리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필름과 현상비가 아까워 꼭 필요할때만 사진을 찍곤 했었는데요. 지금은 누구나 휴대폰에 있는 카메라로 쉽게 찍고 쉽게 버립니다.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매체, 사진을 담을 수 있는 매체가 달라진 것이지요. 코닥사에서 개발했던 필름이나 앨범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지금은 업로드 해둘 수도 있고, 전자 앨범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초기 영화 - 이것도 사진기술의 발달과 함께 진화했겠죠-에서의 작업및 상영방식과 지금의 방식이 달라진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영화관만 해도 예전엔 각 극장에서 서로 다른 영화를 개봉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영화 개봉일이 되면 종로와 충무로를 누비고 다녔었는데, 현재는 멀티플렉스 형태라 영화관의 브랜드를 보고 찾아가는 방식으로 바뀌었죠.

이런 문화의 변화는 좋은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존재했던 TV 채널 전쟁. 좀 여유있는 집에서는 방에 TV를 따로 두어서 전쟁의 횟수를 줄였다지만 요새는 어디 그렇습니까. 정 맘에 들지 않으면 PC로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보면 되는걸요. 어제 뉴스에 따르면 TV를 보면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사람도 40%가 넘는다고 하던데요. 현대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상자에 든 내용물들에 중독이 되어 있나봅니다. 과거 축음기의 발명으로 LP에 소리를 가둬 두었을 때만 하더라도 모두 모여 소리를 즐겼었는데, 이제는 개인 기기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취향의 존중일 수도 있지만 공유할 수 없거나 공유하지 않는다는 우울함도 함께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환상역시 포장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놀이 공원은 사람들의 환상을 잘 포장하여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누리게 해 줍니다. 이 책에서도 말하지만 실은 놀이공원이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어른을 위한, 어른의 마음속에 있는 아이를 위한 공간이기에 자신의 동심을 펼치며 환상을 이룰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나요? 쾌락과 환상을 한 장소에 묶어둠으로서 그 곳에 가면 환상의 세계를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엔 장단점이 있을겁니다. 급격한 변화, 정형화된 물건들, 용기 안에 들어 있는 즐거운- 맛난 것들. 이들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잡아두려합니다. 한번 걸려들면 좀처럼 발을 빼기가 어렵죠.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중독되기 좋은 형태로 계속해 개발되고 있습니다. 기분 나쁜 중독도 있을 것이고, 빠져들어도 좋은 중독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선택은 개인의 몫이니 스스로 잘 판단해야겠죠? (하지만 얻어진 결과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고 믿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과잉 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가난한 나라들은 부유한 나라들을 따라잡기 위해 내달리고 있다. 과잉 소비의 나라들이 나머지 나라들에 대해 이렇게 기준을 설정하는 바람에, 세상을 누린다는 것은 곧 소비를 통해 세상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포장된 쾌락은 바로 이런 새 세계를 가능케 한다. 인간이 전통적으로 경험해온 청각, 시각, 미각적 만족, 심지어 동작과 환각까지 끌어 모으고, 저장하고, 판매하는 새로운 방법을 가져와서 말이다. 이것이 포장된 쾌락이 일으킨 인간감각의 대변혁, 즉 포장된 쾌락의 혁명이다. 이 혁명이 인간의 경험을 너무나 근본적으로 바꿔낸 나머지 우리는 종종 그 변화 자체를 잊곤 한다.

-p.4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종가의 색목인들 셜록, 조선을 추리하다 1
표창원.손선영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다 읽고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 좀 했습니다. 애초에 이 책은 팬심으로 구매했거든요. 표창원님에 대한, 손선영님에대한, 그리고 셜록 홈즈에 대한 팬심말이에요. 셜록 홈즈가 라이엔바흐 폭포에서 모리어티와 대결 한 후 사라졌던 그 기간, 조선에 왔었다는 설정이 독특하기도 하고 과연 어떤 이야기를 펼쳐줄 것인가 무척 기대되었습니다.

말썽쟁이 어린 시절부터 셜록 홈즈를 꿈꿔왔던 표창원과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가는 손선영의 만남이니 조선에서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사건을 해결하는, 또는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장죽대를 입에 물고 있는 셜록 홈즈를 볼 수 있겠거니 했습니다만. 기대를 과하게 했었나 봅니다. 표창원의 글로도, 손선영님의 글로도 셜록 홈즈로서도 뭔가 조금씩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셜록 홈즈 특유의 관찰력이나 추리력, 논리력 같은 것도 소설에서는 덜 드러나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마지막의 추리 장면에서도 '~입니다, ~한 것입니다'라는 확신에 찬 말투 대신 '~겁니다, ~일 겁니다.' 등 추측하는 -약간의 여지를 두는 말투를 사용해서 제가 상상하는 자신만만한 홈즈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마의 딸로 등장하여 셜록 홈즈와 함께 조선의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던 신여성 간호사 와선도 어쩐지 10% 정도의 매력이 부족했습니다. 홈즈와 와선 둘 중 어느 한쪽에 매력을 몰아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양분하다 보니 두 캐릭터 모두에게 부족한 부분이 생긴 건 아닌지.

애초에 팬심으로 읽게 된 책이기에 되도록이면 좋은 리뷰를 하고 싶었는데, 시원스레 큰 활자와 줄 간격마저도 책의 두께를 늘리기 위해 그러했던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겨,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선에 들어와 색목인 기녀(혹은 창녀)를 살해했던 연쇄 살인마를 추적해가는 과정을 스릴 있게 그리거나 캐릭터를 잘 살렸으면 좋았을 텐데, 무척 아쉬움이 많습니다. 팬심을 더한다고 하더라도 별을 많이 주기는 어렵겠네요. 제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화학자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했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프리모 레비는 1919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태어난 유태계 이탈리아인인데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화학과를 졸업 한 후 반파시스트 지하운동에 참여하다 결국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제3 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합니다. 다행히 살아남아 전후에 화학자로서, 그리고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어째서인지 몰라도 1987년 자살로 그의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이 책은 1975년 발표된 그의 세 번째 회고록인데요. 회고록이라고 해도 좋고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기율표라고 하면 누구나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periodic table)을 떠올릴 텐데요. 저도 그랬습니다. 수소로 시작하는 바로 그 표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의 목차도 수소로부터 시작하겠거니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하고 있었지요. 저는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때, 화학자가 쓴 주기율표대로 진행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과연 수소, 헬륨, 리튬을 이어 베릴륨을 지나가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책은 그런 가볍고 발랄한 책이 아니었습니다. 


책의 목차는 아르곤부터 시작합니다.

Ar. 18번 원소로 대기의 거의 1%를 차지하고 있지만 비활성기체로 반응성이 거의 없습니다. 애초에 아르곤이라는 이름이 그리스어의 'argos'(게으름뱅이)에서 온 것을 생각하면 참 성격대로다 싶은데요. 반응성도 거의 없고 활성화되지도 않는 거, 별로 필요없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렇다고 없애도 괜찮은 녀석은 아닙니다. 책의 첫 번째 아르곤 챕터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수많은 모르는 단어와 호칭들이 등장합니다. 그곳에 존재하고 있기에 그에겐 익숙하지만 저에겐 무척 낯선 사람들이 소개되고 등장합니다. 호칭이나 이름들이 너무나 생소해서 이들의 이름을 모두 메모해두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서는 바람에 사실 좀 두려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러면 어쩌지,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러나 아르곤을 무사히 넘기고 나니 편안해졌습니다. 저에게 낯선 것들이 사라졌거든요.


작가는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들을 하나씩 챕터의 제목으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마치 소설처럼 담담하게 말이에요. 원소번호 순서대로가 아니라 그의 인생 순서대로 원소가 등장합니다. 그의 유년시절 친구와의 소소한 실험 끝에 커튼을 태운 이야기라거나(수소) 아우슈비츠에서의 세륨 덕분에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사랑과 인생의 이야기가 철학적으로 그려집니다.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즐겁게. 주기율표에 인생을 담을 수도 있다니 대단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중간에 갑자기 등장하는 창작물(소설) 때문에 잠시 어리둥절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책을 잘 못 읽고 있나 당황하기도 했구요. 그래서 제자리 - 그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무척 기뻤습니다.


책 속에서의 그는 - 실제로도 그랬지만 - 화학자였기 때문에 실험하는 장면이 무척 많이 등장합니다. 고전적인 방법으로(그럴 수밖에!) 정량분석을 하고 미량원소 추출을 하거나 회분(Ash) 분석, 염이나 앙금을 얻는 장면들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변변찮은 환경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실험하는 것을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었습니다. 수은 챕터에서는 좀 아찔하긴 했지만요. 


심각하지만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문장도 무척 좋아서 독서 중에 잠시 책을 덮고 장면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사색해보기도 했습니다. 생각거리를 많이 던지거든요.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조금 어렵지만 권하고 싶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 지구의 2인자, 기생충의 독특한 생존기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년 정도 지났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딸아이의 머리에서 머릿니가 발견된 적이 있었습니다. 아니 21세기에도 머릿니가 살고있단 말인가! 놀라기도 하고 화도 나고 해서 머리를 깨끗이 감기고 참빗도 사다가 빗겨주었는데요. 저희 둘은 꼭 닮은 곱슬이라 참빗질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원인은 당시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것이 원장님 아들에게 감염, 같은 빗을 돌려쓰는 바람에 딸에게도 감염되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아이의 머릿니가 다른 아이에게 전염될까 봐 원장님께 빗을 돌려쓰지 마시라고 살짝 말씀드렸던 것인데, 원장님은 깔깔 웃으며 자신의 아들에게 머릿니가 있어서 그게 옮은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좀 황당하긴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말았습니다. 숱 많고 곱슬곱슬 한데다가 아이의 피부니 얼마나 야들야들하고 살기 좋았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머리를 박박 밀어버리고 싶었지만 - 아들이었으면 그랬을지도 몰라요 - 한창 멋부리기 좋아하는 여섯 살이었으니 꾸준히 노력하는 것으로 치료했습니다. 끔찍한 머릿니와 서캐, 기생충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요.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에 당당히 올라가 있더군요. 아, 머리에 기생하면서 피를 빨아먹으니 기생충이 맞습니다. 


평소에 기생충이라고 하면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편충, 촌충... 뭐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의외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질아메바 같은 건, 그냥 단세포 생물이로구나... 그러다 몸에 들어오면 설사를 일으키는 녀석들인가 보다... 했는데, 이 녀석도 기생충이라네요. 그러고 보면 기생충의 범위가 꽤 넓습니다. 요전에 읽었던 <내 몸속의 우주(롭 나이트, 브랜던 불러)> 때문에 혼란스러워졌어요. 어디까지가 기생충일까... 그러다가 생각이 <기생수>의 오른쪽이(미기)에게까지 미쳐서 이 녀석은 기생충(혹은 기생수)이 아니라 공생충(혹은 공생수)가 아닌가 하는 상상도 했고요. 

기생충이 뇌를 장악해서 숙주의 행동을 지배한다면 과연 어느 쪽이 기생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철학적인(?)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이 자꾸만 딴 데로 가버려서 잘 다독여 데리고 와야 했습니다.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는 앞서의 저서 <서민의 기생충 열전>보다 좀 더 무섭(?)습니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에서는 신기한 기생충의 세계를 엿보았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굉장한 녀석들이다...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서민 교수가 저보고 두려워하라며 쓴 글이 아닐 텐데 말이에요. 처음엔 착한 기생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정말 착한 녀석들은 아니고요. 뭐 나름 착하다고 쳐줄 수 있는 녀석들입니다. 그다음은 독특한 기생충들에 대해 이야기해요. 정말 특이한 녀석들이 참 많더군요. 한때 회를 못 먹게 만들었던 고래 회충에 대한 오해도 풀었습니다. 마음 놓고 회를 먹어도 되겠어요..... 금전이 허락한다면 말이죠. 나쁜 기생충을 소개할 때에는 어휴, 정말 무서웠습니다. 괜히 이미 감염된 건 아닌가 걱정도 되었고요. 특히 샤가스병에 걸린 건 아닌가 살짝 의심도 해봤다니까요. 일주일에 한 번씩 뵙는 이모와 제가 같은 증상을 비슷한 시기에 겪었거든요. 기우겠죠? 빈대에 물릴 일이 없었거든요. 빈대 붙었으면 모를까, 물리다니. 말도 안 돼요. 저처럼 괜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나 봅니다. 기생충 망상증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요. 그런 걱정 다 접어두고 신기한 기생충의 세계를 염탐했다는 즐거움만 간직하려 해요. 이름도 어려운, 친해지기 어려운 녀석들이지만 신비한 매력이 있는 친구들이었으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