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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 지구의 2인자, 기생충의 독특한 생존기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5월
평점 :
10년 정도 지났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딸아이의 머리에서 머릿니가 발견된 적이 있었습니다. 아니 21세기에도 머릿니가 살고있단 말인가! 놀라기도 하고 화도 나고 해서 머리를 깨끗이 감기고 참빗도 사다가 빗겨주었는데요. 저희 둘은 꼭 닮은 곱슬이라 참빗질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원인은 당시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것이 원장님 아들에게 감염, 같은 빗을 돌려쓰는 바람에 딸에게도 감염되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아이의 머릿니가 다른 아이에게 전염될까 봐 원장님께 빗을 돌려쓰지 마시라고 살짝 말씀드렸던 것인데, 원장님은 깔깔 웃으며 자신의 아들에게 머릿니가 있어서 그게 옮은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좀 황당하긴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말았습니다. 숱 많고 곱슬곱슬 한데다가 아이의 피부니 얼마나 야들야들하고 살기 좋았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머리를 박박 밀어버리고 싶었지만 - 아들이었으면 그랬을지도 몰라요 - 한창 멋부리기 좋아하는 여섯 살이었으니 꾸준히 노력하는 것으로 치료했습니다. 끔찍한 머릿니와 서캐, 기생충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요.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에 당당히 올라가 있더군요. 아, 머리에 기생하면서 피를 빨아먹으니 기생충이 맞습니다.
평소에 기생충이라고 하면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편충, 촌충... 뭐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의외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질아메바 같은 건, 그냥 단세포 생물이로구나... 그러다 몸에 들어오면 설사를 일으키는 녀석들인가 보다... 했는데, 이 녀석도 기생충이라네요. 그러고 보면 기생충의 범위가 꽤 넓습니다. 요전에 읽었던 <내 몸속의 우주(롭 나이트, 브랜던 불러)> 때문에 혼란스러워졌어요. 어디까지가 기생충일까... 그러다가 생각이 <기생수>의 오른쪽이(미기)에게까지 미쳐서 이 녀석은 기생충(혹은 기생수)이 아니라 공생충(혹은 공생수)가 아닌가 하는 상상도 했고요.
기생충이 뇌를 장악해서 숙주의 행동을 지배한다면 과연 어느 쪽이 기생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철학적인(?)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이 자꾸만 딴 데로 가버려서 잘 다독여 데리고 와야 했습니다.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는 앞서의 저서 <서민의 기생충 열전>보다 좀 더 무섭(?)습니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에서는 신기한 기생충의 세계를 엿보았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굉장한 녀석들이다...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서민 교수가 저보고 두려워하라며 쓴 글이 아닐 텐데 말이에요. 처음엔 착한 기생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정말 착한 녀석들은 아니고요. 뭐 나름 착하다고 쳐줄 수 있는 녀석들입니다. 그다음은 독특한 기생충들에 대해 이야기해요. 정말 특이한 녀석들이 참 많더군요. 한때 회를 못 먹게 만들었던 고래 회충에 대한 오해도 풀었습니다. 마음 놓고 회를 먹어도 되겠어요..... 금전이 허락한다면 말이죠. 나쁜 기생충을 소개할 때에는 어휴, 정말 무서웠습니다. 괜히 이미 감염된 건 아닌가 걱정도 되었고요. 특히 샤가스병에 걸린 건 아닌가 살짝 의심도 해봤다니까요. 일주일에 한 번씩 뵙는 이모와 제가 같은 증상을 비슷한 시기에 겪었거든요. 기우겠죠? 빈대에 물릴 일이 없었거든요. 빈대 붙었으면 모를까, 물리다니. 말도 안 돼요. 저처럼 괜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나 봅니다. 기생충 망상증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요. 그런 걱정 다 접어두고 신기한 기생충의 세계를 염탐했다는 즐거움만 간직하려 해요. 이름도 어려운, 친해지기 어려운 녀석들이지만 신비한 매력이 있는 친구들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