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꿈을 꾸었습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꿈이어서 단편소설처럼 끄적여볼까 했지만, 저의 나쁜 버릇인 귀차니즘이 발동되어 그만두었습니다. 꿈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알약이 배달됩니다. 마치 이키가미처럼요. 이키가미에서는 죽음을 알리는 통보가 오고 어릴때 맞았던 약의 시한장치 때문에 죽는 것이지만, 제 꿈속에서는 추첨에 의해 이번에 죽을 사람으로 정해진 사람들이 배달된 약을 먹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디스토피아였죠. 적절한 인구 조절 때문이라고 했는데, 자세한 이유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죽을 거라고 여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막상 약을 받고 나서 생각하니 억울했습니다. 꿈속의 가족 모두에게 - 그런 경우는 드물었는데도- 같은 날 약이 배달되었습니다. 죽기 싫었습니다. 도망칠 수 있다면,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매일매일 살아갈 사람처럼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죽어야 한다니...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어도 똑같은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련 또한 많아서 아직은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거든요. 분명 내가 없더라도 세상은 돌아갈 텐데, 내가 없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내가 없어도 나머지 사람들은 잘 살아갈 텐데,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요.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갑자기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사자가 된 후에 운명을 납득하고 저세상으로 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종교에 따라 이름은 다르지만 뭔가 죽기 전의 기억을 지우는 강이나 의식 같은 게 존재하나 봅니다. 아사다 지로의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에서는 매우 독특한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중유라는 곳에서 입국 심사 용지를 작성하는 것처럼 자신의 프로필을 작성하고심사 기준에 맞춰서 분류됩니다. 반성을 할 수 있는 교육실도 있어서 그곳에서 충분한 반성을 하고 나면 좋은 곳으로 보내줍니다. 정말 단 하나의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은 극락 왕생하지요. 그러나 여기 미련이 엄청나게 남은 세 사람이 있습니다. 백화점 여성의류 코너의 쓰바키야마 과장, 조폭 두목 다케다, 그리고 아직 이곳에 오기엔 어린 7살 렌짱이 그들인데요. 과로사한 쓰바키야마 과장은 아직도 일에 대한 미련이 철철 넘칩니다. 그리고 똑똑한 아들과 아름다운 아내에게 작별 인사를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음행의 죄라니!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죄라고 할 만한 걸 지은 것 같지 않은데.결혼 전에 만났던 여사친이자 온몸으로 정을 나누었던 그 여자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게 왜 잘못인지 모르겠습니다. 조폭 두목 다케다 역시 억울합니다. 정말 야쿠자인가 싶을 정도로 성실한 그는 아우들이 걱정됩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하다니, 애초에 킬러가 노린 건 누구란 말인가요. 궁금합니다. 그리고 렌 짱.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께도 죄송하지만, 친부모를 만나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국 그들은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세상으로 돌아옵니다. 단 3일 동안만요. 규칙은 세 가지. 돌아올 시간 엄수, 정체 들키지 않기, 복수 금지. 과연 그들은 그 규칙을 잘 지킬 수 있을까요? 규칙을 어기면 무시무시한 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잘 할 테죠.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불량 청소년으로 살아보기도 하고 야쿠자, 다단계 판매원 등등을 했던 작가의 다양한 경험 때문인지 이야기는 유쾌하기도 하고 흥미롭게 흘러갑니다. 그러다가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하고... 죽은 자, 그리고 7일이라는 점에서는 위화의 소설 <제7일>이 생각납니다만,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은 그렇게 무거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책을 읽고 나서 책 정보를 찾아보니 <돌아와요 아저씨>의 원작 소설이라는군요. 그런 드라마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드라마는 원작을 잘 살렸을까요? 조금 궁금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밑바닥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누구나 남에게 쉽사리 털어놓지 않는 비밀은 있는 법입니다. 감추려고 말하지 않는 것도 있을 테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기에 드러내지 않는 것도 있을 겁니다. 저에게도 그런 것이 몇 가지 있는데요. 전자의 것도 있고, 후자의 것도 있습니다. 만일 털어놓는다면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요. 정말 그럴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릴 때보다는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앞으로 더욱 많은 비밀을 쌓아가면서 살아갈 것 같아요. 그러나 어릴 때 안고 있었던 비밀 중 일부는 다 털어내 버렸는데요. 생각보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비밀 없이 산다면 그것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건 저 역시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테죠.


조 R 랜스데일의 소설 <밑바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소한 비밀이나 상처이기도 했고, 인생의 방향을 다르게 만들어 버릴 만큼의 큰일도 있었죠. 왜 아니겠어요. 어른들이었는데요. 중장년, 그리고 노인들. 모든 걸 털어놓고 살 수 없는 인생의 뒤안길에 서 있었는데다가 시대적 배경이 1930년대니까 가슴속의 응어리 같은 것도 털어놓기 힘들었을 겁니다.특히 흑인이라면 더욱 그랬겠죠.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인 지금도 인종차별 문제가 여전한데, 당시에는 더 심했거든요. 우리나라도 그랬잖아요. 신분제가 없어진 후에도 머슴이었던 자의 아들은 여전히 주인집의 아들에게 뭔가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는 무척 심각해서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갖은 차별과 오해를 받곤 했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그런 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는데, 자꾸만 깜둥이, 깜둥이 운운하면서 비아냥 거리는 인간들, 특히 네이선네 집안사람들은 짜증 그 자체입니다. 책은 좋은데 그들 때문에 덮을 뻔했습니다. KKK 단도 등장하는데, 복면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괴팍하고 파괴적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비밀들을 가지고 있을까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텐데요. 동부 텍사스의 - 텍사스 치고는 비옥한 마을과 그 옆 흑인 마을, 그리고 그 사이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비밀을 감추고 이웃을 대하고 있을까요.


<밑바닥>의 화자는 자신의 13세 소년 시절을 추억합니다. 그 나이에도 비밀은 있기 마련이죠. 나름대로의 비밀.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중1,2 때이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 만 하군요. 호기심도 많고, 말썽도 많이 부릴 때입니다만, 주인공인 소년 해리는 나름 예의도 바르고, 누이동생을 지킬 때는 지키는 멋진 오빠입니다. 어른들은 대공황이니 뭐니 힘들어도 아직 그런 건 잘 모르는 - 아이에 가까운 소년이었습니다. 하루는 누이동생과 함께 키우던 개의 안락사를 위해 강의 저지대를 탐험하는데요. 그곳에서 심하게 훼손된 흑인 여자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심지어 염소 인간에게 쫓기기까지 하는데요. 간신히 도망친 아이들은 이발사이자 지역 경관인 아버지께 사건을 이야기하고 그 후 마을은 뒤숭숭해집니다. 개는 안락사 당하지 않고 함께 살기로 결정되고, 사건에 대한 소년의 호기심은 그치지 않습니다. 백인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범인은 흑인이었을 것이고, 흑인이 흑인을 죽인 사건이므로 별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여기지만, 다음번에 백인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되자 사건은 인종적인 것으로 발전합니다. 그 와중에 모스라는 흑인 노인이 범인으로 지목당해 잔인하게 공개 처형됩니다. 그를 지키지 못 했던 해리의 아버지 제이콥은 큰 좌절에 빠집니다. 정말로 모스가 범인이었을까요. 아니었다면 진범은 어둠 속에서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었을텐데요.


모두가 지니고 있었던 서로 다른 비밀들. 그것들을 털어놓았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일도 아니었지만, 비밀들이 조금씩 얽혀 있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분노를 낳고, 잔인함을 낳고, 슬픔을 낳았습니다. 광기 어린 한 인간 때문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골든애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7
마리 유키코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감응정신병이라는 게있습니다만, 이 책의 날개를 읽기 전까지는 그런 병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골든 애플>은 마리 유키코의 일곱 번째 작품으로, '감응정신병'이라는 정신병리학 증상을 모티프로 하는 여덟 가지 이야기가 숨 막히게(책날개에) 이어진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감응정신병이 무언인가를 알아야 이 책의 이해가 쉬워질 테지요. 하지만, 저는 그냥 읽었습니다..... 아니요! 감응정신병이 무언인가를 알고 읽었어야 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감응정신병'이 무엇인가 검색해보고 눈을 질끈 감았으니까요.

감응정신병이란 한 사람의 정신이상자의 증세가 타인에게 감염되어 야기되는 정신장애라고 하는데요. 정신질병자나 조현병자의 환상이나 환각, 망상 등이 타인에게 전염되는 걸 말합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종교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열혈 신자가 믿고 따르는 행위라거나, 부모님의 이상한 망상을 아이가 사실로 믿고 있는 것 같은 거 말이죠. 그런 걸 표현하는 용어가 바로 감응정신병이라고 합니다. 아마 정신질병자나 조현병자의 언변이 훌륭하고 그럴싸할수록, 카리스마가 있을수록 전염성이 높을 것 같고요. 듣는 상대의 마음이 어지럽거나 약하거나, 암시에 걸리기 쉽거나 미신을 믿는다거나 할수록 감염이 쉽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딱히 정답은 없어요. 나는 강인하고 주관이 있으니까 절대 감염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거라는 거죠. 혹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 책을 읽어보셔요. 정말 그럴까,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은 연작 단편인지 아닌지 아무튼 뭐 그런 개별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단편인데, 연관이 있어요. 그렇다면 연작 단편이겠죠. 그런데 과연 정말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요? 별도의 이야기일까요? 그러니 그냥 단편일지도 몰라요. 갸웃? 장편인 거 같기도 합니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횡설수설하니 성가시죠? 말하는 저 역시 답답합니다.


<골든애플>에서는 '에로토마니아', '클레이머', '칼리굴라', '골든애플', '핫 리딩', '데자뷔', '갱 스토킹', '폴리 아 드'라는 정신학용어를 각 단편의 제목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용어가 이르는 대로의 스토리를 보여주지요. 

잡지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인기 소설가 미사키는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과 동명의 개그맨 가와카미이자 백화점 멘치까스 판매원에게 칼을 맞습니다. 이에 그를 변호하고 나서는 마이코.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어떨까요? 마이코의 주장대로라면 미사키가 가와카미를 스토킹했고, 도저히 참지 못 했던 그가 미사키를 찔렀다고 합니다만, 잡지 편집부의 주장으로는 가와카미가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편집부도 괴롭히다가 결국엔 작가를 찾아가 해코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각각의 단편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위의 둘 중 하나가 진실이겠거니 하고 있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 사실은 미사키와 가와카미는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마이코가 훼방을 놓은 것 같습니다. 셋 중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도대체 누구냐고요. 


책 속의 사건이 이것 하나뿐이면 어떻게든 머리를 정리해보겠는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가와카미가 근무하던 백화점 식품매장에서는 크로켓 속에서 사람의 손가락이 발견되는 대사건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참, 가와카미의 회사 제품은 아닙니다. 그 손가락은 어떻게 크로켓 안에 들어간 건가 하는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그건 배경일 뿐, 다른 사건이 벌어지거든요. 그리고 또 몇 년 후 그 사건 때문이 벌어지는 또 다른 사건. 

교통사고 피해자가 기억해내지 못하는 상실된 단편들 속에 숨어있는 살인사건. 그녀가 살인을 한 건지, 피해자일 뿐인 건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내의 한 맨션에서는 몇 년 새 사람이 살해당하는 일이 몇 번이나 일어나고, 그 일에 대한 소문이 커졌다가 사그라지고, 다시 커졌다가 사그라듭니다. 책의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도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반은 명확하고 반은 애매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사건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리저리하여 그리되었다고 하면 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은데, 기사를 그럴듯하게 쓴 기자의 글을 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버리기도 하고, 스스로 진실을 캐내는 건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귀찮은 일이기도 하니 내 일이 아니면 그냥 듣고 잊어버리기 일쑵니다. 그러니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르며 누구는 정상인데 누구는 미쳤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참, 그렇네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신병에 감응된 것은 등장인물들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미끼를 물고 현혹되어버렸네요. 작가가 끌고 가는 대로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 간 걸 보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소리 섬 바벨의 도서관 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김세미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몽실 북스에서 출판된 <마술가게>에 수록된 첫 번째 이야기 '목소리 섬'을 읽었더니 스티븐슨의 다른 단편들도 읽고 싶어졌습니다. '목소리 섬'이전에는 그가 쓴 단편을 접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중2병에 걸렸을 때  셜록 홈스, 오스칼 등과 더불어 내 마음을 떨리게 했던 상남자 실버가 등장한 <보물섬>의 저자 스티븐슨. 그의 책은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밖에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땐 막연한 동경심으로 읽었던 거죠. 소설이라기보다는 동화 같은 기분으로 읽었드랬습니다. '목소리 섬'에서는 앞서의 두 편과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앞서 <마술가게>를 리뷰할 때 살짝 언급했지만, '목소리 섬'의 배경은 하와이의 한 섬, 몰로카이입니다. 하와이 원주민들 사이에서, 이 섬에는 오래전부터 마법사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지요. 실제로 그랬을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목소리 섬'을 읽었을 때는 실제의 섬인가 가상의 섬인가 궁금했었어요. 지금은 한 세기도 훌쩍 지나버려서 찾아간다고 하더라도 주인공 케올라를 만날 수 없겠지만, 그의 마법사 장인은 아직도 목소리 섬에서 헤매고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이 책에는 '목소리 섬'외에 '병 속의 악마', '마크하임', '목이 돌아간 재닛'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악마가 들어 있는 병을 산 후 부유함을 얻었지만 불안과 공포 때문에 이내 병을 팔아버린 남자 케아웨. 사랑스러운 여인을 만나 청혼하고 승낙을 얻은 날, 자신이 문둥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병을 삽니다만 이 병의 판매 규칙인 구매가격 보다 저렴하게 팔아야 한다는 덫에 걸려 매일매일 괴로워합니다. 이 남자가 되 산 가격은 1센트였거든요. 더 낮은 가격에 팔 수 없었던 거죠. 이런 사실을 아내 코쿠아에게 털어놓습니다. 아내는 프랑스령으로 가면 더 낮을 화폐단위가 있다는 걸 그에게 알려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행을 떠나는데요. 소설의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스릴감을 주었던 이야기, '병 속의 악마'였습니다.


'마크하임'은 올바르지 않은 인간입니다. 자신의 약혼녀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평소에 거래하던 장물아비- 여기서는 중개인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봤자 장물아비-에게 찾아갑니다. 그는 선물로 손거울을 추천하는데요. 여기서 마크하임은 울컥하고 맙니다. 아마도 내면에 숨겨두었던 양심 때문이었겠죠. 손거울이라니! 지난 과거와 죄악과 어리석음을 상기시키는 이런 물건, 이런 양심을 비추는 손거울을 주다니!(p.117) 화를 내는 마크하임에게 중개인은 물건을 사던지 꺼지라고 합니다. 이내 마크하임은 그에게 사과를 하고 다른 물건을 보여달라고 하는데요. 다른 물건을 찾던 중개인을 찔러 죽입니다. 그 뒤 그의 그의 마음의 소란함과 낯선 남자, 그리고 마크하임이 내린 결론과 결심이 이 소설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이 돌아간 재닛'은 무섭습니다. 재닛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마녀로 몰리고, 집단 징벌을 받습니다. 이때 나타난 주인공 목사가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치라... 같은. 뭐 그런 이야기는 안 했지만, 어쨌든 그녀를 구해줍니다. 그런데, 구하지 말걸 그랬습니다. 그 뒤로 재닛은 목이 이상하게 돌아간 채로- 한쪽 어깨 쪽으로 축 처졌었나 봅니다.- 공포심을 유발하는데요. 결국 목사는 신앙심을 대방출 할 기회를 획득합니다. 아이고 무서워요.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목소리 섬>은 그의 몽상가적 기질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오컬트적인 요소가 많이 보였는데요. 상상을 하며 읽는다면, 신비면서도 기괴함에 마음을 사로잡혀버릴지도 몰라요. 곡성을 보면서도 태연자약했던 저는 이 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지만, 실은 좀 무섭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으셔야 해요. 슬며시 찾아와 내 곁에 서서 귓가에 속삭이는 악마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보다 뛰어난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황폐한 모습의 지구. 특권층을 제외한 보통의 지구인들은 현재보다 훨씬 낙후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안드로이드나 사이보그가 자연스럽게 그들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4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부분들이 파괴되고 훼손되어 회복될 수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제 3 시대력을 사용하는 그들은 뛰어난 과학력을 지녔음에도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심각한 전염병도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레투모시스 전염병은 치사율도 높습니다. 작은 마을의 아이도,동방 연방의 왕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10년이 넘도록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지만, 결과물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 치료제는 루나에서 개발되었고, 루나의 여왕인 레바나는 이 약을 주겠다는 명분으로 결혼 동맹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마음보다 더 큰 그림을 보아야 하는 동방 연방의 카이토 황제는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구보다 조금 화려한 느낌의 루나는 지구의 위성, 달입니다. 달은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예로부터 신비한 힘을 지녔다고 믿어왔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서요. 그런 환상이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에서도 나타납니다. 루나인들은 마법으로 본인의 외양을 꾸밀 뿐 아니라 지구인이나 마력이 없는 자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중 강한 마법 소유자(마법사)는 타인을 강하게 통제하고 조종하여 두려움을 모르는 병사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구인보다 루나인이 강할 수밖에 없겠죠. 지구인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손쉽게 조종되니까요. 무척이나 아름답고 화려한 루나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왕과 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르테미스 시에 한정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기타 지구(지역)는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곳으로 아르테미스 시가 보랏빛을 연상시킨다면, 이곳은 세피아 빛을 떠올리게 합니다. 루나의 상류층은 자신들과 같은 루나인들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마력을 지니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들- 껍데기라고 불리는-을 부모에게서 빼앗아 가두어 두고선 혈소판을 채취합니다. 레투모시스와 관련된 약을 만들 때 필요하다는 이유였지요. 그들의 부모는 아이들이 그런 일을 당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 개조를 통한 늑대 인간 부대도 양성합니다. 전투에 최적화된 인체로 만드는 것이죠. 본능적인 싸움꾼으로 길러집니다. 그들은 너무나 강해 웬만해서는 마력으로 통제가 안됩니다. 그들을 길들이려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공포와 먹이를 통한 통제 훈련이 필요합니다. 가끔 스스로의 의지로 옳은 판단을 하는 늑대인간도 있지만, 무척 드문 일입니다. 





북로드에서 출판된 마리사 마이어의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는 이런 배경으로 펼쳐지는 범우주적이고 전 지구적인 이야기입니다. 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무척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그렇지만 동화에서 포인트가 되는 부분들은 정확히 들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신데렐라가 무도회에서 신발을 떨어뜨리고 가는 부분이라거나 - 신더에서는 아예 발을 떨어뜨리지만요 - 빨간 모자의 할머니가 늑대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거나 하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갇혀서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는 라푼젤, 남자는 눈이 멀고, 사막을 헤매게 되는 것까지 모두 들어 있습니다. 백설공주는 마녀이자 여왕이 건네준 사과 때문에 가사 상태에 빠지는 그런 포인트들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신더>는 신데렐라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동양계의 소녀이고요, 신베이징에 거주하는 사이보그입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린씨에게 입양되었다는 것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 이미 죽은 양아버지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들은 바 없습니다. 양어머니와 언니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단짝 친구인 사이보그 이코와 함께 용감하게 살아가고 있었지요. 그녀는 지구 최고의 수리공이었습니다. 자신이 루나의 공주 셀린인 것도 모르고 있었죠. 동방 연방의 황제 카이토가 신더의 짝입니다.




<스칼렛>은 빨간 모자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붉은 머리의 프랑스 소녀죠. 할머니와 농장을 경영하는 조종사입니다. 루나크로니클 시리즈에서 조종 기술을 선보일 기회보다는 액션과 모험을 보여줄 기회가 많았지만 말입니다. 그녀의 용기와 사랑스러움, 당찬 성격은 루나의 개조 인간 울프마저 반하게 만듭니다. 알파 수컷인 울프 - 제브의 짝이 되지요.



<크레스>는 천재 해커 소녀, 라푼젤입니다. 루나의 껍데기로 인공위성에 갇혀 살면서 여왕의 직속 마법사 시빌 미라의 명령에 따라 지구의 정보를 해킹합니다. 지구의 많은 정보를 접하다 보니 신더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카스웰에게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서인지 상상력이 대단합니다. 작은 소녀이지만 무척 용감합니다. 키가 작아서 그런가 자꾸만 어리게 생각되지만 실은 어린 아가씨랍니다.



<윈터>는 백설공주로, 검은 머리의 미인입니다. 루나인이라면 당연히 숨 쉬는 것처럼 사용하는 마법을 쓰지 않으려 애쓰는 바람에 환각과 환상에 시달립니다. 레바나를 두려워하면서도 신더들과 합류합니다. 작은 용기를 내보지만, 작품 전체에서 매력은 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한데, 어릴 때부터 두려워하며 살았는데 갑자기 변화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 그녀를 지키는 근위병이자 사랑꾼 제이드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윈터가 변화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신더, 스칼렛, 크레스 역시 성격적인 면에서 크게 변화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천성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이죠. 그래도 좋습니다. 동화나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 또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을 남주인공이 구해내고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 대부분인데요,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에서는 성별과 상관없이 각자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성차별 없이 행동하는 편입니다. 심지어 신더의 경우엔 위기에 처한, 억류되어 있는 카이토를 구해내는 훌륭한 전사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는걸요. 이 소설은 정말이지 사랑과 우정과 액션이 하모니를 이룹니다.


아 참, 숨은 여주인공이라고 해도 좋을 한 사람을 빼먹을 뻔했군요. 신더의 절친 이코 말이에요. 신더의 새어머니가 해체해서 부품별로 팔아치웠지만 결함이 있다는 - 사실은 매력이 터지는 - 인격 칩만은 남아, 신더 곁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요. 예쁜 걸 좋아하고, 의리 있고, 당찬 성격의 멋진 소녀랍니다. 저런저런, "왜 나는 빼먹은 거냐. 포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루나 크로니클은 무척 매력적인 시리즈라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어요. 그렇지만 제가 이야기를 다 해버리면 책을 읽는 재미가 떨어지겠죠? 그러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직접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꿈과 상상력이 풍부한 당신이시라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