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요리책 - MWA 선정 세계 최고 미스터리 작가들의
케이트 화이트 엮음, 김연우 옮김 / 라의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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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A 라고 하면, 북로드에서 나온 <뉴욕 미스터리>에서 그 이름을 처음 접했습니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수많은 작가들이 함께하고 있는 곳이지만 말이에요. 미국에서 상업, 금융,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로 꼽히는 뉴욕. 그 뉴욕의 문학 파트 중 미스터리 작가들이 함께 하고 있는 곳이 MWA, 미국 추리 소설가 협회인 것입니다.

미국 추리소설가 협회(MWA)는 1945년 3월에 창립되어 2015년에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클레이튼 로슨, 앤서니 바우처(그의 이름을 딴 앤서니 상도 있습니다만), 로렌스 트리트, 브렛 할리데이를 비롯한 10여 명의 작가들로 시작했던 이 단체는 점점 그 규모가 커져 현재는 수많은 작가들이 이 협회에 속해있다고 합니다


죽이는 요리책을 엮은 케이트 화이트 <코스모폴리탄>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베일리 위긴스 미스터리 시리즈의 저자인데요. 혹시 읽어보신 분 계신가요? 저는 들어본 바가 없어서요.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모든 책이 번역되는 것도 아니고, 설사 들어온다고 해도 제가 다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무척 유명하신 분이라도 이름을 모를 수밖에요. 이 <죽이는 요리책>에 참여한 작가들의 이름도 그렇습니다. 아는 작가보다는 모르는 작가가 더 많았어요. 스치듯 어느 단편에서 만났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머리에 쏙 들어오는 작가의 이름들은 몇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리 차일드라거나 길리언 플린이라거나 뉴욕 미스터리를 편집했던 메리 히긴스 클라크라거나, 람보의 원작 퍼스트 블러드의 원작자 데이비드 모렐이라거나... 그런 분들 말이죠. 


사실, 표지가 멋지고, 사은품이(구입 당시 고기 망치를 주더군요.) 멋지고, 미스터리와 함께 하는 요리책이라니 대단하다!!!라는 생각에 구입을 망설이지 않았던 것인데요. 조금은 망설여도 좋을 뻔했습니다. 저는 소설 중 음식이 나오는 부분을 발췌해서 일부 보여주고 그 음식의 레시피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었는데,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은 맞습니다만, 어느 소설에 누가 좋아한 음식이다. 등장한 음식이다. 요리한 음식이다...라는 식으로 되어 있어서, 그 소설을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그렇게까지 땡기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던 사실이긴 한데- 서양의 레시피북이 원래 그림이나 사진보다는 줄글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죽이는 요리책>이 다른 소설로 꼬리를 물게 할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니 그런 부분은 조금 실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은 표지부터 내부까지 고급스럽습니다. 뭔가 우아한 분위기랄까요. 그래서 읽는 동안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초반엔 레시피를 열심히 읽었드랬습니다. 괜찮은 게 있으면 따라 해볼까 싶어서요.

그러나, 생소한 재료도 많고, 오븐이 있어야 하고... 등등.. 뭔가 따라 할 수는 없지만 식욕을 자극하는 - 혹은 식욕을 떨어지게 하는 음식들 때문에 아, 이런 것이 바로 그림의 떡이로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제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생각한다면 이 책의 정가는 전혀 아깝지 않은 수준입니다. 표지도, 내부 편집도 모두 신경을 써서 잘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이런저런 점에 대해 실망한 저이지만, 구입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이런 것이 바로 덕심인가보다.



** 참, 고기망치는 유용하게 잘 쓰고 있습니다. 고기가 아주 야들야들해져요.

** 일반적인 요리책으로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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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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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학원 Q의 메구미는 선천적인 순간 기억 능력자입니다. 그녀의 능력이 Q 반의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때가 많지만 한 번 본 것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는 건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다는 걸 알기에 Q 반 친구들은 되도록 메구미에게 살인 사건의 현장을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끔찍한 장면은 사진이나 영상처럼 촬영되어 뇌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절대로 그런 능력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적당한 망각이라는 것은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만일 메구미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다른 사건도 아닌, 사랑하는 가족이 무참히 살해된 현장을 보게 된다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 겁니다. 그런 경우의 수는 무척이나 적겠지만 <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데커는 무척이나 운이 없었나 봅니다. 처남의 피로 발을 적시고 아내의 시신을 부둥켜안았으며 딸의 시신 앞에서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말았으니까요.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형사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데커는 어느 날 가족들의 그런 살해 현장과 만나고 맙니다. 제목 그대로인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이해해주는 단 하나의 사랑, 아내와 딸을 잃은 충격으로 경찰을 그만두고 폐인에 노숙자, 뚱보 탐정이 되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말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세바스찬 레오폴드라는 남자가 자신이 그 사건을 저질렀노라고 자수할 때까지 그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범행 동기는 데커에게 무시당했기 때문이라는데, 당최 데커의 기억 속에는 레오폴드가 없었습니다. 만일 만났었더라면 기억 못할 리가 없는데. 

한편 데커가 졸업한 맨스필드 고등학교에서 총기 사고로 학생들과 교직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 해결에 관한 데커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는 서장님은 데커를 유료 컨설턴트로 고용합니다. 사건을 추적하는 데커, 자신의 사건과 맨스필드 고등학교 사건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정확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속까지 기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와 같은 자신의 행동과 말이,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에게 슬픔을 안겨 줄 수 있습니다. 그 슬픔은 점점 커다래져 악의가 되었지만 스스로다독였을 겁니다. '저 사람은 모르고 있었어.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거야.' 그리고선 마음속 깊은 곳에 가둬두거나 잊어버렸을 테지요. 그렇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호문쿨루스가 되어 자라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축복받은 아이 일수도 저주받은아이일 수도 있는 그 호문쿨루스는 누군가의 속삭임을 듣고 거대한 악이 되어버립니다. 사랑받지 못한 그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라는 소설 속, 범인의 범행 동기였습니다.

잘못된 생각이 슬픔을 낳고, 슬픔은 악의를 낳고, 악의는 다시 슬픔을 낳게 되는 비극의 연속.

스릴러인 이 소설 속엔 그런 것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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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9PM 밤의 시간 다음, 작가의 발견 7인의 작가전
김이은 지음 / 답(도서출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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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2 PM 책을 덮고 잠시 해선이 되어봅니다. 끈적끈적한 피들이 손가락 사이에 들러붙습니다. 그 질척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느낌이 싫어 거품 세정제로 손을 세심하게 씻어냅니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이런 날엔 무언가가 나를 찾아올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하지만, 낮은 더 두렵습니다. 밝은 곳은 현실, 이렇게 어두운 밤엔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까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각해보면 <11:59 PM 밤의 시간>의 주인공 해선의 처지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유기농 쿠키 카페도 잘 되어가고 있고, 공무원이며 순진한 남편 동식이도 그냥저냥 나쁘지 않습니다. 자기를 꼭 닮은 딸, 교영도 있고 - 지나치게 닮아서 위험합니다만 - 철모르는 아들 진영도 있습니다. 바로 옆집이 시댁인 것만 빼면 완벽합니다. 시장 터줏대감인 시어머니 문자는 옛날 통닭을 팔며 생활하니 경제적 문제도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산다면요. 하나뿐인 시누이는 딱 시누이스럽습니다. 

그러나 해선의 마음속에는 고르고가 살고 있었습니다. 페르세우스가 나타나도 퇴치하지 못할 그런 고르고 세 자매가 그녀의 마음 속에 단단히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그 고르고는 인형의 모습을 하고서 교영의 품 안에서도 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괴물은 해선의 엄마에게서부터 스며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디기탈러스의 위험한 향을 맡으면서 말이죠.


<11:59 PM 밤의 시간>은 어둡습니다. 무척 어둡고, 검은빛을 띄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닥인가 싶은데, 점점 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해선의 마음속의 어둠은 한밤중이면 밖으로 기어 나와 그녀의 주변을 물들입니다. 붉은색으로.

그녀가 원한 건 '진정한 평안'이었습니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는 편안한 생활,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저도 자주 하고 있기에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스스로를 가두는 것으로 타인과의 접촉을 하지 않으려는 히키코모리적인 - 어쩌면 퇴행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만, 해선은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갑니다. 아무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무시하지 않는 곳으로 가려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롭 곤살베스의 그림과 같아서 그녀가 느끼는 것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모른 채 말입니다.

그녀의 스위치가 켜진 건, 디기탈러스 과량 복용으로 자살한 엄마로부터 였는지, 좋아하는 걸 실컷 드시다가 저세상으로 -예정보다 빨리 - 하늘로 가버린 아버지 때문이었는지, 도대체 어떤 인간이었는지 알 수 없는 교영의 친아빠이자 해선의 죽은 전남편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교영이 진영을 계단에서 밀어 죽이는 걸 본 것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그녀는 서서히 주변의 장애물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걸어갑니다. 그녀의 엄마가 어린 시절 귀에 속삭여주었던 우아함을 잃지 않기 위해. 호텔 엑시트에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동반자 클럽에 입성하는 것이 그녀의 꿈이고, 그녀의 종착지는 호텔 엑시트가 될 것입니다.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꿈의 공간 엑시트. 그곳에서는 설령 자살을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그것마저도 이룰 수 있습니다. 다만, 클럽 가입비가 있는데요. 얼마인지는 비밀입니다. 해선은 아는데, 저는 모릅니다. 어찌 되었건 겨우 몇 억 정도는 아닐 것 같습니다. 파라다이스에 가는데 고작 그 정도이려고요. 해선이 알려주지 않았지만, 상현이 알려주지 않았지만, 보험 설계사 병숙이 알려주지 않았지만 기분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곳에 갈 생각이 없으니까요.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해준다는 설정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걸리적거리는 것도 싫지만, 누가 옆에서 시중들고 비위 맞춰 주는 건 더 싫거든요. 그런 생활을 꿈꾸는 해선에게는 그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여겨졌겠지만요. 그래서 그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인간임을 포기했습니다. 그때마다 찾아오는 투견 더스트의 눈빛을 바라보면서요.

더스트는 그녀의 짝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녀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11:59 PM 밤의 시간>은 한 여자가 파멸에 이르는 길을 잘 그려낸 소설입니다.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방어하는지도 보여주고요. 마리 유키코의 <골든 애플>의 테마 감응정신병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여럿에게 전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로부터 아이에게로 전염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대개 어린 시절 양육자의 사상이나 정신적인 면을 걸러내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양육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아이에게서도 문제가 발견되기 마련이지요. 해선의 엄마도 우아한 사람이긴 했지만, 타인을 멸시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이 우위에 서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일 테죠. 자신이 벌레처럼 바라보던 바로 그것이 되다니. 그리고 해선은 자라나 교영의 엄마가 됩니다. 교영은 또래 아이들보다 파괴적이고 가학적인 상상을 하며 그것을 즐깁니다. 그 아이에게 아름다운 동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째서 교영이 그렇게 되었을까요? 마음에 들지 않는 남동생을 계단에서 굴려버린 것은 - 그러다가 죽을 줄 몰랐기에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교영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생이 죽은 뒤에도 전혀 죄책감이나 두려움 같은 건 없었던 걸 보면요. 해선은 아이에게 사이코패스 기질을 물려준 모양입니다.

두 사이코패스가 한자리에 있을 때,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둘은 정말 서로를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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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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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꿈을 꾸었습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꿈이어서 단편소설처럼 끄적여볼까 했지만, 저의 나쁜 버릇인 귀차니즘이 발동되어 그만두었습니다. 꿈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알약이 배달됩니다. 마치 이키가미처럼요. 이키가미에서는 죽음을 알리는 통보가 오고 어릴때 맞았던 약의 시한장치 때문에 죽는 것이지만, 제 꿈속에서는 추첨에 의해 이번에 죽을 사람으로 정해진 사람들이 배달된 약을 먹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디스토피아였죠. 적절한 인구 조절 때문이라고 했는데, 자세한 이유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죽을 거라고 여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막상 약을 받고 나서 생각하니 억울했습니다. 꿈속의 가족 모두에게 - 그런 경우는 드물었는데도- 같은 날 약이 배달되었습니다. 죽기 싫었습니다. 도망칠 수 있다면,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매일매일 살아갈 사람처럼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죽어야 한다니...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어도 똑같은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련 또한 많아서 아직은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거든요. 분명 내가 없더라도 세상은 돌아갈 텐데, 내가 없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내가 없어도 나머지 사람들은 잘 살아갈 텐데,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요.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갑자기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사자가 된 후에 운명을 납득하고 저세상으로 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종교에 따라 이름은 다르지만 뭔가 죽기 전의 기억을 지우는 강이나 의식 같은 게 존재하나 봅니다. 아사다 지로의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에서는 매우 독특한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중유라는 곳에서 입국 심사 용지를 작성하는 것처럼 자신의 프로필을 작성하고심사 기준에 맞춰서 분류됩니다. 반성을 할 수 있는 교육실도 있어서 그곳에서 충분한 반성을 하고 나면 좋은 곳으로 보내줍니다. 정말 단 하나의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은 극락 왕생하지요. 그러나 여기 미련이 엄청나게 남은 세 사람이 있습니다. 백화점 여성의류 코너의 쓰바키야마 과장, 조폭 두목 다케다, 그리고 아직 이곳에 오기엔 어린 7살 렌짱이 그들인데요. 과로사한 쓰바키야마 과장은 아직도 일에 대한 미련이 철철 넘칩니다. 그리고 똑똑한 아들과 아름다운 아내에게 작별 인사를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음행의 죄라니!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죄라고 할 만한 걸 지은 것 같지 않은데.결혼 전에 만났던 여사친이자 온몸으로 정을 나누었던 그 여자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게 왜 잘못인지 모르겠습니다. 조폭 두목 다케다 역시 억울합니다. 정말 야쿠자인가 싶을 정도로 성실한 그는 아우들이 걱정됩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하다니, 애초에 킬러가 노린 건 누구란 말인가요. 궁금합니다. 그리고 렌 짱.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께도 죄송하지만, 친부모를 만나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국 그들은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세상으로 돌아옵니다. 단 3일 동안만요. 규칙은 세 가지. 돌아올 시간 엄수, 정체 들키지 않기, 복수 금지. 과연 그들은 그 규칙을 잘 지킬 수 있을까요? 규칙을 어기면 무시무시한 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잘 할 테죠.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불량 청소년으로 살아보기도 하고 야쿠자, 다단계 판매원 등등을 했던 작가의 다양한 경험 때문인지 이야기는 유쾌하기도 하고 흥미롭게 흘러갑니다. 그러다가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하고... 죽은 자, 그리고 7일이라는 점에서는 위화의 소설 <제7일>이 생각납니다만,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은 그렇게 무거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책을 읽고 나서 책 정보를 찾아보니 <돌아와요 아저씨>의 원작 소설이라는군요. 그런 드라마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드라마는 원작을 잘 살렸을까요? 조금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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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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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남에게 쉽사리 털어놓지 않는 비밀은 있는 법입니다. 감추려고 말하지 않는 것도 있을 테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기에 드러내지 않는 것도 있을 겁니다. 저에게도 그런 것이 몇 가지 있는데요. 전자의 것도 있고, 후자의 것도 있습니다. 만일 털어놓는다면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요. 정말 그럴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릴 때보다는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앞으로 더욱 많은 비밀을 쌓아가면서 살아갈 것 같아요. 그러나 어릴 때 안고 있었던 비밀 중 일부는 다 털어내 버렸는데요. 생각보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비밀 없이 산다면 그것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건 저 역시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테죠.


조 R 랜스데일의 소설 <밑바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소한 비밀이나 상처이기도 했고, 인생의 방향을 다르게 만들어 버릴 만큼의 큰일도 있었죠. 왜 아니겠어요. 어른들이었는데요. 중장년, 그리고 노인들. 모든 걸 털어놓고 살 수 없는 인생의 뒤안길에 서 있었는데다가 시대적 배경이 1930년대니까 가슴속의 응어리 같은 것도 털어놓기 힘들었을 겁니다.특히 흑인이라면 더욱 그랬겠죠.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인 지금도 인종차별 문제가 여전한데, 당시에는 더 심했거든요. 우리나라도 그랬잖아요. 신분제가 없어진 후에도 머슴이었던 자의 아들은 여전히 주인집의 아들에게 뭔가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는 무척 심각해서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갖은 차별과 오해를 받곤 했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그런 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는데, 자꾸만 깜둥이, 깜둥이 운운하면서 비아냥 거리는 인간들, 특히 네이선네 집안사람들은 짜증 그 자체입니다. 책은 좋은데 그들 때문에 덮을 뻔했습니다. KKK 단도 등장하는데, 복면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괴팍하고 파괴적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비밀들을 가지고 있을까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텐데요. 동부 텍사스의 - 텍사스 치고는 비옥한 마을과 그 옆 흑인 마을, 그리고 그 사이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비밀을 감추고 이웃을 대하고 있을까요.


<밑바닥>의 화자는 자신의 13세 소년 시절을 추억합니다. 그 나이에도 비밀은 있기 마련이죠. 나름대로의 비밀.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중1,2 때이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 만 하군요. 호기심도 많고, 말썽도 많이 부릴 때입니다만, 주인공인 소년 해리는 나름 예의도 바르고, 누이동생을 지킬 때는 지키는 멋진 오빠입니다. 어른들은 대공황이니 뭐니 힘들어도 아직 그런 건 잘 모르는 - 아이에 가까운 소년이었습니다. 하루는 누이동생과 함께 키우던 개의 안락사를 위해 강의 저지대를 탐험하는데요. 그곳에서 심하게 훼손된 흑인 여자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심지어 염소 인간에게 쫓기기까지 하는데요. 간신히 도망친 아이들은 이발사이자 지역 경관인 아버지께 사건을 이야기하고 그 후 마을은 뒤숭숭해집니다. 개는 안락사 당하지 않고 함께 살기로 결정되고, 사건에 대한 소년의 호기심은 그치지 않습니다. 백인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범인은 흑인이었을 것이고, 흑인이 흑인을 죽인 사건이므로 별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여기지만, 다음번에 백인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되자 사건은 인종적인 것으로 발전합니다. 그 와중에 모스라는 흑인 노인이 범인으로 지목당해 잔인하게 공개 처형됩니다. 그를 지키지 못 했던 해리의 아버지 제이콥은 큰 좌절에 빠집니다. 정말로 모스가 범인이었을까요. 아니었다면 진범은 어둠 속에서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었을텐데요.


모두가 지니고 있었던 서로 다른 비밀들. 그것들을 털어놓았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일도 아니었지만, 비밀들이 조금씩 얽혀 있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분노를 낳고, 잔인함을 낳고, 슬픔을 낳았습니다. 광기 어린 한 인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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