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6
로이스 로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비룡소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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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 파랑 채집가에 이은 세 번째 <메신저>입니다.

지난번 파랑 채집가를 리뷰할 때 기억 전달자 (조너스)가 도착한 마을의 몇 세대 후가 파랑 채집가 키라의 마을일 것이라고 추측했었지만, 틀렸습니다.

기억 전달자인 조너스는 파랑 채집가 키라의 아버지와 꼬마친구 맷티가 살고 있는 마을의 지도자가 되어있었던 것이었지요. 그 마을은 지나친 통제를 하던 기억 전달자의 마을과 지나치게 자유로워 방종에 가깝던 파랑채집가의 마을의 중간 형태로 적절한 통제와 화합을 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전의 두 편이 SF 적, 디스토피아적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메신저>는 판타지 쪽에 가깝습니다. 영화 아바타 같은 것을 연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바타에서 과학자들이 시도하던 것은 사이언스였지만 결국 생명수의 신비로움을 이길 수 없는 판타스틱 한 결말을 낸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아바타에서 숲은 생명을 주는 (지구에도 세계수의 개념이 존재합니다만) 매체이지만, 메신저에서는 점점 죽어가며 사악함을 띄고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를 공격합니다.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찌르고 독을 뿜기 시작하지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맷티의 마을미 변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파랑 채집가에서 키라의 꼬마 친구이자 집에서 얻어맞으며 놀라운 절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늪 소년 맷티는 쾌활하고 명랑한 소년으로 자랐습니다. 맹인 아저씨와 함께 마을에서 살고 있었는데요. 맹인 아저씨의 또 다른 이름은 '보는 자'입니다. 그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키라의 아버지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맷티의 아버지나 다름없습니다. 누가 봐도 부자지간 같지요. 맷티는 어쩐지 숲과 동물들과 친했는데, 그것은 마을 간의 소통을 위한 메신저 역할을 할 때 유리했습니다. 숲이 길을 열어주고 동물들이 그를 사랑했으니까요. 평화로운 마을이라 여겨졌던 그들의 마을은 언젠가부터 이상한 거래를 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이기적이 되며 거칠어집니다. 다정하고 온화했던 그들의 모습은 거래 이후에 사라지기 시작했지요. 자신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마음의 일부 같은 것을 내어주고 원하는 것을 취했습니다. 그게 게임기 일 수도 있고, 타인의 사랑일 수도 있었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선했던 마음, 화합하고자 했던 마음이 좀먹어 들어갔다는 것이지요. 그들의 마을은 다른 마을에서 쫓겨나거나 도망쳐 나온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형성된 것임에도 이제는 이기심이 넘쳐, 더 이상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들을 받아주지 않기로 결정하고 마을에 벽을 둘러 폐쇄하기로 합니다.

마을 폐쇄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길을 떠난 맷티는 키라를 데리고 이 마을로 돌아 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숲은 더 이상 맷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은 너무 어렵습니다. 갖가지 은유가 넘쳐나는데, 간단히 스토리 전개만으로 그러려니 하기엔 무척 깊은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왜. 이렇게 결말을 지은 걸까요? 슬프잖아요.

숲은 치유자 덕분에 다시 아름다워지고, 숲으로 인해 상처 입은 이들은 치유받았으며, 이기적이었던 마을 사람들이 상실했던 부분들이 그대로 본인에게 돌아와 제자리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햇살로 인해 반짝이는 연둣빛 나뭇잎 아래서 쓸쓸함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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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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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명화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나는 살고 싶다 (I Want To Live 1958년작)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에 사형은 억울한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으므로 사형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었는데, 각종 흉악 범죄를 저지른 범인에게 구형된 형량을 들을 때마다 한심하다, 저러다 모범수니 뭐니 하며 가석방 시키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이준석 선장에게 사형이 구형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상 사형을 실행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형이 집행될 것인가 의문입니다. 다만 '사형'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에게 충격을 주긴 했겠지요.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 맞는데, 그 대가는 어떻게 치러져야 하는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은 무척 중요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에서는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로는 11년 전 강도의 손에 어린 딸을 잃고 그 강도에게 사형이 구형되도록 애썼던 부부가 결국엔 이혼하고 각자의 삶을 살다가 전 부인마저 노상강도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는 비극과 마주친 나카하라 미치마 사가 전 부인인 사요코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녀의 행적을 되짚어나가며 진실을 알게 된다는 추리소설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읽는 도중 히가시노 게이고가 하나의 스토리를 말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사형제도와 죄에 대한 개심을 다루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피해자인 사요코는 잡지에 기사를 쓰는 프리 라이터였는데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단행본 원고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11년 전 어이없게 죽은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며 쓰게 된 책이었을 텐데, 남편인 나카하라는 그 일을 피하는 것으로 상처를 치유하려 했지만 사요코는 마주하는 것으로 상처를 치유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시 범인이 살인강도죄로 무기징역을 받은 자였으나 가석방 중에 다시 살인강도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이에 부부는 항소하고, 결국 범인은 2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 사형집행을 받아 이 세상에서 사라졌음에도 그들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형 폐지론자의 눈에는 범죄 피해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p.188

 

흔히 '죽음으로 속죄한다'는 말을 하는데,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범인의 죽음은 '속죄'도 '보상'도 아니다. 그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단순한 통과점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곳을 지났다고 해서 앞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극복하고 어디로 가야 행복해질지는 여전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통과점마저 빼앗기면 유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형 폐지란 바로 그런 것이다.

P.190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획적이든 아니든, 충동적이든 아니든, 또 사람을 죽일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유기형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징역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은 재범률이 높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갱생했느냐 안 했느냐를 완벽하게 판단할 방법이 없다면, 갱생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형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P.212

 

중요한 것은 '사형'그 자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하고 반성하기보다는 '나는 이제 어떡하나'하는 생각, 지나온 인생에 대한 허탈감 같은 것들뿐이라면 의미가 없지 않나요. 흉악범들에 대한 몇 년형.. 이런 기사를 보면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저것들을 먹여살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남은 자들은 스스로를 가두며 슬픔에 젖어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사형만이 바른 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결론이 나질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P.213

 

 

 

심지어 이 소설에서는 범의 제재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지독하고 괴로운 삶을 살아온 이들이 등장합니다. 과연 교도소에서 갱생하지 못한 인간과, 스스로의 죄를 씻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 중 누가 더 바람직 한 것인가. 자신의 십자가를 내려놓을 수는 있는 것인가....

<공허한 십자가>는 저에게 너무 많은 물음을 던져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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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맨 - 생에 한 번, 반드시 떠나야 할 여행이 있다
파비안 직스투스 쾨르너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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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또 한 번은 여행길 위에서. 이제껏 한 번도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모두에겐 또 한 번의 탄생이 남아있는 셈이었다.          

- p.12

 

Journey man 이라고 하면 요즘은 해마다 팀을 자주 이적하는 운동선수를 말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중세 시대에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수련을 떠나는 장일을 일컫습니다.

독일 청년 파비안은 원래의 Journey man 의 뜻을 살려 세계로 향합니다. 단돈 200유로 (30만 원)만 들고서 말입니다. 이런 무모한 청년 같으니라고, 거의 무전여행이나 다름없잖은가요. 중세 시대 장인들을 본받는 건 좋지만, 선뜻 결정 내리기 어려웠을 텐데, 제일 내딛기 어렵다는 첫발을 용감하게 내디뎠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어울리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저와는 달리 그는 무척 적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수련지인 상하이에서 동양 특유의 말하지 않아도 알아-라는 식의 정을 알아보지 못하고 외로워했습니다. 외로움이 사무쳐 눈물을 흘릴 때쯤에야 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합니다.   

 

 

수련 여행이 시장된 이래 나를 움직이는 진정한 원동력은 좋은 피드백, 즉 낯선 사람들과의 진실한 소통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 p.61

 

그는 언제나 현지에서 일했습니다. 무전여행자의 여비 벌기가 아닌, 수련 여행자로서의 수련으로서 일했습니다. 돈은 다음 여행지로 이동할 정도면 족했고, 숙식을 해결하며 일할 수 있으면 되었기에 자신의 전공 - 실내 건축학 - 과 관련 있는 일인 건축 보조, 사진 촬영, 디자인 등의 일을 정말로 열심히 했습니다.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이집트, 에티오피아, 호주, 미국,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콜롬비아에 다녀왔으며, 그곳에서의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 그의 인생에서 빛나는 부분들을 만들었지만, 연인과는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세계를 씩씩하게 돌아다니던 그였지만, 언제나 반드시 그래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향수병,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이 그로 하여금 미지로 나아갈 용기를 뺏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안락한 곳에서 모르는 곳을 향해나갔습니다.

 

 

두려움은 우물쭈물하는 자에게만 기생하는 정신의 독버섯과 같다. 그리고 놈은 주로 갈등을 먹고산다. 두려움을 굶겨 죽이려면 갈등부터 끊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 무모하더라도 배짱을 부려야 한다.

-p.195

 

그의 여정은 때로는 스릴 넘치고 때로는 예술적이었고, 때로는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관광객은 빛나는 것을 보고 여행자는 어두움까지 본다고 했습니다. 그의 2년 2개월 간의 수련 여행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책을 읽은 저에게까지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다 말하며 포기한 것들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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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수호자 바스탄 3부작 1
돌로레스 레돈도 지음, 남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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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척이나 끔찍한 일입니다. 나무 아래서 볼 때 소담하고 포근해 보이는 - 지푸라기와 어미새의 깃털로 지어진 - 둥지라도  실은 가시나무로 지어진 둥지 라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아직 날지도 못하는 아기 새들에게는 고통일 것이며, 필사적으로 나는 법을 익혀 둥지를 떠날 날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곤 그날이 오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맹세하며 포르르 날아 자신의 세계를 꾸려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돌아오게 된, 다 자란 그 새는 아기 새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수호자>의 아마이아 살라사르도 돌아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분노조절이 안되는 정서 장애였던 어머니에게 받았던 학대의 흔적이 남았는 고향으로, 사건만 아니었다면 돌아올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근무하는 팜플로나에서 어린 소녀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이 엘리손도에서 벌어진 사건과 거의 유사했기에 아마이아는 사건의 담당이 되어 엘리손도로 갑니다. 자상한 조각가 남편과 함께였지만, 몹시 불안합니다. 그녀의 과거는 악몽이 되어 그녀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소녀들의 시신은 잇다라 발견되고 연쇄살인 현장에 놓여있던 그 지역 특유의 산시고리라는 케이크를 단서로, 가업인 살라사르 버터빵 회사를 운영 중인 플로라 언니에게 자문을 구해 지역의 빵 공장의 밀가루를 연구소에 보내 검사하게 합니다. 플로라 언니는 책임감에 빵 공장을 이었으며 끝까지 병든 어머니를 간호했다는 이유로 아마이아에게 못되게 구는데, 자신의 별거 중인 남편 문제까지 겹쳐 심경이 불편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막냇동생에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로라도 병원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둘째 언니 로사우라도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전 남편인 프레디는 연쇄 살인의 희생자 중 하나인 십 대 소녀 안네와 성적 관계가 있었으며 심지어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합니다. 형사 반장 자리를 놓쳐 심술이 난 페르민 몬테스 형사까지 아마이아를 괴롭게 하는데 그녀의 남편 제임스와 어릴 때부터 엄마처럼 - 우리가 상상하는 엄마의 이미지처럼 아마이아를 돌봐준 엔그라시 고모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버텨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작가는 중간에 큰 복선을 깔아두었습니다. 그것도 대놓고. 그런 이유로 범인이 누구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그의 주변 인물일 것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심을 가지고 나니 작가가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하게 되었고, 저는 그만 반전이 주는 묘미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생각하지 말 것을 ....

 

그러나 저는 이 소설을 범인 찾기보다는 아마이아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와 그녀의 집안, 살라사르의 복잡한 가정사에 더 주목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주인공의 과거 상처 같은 것은 자칫하면 이야기를 곁길로 새게 하기 마련인데, 저자는 독자를 자연스럽게 아마이아와 동화시켜 오히려 이쪽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스토리로 만들어나갔습니다. 대부분 아마이아를 관찰하는 시점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저는 쉽게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나 봅니다.

 

깊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것을 정화하여 강인한 모습으로 무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잘못된 방법으로 해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전자였으면 좋겠습니다.

 

** 무척 괜찮은 스릴러 소설이었습니다.

** 바스탄 3부작의 1부로 , 2부< 뼈의 유산>, 3부 <폭풍에 바치는 공양>도 기대됩니다.

*** 3부작 모두 영화화할 모양입니다.  

"그는 뭔가에 예속되어 있어, 노예처럼. 비록 굴레가 씌워져 있지만 지금은 자유야. 그는 지속적으로 내면의 분노를 억누르기 위한 전쟁을 해왔어. 이제 비로소 억누를 수 있게 되었다고 믿고 있어."
"믿고 있다고? 무엇을 믿는다는 거야?"
"자기가 옳다는 것을 믿어. 이성이 자기를 지지한다고 생각해. 자기가 한 짓이 착한 일이라고 믿고 있어. 선의로 살인을 했다고 말이야. 승리를 거둔 것처럼, 악을 이긴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다 허세일 뿐이야. 다시 세 장을 줘."
그녀는 카드를 받아 천천히 늘어놓았다.
"경우에 따라서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도 해. 그럴 때면 가장 비열한 모습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래서 살인을 하는군."
"아니야. 살인할 때는 비열한 인간이 아닐 때야. 별 의식 없는 인간이라는 걸 알겠어. 그러나 살인할 때는 순수를 지키는 수호자일 때야."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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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를 생각하다 - 식탁의 역사
비 윌슨 지음, 김명남 옮김 / 까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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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부터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좋아하지 않아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는데 마침 좋아하는 일이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보글 보글 끓는 구수한 된장찌개는 뚝배기에. 껍질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게 튀기듯이 구워내는 고등어는 프라이팬에. 요리를 하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무척 행복했습니다. 제가 처음 요리를 한 건, 석유 곤로(풍로)에서였습니다. 심지를 올려 성냥불을 붙이고 불의 크기를 조정하고 그리고 그 곤로 한개에서 온갖가지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가스렌지가 생기자 두개의 화구와 그릴에서 더 손쉽게 음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원이 하나였을때는 식어빠진 고등어에 뜨거운 찌개를 먹었었다면, 드디어 세가지 음식을 한번에 따뜻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자렌지겸 오븐이 생겼을 때 저의 레시피는 더욱 광범위 해졌습니다. 로스트 치킨, 미트로프, 쿠키... 동생을 위해 피자도 구워줄 수 있었습니다. 남동생은 그 전자렌지를 이용해 처음으로 학교에 다녀오는 누나를 위해 카레밥을 지어주었습니다.  학교에 다녀와서 느낀 카레의 향기. 밥알 하나하나에 스민 카레의 맛이 행복했습니다.

어릴 때 부터 음식을 만든 데다 때로는 대량의 음식도 조리했기 때문에 명절에 음식 만드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지만 단 한가지. 치명적이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모든 날 선 것에 대한 두려움. 어린시절 무거운 칼로 재료를 썰며 얼마나 베었는지. 가위, 칼, 캔... 그래서 지금도 칼질이 두렵습니다. 숙련된 주부의 안보고 썰기 같은건 없습니다. 그러니,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처음으로 만능 슬라이서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요. 여러개의 칼날을 교체해가며 모든 것을 슬라이스, 챱, 채썰기 등등 다 할 수 있다는 시연자의 말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내 나이 24살. 엄마와 같이 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토록 간절한 눈으로 물건을 탐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안전 손잡이까지 달린 그것. 이것만 있으면 칼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여 더욱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는 당시엔 비싼 편이었던 그것을 사주셨고, 신나서 집으로 돌아온 저는 5분도 안되어 양배추 채 더미를 붉게 물들였습니다.

 

저말고도 그런 사람이 또 있다는게 어찌나 반갑던지. <포크를 생각하다>의 저자 비 윌슨은 '선데이 텔레그래프'에 음식 칼럼을 쓰는 음식 저널리스트입니다. BBC방송의 '마스터 셰프'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한 능력자. 지식과 실력 모두 갖춘 저널리스트인데, 이사람도 손을 썰었습니다. 새로 산 일본제 채칼 '만돌린 슬라이서'에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많은 요리사들도 저처럼- 저는 그냥 우리집 요리사 - 피맛을 본 채칼을 봉인해두었다고 합니다.

저와 이상한 공통점을 가진 비 윌슨의 <포크를 생각하다>라는 책은 요리와 식사를 중심으로 인류사의 흐름을 짚어나갑니다.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방대한 내용을 어떻게 한 권의 책에 담아냈을까,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저 개인의 요리의 역사, 그 중 열원의 변화만 보아도 그토록 다양한데 - 심지어 연탄불에서 닭을 삶은 적도 있습니다 - 인류 전체로 본다면 '불'의 변화 뿐만이 아니라 냄비와 팬, 칼, 계량법, 갈아내는 방법, 먹기 위한 도구, 보존식의 변화 , 심지어 키친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내용들이 존재하는지!

책 뒤 표지에 [펭귄 북 - 음식과 음료 편집자]인 폴 레비의 추천사가 있습니다.

 

"나는 비 윌슨의 책을 펴자마자 푹 빠져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이 책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식사 예절이 어떻게 우리의 몸을 바꾸었는가 하는 이야기에서부터 기술변화가 우리 개개인의 식성을 어떻게 바꾸었는가하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윌슨은 이런 내용에 정통하고,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학술적이지 않은 자세로 서술했으며, 글 솜씨 또한 대단하다."

 

저는 이 추천사 이상으로 이 책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 추천사는 전혀 과장이 아니며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는 제 주방에 있는 각종 조리기구들이 달라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 식품및 관련 전공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 어렵지 않고 끌어당기는 문체로 되어있어 전공자가 아니어도 기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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