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명화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나는 살고 싶다 (I Want To Live 1958년작)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에 사형은 억울한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으므로 사형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었는데, 각종 흉악 범죄를 저지른 범인에게 구형된 형량을 들을 때마다 한심하다, 저러다 모범수니 뭐니 하며 가석방 시키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이준석 선장에게 사형이 구형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상 사형을 실행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형이 집행될 것인가 의문입니다. 다만 '사형'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에게 충격을 주긴 했겠지요.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 맞는데, 그 대가는 어떻게 치러져야 하는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은 무척 중요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에서는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로는 11년 전 강도의 손에 어린 딸을 잃고 그 강도에게 사형이 구형되도록 애썼던 부부가 결국엔 이혼하고 각자의 삶을 살다가 전 부인마저 노상강도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는 비극과 마주친 나카하라 미치마 사가 전 부인인 사요코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녀의 행적을 되짚어나가며 진실을 알게 된다는 추리소설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읽는 도중 히가시노 게이고가 하나의 스토리를 말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사형제도와 죄에 대한 개심을 다루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피해자인 사요코는 잡지에 기사를 쓰는 프리 라이터였는데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단행본 원고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11년 전 어이없게 죽은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며 쓰게 된 책이었을 텐데, 남편인 나카하라는 그 일을 피하는 것으로 상처를 치유하려 했지만 사요코는 마주하는 것으로 상처를 치유하려 했던 것입니다. 당시 범인이 살인강도죄로 무기징역을 받은 자였으나 가석방 중에 다시 살인강도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이에 부부는 항소하고, 결국 범인은 2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 사형집행을 받아 이 세상에서 사라졌음에도 그들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형 폐지론자의 눈에는 범죄 피해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p.188

 

흔히 '죽음으로 속죄한다'는 말을 하는데,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범인의 죽음은 '속죄'도 '보상'도 아니다. 그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단순한 통과점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곳을 지났다고 해서 앞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극복하고 어디로 가야 행복해질지는 여전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통과점마저 빼앗기면 유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형 폐지란 바로 그런 것이다.

P.190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획적이든 아니든, 충동적이든 아니든, 또 사람을 죽일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유기형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징역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은 재범률이 높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갱생했느냐 안 했느냐를 완벽하게 판단할 방법이 없다면, 갱생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형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P.212

 

중요한 것은 '사형'그 자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하고 반성하기보다는 '나는 이제 어떡하나'하는 생각, 지나온 인생에 대한 허탈감 같은 것들뿐이라면 의미가 없지 않나요. 흉악범들에 대한 몇 년형.. 이런 기사를 보면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저것들을 먹여살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남은 자들은 스스로를 가두며 슬픔에 젖어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사형만이 바른 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결론이 나질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P.213

 

 

 

심지어 이 소설에서는 범의 제재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지독하고 괴로운 삶을 살아온 이들이 등장합니다. 과연 교도소에서 갱생하지 못한 인간과, 스스로의 죄를 씻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 중 누가 더 바람직 한 것인가. 자신의 십자가를 내려놓을 수는 있는 것인가....

<공허한 십자가>는 저에게 너무 많은 물음을 던져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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