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 - 한국 최초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사건 현장 이야기 알마 시그눔
문국진 지음 / 알마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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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서도 몇 번 이야기 했던 문국진 교수님의 2015년 저서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을 읽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책은 아니고요. 2011년 출간 되었던 <지상아와 새튼이>의 개정판으로, 제가 좋아하는 미색의 질 좋은 종이에 하얀 표지로 재출간 되었습니다. 

제가 문국진 교수님의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은 1990년, 동생이 저를 위해 선물해 준 <지상아>를 통해서였는데요. 당시 생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던 저에게 그 책을 사서 전해주며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눈여겨 보라고 했습니다. 그 책을 통해 사람의 죽음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으며, 상상조차 못했던 방법으로 범죄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만해도 제가 알고 있던 범죄는 TV에서 해주던 드라마나 뉴스, 혹은 셜록 홈즈나 포와르 같은 탐정이 나오는 소설에서만 일어나는 일들 이었기에 책으로 상상하며 접했던 사건들과 그 사건의 피해자를 통해 단서를 잡아내는 법의관이 정말 멋있어보였습니다. 

그러고보니 문국진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이 벌써 25년이나 되었군요. 그간에 문국진 교수님은 참 많은 책들을 펴냈습니다. 이 책의 전신인 <지상아와 새튼이>만 하더라도. 제가 처음 접했던 <지상아>와 <새튼이>의 합본이었구요, 그 외에도 제가 읽어봤던 저서로는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죽을 뻔 했디>가 있는데요. 그 책의 제목은 이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이라는 책의 소제목으로도 사용됩니다. 실제로 부검을 하려다가 도끼에 맞아 죽을 뻔 했던 일화가 실려있습니다. 부검이라는 것은 동양권에서는 무척 부정적인 이미지인데요. 한번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봅니다. 지금은 이미지가 많이 개선 되어서 거부감이 덜 하지만, 20세기만 하더라도 죽은 내새끼 몸에 칼을 댈 수 없다며 부검을 거부하는 사례가 참 많았었습니다. 저의 경우엔 혹시 원인 불명으로 죽는다면, 반드시 부검을 하라고 아이에게 말해두었지만 - 그래야 명확한 사인을 알아내고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면 범인을 잡아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그 외에도 명화를 보며 설명해 주는 <명화로 보는 사건>,<법의학이 찾아내는 그림 속 사람의 권리>,<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를 읽어보았습니다. 교수님의 책들 중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이 정도 읽었으니 문국진 교수님의 팬이라고 감히 말해도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류의 책을 참 좋아합니다. 사실 법의학이라는 것이 이렇게 얇은 책으로 읽고 이해 할 수 있는 얇은 지식이 아니지요. 의학 뿐만이 아니라 찾아낸 단서로부터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가며 많은 부분들을 분석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려면 무척이나 방대한 지식과 경험의 소유자여야만 할겁니다. 그런 분들의 저서를 읽다가 모자란 머리 탓에 도대체 무슨 말을 써 놓았는지 알 수 없다고 한탄하는데, 정작 본인은 무척 쉽게 설명했다며 뿌듯해 하면 좌절과 동시에 화가 납니다. 저 자신에게, 그리고 저자에게. 하지만 문국진 교수님의 책들은 그런 좌절을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언제나요. 법의학적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주시면서, 그와 관련된 실제 사건 이야기를 서술하시는데, 전혀 어렵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읽게 만듭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읽는 사람의 눈높이를 고려해서 설명한다는 것이 진짜 글 잘쓰는 사람,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제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하는 45개의 사건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이 과학수사나 법의학에 관심이 별로 없을 무렵, 관심이 없다는 말도 모자라 도끼로 법의를 찍어버리려고 했던 그 시절에도 꿋꿋히 한 길을 걸어오셨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 과학수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해 봅니다. 

세상엔 정말 별의 별 일들이 많이 벌어지거든요. 


하지만 이 책을 읽으실 때 좀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문체나 편집은 현대식으로 잘 다듬어져 있지만, 사건 자체는 오래전 사건들입니다. 앞서 이야기 했다시피 1990년 지상아에도 실렸던 내용이 이 안에 들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문국진 교수님의 책의 단점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는데요. 여러 권을 읽으면, 내용의 상당부분이 겹칩니다. 제가 위에서 이야기 했던 책들에서 중복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한숨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만약에 문국진 교수님의 책을 한권도 읽어보지 않으셨던 분이 계시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간단한 법의학 용어나 지식을 알고 있으면 미스터리를 읽을 때 더 재미있으니까요. 



지상아 : 紙狀兒 , foetus papyraceus 

산모의 자궁 안에서 사망한 태아. 


태아가 자궁 안에서 죽으면 양수가 태아에게 스며든다. 그래서 표피가 떨어지기도 하고, 수포가 생기면서 몸이 물러진다. 그것을 시태침연이라고 한다. 그런 뒤에 석회침착이 일어나면 석태가 되고, 그 뒤에 탈수 되고 위축 되면 지상아가 된다. 쉽게 말하면 석회가 죽은 태아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궁 안 어디에 석회가 있나 궁금해하는데, 사람 몸에도 석회가 있다. 보통 골 계통에 존재하는데, 병적인 상황이 생기면 다른 세포 조직에도 석회가 스며들어 덩어리가 되기도 하고 널빤지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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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워크 밀리언셀러 클럽 143
스티븐 킹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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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선발된 100명의 소년들이 먼 여정을 떠납니다. 우리의 인생이 출발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이들의 여정은 확실히 그러합니다. 그들은 한발 한발 죽음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갑니다. 최저속도는 시속 6.5 Km.  제주의 올레길 한코스가 보통 17~20Km정도 이므로 이 소년들은 그만한 거리를 3시간 안에 주파해야만 합니다. 도중에 멈추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절대로요.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그들은 생사가 걸린 걷기를 계속해야만 합니다. 소년의 행렬을 군인들이 따라옵니다. 하프트랙을 타고 그들의 행렬을 지켜보다가 속도가 떨어진 소년에게 경고를 합니다. 그들에게는 단 세번의 경고만 해줍니다. 그리고, 규정에서 벗어나 세번의 경고를 받은 소년에게는 티켓을 발부하지요. 영원한 고향으로 갈 수 있는 티켓을요. 길을 걷는 소년들은 동료이자 라이벌인 다른 소년이 납으로 된 티켓을 받는 소리를 듣고 모습을 봅니다. 보고 싶지 않지만,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계속 걸어야만 합니다. 지정된 시간에 배급받은 튜브형 식량을 먹으며 걷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물은 언제든지 요청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딱. 그만큼만이 다행입니다. 그들에게는 잠시의 휴식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먹는것도, 배변도, 심지어 잠도. 모두 걸으면서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장거리를 걸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처음부터 계속해서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시속 6.5km이상의 속도로 걷는 다는게 보통 힘든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기에 멈추고 싶으면 멈추고, 걷고 싶으면 걸으면 됩니다. 걷다가 너무 지치면 차를 타고 갈 수도 있고요. 그러나 그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이렇게 죽음을 향해 걸어가야만 하는 걸까요?


이 소년들이 살고 있는 미국은 군독재 사회입니다. 통령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독재치하에 있는데요. 이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보아 불순한 사람들을 스쿼드라는 곳으로 잡아가고, 그곳에 끌려가면 다시는 가족들과 만날 수 없는 그런 가혹한 정치를 하는가봅니다. 게다가 매년 소년들을 선발해서 그들을 롱워크에 참가시킵니다. 소년들은 거부권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참가합니다. 마지막까지 남은 승자에게는 어떤 소원이든지 들어준다고 하거든요. 하지만 소년들은 걷기 시작하면서 불안해 합니다. 사실은 마지막에 남은 사람도 끌고가서 죽인다더라...하는 소문도 들리고요. 과연 끝은 어떨지 걸어봐야 알테지요. 소년들은 그렇게 강제로 걷고, 전국의 많은 사람들은 1번부터 100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소년들에게 베팅을 하고 응원을 합니다. 자신들은 응원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과연 응원일까요? 남의 목숨으로 하는 도박인데요. 소년들은 걸으면서 죽어감을 느낍니다. 끊임없이 걸어야만 하는 육체적 고통과 잠을 자지 못해 생기는 영혼의 고통을 잊기 위해 과거의 에피소드들을 공유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죽기 전에 보이는 주마등 같은 것들이 아닐까요? 


스티븐 킹은 정말 놀라운 작가입니다.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10대때 이런 장편 소설을 쓰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계속 걷고 죽어나가는, 잘 못하면 지루하고 늘어질 수도 있는 소설을 흡인력 있게 끌어당기며 여러가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의 단합, 분열, 자신감, 자괴감, 이기, 실망, 절망, 열기, 바람, 비, 그리고 다시 열기, 끝은 군인, 군중. 이 책을 읽다보면 무척 무섭고 두려운데 소년들과 함께 길을 걷게 만듭니다. 그러니 덩달아 피곤해집니다. 괜히 눈두덩이도 무거워지지만, 결코 잠을 자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보통 무서운 소설이 아닙니다. 


하지만 상당한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이런 아쉬움을 느낄때면 늘 같은 생각을 하는데, 작가의 표현력이 미숙한 건지, 번역이 잘 못된 건지, 아니면 편집 교정이 잘 못 된건지 도통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중간 중간에 표현이 이상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 수록 그런 경향이 많이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그는 평생 이렇게 화났던 때가 기억나지 않았다.' 라는 문장의 경우 살짝 울컥하기까지 했습니다. 거의 반페이지에서 소년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점만 아니었더라도 별 다섯개를 주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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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기 - 숨어 있던 예술적 재능을 찾아주는
퀜틴 블레이크 지음, 최다인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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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되면 헤어나오기 힘들어요. 이것저것 생각하며 그려보니 창의력도 쑥쑥,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그림그리기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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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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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추리소설, 혹은 아주 고전이 아니더라도 예전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읽고나서는 정통이다,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 있기도 하고, 때로는 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 그 당시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을지는 몰라도 현대에 이르러서는 무척 많은 아이디어의 소설들이 줄지어 있으므로 -  작가의 글 솜씨로 눈앞에 장면들이 생생하게 그려진 덕에 읽고나서는 달아오른 두 뺨을 진정시켜야만 하는 소설들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셜록홈즈 시리즈도 그러하고 엘큘 포와르 시리즈도 그러합니다. 그 외의 다른 소설들도 있지만... 아, 그러고보니 다카기 아키미츠의 파계재판도 그러했네요. 그러니 미스터리류를 읽을때 예전것은 뻔하다, 재미없다. 현대의 것은 참신하다고 나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개인의 취향으로 호불호가 나뉠수는 있겠지요.

 

1973년 출판되었던 이 책은 어떨까요? 당시에는 신인상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었지만 편집부는 물론이고 독자들에게서도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던 이 소설은 여러 번의 개고와 제목 수정을 거치며 십여 년 전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미 작가는 세상에 없는데 말이죠. 작가의 이 책은 뒤늦게 40만 독자를 홀렸다고 하는데, 저를 홀리지는 못했습니다.

뭐랄까... 일단은 이 책에 집중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전체적인 작품 분위기 안에서는 예스런 분위기나 냄새는 나지 않았는데요. 문장 자체도 촌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 같은 것이 저를 집중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이 소설이 노리던 트릭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차분히 집중하지 못하는 사이 이 소설은 사건을 추적하는 나카다 아키코와 쓰쿠미 신스케의 입장에서 왔다갔다하며 진행됩니다. 그렇다고 1인칭 시점은 아닙니다. 별거 아닌 것때문에 책 읽기를 방해받는 저에게 이번의 가장 큰 방해요소는, 나카다 아키코의 경우는 문장 내에서 아키코라고 칭하고, 쓰쿠미 신스케의 경우엔 쓰쿠미라고 칭합니다. '여자는 왜 이름이고, 남자는 왜 성이지?'라는 의문을 품는 바람에 더 집중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신인 추리작가 사카이 마사오가 자신의 빌라에서 추락해 사망합니다. 실족사는 아니었구요. 청산가리가 든 음료를 마시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도움을 청하려다가 죽은 것 같습니다. 밀실인데다가 청산가리를 마셨으니 자살을 하려던 것일까요? 자신이 남긴 원고 '7월 7일 오후 7시의 죽음'은 그의 유서인 듯. 같은 날 오후 7시에 죽었으니 자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보였고, 그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나카다 아키코와 쓰쿠미 신스케는 각자 다른 곳에서 그의 죽음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결과는.

 

제목 그대로 입니다. 모방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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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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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폭력이건, 간접적인 폭력이건 그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람은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잘 모릅니다. 가정폭력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만 세상에 그럴수가, 어쩜 가족끼리 저러지....하며 가해자를 인간 쓰레기 취급하면서도 피해자는 어째서 저러고 그냥 살고 있느냐며 용기가 없다는 둥, 심지어 맞는 걸 좋아하는거 아니냐는 말을 하는 사람까지 본 적이 있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지요.

가해자는 폭력을 행사하고서는 그것에 대한 그럴듯한 구실을 만들어 붙입니다. 정말 사소한 일을 가지고 이러니 네가 맞을 만했다며 자신이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구실일 뿐입니다. 자신이 폭력을 휘두를 구실 말입니다. 그 폭력은 직접 당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부모 간에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사이의 아이의 마음은 어지러이 포탄이 비처럼 쏟아져내리는 들판에 서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맞으면서 왜 도망치지 않을까요? 도망치지 않는것이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그야말로 심신미약상태가 되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전혀 판단이 되지 않는 것이죠. 어쩐지 이 곳을 나가면 더욱 큰 일이 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도움을 청하지도 못합니다.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좋으련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살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정말로 죽을 때까지 안고 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가나코는 조금 나았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 놓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녀를 위해 줄 친구 나오미가 있었거든요. 얼굴에, 온몸에 멍이 가실날이 없는 가나코는 남편의 지독한 폭력에 시달립니다. 아이도 없는데 어서 이혼하고 새출발 했으면 좋겠는데, 헤어지자는 말을 하면 더 맞을까봐, 친정 부모님에게 해꼬지 할까봐 감히 이혼하자는 소리도 못꺼내고, 남편의 감정기복에 따라 말 그대로 쳐맞습니다. 주먹으로 발길질로, 때로는 머리채를 잡혀 벽에 이리저리 찧입니다. 그런 가나코를 보는 나오미의 마음은 무척 불편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무기력했던 엄마의 강아지 같은 눈망울이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녀는 가나코를 구해내려 합니다. 어쩌면 어린시절에 구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빨리 구해내고 싶었을런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어머니는 딸 둘이 모두 다 성장해서 제 갈길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출발 할 결심을 못하고 있었거든요. 무기력이 학습된 탓인가봅니다. 가나코의 일은 자신의 일과 다름없었습니다. 과연 가나코를 어떻게 도우면 좋을까요.

그녀들은 가나코의 남편을 살해하기로 결정합니다. 나름대로 치밀한 - 나중에 보니 치밀하지 못했지만 - 살인 계획을 세우고 시신을 멋지게 처리하고 고객의 돈을 착복하고 해외로 달아난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그대로 실행합니다. 살인은 나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는 기분이 들어 그녀들을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위태위태 해 보이는 것이 이 계획 이대로 좋을까하고 걱정하게 하면서도 제발 델마와 루이스 같은 결말만은 아니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녀들이 위기에 부딛힐때마다 잘 피해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응원했습니다. 무척 두꺼운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와 가나코가 걱정이 되어서 책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기존의 오쿠다 히데오의 위트 넘치는 책이 아니라 <침묵의 거리에서>만큼이나 심각한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친구 같고, 동생들 같아서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응원 할 수 밖에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던 그녀들을 이해합니다. - 이럴때가 제일 힘듭니다. 살인은 나쁜 것이지만,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마음을 이해하니까요.

**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서는 그런 선택을 하시면 안됩니다.

** 일단 1366에 전화해서 상담을 받아보세요. 임시 피난처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 남성의 전화는 02-2652-0456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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