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접적인 폭력이건, 간접적인 폭력이건 그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람은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잘 모릅니다. 가정폭력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만 세상에 그럴수가, 어쩜 가족끼리 저러지....하며 가해자를 인간 쓰레기 취급하면서도 피해자는 어째서 저러고 그냥 살고 있느냐며 용기가 없다는 둥, 심지어 맞는 걸 좋아하는거 아니냐는 말을 하는 사람까지 본 적이 있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지요.

가해자는 폭력을 행사하고서는 그것에 대한 그럴듯한 구실을 만들어 붙입니다. 정말 사소한 일을 가지고 이러니 네가 맞을 만했다며 자신이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구실일 뿐입니다. 자신이 폭력을 휘두를 구실 말입니다. 그 폭력은 직접 당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부모 간에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사이의 아이의 마음은 어지러이 포탄이 비처럼 쏟아져내리는 들판에 서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맞으면서 왜 도망치지 않을까요? 도망치지 않는것이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그야말로 심신미약상태가 되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전혀 판단이 되지 않는 것이죠. 어쩐지 이 곳을 나가면 더욱 큰 일이 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도움을 청하지도 못합니다.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좋으련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살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정말로 죽을 때까지 안고 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가나코는 조금 나았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 놓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녀를 위해 줄 친구 나오미가 있었거든요. 얼굴에, 온몸에 멍이 가실날이 없는 가나코는 남편의 지독한 폭력에 시달립니다. 아이도 없는데 어서 이혼하고 새출발 했으면 좋겠는데, 헤어지자는 말을 하면 더 맞을까봐, 친정 부모님에게 해꼬지 할까봐 감히 이혼하자는 소리도 못꺼내고, 남편의 감정기복에 따라 말 그대로 쳐맞습니다. 주먹으로 발길질로, 때로는 머리채를 잡혀 벽에 이리저리 찧입니다. 그런 가나코를 보는 나오미의 마음은 무척 불편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무기력했던 엄마의 강아지 같은 눈망울이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녀는 가나코를 구해내려 합니다. 어쩌면 어린시절에 구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빨리 구해내고 싶었을런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어머니는 딸 둘이 모두 다 성장해서 제 갈길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출발 할 결심을 못하고 있었거든요. 무기력이 학습된 탓인가봅니다. 가나코의 일은 자신의 일과 다름없었습니다. 과연 가나코를 어떻게 도우면 좋을까요.

그녀들은 가나코의 남편을 살해하기로 결정합니다. 나름대로 치밀한 - 나중에 보니 치밀하지 못했지만 - 살인 계획을 세우고 시신을 멋지게 처리하고 고객의 돈을 착복하고 해외로 달아난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그대로 실행합니다. 살인은 나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는 기분이 들어 그녀들을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위태위태 해 보이는 것이 이 계획 이대로 좋을까하고 걱정하게 하면서도 제발 델마와 루이스 같은 결말만은 아니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녀들이 위기에 부딛힐때마다 잘 피해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응원했습니다. 무척 두꺼운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와 가나코가 걱정이 되어서 책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기존의 오쿠다 히데오의 위트 넘치는 책이 아니라 <침묵의 거리에서>만큼이나 심각한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친구 같고, 동생들 같아서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응원 할 수 밖에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던 그녀들을 이해합니다. - 이럴때가 제일 힘듭니다. 살인은 나쁜 것이지만,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마음을 이해하니까요.

**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서는 그런 선택을 하시면 안됩니다.

** 일단 1366에 전화해서 상담을 받아보세요. 임시 피난처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 남성의 전화는 02-2652-0456 라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