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십이국기 2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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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발을 들여 놓게 된 십이국기, 이번은 그 두번째 이야기로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기린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린은 참 매력적인 짐승입니다. 봉황처럼 상상의 짐승이지만, 봉황이 암수를 봉과 황으로 나누는 것처럼, 기린도 암수를 기와 린으로 나누어 부릅니다. 이번의 주인공은 다이키로 태나라의 왕을 정해야 하는 운명을 가진 어린 기린입니다. 


기린은 상상속에서 많은 변화를 해왔습니다. 말을 닮은 기린, 사슴을 닮은 기린, 용을 닮은 기린이 있는데요. 조선시대의 기린은 용을 닮았던 모양입니다. 고관 대신의 흉배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말을 닮은 아름다운 기린을 상상합니다. 기린은 강인해보이는 모습을 가졌으며, 지배자를 정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가졌지만, 성품은 지극히 온화하고 부드러워서 전쟁을 싫어하고, 피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의 절대 권력 때문인지 기린이 등장하는 곳에는 피보라가 일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기린은 슬픈 짐승입니다. 


십이국기의 기린도 마음이 선합니다. 태과에서 태어나 신녀들에게 양육된 기린은 자연히 성격조차 하늘에 가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입이 좀 거친 기린도 있긴 하지만, 그들은 함부로 머리를 조아리지도 않고, 단 하나 자신의 주군에게만 충성합니다. 그 지역엔 열 두개의 나라가 있으며, 열 두명의 왕이 있고, 각 왕에게는 기린이 하나씩 있습니다. 그러나, 태(대극국)국에는 기린이 부재중입니다. 새로운 기린이 태어나기 위해 태과가 열려 있을 때, 갑자기 일어난 식현상에 태과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흘러들어가버리고 그 곳에서 우리 시간으로 십년간 자라납니다. 열살이 된 소년은 그를 찾아 헤매던 신녀들의 간곡한 부탁을 기억해 두고있던 안국의 기린의 인도로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소년은 의외로 자신이 이곳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십이국기의 기린은 평소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각성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기린의 모습을 하지 못합니다. 다이키는 다른 기린과 달리 머리카락 혹은 갈기가 검습니다. 보기드문 흑기린이기에 힘이 해방되면 다른 기린들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어린아이 일 뿐입니다. 남들과 달라서 사랑을 덜 받았던 그 아이는 이쪽으로 들어와 여괴인 산시(보호자), 신녀 요키등의 사랑을 듬뿍 먹고 자라나지만, 자신이 과연 기린인가, 여기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것들을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게이키를 만나고, 태나라의 왕 후보자들을 만나며 점점 성장해나가는 이 소설은 꼬마 기린 육성기 혹은 성장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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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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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서는 안되는 문을 결국 열고 말았습니다.

평범한 고교생이 - 혹은 평범한 고교생이라고 생각한 던 사람이 - 이계로 흘러들어가 그 곳에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스토리의 소설이나 만화, 혹은 영화는 저에겐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건드려서는 안되는 금단의 영역이었습니다. 한 번 시작하게 되면 주인공이 새로운 세상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것 처럼 저 역시 그 세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기에, 시작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마성의 아이를 읽은 이후로 십이국기의 매력이 어떤 것이라는 걸 조금 눈치 채버렸기에, 그 아이가 이계로 발을 들여 놓기 전에 저도 함께 그만두었었는데, 어째서 시작해버린걸까요. 


이계로 흘러가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흥미로운 소재로 저를 붙잡아 두었던 것들에는 참... 하아.. 다양한 것들이 있었네요. <환상게임>,<환상게임- 현무개전>,<여왕의 기사>, <블리치>,<오늘부터 마왕> 같은 이야기들. 그러고보니 다 만화였네요.^^; 주인공이 학생이 아니라면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타임슬립물도 그런 맥락으로 저를 두근거리게 하는데요. 말하자면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튈 것 같네요. 오늘은 십이국기의 첫 이야기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는데 말이에요.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는 십이국기 시리즈의 가장 첫번 째 이야기로, 1992년에 출간된 이후로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저는 엘릭시르의 깔끔하고 예쁜 판형의 책을 접하기 전, 과거 타 출판사에서 출판된 형태의 책의 표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 그런식으로 책을 고르면 곤란하다는 걸 알면서도 - 큰 관심을 주지 않았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나왔을 때는, 그림이 참 예쁘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뿐 그다지 찾아 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엘릭시르에서 이렇게 집어 들기도 알맞은 사이즈로 책을 내놓고 나서는 주변에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엄청나게 하니 혹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책을 열기 시작했는데, 주인공인 나카지마 요코가 이계로 흘러들어가는 순간, 저 역시 이 책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낭패입니다. 요코가 다시는 도쿄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 처럼 저도 현실로 돌아올 수 없는 걸까요? .....뭐 그렇지는 않습니다. 10년이나 20년 전에 읽었더라면 그랬을런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저는 그렇게까지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한 다리는 이쪽에, 다른 다리는 저쪽에, 이렇게 양다리를 걸칠 수 있는 스킬이 생겼거든요. 다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쪽 다리에 힘을 더 주어 짝다리를 짚고 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요. 


요코는 느닷없이 찾아 온 게이키 때문에 영문도 모른채 무서운 것들에게 쫓겨 달아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무척 낯선 곳에 와 있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외모도 변해있었지요. 정말로 이것이 자기 자신일까 고민 되지만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응을 해야만합니다. 순진한 여고생의 마음가짐으로는 요마에게도, 그리고 자신을 속이려는 사람에게서도 안전 할 수 없었으니까요. 연약하고 우유부단했던 요코는 점점 강해집니다. 몸에 빙의 된 조유와 수우도 덕분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새로이 자라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책이나 무협지 같은 것을 읽을 때마다 역시 평소에 수련을 좀 해두는 게 좋지 않은가.. 느닷없이 이런 상황에 빠지면 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며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역시 이런 세계로 빠져들어갈 확률 같은건 거의 없으니 그런 생각은 집어치워버립니다. 그래도 혹시 기린이 만나러 오지는 않을까 살짝 상상해보는 건 괜찮겠죠?

-따라가긴 싫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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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라이징 레드 라이징
피어스 브라운 지음, 이원열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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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본성과 인간다움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 사이에서 깨닫고 실현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인문학에 무지한 저로서는 그의 깊은 뜻을 제대로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인간은 함께 살아가는 그 사회, 집단이 어떤 곳이냐에 따라서 가치관이 달라지며 자신의 추구하는 바도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모든 것이 정의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과거는 과거대로의 상황이 있고, 미래는 미래의 상황이 있기에 정말로 옳은 것은 어떤 것인지 함부로 말하기 어려워 깊은 고민을 하게 하거나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있거나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것들이 모두 거짓임을 알았을 때의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레드라이징>의 주인공 대로우는 거기에 사랑하는 어린 아내까지 잃었습니다.


대로우는 화성 광산에서 일하는 기술자입니다. 말이 좋아 기술자이지 사실은 모든 계급 중의 최하층민인 레드 계급으로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이주민들을 위해 화성표면을 테라포밍하기 위해 헬륨 – 3를 채굴을 하는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지요. 그는 가장 어리면서도 가장 용감하고 실력이 좋은 헬다이버였습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습니다. 16세의 사랑스러운 그들은 나름대로 레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지만, 레드에게는 금지된 숲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태형을 당하게 되고 아내, 이오는 그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로 금지곡을 부르고 교수형을 당합니다.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대로우는 적어도 그녀의 시신이 매달린 채 썩어 바람에 흔들리는 일을 막고 싶었고, 그녀의 시신을 매장하고는 – 매장이라는 불법적인 일을 벌인 죄로 사형 당하는 길을 택합니다. 하지만 그를 필요로 했던 저항세력에 의해 그는 가사 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나고, 자신들이 처한 진짜 실태를 알게 됩니다. 화성은 이미 몇 백 년 전부터 훌륭한 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지구는 수많은 식민지별을 거느린 터라 더 이상의 개척도 필요 없었습니다. 레드는 그저 그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지하에서 노예로서 고생하며 그들의 말에 복종하고 있던 슬픈 계급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 삶은 거짓이었다.

옥타비아 오 룬은 라이코스에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가 화성의 개척자라고, 우리는 인류를 위해 희생하는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인류를 위한 우리의 고생은 곧 끝날 것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화성이 거주 가능한 곳이 되면 더 약한 컬러들이 곧 이곳으로 올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와 있었다. 지구는 화성으로 왔고, 개척자라는 우리들은 지하에 남아 노예처럼 고생하며, 이.......이 제국의 기반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고통을 겪고 있었다. 우리는 이오가 늘 말했던 것처럼 소사이어티의 노예들이다.

-p.126

 


그는 자신을 살아나게 해준 댄서의 권유로 골드로의 변신을 합니다. 온 몸을 개조해 골드가 되는 그 과정은 무척이나 힘들고 괴로운 과정이었지만, 그런 변신물(?)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그의 몸과 언어의 개조와 더불어 교양을 쌓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그는 어떻게 골드가 되어 어디로 숨어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했습니다. 과거의 고생을 조금 벗어버리고 골드의 삶을 잠시라도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해커들의 덕분으로 신분까지 완벽한 변신을 한 그는 있는 집 자제분들이나 꽤 좋은 집 자제분들이나 다닌다는 교육기관의 시험을 치루고 당당하게 좋은 성적으로 입학을 합니다. 골드들은 정말 아름답고 멋있고, 무척이나 교양 있고..... 품격 있으며 매너를 중요시하는 귀족적인 모습 그 이상이었기에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만 했습니다. 우아하고 매너가 좋은 청소년 골드들이 모인 학교이니 어쩐지 교양이 철철 넘칠 것만 같지만, 그것은 교육에 의한 표면적인 모습이었나 봅니다. 초반의 경계와 낯가림을 조금 해소하고 친해 질만 했을 때 큰 시련이 닥쳐옵니다.

 

100명의 신입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혼자서 어떤 방으로 끌려가 구타를 당한 후 단 둘만의 방으로 다시 끌려가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시련을 겪습니다. 대로우는 살아남아야 했기에 친한 친구였던 친구를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살아야하는 이유는 무조건적인 생존 본능 이었다기 보다는 아내 이오를 위하여, 레드를 위하여 반드시 그래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습니다. 교수대에 매달린 아내의 다리를 당겨 죽음에 이를 수 있게 도왔던 그 손이 이번엔 친구의 피로 흠뻑 젖었습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일에서 탈출 할 수 없다. 나는 내 죄와 함께 혼자 있다. 이것이 그들이 지배하는 이유다. 흉터를 입은 비할 데 없는 자들은 어두운 일은 평생 가져가는 거라는 것을 안다. 저지른 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지배하려면 흉터를 입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의 첫 번째 교훈이다. 아니면 약한 자는 살 자격이 없다는 게 교훈인가?

나는 그들을 증오하지만 이해한다.

이겨라. 죄책감을 져라. 지배해라.

p.249

 


골드들은 레드만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었나봅니다. 그들의 우아하고 교양 있는 모습은 오래전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서로 베어 죽이는 검투사들을 보며 환호했던 그런 교양까지 포함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입학이 허가된 100명의 아이들 중 반수만이 1차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권이 없기에 그들을 학교에 보냈던 것입니다. 반, 그러니까 50명이 살아남았으니 이제부터 우아한 신사 숙녀로서 살아갈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더 큰 시련이 대로우와 골드 청소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장기간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부족 내에서의 정치, 연합, 배신, 잔인함 등이 존재하는 그 전쟁은 더 이상 골드가 우아한 계급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파리대왕>에서 느꼈던 잔인함 그 이상이 그들 사이에 존재했습니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추악하고 잔인했습니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그들이었기에 더욱 권력욕이 컸는지도 모릅니다. 대로우는 부족 전쟁을 해나가면서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눈치 챕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련을 겪어나갑니다.


이 소설 <레드라이징>은 무척 매력적입니다. 마구 끌어들여서 그들의 전쟁 속에 동참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살을 좀 더 붙여서 이야기를 풀어놓았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랬다가는 책이 너무 무거워 질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의 분량 자체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러니 이 정도가 맞을 겁니다. 충분했는지도 모릅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나가기 충분했으니까요.


큰일입니다. 이 책이 삼부작이라고 하네요. 이제 겨우 첫 번째 책이 출간 되었을 뿐인데, 나머지 두 권을 어떻게 기다리지요? 영화로 나온다고 하니 영화를 보며 좀 더 상상력을 키우면서 기다려 볼까 합니다. 그리고 부디, 잘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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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혹은 시작
우타노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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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예를 들어 러시아의 원자력 발전소가 폭파하든,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동북지장의 핵연료 시설에서 방사선이 누출되든, 그것이 직접 우리 집을 오염시키지 않는 한 나는 평화롭게 살 것이다. 

나의 솔직한 기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웃에서 누가 유괴를 당하든 총을 맞아 심장이 터지든 내 알 바 아니다. 물론 유족의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만, 그건 그냥 표면적으로 마음이 그렇다뿐이고 마음 깊은 곳에는 슬픔도 없다. 오히려 내 가족에게 아무 일이 없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앞선다. 

-p.67


사이타마현 한 마을에서 초등학생이 살해됩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연쇄적으로.

아이를 유괴하고나서 아이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메일 계정으로 한 통의 협박장이 도착하는데, 이 협박장은 유괴된 아이의 휴대폰으로 발송된 것입니다. 범인은 단 한통의 협박장만 보낸 후 휴대폰에서 배터리를 분리해서 위치가 추적되지 않게 합니다. 협박장은 상당히 기묘한 것이 아이의 유괴 몸값치고는 크지 않은 액수를 요구합니다. 마치 그 집의 사정을 알고 있다는 듯, 부모가 저축성 예금을 담보로 대출할 수 있을 정도의 범위인 60~200만엔 정도만 요구합니다. 참 기묘하지요. 그리고 협박장에서 늘 그렇듯이 경찰에게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경찰에 알리고, 몸값을 지불하지만 아이는 살해당합니다. 사실은 협박장을 보내기도 전에 이미 살해 했습니다. 살해 도구는 소형 권총.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어, 총을 쏜 뒤의 반동이 강하지 않아 힘이 좋지 않은 사람도 이용 할 수 있는 도구였습니다. 

첫 번째 희생자 에바타 신고 의 이웃인 '나'는 아들 유스케와 친했던 신고의 유괴 살해로 약간 안됐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내 일 처럼 마음이 아프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남의 일이니까요. 내 일처럼 여길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 가족, 내 자신이 중요하니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만 않으면 되잖아요. '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아들 방에서 어른의 명함을 발견합니다. 처음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어디서 주워왔으려니... 하고 넘어갔는데요. 며칠 후 그 명함 주인의 아들이 연쇄 살인의 희생자가 됩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해서 아들의 방을 몰래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제까지 연쇄 살해당한 아이들의 부모 명함을 발견합니다. 처음엔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우연이 겹치다니. 조마조마해집니다. 그리고 결국. 서랍의 비밀층에서 권총과 실탄까지 발견하고맙니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좀 더 조사를 하는데, 조사를 하면 할 수록 아들이 그 범죄에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은 깊어만 갔고, 유괴범이 시키는 대로 멋모르고 아이들을 불러내는 역할 정도만을 했을거라는 상상이 결국은 아들이 범인이며, 직접 살해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결국 '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합니다. 다음에 하자고 결심한 순간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온가족이 처참하게 살해된 현장이었습니다. 그것도 자기가 준비했던 흉기로. 정말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망상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나와 지금 여기 있는 아빠는 현실의 나와 아빠가 아니라는거야. 현실의 아빠가 보는 환상 속에 존재할 따름이야."

-p. 355


이 아버지는 아들이 범인임을 확신하고선 어떻게 말할까, 아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나... 알린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정말 이 아이는 어째서 이런 일은 저질렀을까하며 밤새 잠 못 이루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정말 사람을 들었다놨다 합니다. 어쩜 이럴 수가. 두근두근 했다가 한시름 놓기도 하고, 다시 좌절했다가 다시 두근두근하게 하고. 읽는 내내 심한 파도 위에 떠 있는 배안에 있는 기분을 느끼게 했습니다. 

추리 소설 작가가 사건을 하나 만들어 내고선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향을 고민할 때 이렇겠구나. 이렇게 풀어도 저렇게 풀어도 어떻게든 사건은 흘러가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단 한갈래의 방향만이 우리에게 있을 뿐입니다.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 알 수 없으니 자신의 선택을 믿고 따라가야합니다. 


유스케는 어째서 살인을 저질렀을까요? 

그리고 아버지는 어쩌자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을까요.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리고 과연 그 선택에 대한 결과물을 모두 감당 할 수 있을까요?


세계의 시작은 카오스였다고 한다. 카오는 혼돈과는 다르다. 애당초 거대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고 '공'은 텅 빈 무엇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내재한 무의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 오늘처럼 아주 새파란 하늘 같은 것이다. 

-p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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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 - 한일 법의학자가 말하는 죽음과 주검에 관한 이야기
우에노 마사히코.문국진 지음, 문태영 옮김 / 해바라기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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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출간 된 이 책은 우리나라의 문국진 교수님과 일본의 우에노 마사히코님의 대담집인데요. 문국진 교수님 책 답게 어려운 내용은 없습니다. 

문국진님도 연세가 많으시지만 우에노님 역시 연세가 많기에 연륜과 더불어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일들이 참 많았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예전부터 눈여겨 보고 있긴 했지만, 문국진님의 책은 이 책이나 그 책이나 똑같은 이야기를 중복하는 경향이 상당히 심해서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몇 년간 망설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필요에 의해 이 책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요. 

1/2 정도 읽다가 포기 할 뻔 했습니다. 

지난 번에 읽었던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하고 겹치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지요. 

우에노님보다 문국님님께서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도끼에 맞아 죽을 뻔 한 사건, 지상아, 페니실린 쇼크 등등은 이제 하도 우려서 뽀얗게 국물이 우러날 지경입니다. 출간 시기로 따지자면 <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가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보다 10년 전도 앞서 있기에 후자의 책이 중복시킨게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법의학으로....>이 책이 지상아, 새튼이등의 합본의 개정판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참..쯧.

아무튼, 초반의 고비를 벗어나 책을 덮으려고 할 때쯤 몰랐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기서 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라는 제목을 짚고 넘어가야하지 않을까요?

일본 추리소설을 하도 많이 읽다보니 시체, 사체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하며 아무 생각없이 혼동해서 사용했는데요. 

이 책에 의하면 (10년 전이니 지금은 바뀌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시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사체라고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에게만 사체라는 말을 사용하고 사람에게는 시체라고 칭한다하는데요. 유족이 확실 할 경우에는 시체 대신 정중히 유골이라고 표현합니다. 일본의 경우엔 인수 공통으로 사체라고 하는데요. 유족이 확실 할 때에는 정중히 유해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별로 구별하여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말해도 알아듣긴 하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알고 넘어가는 게 좋겠죠.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부검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인데요. 일본에서는 부검을 한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느냐, 그렇다면 부검해라.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고..... 라는 식인가봅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두벌죽음을 할 수 없다며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문국진님이 책마다 말씀하시는 - 아예 제목이 그런 책도 있지만 -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 했던 사건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아니, 그런데 그 사건은 이 책에서 말하길 50여년 전이라고 합니다. 그럼, 지금은 60여년 전인데, 인식이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우리나라에서 부검을 반대하는 이유는 아마도 미련 때문일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죽은 자와 대화를 하지 않나요? 부모님이 먼저 일찍 돌아가셨을 때에도 신부감을 산소에 데리고 가서 '아버지. 며느리감이에요.'하고 인사시키는 장면이 요즘도 나오는 걸 보면 사자와의 대화는 여전한가 봅니다. 그러니 법의관이 시신에 메스를 대면, 미련과 미련사이의 끈이 타인에 의해서 절단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부검을 반대하는 것 같다고 문국진님은 말합니다. 그러고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 책의 후반에 들어서 이런 한일 양국에 대한 부검과 사건의 차이에 대해 알게 되었고, 고인에 대한 태도도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을 괜히 읽은 건 아니었네요.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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