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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ㅣ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평점 :
열어서는 안되는 문을 결국 열고 말았습니다.
평범한 고교생이 - 혹은 평범한 고교생이라고 생각한 던 사람이 - 이계로 흘러들어가 그 곳에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스토리의 소설이나 만화, 혹은 영화는 저에겐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건드려서는 안되는 금단의 영역이었습니다. 한 번 시작하게 되면 주인공이 새로운 세상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것 처럼 저 역시 그 세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기에, 시작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마성의 아이를 읽은 이후로 십이국기의 매력이 어떤 것이라는 걸 조금 눈치 채버렸기에, 그 아이가 이계로 발을 들여 놓기 전에 저도 함께 그만두었었는데, 어째서 시작해버린걸까요.
이계로 흘러가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흥미로운 소재로 저를 붙잡아 두었던 것들에는 참... 하아.. 다양한 것들이 있었네요. <환상게임>,<환상게임- 현무개전>,<여왕의 기사>, <블리치>,<오늘부터 마왕> 같은 이야기들. 그러고보니 다 만화였네요.^^; 주인공이 학생이 아니라면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타임슬립물도 그런 맥락으로 저를 두근거리게 하는데요. 말하자면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튈 것 같네요. 오늘은 십이국기의 첫 이야기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는데 말이에요.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는 십이국기 시리즈의 가장 첫번 째 이야기로, 1992년에 출간된 이후로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저는 엘릭시르의 깔끔하고 예쁜 판형의 책을 접하기 전, 과거 타 출판사에서 출판된 형태의 책의 표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 그런식으로 책을 고르면 곤란하다는 걸 알면서도 - 큰 관심을 주지 않았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나왔을 때는, 그림이 참 예쁘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뿐 그다지 찾아 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엘릭시르에서 이렇게 집어 들기도 알맞은 사이즈로 책을 내놓고 나서는 주변에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엄청나게 하니 혹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책을 열기 시작했는데, 주인공인 나카지마 요코가 이계로 흘러들어가는 순간, 저 역시 이 책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낭패입니다. 요코가 다시는 도쿄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 처럼 저도 현실로 돌아올 수 없는 걸까요? .....뭐 그렇지는 않습니다. 10년이나 20년 전에 읽었더라면 그랬을런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저는 그렇게까지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한 다리는 이쪽에, 다른 다리는 저쪽에, 이렇게 양다리를 걸칠 수 있는 스킬이 생겼거든요. 다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쪽 다리에 힘을 더 주어 짝다리를 짚고 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요.
요코는 느닷없이 찾아 온 게이키 때문에 영문도 모른채 무서운 것들에게 쫓겨 달아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무척 낯선 곳에 와 있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외모도 변해있었지요. 정말로 이것이 자기 자신일까 고민 되지만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응을 해야만합니다. 순진한 여고생의 마음가짐으로는 요마에게도, 그리고 자신을 속이려는 사람에게서도 안전 할 수 없었으니까요. 연약하고 우유부단했던 요코는 점점 강해집니다. 몸에 빙의 된 조유와 수우도 덕분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새로이 자라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책이나 무협지 같은 것을 읽을 때마다 역시 평소에 수련을 좀 해두는 게 좋지 않은가.. 느닷없이 이런 상황에 빠지면 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며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역시 이런 세계로 빠져들어갈 확률 같은건 거의 없으니 그런 생각은 집어치워버립니다. 그래도 혹시 기린이 만나러 오지는 않을까 살짝 상상해보는 건 괜찮겠죠?
-따라가긴 싫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