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종가의 색목인들 셜록, 조선을 추리하다 1
표창원.손선영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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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 좀 했습니다. 애초에 이 책은 팬심으로 구매했거든요. 표창원님에 대한, 손선영님에대한, 그리고 셜록 홈즈에 대한 팬심말이에요. 셜록 홈즈가 라이엔바흐 폭포에서 모리어티와 대결 한 후 사라졌던 그 기간, 조선에 왔었다는 설정이 독특하기도 하고 과연 어떤 이야기를 펼쳐줄 것인가 무척 기대되었습니다.

말썽쟁이 어린 시절부터 셜록 홈즈를 꿈꿔왔던 표창원과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가는 손선영의 만남이니 조선에서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사건을 해결하는, 또는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장죽대를 입에 물고 있는 셜록 홈즈를 볼 수 있겠거니 했습니다만. 기대를 과하게 했었나 봅니다. 표창원의 글로도, 손선영님의 글로도 셜록 홈즈로서도 뭔가 조금씩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셜록 홈즈 특유의 관찰력이나 추리력, 논리력 같은 것도 소설에서는 덜 드러나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마지막의 추리 장면에서도 '~입니다, ~한 것입니다'라는 확신에 찬 말투 대신 '~겁니다, ~일 겁니다.' 등 추측하는 -약간의 여지를 두는 말투를 사용해서 제가 상상하는 자신만만한 홈즈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마의 딸로 등장하여 셜록 홈즈와 함께 조선의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던 신여성 간호사 와선도 어쩐지 10% 정도의 매력이 부족했습니다. 홈즈와 와선 둘 중 어느 한쪽에 매력을 몰아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양분하다 보니 두 캐릭터 모두에게 부족한 부분이 생긴 건 아닌지.

애초에 팬심으로 읽게 된 책이기에 되도록이면 좋은 리뷰를 하고 싶었는데, 시원스레 큰 활자와 줄 간격마저도 책의 두께를 늘리기 위해 그러했던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겨,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선에 들어와 색목인 기녀(혹은 창녀)를 살해했던 연쇄 살인마를 추적해가는 과정을 스릴 있게 그리거나 캐릭터를 잘 살렸으면 좋았을 텐데, 무척 아쉬움이 많습니다. 팬심을 더한다고 하더라도 별을 많이 주기는 어렵겠네요. 제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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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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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학자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했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프리모 레비는 1919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태어난 유태계 이탈리아인인데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화학과를 졸업 한 후 반파시스트 지하운동에 참여하다 결국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제3 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합니다. 다행히 살아남아 전후에 화학자로서, 그리고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어째서인지 몰라도 1987년 자살로 그의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이 책은 1975년 발표된 그의 세 번째 회고록인데요. 회고록이라고 해도 좋고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기율표라고 하면 누구나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periodic table)을 떠올릴 텐데요. 저도 그랬습니다. 수소로 시작하는 바로 그 표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의 목차도 수소로부터 시작하겠거니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하고 있었지요. 저는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때, 화학자가 쓴 주기율표대로 진행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과연 수소, 헬륨, 리튬을 이어 베릴륨을 지나가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책은 그런 가볍고 발랄한 책이 아니었습니다. 


책의 목차는 아르곤부터 시작합니다.

Ar. 18번 원소로 대기의 거의 1%를 차지하고 있지만 비활성기체로 반응성이 거의 없습니다. 애초에 아르곤이라는 이름이 그리스어의 'argos'(게으름뱅이)에서 온 것을 생각하면 참 성격대로다 싶은데요. 반응성도 거의 없고 활성화되지도 않는 거, 별로 필요없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렇다고 없애도 괜찮은 녀석은 아닙니다. 책의 첫 번째 아르곤 챕터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수많은 모르는 단어와 호칭들이 등장합니다. 그곳에 존재하고 있기에 그에겐 익숙하지만 저에겐 무척 낯선 사람들이 소개되고 등장합니다. 호칭이나 이름들이 너무나 생소해서 이들의 이름을 모두 메모해두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서는 바람에 사실 좀 두려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러면 어쩌지,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러나 아르곤을 무사히 넘기고 나니 편안해졌습니다. 저에게 낯선 것들이 사라졌거든요.


작가는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들을 하나씩 챕터의 제목으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마치 소설처럼 담담하게 말이에요. 원소번호 순서대로가 아니라 그의 인생 순서대로 원소가 등장합니다. 그의 유년시절 친구와의 소소한 실험 끝에 커튼을 태운 이야기라거나(수소) 아우슈비츠에서의 세륨 덕분에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사랑과 인생의 이야기가 철학적으로 그려집니다.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즐겁게. 주기율표에 인생을 담을 수도 있다니 대단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중간에 갑자기 등장하는 창작물(소설) 때문에 잠시 어리둥절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책을 잘 못 읽고 있나 당황하기도 했구요. 그래서 제자리 - 그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무척 기뻤습니다.


책 속에서의 그는 - 실제로도 그랬지만 - 화학자였기 때문에 실험하는 장면이 무척 많이 등장합니다. 고전적인 방법으로(그럴 수밖에!) 정량분석을 하고 미량원소 추출을 하거나 회분(Ash) 분석, 염이나 앙금을 얻는 장면들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변변찮은 환경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실험하는 것을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었습니다. 수은 챕터에서는 좀 아찔하긴 했지만요. 


심각하지만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문장도 무척 좋아서 독서 중에 잠시 책을 덮고 장면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사색해보기도 했습니다. 생각거리를 많이 던지거든요.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조금 어렵지만 권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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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 지구의 2인자, 기생충의 독특한 생존기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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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정도 지났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딸아이의 머리에서 머릿니가 발견된 적이 있었습니다. 아니 21세기에도 머릿니가 살고있단 말인가! 놀라기도 하고 화도 나고 해서 머리를 깨끗이 감기고 참빗도 사다가 빗겨주었는데요. 저희 둘은 꼭 닮은 곱슬이라 참빗질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원인은 당시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것이 원장님 아들에게 감염, 같은 빗을 돌려쓰는 바람에 딸에게도 감염되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아이의 머릿니가 다른 아이에게 전염될까 봐 원장님께 빗을 돌려쓰지 마시라고 살짝 말씀드렸던 것인데, 원장님은 깔깔 웃으며 자신의 아들에게 머릿니가 있어서 그게 옮은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좀 황당하긴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말았습니다. 숱 많고 곱슬곱슬 한데다가 아이의 피부니 얼마나 야들야들하고 살기 좋았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머리를 박박 밀어버리고 싶었지만 - 아들이었으면 그랬을지도 몰라요 - 한창 멋부리기 좋아하는 여섯 살이었으니 꾸준히 노력하는 것으로 치료했습니다. 끔찍한 머릿니와 서캐, 기생충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요.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에 당당히 올라가 있더군요. 아, 머리에 기생하면서 피를 빨아먹으니 기생충이 맞습니다. 


평소에 기생충이라고 하면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편충, 촌충... 뭐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의외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질아메바 같은 건, 그냥 단세포 생물이로구나... 그러다 몸에 들어오면 설사를 일으키는 녀석들인가 보다... 했는데, 이 녀석도 기생충이라네요. 그러고 보면 기생충의 범위가 꽤 넓습니다. 요전에 읽었던 <내 몸속의 우주(롭 나이트, 브랜던 불러)> 때문에 혼란스러워졌어요. 어디까지가 기생충일까... 그러다가 생각이 <기생수>의 오른쪽이(미기)에게까지 미쳐서 이 녀석은 기생충(혹은 기생수)이 아니라 공생충(혹은 공생수)가 아닌가 하는 상상도 했고요. 

기생충이 뇌를 장악해서 숙주의 행동을 지배한다면 과연 어느 쪽이 기생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철학적인(?)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이 자꾸만 딴 데로 가버려서 잘 다독여 데리고 와야 했습니다.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는 앞서의 저서 <서민의 기생충 열전>보다 좀 더 무섭(?)습니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에서는 신기한 기생충의 세계를 엿보았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굉장한 녀석들이다...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서민 교수가 저보고 두려워하라며 쓴 글이 아닐 텐데 말이에요. 처음엔 착한 기생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정말 착한 녀석들은 아니고요. 뭐 나름 착하다고 쳐줄 수 있는 녀석들입니다. 그다음은 독특한 기생충들에 대해 이야기해요. 정말 특이한 녀석들이 참 많더군요. 한때 회를 못 먹게 만들었던 고래 회충에 대한 오해도 풀었습니다. 마음 놓고 회를 먹어도 되겠어요..... 금전이 허락한다면 말이죠. 나쁜 기생충을 소개할 때에는 어휴, 정말 무서웠습니다. 괜히 이미 감염된 건 아닌가 걱정도 되었고요. 특히 샤가스병에 걸린 건 아닌가 살짝 의심도 해봤다니까요. 일주일에 한 번씩 뵙는 이모와 제가 같은 증상을 비슷한 시기에 겪었거든요. 기우겠죠? 빈대에 물릴 일이 없었거든요. 빈대 붙었으면 모를까, 물리다니. 말도 안 돼요. 저처럼 괜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나 봅니다. 기생충 망상증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요. 그런 걱정 다 접어두고 신기한 기생충의 세계를 염탐했다는 즐거움만 간직하려 해요. 이름도 어려운, 친해지기 어려운 녀석들이지만 신비한 매력이 있는 친구들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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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스토리콜렉터 4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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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봤던 것만 같은 장면,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풍경들... 분명 낯선 것들인데도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기이한 현상을 기시감(데자뷔)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한 번 이상 겪어봤을 법한데요. 보통은 '우와, 신기해. 나 전에 이 장면 본 적 있는데!' 라거나 '꿈에서 봤는데!'라고 말하며 호들갑을 떨거나 몸을 한 번 부르르 떠는 것으로 그치고 말죠. 그러나 이런 기시감이 연달아 일어나고, 심지어 자신을 삼키려 든다면 과연 어떨까요.


기시감이라는 것은 실은 인간의 착각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과거 기억의 파편들이 흩어져있다가  어떤 계기로 각각 다른 조각의 것들이 모여 하나의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내는데, 그 아귀가 정확히 맞아들지 못하면 뇌에서는 빈 공간을 채워 넣으며 그림을 완벽하게 재구성하게 되죠.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보고 있던 것이 과거의 것과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전혀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에 느꼈던 것처럼 여기고 마는 것입니다.

<화가>의 코타로의 경우도 그런 과학적인 이유에서 느낀 기시감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다면 이 모든 일들을 소년 시절의 신기한 느낌으로 추억할 수 있었을 텐데요.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시자 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된 코타로는 시골의 한마을로 이사합니다. 도시의 연립주택에서의 생활은 버겁게 느껴졌었겠지요. 할머니의 수입으로 이런 단독주택에 살게 되다니 이상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임대를 받았다고 말씀하셨지만 어딘가 석연찮습니다. 이상합니다. 이 마을이, 이 집이 낯설지 않습니다. 언젠가 이 마을과 이 집에 왔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겁니다. 낯설지 않아 적응하기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불쾌한 느낌이 먼저입니다. 이사 온 첫날, 동네의 -약간 정신이 나간 것 같은 - 노인에게 "꼬마야, 다녀왔니....?"라는 인사를 들은 것도 찜찜합니다. 그래도 좋은 점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레나라는 소녀를 만났거든요. 동갑내기에 매력적인 소녀 레나. 붙임성도 좋은 것 같습니다. 

코타로는 이 집에 오기 전부터 악몽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어두운 공간에 갇혀있는 악몽. 별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떱니다. 이윽고 세로로 길쭉한 빛이, 가느다란 빛이 나타나고, 희망을 얻은 그가 빛으로 나아가려 하면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반복되는 꿈. 동네의 숲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이사를 하고 나면 좋아질 거라 생각했건만.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 꿈의 조각들이 집 안에서 현실로 나타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면 괴이한 것들과 소리에 사로잡히는 코타로. 이 집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것에게 먹혀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과연 이 집은 코타로에게 무얼 원하는 걸까요? 코타로는 집에서, 마을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요?


<화가>는 미쓰다 신조의 '집 시리즈'중 첫 번째 이야기로 북로드에서는 <흉가>에 이어 두 번째로 출판하였습니다. 실제 순서는 화가- 흉가의 순이지요.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으므로 따로 읽어도 무관합니다. 이번의 <화가>역시 <흉가>에서처럼 집과 소년, 그리고 토속 신앙이 한데 엮여 공포감을 줍니다. 처음엔 그다지 무섭지 않다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평이하군. 역시 나는 이제미쓰다 신조의 소설 정도는 평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나 보다 하며 눈을 반쯤 감고서 읽어나가기 시작했지요. 한참을 재미있게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위로 솟아올라있는 어깨로 인해 통증을 느끼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잔뜩 긴장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쉰 뒤 뻣뻣해진 목덜미와 어깨를 풀며 다시 읽었습니다. 코타로의 무사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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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소설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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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기괴한 일이라니, 정말 싫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끔찍한 일들이 나에게만 보이는, 나에게만 들리는, 나에게만 느껴지는 것이라니. 

조현병 환자의 기분이 이런 걸까요? 

공포로부터 겨우 빠져나왔나 싶었는데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고 마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싫은 소설>책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싫은 아이','싫은 노인','싫은 문','싫은 조상','싫은 여자친구','싫은 집', 그리고 마지막의 '싫은 소설'로 이루어진 연작 단편입니다. 각 단편의 주인공은 서로 다른 사람으로 각자의 괴이한 일들을 겪습니다. '싫은 아이'의 화자 다카베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기분 나쁘게 생긴 아이가 집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정체가 뭘까요? 아이에게 시달리는 새에 아내와 다카베는 두려움에 떨다가 긍정의 힘을 발휘, 정황을 극복합니다만, 이내 무너지고 맙니다. 


  어째서 논리가 통하지 않나!

  하아, 하아, 하아.

  나는 - 힘이 빠져서 그 녀석 위에 무너졌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근육이 이완되어 있다. 나는 더 이상 중력을 거스를 수가 없다. 내 본체는 내 피부에서 흘러나가 배 밑에 있는 싫은 아이를 주르륵 빠져나가서 바닥에 스며들고 말았다.

  싫은 아이는 그런 나를 밀어내고 타박타박 어디론가 가 버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딱 한마디,

  "싫어......"

라고 말했다.

-p.66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읽고 또다시 읽어도 도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각 단편들에 내내 등장하는 후카타니의 말에 의하면 폐인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정신을 놓고 폐인이 되어버리는 장면을 저렇게 표현한 것이로군요. 당사자의 느낌이란 저런 것일까요. 


'싫은 노인' 편은 끔찍합니다. 사방에서 분뇨와 노인 냄새가 뒤섞인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습니다. 후카타니의 직장 동료 구보타의 아내 기미에가 화자로 등장해 함께 사는 노인의 변태적인 행위에 시달리는 이야기를 합니다. 남편이 출근 한 사이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히는 노인. 치매인가 싶었지만 멀쩡한 정신으로 그런 행동을 하다니. 정말 싫습니다. 싫어요. 


'싫은 문'에서는 후카타니의 동창이자 이번 이야기의 화자인 기자키의 절망과 그에게 나타난 기묘한 구원의 문이 등장합니다. 어떻게 되었다는 이야기일까요? 남의 운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하면 풍요로워진다는 꿀같은 말에 넘어간 그는.


'싫은 조상' 편에서는 후카타니의 동료 가와이가 화자입니다. 무개념 부하의 불단을 억지로 떠맡은 가와이는 불단이 집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설상가상으로 그곳에서 기분 나쁜 냄새까지 납니다. 도대체 이 안엔 뭐가 들어있는 거야! 우연히 열린 문을 통해 그가 본 것은... 묘사만으로도 그 기분나쁨이 확실히 전해져왔습니다.


'싫은 여자친구'는 후카타니의 후배 고리야마가 화자로, 새로 사귄 여자친구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화자가 싫다고 하는 일만 골라서 합니다. 심술쟁이라서 그러는 정도의 귀여운 짓이 아닙니다. 싫다고 말했던 것들에 둘러싸여버린 고리야마. 결국 여자친구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맙니다. 네가 싫다고. 그러니 이제 집에 오지 말아달라고. 그날부터 여자친구는 그의 집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싫은 집'에서는 후카타니의 예전 상사 도노무라가 아내와 사별 한 후 집에서 기묘한 고통을 겪습니다. 한 번 겪었던 고통을 반복해서 겪게 되는 건데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문을 나서려다 옷장에 새끼발가락을 찧은 이후 자꾸만 반복해서 옷장에 발가락을 찧습니다. 심지어 옷장을 없앤 후에도 말이에요. 같은 위치에서 발가락을 다칩니다. 이런 사소한 고통, 불쾌한 감각들은 그것들이 없는데도 계속됩니다. 그 집안에만 들어서면.


'싫은 소설'에서는 드디어 매 단편에 등장했던 후카타니가 화자로 등장합니다. 지인들에게 계속되는 이상한 일들. 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은 죽고 말았습니다. 어쩐지 자기 차례가 아닐까 불안할 만도 하죠. 후카타니는 우연히 들른 고서점에서 무척 낡아 보이는 신간<싫은 소설>을 발견합니다. 심지어 서점 주인이 쓴 책이라는 데요. 정말 싫은 상사 기타니와 함께 출장을 가다가 읽기 시작한 이 책에는 지금까지 제가 읽던 내용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인 책이라니. 기분 나쁜 농담이나 스토커의 책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지만 후카타니가 알게 된 사실은 타임리프에 걸리고 말았다는 끔찍한 사실이었습니다. 최악의 상사의 옆자리에서 타임리프라니. 말도 안 돼!



아아, 싫어, 싫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싫은 것 투성인지.

논리로 생각하려 하지 말고 장면만을 떠올려야 합니다. 논리로 생각하려 하면 납득할 수 없어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니까요.



이 책을 잠이 오지 않는 열대야에 읽을 기묘한 책으로 추천합니다.

어쩌면 더 잠이 안 올지도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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