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케어
하마나카 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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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p.26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정말 두렵습니다. 며칠 심하게 앓고 났더니 더 그렇습니다. 지금은 젊으니 금세 회복도 가능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더욱 좋아지고 전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만, 끊임없이 쇠락해나가기만 하는 시절이 올 테지요. 그래도 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어서 나를 돌보아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도 표현할 수 있으며, 미안한 마음도 가질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만일 치매라도 겹쳐 모두를 더욱 힘들게 하는 그런 시간이 온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마저 내 의지대로 가능할까요.


<로스트 케어>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사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점점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늘어가는 노인들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수는 적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 바랄게 없지만 예전보다 오래 사는 탓인지 병에 걸릴 확률은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픈 채로 오래 살게 된다는 건데, 무엇을 위한 장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 했습니다. 직접 누군가를 힘겹게 간호해 본 적은 없었지만, 몸이 아플 때마다 어린 딸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고선 제대로 된 식사도 못 챙겨줄 때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토마토 주스 한 병을 24시간에 나누어 조금씩 마시는 도중에도 아이가 컵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 슬펐습니다. 미안했고요. 아이가 조금 더 자라 중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를 돕고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 지금은 평소에 먹지 못하던 라면이라 신나하며 먹지만요 - 모습은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곧 일어설 수 있으니까 나으면 잘 해주자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지만, 어쩐지 몇 십 년 후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 같아 속상해졌습니다. 


<로스트 케어>에는 이런 아픈 사람, 노인의 마음은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의 마음은 알 수 있었습니다. 노인성 질환에 인지증(치매)까지 겹쳐 시달려야 하는 매일매일.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금전적인 문제까지. 하루하루가 생지옥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대상이 부모이기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불경한 일이 되어버리고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저주하고, 세상을 저주합니다.  돈이라도 있었으면 고급 실버타운에 입주라도 할 텐데. 그럴 돈은 없고 사회봉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없는 사이에 은발 머리의 천사가 집으로 찾아와 부모를 데리고 갔습니다. 상실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찾아오고, 지쳤던 마음은 점점 회복이 되어갑니다. 

40명이 넘는 노인을 저세상으로 보냄으로써 노인들의 자식을 케어했던 '그'는 그런 작업을 '로스트 케어'라고 불렀습니다. 죄책감 같은 건 없습니다.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그 작업은 어쩌면 성스러운 것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구사카베 요의 <A 케어>를 읽었을 때와 같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자식인 나는 '그'가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노인인 나는 '그'를 맞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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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담아낸 인문학 - 상식의 지평을 넓혀 주는 맛있는 이야기
남기현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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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으면 언제나 손대기 망설여집니다. 어쩐지 어려운 것일 것만 같고 철학 개념이나 심리학적인 분석이 들어가 있는, 그러니까 자연 과학처럼 딱 떨어지는 개념이 아닌 너무나도 방대한 삼라만상을 두루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감히 내가 손대서는 안되는 거룩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실은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 내 곁에서 함께 숨쉬고 있는 것들 중에서도 인문학의 향기를 품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음식도 그런 것들 중 하나여서 이런 책이 나왔나 봅니다.


모든 사물이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음식도 그렇습니다. 과학적인 측면으로 접근해, 분자 단위로 쪼개가며 그 음식물의 영양, 화학적 가치를 따질 수도 있고, 식품의 공급과 수요에 따라 경제적인 측면으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적으로는 어떻게 접근했을까요. 그런 궁금증 때문에 <음식에 담아낸 인문학>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음식에 담아낸 인문학>은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한국의 맛, 외국의 맛, 사랑과 낭만의 음료, 자연이 준 선물로 되어 있습니다. 매일경제신문 기자인 남기현이 유통부에서 1년간 식품팀장을 지내며 관련 산업과 시장, 다양한 음식 문화를 취재했었는데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책의 내용에서 조금 일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의 맛, 외국의 맛에서는 과거의 인물이나 역사 사건을 예를 들며 이야기하거나, 음식의 탄생 등에 대해 저자가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반면, 사랑과 낭만의 음료 - 술-에서는 저자의 주관적인 요소가 참 많이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형식의 글도 있었고, 사전 취재에 대한 내용이 마치 잡지의 글처럼 서술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음식에 관한 이모저모를 알아보고 작은 지식을 쌓는다는 관점에서 읽는다면 나름 나쁘지 않습니다만,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사용한 건 좀 과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이라는 게 너무나 커다래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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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가 사는 저택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2
황태환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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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좀비 문학을 좋아합니다. 실제로 좀비들이 창궐하는 세상에서는 단 며칠도 살아갈 수 없을 거면서 희한하게 책에서의 좀비물에는 매력을 느끼고 있어요. 좀비라는 것이 작가들의 손에서 그 특징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데요. 특정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이건 뭐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 언데드가 기괴한 모습과 냄새를 풍기며 돌아다니죠. 대부분의 좀비들은 서로를 잡아먹지는 않습니다. 그런고로 좀비가 인간을 공격하는 건 인육을 탐한다기보다는 생물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번식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인육 섭취는 부수적인 문제고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좀비라는게 현재로서는 상상의 산물, 창작물이니 정해진 분석, 정설은 없을 테니까요. - 있긴 합니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라고, 맥스 브룩스가 쓴 책인데, 그는 그 책을 바탕으로 <세계 전쟁 Z>를 집필했습니다. 그 가이드북마저 창작물이니, 좀비가 나타났을 때 정말로 큰 도움이 될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부산행>옆에 꽂아둔 정명섭의 <좀비 제너레이션>을 읽으면 도움이 될까요?


영화 <부산행>에서도 느꼈지만, 한국형 좀비들은 스피드가 장난이 아닙니다. 감염되고서 잠복기가 길지 않아 그런지, 녀석들이 싱싱해요. 사후경직이 다소 있긴 해도, 아직 멀쩡한 육체 덕분에 좀비가 되기 전보다 더 잘 뛰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 빠릅니다. 힘도 세고요. 넘어지면 다친다, 넘어졌더니 아프다. 이런 감정이 없으니 그냥 본능에 충실한 겁니다. 그러니 저는 잡혀서 좀비가 될 겁니다. 달리기 꼴등을 면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황태환의 <난쟁이가 사는 저택>에 등장하는 좀비들도 스피드가 대단합니다. 괴이한 모습으로 생존자를 향해 달려오는데, 이리저리 몸을 굴려 도망가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심지어 주인공은 선천적 왜소증입니다.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려 남들보다 더 빨리 달려야만 합니다. 아버지가 경비로 근무하고, 자신이 무급 노동을 하던 병원 건물은 이제 좀비들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식량 보급은 옥상에서 헬기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투하됩니다만,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아버지와 함께 보급품을 받을 수는 없기에 1인용의 식량을 가지고 근근이 살아갑니다. 좀비 병원장의 목에 걸린 자이로콥터의 열쇠만 빼앗는다면 아버지를 모시고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 텐데. 설상가상, 결국엔 아버지가 자발적으로 좀비가 되어버리고, 가까스로 빼앗았던 자이로콥터의 열쇠마저 아버지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사라집니다. 한편 병원장의 개망나니 아들 문복이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보유자라는 이유로 구조대가 투입되고 그를 게토로 데려가려고 하지만 좀비들의 습격으로 실패합니다. 문복과 구조대원 기원은 주인공 성국의 도움으로 살아납니다만, 안하무인인 문복의 태도는 세상이 변해도 여전해, 성국을 괴롭힙니다. 우여곡절 끝에 함께 하게 된 혜진과 상범. 이들 다섯은 운명 공동체가 되는데요. 어휴. 셔터 밖의 좀비들은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꽤나 단결된 모습을 보이는 데, 이들 다섯은 전혀 그렇지 못 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생각이 안 맞는 다섯 명이 모였을까요? 보급품을 받으러 가는 옥상의 통로가 파괴되어 유일한 통로는 쓰레기 배출구만이 남았습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예전 복도식 아파트나 건물에는 더스트 슈트가 있었습니다. 소각로로 연결되어 있거나 외부로 가져갈 수 있는 문이 있는데요. 아무튼 그게 위에서 아래로 직선 하강하는 구조로 되어 있을 텐데, 이 병원에는 환풍구 스타일로 되어 있었는지 - 그럼 가로 부분에 쓰레기가 막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튼 그 통로를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왜소증인 성국뿐입니다. 처음엔 미련하리만큼 선했던 그는 어떤 계기로 삐뚤어지고, 음식을 지배하는 자로서 권력의 정점에 섭니다. 과연 그런 권력이 영원할까요? 


<난쟁이가 사는 저택>이라는 좀비 소설에서는 좀비의 무서움이라거나 좀비와 싸워 이기자는 주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무섭기도 하고 싸우거나 피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생존자들이 이겨내야만 하는 건 오히려 사람입니다. 몇 안되는 생존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쓰레기 같은 일들. 추악한 짓거리들. 그런 것을 피해서 살아난다고 해도 실은 보급품이 끊기면 완전히 끝난다는 여러 가지 불안한 가능성들이 있음에도 그들은 뭣이 중헌지도 모른 채 단결하지 않습니다. 조금은 단결해도 좋지 않은가 싶은데, 이렇게까지 각자의 생각만 할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렇지만 다행입니다. 실제의 사람들은 저렇지 않으니까요....라고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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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전쟁 환상문학전집 37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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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베트남 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베트남의 통일 과정에서 미국이 개입하고 참전하여 장장 15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전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 중에서도 베트남전에 참전하면 동생의 병역을 빼준다거나 돈을 많이 준다거나 하는 말에 전쟁터에 뛰어든 분도 있었는데요. 그 일들이 실현이 되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어릴 적, 어른의 무용담으로 들었던 이야기라서요. 우리나라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나라입니다. 그 와중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겠지요. 제 정신으로 행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았을 겁니다. 지원해서 갔다 하더라도 정확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서 갔을는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민한 부분이라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렵네요.


스티븐 킹의 <롱 워크>에서는 소년들이 영문도 모른 채 걷습니다. 낙오되거나 걸음을 멈추면 죽는다는 규칙이 있지요. 왜 걷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완주하고 나면 큰 보상이 따른다는 말만 믿고 걷습니다.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걷기 위한 자로 뽑혔으니 죽어가면서도 끝없이 걸어야만 했을 뿐. 어디 그들만 그렇겠습니까.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영웅이 되어 있거나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참전했던 군인들은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니까 총을 들고 적을 죽이고, 제정신으로 싸우기 어려워 마약의 도움을 받기도 했었죠. 훈련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날아든 포탄에 목숨을 잃기도 하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있던 친구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가 되어 있기도 하고... 무서워서 그만두고 싶어도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지요. 겨우 살아남아 돌아간 고국은 상상과는 달리 나를 그렇게 환영해주지 않았고, 그래도 스스로 영웅이라 생각하며 이겨나가려 했지만, 전쟁 후에 남은 건 고장 난 몸뚱이, 고엽제 후유증, 마약의 유혹... 달라져버린 물가, 고향의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같은 곳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베트남전 이야기입니다.


SF의 고전,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에서 똑같은 걸 보았습니다. 베트남전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한 조홀드먼은 졸업 후 베트남전에 징집되어 전투에 투입되지만 심각한 부상으로 명예 제대를 한 후 소설가의 길을 걷습니다. <영원한 전쟁>은 그의 물리 천문학 지식에다 베트남 참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광대한 우주에서의 전쟁을 보여줍니다. 

1997년 스타쉽 트루퍼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거, 스타 크래프트를 영화화한 건가 보다.'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영원한 전쟁>을 읽으면서 또 그런 실수를 했지 뭡니까. 자꾸만 스타쉽 트루퍼스 영화가 생각이 나서 '스타쉽 트루퍼스가 이 책 보고 쓴시나리오인가 보다.'라고 말이에요.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가 먼저입니다. 조 홀드먼이 그 책의 영향을 받았지요. 어딘가 모르게 연상되는 장면들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주인공들의 외모를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의 등장인물들로 상상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좀 더 실감 났죠.


<영원한 전쟁>은 베트남전이 끝난지 20여 년 후의 근미래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과거지만, 소설이 1970년대에 나왔으니 당시로 따지면 근미래죠. 1960년대에 달 구경을 했을 뿐인데 1990년대의 지구인들은 미래로 진출합니다. 우주 식민지 건설을 위해서였는데요. 지능이 있는 생명체가 지구인만 있는 건 아니니까, 당연히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특별 부대를 조직하는데, 아이큐 150 이상의 남녀 50명씩을 훈련시켜 군인으로 만듭니다. 싸우는 거 보면 아이큐랑 크게 상관있는 거 같지도 않았지만, 주인공인 만델라는 물리학, 천문학 지식을 원활하게 사용하는 걸 보면 고 지능의 군인이 필요했던 게 맞긴 한가 봅니다. 그들은 엘리트 징병 법에따라 뭐 거부할 자유 같은 건 없고 무조건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군인이 됩니다. 제가 보기엔 머리 좋은 오합지졸이었는데, 높은 분들에게는 무슨 뜻이 있었나 봅니다. 훈련 중에 병사들이 픽픽 죽어나가는데, 살아남은 군인들을 정예병으로 하여 무시무시한, 지구인들이 토오란이라고 부르는 외계 생명체가 있는 한 행성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을 강인하게 만들기 위해 조작된 기억을 심어 적대심을 키워줍니다. 흥분상태의 병사들은 그 좋은 머리를 제대로 써볼 겨를 없이 본능만으로 마구잡이 총질을 하다 죽어갑니다. 정말 집에 가고 싶겠지요. 


SF 영화나 소설을 많이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우주선에서의 시간과 지구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갑니다. '워프'라고 부르고 싶지만 책에서는 '콜렙서 점프'를 해서 공간을 뛰어넘습니다. 여기에서 시간차가 나기 시작하는데요. 자세히 들어가면... 제가 곤란해지므로 그냥 그렇구나 하며 읽으면 됩니다. 아무튼, 우주선 내에서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지구로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여든이 넘어 있었습니다.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닌, 21세기의 차가운 세상이. 주인공 만델라는 전쟁을 치르고 귀환을 했음에도 결국 적응하지 못해 다시 우주로 날아갑니다. 그것이 앞으로 몇 백년의 여정이 될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마침내 귀환했을 때, 그가 마주한 세상은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이번 황금가지의 <영원한 전쟁>은 서문도 있고, 작가의 말도 있고, 마지막에 해설도 있는데요. 특히 해설. 왜 이리 긴 거야!라고 투덜거렸지만, 제가 막상 리뷰를 쓰려고 하니 말이 길어지네요. 이 책이 좀 그렇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은 지구와 다를 바가 없어요.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도 알 수 없고,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건지도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비극이죠. 그렇지만 해피엔딩입니다. (무슨 소리냐!) 

보통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 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이게 되는데요. 이 책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플래그가 엄청나게 붙었습니다. 읽다 보면 내가 우주에 있는 건지 지독한 현실에 있는 건지 알 수 없거든요. 주인공의 독백도 제대로 와 닿고 그의 사랑도, 전우애도 와 닿습니다. 사실 전투 장면이랑 우주 물리학 이야기할 때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상상하는 거죠. 제가 AU를 알겠습니까, 상대성 원리를 이해하겠습니까, 중력 가속도 같은 건 잊어버린지 오래죠. 작가가 정말 뿌듯해하는 부분이라는데,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우주에서 적용해 중력 가속도가 어쩌고저쩌고 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는 장면이 있어요. 전, 뭔지 몰랐습니다. 아, 만델라가 말한 걸 좀 응용했고, 그래서 이 여자가 살았구나... 다행이다. 흑. 이런 기분이었으니까요.

만약에 물리, 천문학 지식이 풍부한 분이 읽으신다면, 전쟁에 대해 많은 걸 아는 분이 읽으신다면, 모든 부분에서 흠뻑 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좀 질투가 났습니다 . 지식이 없는 제가 읽어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그런 분은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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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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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행복과 불행은 물려받는 거라고, 오디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넉넉하게 받고 어떤 사람들은 모자라게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부스러기 하나까지 음미하고 마지막 골수까지 쪽쪽 빨아들인다. 우리는 빗소리, 새로 깎은 풀 냄새, 모르는 사람들의 웃음, 더운 날 새벽의 시원함에서 기쁨을 느낀다. 우리는 세상을 배우고 우리가 모르는 것 이상은 결코 알 수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감기에 걸리듯 사랑에 걸리고, 폭풍우 속 난파선에 매달리듯 사랑에 매달린다.

-p.550



마이클 로보텀은 나무 같은 작가입니다.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단단한 껍질 속에 싸여있는 굵은 나무줄기, 부드러운 가지와 푸른 잎사귀가 느껴집니다. 향기로 치자면 나무에 몸통을 긁고 간 사향노루의 향이 그대로 배어있는 샌들우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굵직한 사건을 흥미로운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가 묘사한 등장인물의 심층심리를 내 것인 양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작가는 독자의 심리까지 움켜쥐는 데 성공하지요. 마이클 로보텀의 작품을 많이 접해봤던 건 아닙니다. 국내에 번역이 많이 되어 있지 않아서인데요. 북로드에서 출판된 조 올로클린 시리즈, <산산이 부서진 남자>,<내 것이었던 소녀>는 마이클 로보텀이 어떤 작가인가, 그의 소설의 흡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알게 해 주었습니다. 조 올로클린의 나머지 시리즈도 속히 출간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북로드에서 마이클 로보텀의 책이 나온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선 조 올로클린이 또 나오는구나 하며 기뻐했었는데요. 이번의 신간 <라이프 오어 데스>는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뭐, 마이클 로보텀의 책이니까 분명히재미있을 거야.' 하며 읽었지요. 그리고 소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700만 달러의 현금수송 차량이 탈취된 엄청난 사건, 경찰과 대치했던 범인들은 모두 사살되었는데요.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남아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오디는 무슨 영문인지 출소를 하루 앞둔 날, 탈옥합니다. 딱 하루만 기다리면 제 발로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는 그곳을, 어째서 일부러 나가 수배자의 신세가 되어버렸을까요. 오디는 단 하나의 사랑이 남긴 말을, 자신이 그녀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자가 되어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랑에 목숨을 걸 수 있는 걸까요. 10년이라는 시간은 그것들을 퇴색시키기에 충분했을 텐데요. 오디는 마음이 강한 순정남 -이라는 표현은 촌스러운 거죠. 요새는 사랑꾼이라고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 이었습니다. 10년 전 사건 이전에도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강인했고,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면서도 그녀와 함께 하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었는데, 총을 맞고 두개골이 부서져도, 지난 10여 년간 감옥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도, 탈옥 후 발데즈라는 보안관에게 쫓기면서도, 연방 요원 데지레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결코 강인함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그가 피해야하는 건 경찰과 보안관, 연방요원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감옥에서 함께 지냈던 모스라는 친구도 오디를 추적합니다. 누군가가 반드시 오디를 찾아내라며 모스와 계약했던 건데요. 그는 돈을 좋아하고 아내를 사랑하며 자신을 사랑할 줄도 아는, 말하자면 지극히 인간적인 캐릭터이며, 마초였습니다. 우정을 지키고 싶은데, 그러자니 자신이 잃어야 하는게 너무나 많습니다. 소중한 것들과 맞바꿀 정도의 우정인가, 누구라도 고민될텐데요. 과연 모스는 오디를 의뢰인에게 넘기고 새 삶을 얻을 수 있을까요.


<라이프 오어 데스>라는 숨 가쁜 스릴러를 읽다 보면 어느새 그 남자의 사랑이 느껴져 마음이 아파집니다. 자세히 드러나 있지 않은 그의 10년이라는 세월마저 파고들어옵니다. 선한 사랑꾼 오디, 그가 사랑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겠죠. 굳이 그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 알아보려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스레 알게 되니까요. 그저 그의 무사 생존을 기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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