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애나 블루스 앨버트 샘슨 미스터리
마이클 르윈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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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마이클 르윈의 <인디애나 블루스>가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저에겐 북스피어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미야베 미유키였거든요. 물론 북스피어에서 루스 렌델,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작가의 책도 출판했었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리즈, 현대물 같은 것들이 나오는 출판사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니까요. 여하튼 표지도 강렬한 것이 재미있겠다 싶어서 읽게 되었는데요. 역시, 재미있습니다. 다 읽고 책의 뒷 날개를 보고 알게 되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행복한 탐정,' 스기무라 사부로'와 이 책의 주인공 앨버트 샘슨이 무관하지 않더군요.  미야베 미유키가 자신이 좋아하던 앨버트 심슨 같은 탐정을 만들고 싶어서 탄생 시킨 것이 스기무라 사부로였더라고요. 현재 '누군가','이름 없는 독','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서 만날 수 있는데, 터프하지는 않지만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참 정이 갑니다. 그러고 보니 북스피어에서 제작하는 '르 지라시'의 작년 5월 판이 '앨버트 샘슨'특집이었는데 잊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읽고 나서 미야베 미유키가 좋아하는 탐정이라니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놓고요.

마이클 르윈의 '앨버트 샘슨' 시리즈는 어머니와 아내를 웃기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마음씀 덕분인지 소설에 유머 코드와 따뜻함이 잘 심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초반에 유머가 집중되어 있었는데요. 중반으로 흘러가면서 유머는 다소 약해지지만 탐정으로서의 접근은 좀 깊어지지요.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이 마냥 웃기고 헛소리만 해서야 쓰겠나요. 그런데, 앨버트 샘슨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더군요. 돈을 잘 못 벌어요. 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의뢰인이 더 이상 의뢰비와 실비를 지급하지 않더라도 계속 사건을 추적합니다. 그런 점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같은 건물 안이긴 하지만, 사무실 구역과 개인 공간을 - 나름대로 - 나누어 쓰는 앨버트 샘슨 사립탐정에게 15세의 어린 아가씨, 아니 여고생이 사건을 의뢰하러 찾아옵니다. 학교에서 ABO 식 혈액형을 배우는 바람에 자신의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라며, 친아빠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하는데요. 질풍노도의 시기인 이 아가씨, 제법 통장 잔고가 넉넉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문난 잘 사는 집 따님이거든요. 다른 탐정 사무소에서 모두 돌려보낸 이 사건을 맡기로 결정한 그는, 여학생의 친아빠 찾기에 나서는 데, 생각보다 일이 복잡합니다.  뜻하지 않은 벽에 부딪힌 그는 여학생의 아빠, 리앤더 크리스털에게 오만 달러 수표를 받고 사건을 종결짓게 되는데요.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에 수표를 돌려보내는 그. 그리고 알아낸 진실과 결과는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중간에 조금, 아주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그렇게 유머 코드를 집어넣어놓고 중간에는 조금만 넣어주면 박자가 틀려지잖아요. 기대치라는 게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정신 차리고 탐정과 함께 심각해지니 그 흐름이 참 좋더군요. 하드보일드이려나 아니려나 하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탐정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미야베 미유키가 왜 이 탐정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스기우라 사부로 보다는 조금 더 동적이지만, 매력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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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도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1
신시은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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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가 짙게 깔린 바닷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합니다. 뿌연 안개와 비릿한 바다 내음은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경이와 함께 두려움을 데려옵니다. 이대로 이 안에 갇혀버리는 것은 아닌지. 낯선 존재가 나타나 모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다른 곳으로 데려가 줄지도 모른다는 설렘도 있습니다. 악마적인 존재를 만나면 영원한 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죠.


"이른 봄이 돼서 해무가 끼모, 영산에 사는 할미 구렁이가 내려온데이. 그 구렁이는 사람 고기를 묵을라꼬 내려오는 긴데, 구신 노파 형상을 하고 해무가 낀 틈을 봐가꼬 바다에 나섰는 사람을 영원히 데려가뿐데이. 알았제?"

"하, 할매요, 내 무섭심더."

"하모, 또 있데이. 새벽에 혼자 돌아다니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와도 뒤돌아 보지 말고 도망가래이."



해무가 끼는 날 영산의 할미 구렁이가 내려와 사람을 하나씩 데려가는데, 심지어 그 영산 혈곡에는 백발 귀신 노파가 자식의 원수를 갚으려 떠돌고 있습니다. 어찌나 노파의 원한이 깊은지 영산에는 산짐승조차 살 수 없었는데요,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영산을 넘어가야만 갈 수 있는 곳의 한옥 저택에는 한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저주받은 집이라는 걸 모르는지 하나같이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살러 오는 모양인데요. <해무도>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서도 사는 걸 보면, 동떨어진 그곳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거나 숨어야만 할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20년 전 해무도와 인연이 있었던 치수는 한옥 저택의 주인이자 자신의 은사인 정 교수가 죽었다는 소식에 섬으로 달려갑니다 20여 년 전, 목 없는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던 불길한 장소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만약, 또 다른 사건들과 마주칠 것을 알았더라면 가지 않았을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죽고,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자신이 탐정 역할을 해야 할 것을 알면서 갈 일반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퉁명스럽기는 하지만 영산을 넘을 수 있게 도와준 이까지 희생되는데요.


어쩐지 곡성의 한복판에 서울 탐정이 와있는 것 같은 분위기로 사건은 잘도 흘러갑니다. 영산과 해무의 괴담으로 인한 심리적 밀실과 폭설이 내려 고립된 실제적인 밀실 구도로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한옥 저택에서 '밀실'사건이 일어납니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

범인과 함께 있어야 하는 심리적인 압박감과, 곳곳에서 목격되는 백발 머리타래들.

범인은 정말 영산의 귀신 노파일까요. 아니면 사람의 소행일까요. 


모든 것이 밝혀진 후에도 석연치 않은 사실에 마음 한 켠이 찜찜한데요. 

그 불편한 마음이 괴담과 미스터리의 컬래버레이션 <해무도>를 당분간 잊지 못하게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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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할 용기 - 인간관계를 둘러싼 88가지 고민에 대한 아들러의 가르침
기시미 이치로 지음, 홍성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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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영어를 공부하던 고등학생 시절, 영자지의 '디어 애비'라는 코너를 즐겨 읽었습니다. 실은 시사적인 내용은 모르겠으니 다소 쉽게 느껴지던 상담 칼럼 코너와 만화를 봤던 건데요. '디어 애비'에 독자가 짧은 사연을 보내면 '애비'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폴린 에스더 필립스 씨가 답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딱 부러지는 정답이 아닐 때도 있었지만, 나름 고개를 끄덕이며 인생 선배의 충고를 새기곤 했습니다.  독자의 질문이 사소할 때도 있고, 큰 문제였던 경우도 있지만 '애비'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죠. 저는 어쩐지 그분이 좋았습니다. 
기시미 이치로의 <나를 사랑할 용기>를 읽으니 '디어 애비'가 생각나더군요. 이 책은 그때의 칼럼처럼 누군가가 사연과 함께 질문을 하고 기시미 이치로가 답을 하거나 조언을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읽지 않았지만, 얼마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아들러 심리학의 권위자라고 하더군요.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입니다. 

지인들은 제가 내향적이라는 사실을 말하면 의아해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무대 체질이거든요. 온 세상이 디즈니 같았으면 좋겠어요. 길에서 느닷없이 노래를 하고, 누군가가 노래하면 옆에서 같이 하기도 하고 춤도 추고. 그런 세상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눈치채셨나요. 맞아요. 저 사차원이에요. 그래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기가 두렵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사고를 해요. 가만히 있으면 이상하지 않은데, 뭔가 제 나이대의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면 좀 두렵기도 하고, 그렇다고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려면 그들이 싫어할 것 같고, 어르신들에게 귀염 받는 게 좋은데, 이건 퇴행 현상이잖아요. 그러니 그냥 집에 처박혀 있는 게 낫죠. 혼자 밖에서 놀면 되긴 하는데, 외모 콤플렉스도 있어요.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무서워요. 사람이 많은 곳의 무대 위는 괜찮아요. 하지만 그들 틈에 있는 건 두렵습니다. 모임에서도 말을 잘 안 해요. 아마 분위기 파악을 못 해서 말실수를 할까 봐 두려운 거겠죠. 두세 명 있을 땐 말을 참 잘하는데. 어째서 여러 명이 되면 자꾸만 움츠러들까요? 이런 제 자신이 싫어요.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사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제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내가 정말 나 자신을 사랑한다면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는데, 외모 콤플렉스도 남이 지워준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짊어진 것이니... 그렇군요! 수긍하며 책을 읽어봅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조금 화가 나네요. 아 뭐, 다 자기 자신 때문이래. 자괴감도 들고 기분도 나빠지려고 해요.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내 주변에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고칠 순 없잖아요. 그들도 나름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나의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되는 거겠죠.
이 책에 있는 모든 것을 나에게 적용해 따를 수는 없습니다만 납득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좋은 조언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엔,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가 좀 많이 와 닿았거든요. 편하다고 해서 말을 막 뱉어서는 안된다는, 그런 이야기요. 내가 들어서 기분 나쁠 말은 자식에게도 하면 안 된다는 거. 당연한 이야기인데 자꾸 잊게 되거든요. 

눈물 날 만큼 마음을 울리는, 가슴을 찌르는 조언을 해주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답해주는 책이니 그렇겠지요. 그러나 읽다 보면 분명 자신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새해의 시작을 이 책과 함께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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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아사다 지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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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서기 1800년대 후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선택했던 건 단순히 제목에 '뒷마무리'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것과 올해 첫 번째로 구매했던 책이었기 때문이었는데요. 여섯 개의 단편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마무리와 어울릴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대의 흐름이라거나 세상의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보기엔 충분했습니다. 

10여 년 전 지인이 청첩장 인쇄를 마치고 예비 시어머니께 야단을 맞았습니다. 이유인즉슨, 결혼식 날짜를 양력으로만 표기했지 음력을 병기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는데요. 친구인 저희들은 요새 날짜 고지하면서 음력을 쓰는 데가 어디 있냐며 친구의 편을 들어주었지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해를 못 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 쓰던 음력 생일도 불편해서 양력으로 챙기는 판에 음력이라니. 그런데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를 읽다가 갑자기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레고리력을 쓰는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우리는 양력이 당연하지만, 과도기에 살아온 친구 시어머니 세대에는 음력이 여러모로 편리했던 겁니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 이후, 우리나라는 개화기 이후겠지만 - 부끄럽게도 역사를 잘 몰라 정확히 서술할 수는 없지만 - 여러 가지 서양문물이 들어왔고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 위로부터의 개혁은 국가의 변화와 상관없이 백성들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었을 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책력이 바뀐다는 건 달을 중심으로 한 세상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한 세상으로 바뀐다는 건데, 말 그대로 천지가 뒤집히는 일이었겠죠. 실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신기하다! 어떻게 서양에서도 일주일을 쓰고, 우리도 일주일을 사용하는 걸까?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과거에 우리의 개념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오행인 목화토금수에 일, 월을 더해서 일주일이 7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목화토금수의 오행의 순서가 바뀌어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이라니. 좋지가 않아요. 제가 마음에 들든지 말든지 어쨌든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의 세상에서 살고 늘 월요병에 시달립니다. 
여유 있게 살아왔던 시간도 요일과, 월과 연도가 바뀌며 뭔가 당겨지는 기분이었을 텐데, 초 단위의 시계라니! 그렇게 가쁘게 살아가야만 하는 건지.

책을 읽는 포인트가 어긋났는데요. 저는 이런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책에는 사무라이였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사무라이 정신으로 다져졌던 사람들이 이제는 무가의 사람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할 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되었고, 칼을 차고 다니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세상에서 떠돌이, 하인, 상인이 되고, 무가의 아녀자들이 작부 일을 해야 하는, 그런 세상에서 겪는 일들이 잔잔하게 펼쳐집니다. 어떤 자는 과거를 소중히 여기되 현재에 적응하고, 어떤 자는 과거에 묶여 나아가지 못 합니다. 어떤 자는 현재를 여기서 종결하려 합니다. 각자 새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들의 방식이 모두 이해가 되어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심각하게 읽으라고 쓴 소설일까 싶을 정도로 잔잔하면서 유쾌합니다. 약간의 블랙 코미디 요소도 있고요. 그런데도 읽을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아픕니다. 

세상이 바뀐다고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리셋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건 없어요. 변화는 흐름이더군요. 흘러가는 거였어요. 그건 몰랐던 사실이 아니었을겁니다. 그런데 마치 처음 알게 된 사람 같은 기분이에요. 세상의 변혁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따라가기는 버겁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는 무가 사람들을 보며 과연 그게 남의 일일까, 소설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현재의 우리를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볍게 웃고 넘어가지 못하나 봅니다. 

이 책을 읽고 마무리를 했을까요? '고로지 할아버지'처럼은 안되겠습니다. 사람은 각자의 마무리 방식이 따로 있는 법이니까요. 저는 아직입니다. 마무리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진행 중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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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수리공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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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성격이 다른 두 소설이 들어 있는 <장난감 수리공>을 읽었습니다. 1995년 '장난감 수리공'으로 제2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단편상을 수상한 고바야시 야스미는 최근 <앨리스 죽이기>로 국내의 추리소설 팬들에게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요. 저는 <앨리스 죽이기>를 읽다가 그만두었었습니다. 작가 특유의 난해한 진행을 견딜 수 없었기에 포기했던 건데요. <장난감 수리공>은 호러 소설이라고 하니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있더라도 그런 점이 분위기를 좀 더 괴이하게 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장난감 수리공>이라는 책에는 단편인 '장난감 수리공'과 중편인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이렇게 두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후자도 단편에 가깝긴 한데요. 두 개의 단편이 수록된 책이라고 하면 너무 가벼울 것 같아서 후자는 중편으로 여기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두 편의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장난감 수리공'이라는 충격적인 소설을 소개하고 싶지만 이대로는 책을 낼 수 없겠기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를 합쳐서 펴낸 것인가 상상을 하였지만, 일본에서도 이와 같이 출판하였다고 합니다. 어째서 앞서와 같은 상상을 했냐면, '장난감 수리공'은 다분히 일본 호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색채를 가진 작품이었는데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는 나 자신이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아닌가 할 정도의 충격을 주는 SF 호러 소설이었기 때문입니다.


'장난감 수리공'의 시작은 두 사람의 대화로부터입니다. 낮에는 반드시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그녀가 들려준 기이한 이야기. 어린 시절 동네에 있는 좀 괴이한 -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도 모르겠고,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장난감 수리공은 무상으로 어린이들의 장난감을 수리해주는데, 어떤 것이라도 반드시 수리해주는 신의 손을 가진 이였습니다. 장난감이 없던 그녀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지만요. 어느 날 그녀는 10개월짜리 남동생 미치오를 업고 다니다 육교에서 떨어집니다. 그녀에게 깔린 미치오는 죽어버리는데요. 그녀는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께 혼날까 봐 무섭습니다. 이전에 동생의 이마를 다치게 했다고 무서운 벌을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어린아이인 그녀는 장난감 수리공이라면 동생을 고쳐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심하게 다쳐서 피를 흘리면서도 동생을 수리공에게 데리고 가고,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동생의 치료 과정을 보게 됩니다. 이 소설은 대담하고 괴이하고 끔찍합니다. 수리공에게 가는 길도, 수리공을 만난 이후도 상상력을 발휘한 제가 미워집니다. 절대로 상상하며 읽어선 안됩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는 줄거리를 나열하기도 힘듭니다. 시간여행에 관한 물리법칙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그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막연히 그러한 것이라고 상상하는 저에겐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명의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하게 되기 전 의식과 시간의 흐름에 관한 이론을 펴 나갈 때,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이르러서는 정말 눈이 피로하더군요. 그 난해함과 괴로움을 이겨내고 나면, 육신은 그대로 있으되 혼만 시간 여행을 하는 남자를 보게 됩니다. 그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자가 되어버렸고, 무수히 많은 평행 우주 속을 헤매는 미아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엔 사랑하는 그녀의 죽음과 그녀에게 집착한 또 하나의 남자의 영향이 컸습니다. 또 하나의 남자는 시간 여행에서 벗어났지만 - 아니,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그녀도 죽은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딘가에서 다시 존재하고 있을 테지요. 아아,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의 축이 뒤틀리면서 지금의 내 생은 정말로 단 한 번의 삶일까, 어디선가 또 다른 내가 나도 모르는 새 낯선 지인과 인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것이 공포를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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