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수리공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무척 성격이 다른 두 소설이 들어 있는 <장난감 수리공>을 읽었습니다. 1995년 '장난감 수리공'으로 제2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단편상을 수상한 고바야시 야스미는 최근 <앨리스 죽이기>로 국내의 추리소설 팬들에게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요. 저는 <앨리스 죽이기>를 읽다가 그만두었었습니다. 작가 특유의 난해한 진행을 견딜 수 없었기에 포기했던 건데요. <장난감 수리공>은 호러 소설이라고 하니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있더라도 그런 점이 분위기를 좀 더 괴이하게 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장난감 수리공>이라는 책에는 단편인 '장난감 수리공'과 중편인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이렇게 두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후자도 단편에 가깝긴 한데요. 두 개의 단편이 수록된 책이라고 하면 너무 가벼울 것 같아서 후자는 중편으로 여기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두 편의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장난감 수리공'이라는 충격적인 소설을 소개하고 싶지만 이대로는 책을 낼 수 없겠기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를 합쳐서 펴낸 것인가 상상을 하였지만, 일본에서도 이와 같이 출판하였다고 합니다. 어째서 앞서와 같은 상상을 했냐면, '장난감 수리공'은 다분히 일본 호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색채를 가진 작품이었는데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는 나 자신이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아닌가 할 정도의 충격을 주는 SF 호러 소설이었기 때문입니다.


'장난감 수리공'의 시작은 두 사람의 대화로부터입니다. 낮에는 반드시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그녀가 들려준 기이한 이야기. 어린 시절 동네에 있는 좀 괴이한 -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도 모르겠고,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장난감 수리공은 무상으로 어린이들의 장난감을 수리해주는데, 어떤 것이라도 반드시 수리해주는 신의 손을 가진 이였습니다. 장난감이 없던 그녀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지만요. 어느 날 그녀는 10개월짜리 남동생 미치오를 업고 다니다 육교에서 떨어집니다. 그녀에게 깔린 미치오는 죽어버리는데요. 그녀는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께 혼날까 봐 무섭습니다. 이전에 동생의 이마를 다치게 했다고 무서운 벌을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어린아이인 그녀는 장난감 수리공이라면 동생을 고쳐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심하게 다쳐서 피를 흘리면서도 동생을 수리공에게 데리고 가고,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동생의 치료 과정을 보게 됩니다. 이 소설은 대담하고 괴이하고 끔찍합니다. 수리공에게 가는 길도, 수리공을 만난 이후도 상상력을 발휘한 제가 미워집니다. 절대로 상상하며 읽어선 안됩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는 줄거리를 나열하기도 힘듭니다. 시간여행에 관한 물리법칙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그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막연히 그러한 것이라고 상상하는 저에겐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명의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하게 되기 전 의식과 시간의 흐름에 관한 이론을 펴 나갈 때,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이르러서는 정말 눈이 피로하더군요. 그 난해함과 괴로움을 이겨내고 나면, 육신은 그대로 있으되 혼만 시간 여행을 하는 남자를 보게 됩니다. 그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자가 되어버렸고, 무수히 많은 평행 우주 속을 헤매는 미아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엔 사랑하는 그녀의 죽음과 그녀에게 집착한 또 하나의 남자의 영향이 컸습니다. 또 하나의 남자는 시간 여행에서 벗어났지만 - 아니,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그녀도 죽은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딘가에서 다시 존재하고 있을 테지요. 아아,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의 축이 뒤틀리면서 지금의 내 생은 정말로 단 한 번의 삶일까, 어디선가 또 다른 내가 나도 모르는 새 낯선 지인과 인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것이 공포를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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