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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 2 - 열두 명이 사라진 밤,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점을 보지 않습니다. 천기누설이니 알아서는 안된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알아서 뭐 하겠는가 하는 마음에선데요. 운명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어서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현재의 내가 뭘 하면 그게 바뀔까요. 바뀌지 않으니까 정해진 운명이겠죠.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습니다.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없다면 아예 점을 볼 필요가 없고요. 그러니 미래를 엿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현재가 모여서 미래가 될 테죠. 지금 열심히 산다고 반드시 밝은 미래가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현재를 살아봅니다. 시간에 몸을 맡기고요.
미래의 일은 그렇다 치고, 과거로 돌아가서 어느 한 시점을 수정한다면 현재는 어떻게 변할까요.
정해진 운명이 있다면 어떻게든 그 오류를 수정해서 - 어쩌면 바이러스 같은 그 시간여행자를 없애서라도 - 원래 돌아갈 예정이었던 흐름을 유지할 테죠. 그게 아니라면 현재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테고요.
어쩌면 수정하는 순간 평행이론에 의해 또 다른 세계로 분화되는 바람에 현재는 전혀 바뀌는 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과거인은 헛수고를 한 셈이 될 테고요.
이를테면, <드래곤볼>에서 미래에서 온 트랭크스가 적을 처치하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그가 사는 미래는 변한 게 없습니다. 4년 후 다시 우리의 현재로 돌아오는데요. 자신 때문에 역사가 바뀐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또 적과 싸우는데요. 야무차가 트랭크스에게 묻습니다. 이 세계에 와서 싸우고 이기더라도 너의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왜 오는 거냐고요. 트랭크스는 이렇게 답합니다. 어머니(부르마)께서 말씀하시길, 이 지옥 같은 미래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니 다른 세계에서라도 이 지옥 같은 미래를 막으라고요. 어쩐지 감동적입니다.
지금은 타임머신이 없는 시대라서 - 없겠죠? 일단 순간 이동 기술을 개발하는 게 선행되어야 할 겁니다. 그래야 어디로든 이동을 시키죠.- 과거의 사건을 수정한다거나 누군가를 죽인다거나 하면 현재는 유지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수정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작가의 상상에 따라 어느 한 쪽을 선택하고 우리는 그 상상을 따라갑니다.
김영탁의 <곰탕>은 어떤 상상을 했을까요? 돌 하나만 잘 못 옮겨도 미래에 변화가 생길 것 같은데, 소설에서는 미래인들이 잘도 내려옵니다. 암울한, 몇 차례의 쓰나미가 덮쳐버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자리 일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미래가 없는 미래인이 과거로 돌아와 우리의 현재를 살고 있는데, 미래에 전혀 영향이 없을까요? 만약 미래인 하나가 현재인의 삶을 대신 살기로 결정했다면 그때부터 미래의 어느 시점이 변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태어나야 할 사람이 태어나지 않거나, 죽어야 할 사람이 계속 살아있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이라면요. 과연 미래에 살고 있는 그 사람들은 어느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걸까요.
<곰탕 2>는 <곰탕 1>보다 스토리가 진해집니다. 왜 아니겠어요. 국을 우리기 시작한 지 2권째인걸요. <곰탕 1>에서의 말갛던 국물이 점점 더 고깃국 특유의 색을 내며 향도 더해갑니다. 미래에서 온 이우환은 부산 곰탕의 아들 이순희와 그 여자친구 유강희의 아들이었습니다. 실은 <곰탕 1>에서 확실해졌지만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곰탕 2> 이야기를 할 때 수육을 썰듯 썰어놓아보는데요. 막연하게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확실해진 이상, 자신의 아들 뻘인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었던 우환은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 배에 올라탔다가 느닷없이 문을 열고 바다로 나와 곰탕집으로 돌아갑니다. 앞뒤 재지 않고 한 행동 때문에 동승했던 사람 열둘이 죽습니다. 우환이 미래로 돌아가는 줄 알고 다음날 미래로 가려고 했던 화영은 이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환을 죽여야 할 이유가 둘이나 생겼거든요. 첫째, 미래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탈주자이고, 둘째, 과거 시점에서 열둘을 죽인 자를 죽이라는 청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죽이고 싶지 않았던 우환이지만, 자신이 미래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려면 그래야만 했습니다. 결국 우환과 화영은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살인을 하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죠.
부산 곰탕으로 돌아가 할아버지, 아빠, 엄마와 함께 살아가려고 했던 우환은 자신이 바다로 나갔던 날부터 순희가 돌아오지 않았기에 계속 그를 기다립니다. 애틋한 마음으로요. 한편, 순희는 부동산 업자 박종대의 꼬임에 그가 내어준 아파트에서 기거하고 있었는데요. 순희가 미래에 굉장한 조직인 아수라의 수장이라는 걸 알고 있는 박종대가 그를 자기 손에 넣기 위해 공작을 한 겁니다. 박종대 역시 미래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는 2019년의 부산으로 온 미래인에게 접근, 이곳의 사람과 바꿔치기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여러 일을 하는데요. 척 보아도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는 짓들을 합니다.
순희는 박종대를 만나 점점 파멸합니다. 그가 진짜 원하는 건 파괴가 아니라 사랑과 인정받는 것일 텐데. 사랑받고 싶은 소년의 잘못된 몸부림을 따라가며 안타까웠습니다.
만일 순희의 아버지 이종인이 좀 살가웠더라면 아이의 삶은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이대로 자라나 정말 부산을 주름잡는 최고의 보스가 되면 어떡하죠. 우환이 새벽마다 말아준 곰탕이, 아버지만큼 나이 많은 아들이 말아주는 곰탕이 순희의 마음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요.
책을 읽다 보면 소설이 영화처럼 보입니다. 손을 뻗어 팝콘을 집어 입에 넣어가며 과자 부스러기가 책장에 묻지 않도록 조심하며 책을 읽어나가다 스릴감에 긴장하기도 하고, 안타까움에 콧잔등을 문지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미래의 국물 음식점 사장이 어째서 우환을 과거의 부산 곰탕집으로 보냈는지 알고 나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 소설은 영화로 나와도 좋지 않을까, 아니면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로 -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