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개를 키우려는 당신에게 - 개를 키울 자격에 대하여
강형욱 지음 / 혜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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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의 반려인구가 급증하고 있어요. 2022년 기준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가구는 약 30%에 달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을 택한 분들이 많아졌다고 해요. 이런 변화는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증가와 더불어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지만,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에요.

 

저는 어릴때부터 동물을 많이 좋아해왔기에 솔직히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하지만 늘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의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고 돌볼 수 있을까하는 거였죠. 일단 시작하면 다 되게 되어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일생을 감당할 준비가 아직도 안되었기에 선뜻 만나지 못하는 거 같아요.

 

20여년 전에 강아지를 키운 적도 있었는데요,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갔다가 그만 줄을 놓쳐버렸어요. 짱구는 뒤도 안돌아보고 논두렁 밭두렁을 뛰어가버렸는데요,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뛰어가는 하얀 강아지의 뒷모습이 너무 선해요. 제가 좋은 견주가 아니었기에 그대로 달아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아요. 이 가슴에서 죄책감이 사라지기 전에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할 거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이 다 같지는 않은가봐요. 최근 반려인구가 증가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동반하고 있거든요. 저처럼 강아지를 잃어버려서 마음 아파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부러 유기하는 경우도 많다고해요.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해온 한 생명을 어떻게 함부로 버리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요즘 산책을 나가보면 왜 조상님들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배설물이 여기 저기 방치되어 있어요. 약에 쓰려면 당장 뛰어 나가서 집어 올 수 있을 정도랄까요? 물론 대부분의 견주님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산책을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몇몇 사람들 때문에 많은 반려인들이 욕을 먹는다는 걸 그들은 알까요?

 

반려견 짖음이나 문제 행동으로 이웃이 불편해해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려면 그들이 사회의 질서를 지키도록 가르쳐줘야한다고 생각해요. 개는 원래 무리를 지어가며 살아왔고 일정한 규칙을 지켜야 편안해한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해요.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은 정서적인 유대감을 강화하고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데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충분히 생각한 후 결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갈등이나 환경 문제, 의료비 부담 그리고 마지막까지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보살피는게 옳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개를 키우려는 당신에게

강형욱의 에세이를 권하고 싶어요. 최근 반려인이 늘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하는지 중심을 잡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진 거 같아요. 개훌륭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신에 대한 반성은 없이 이렇게 훌륭한 훈련사님을 만나면 우리 개도 달라질 수 있다고 여기기도 하죠. 하지만 금쪽이나 개훌륭이나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문제는 보호자에게 있어요.

 

자신이 키우는 개가 위험하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는 산책과 운동이 필요한데, 자신은 같이 운동할 힘도 그럴 여유도 없으니 너 혼자 놀다 오라면서 그냥 개를 풀어놓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있습니다. -p.51

 

견종에 따라서 그리고 개별 개체에 따라서 특성이나 성격이라는 게 있는데, 인정하지 않으려 들기도 해요. 하루에 몇 번씩이나 산책을 시켜야하는 종을 입양하고서 작은 아파트에 가둬두고 하루 종일 출근하고, 퇴근 후에 엉망이 된 집을 보며 한숨 쉬고는 정리만 하고 잠들어요. 업무에 시달려서 피곤한 건 알지만, 그럴거면 애초에 입양해서는 안되었어요.

 

반려견은 하루 종일 보호자만 쳐다보고 보호자 생각만 합니다. 반려견은 당신의 발걸음만 따라다니는 게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 또한 하루 종일 따라다닙니다. -p.231

 

자신의 허전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개를 입양하는 건 그다지 좋은 결정이 아니에요. 평생을 함께 하며 건강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반려인, 반려견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하고 입양하고, 키우면서는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해야해요.

 

현대에 이르러서는 여타의 동물과는 다르게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반려견들도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배우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공원의 벤치에 올라가서 노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면 이 규칙은 반려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겁니다.

 

앞으로 모든 반려견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내가 키우는 동물이 가 될지 반려견이 될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p.248

 

강형욱은 <그럼에도 개를 키우려는 당신에게>라는 책을 통해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요. 어쩌면 반려인으로서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용도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에세이에 담긴 많은 스토리를 만나다보면, 혹시 나도 저런 부류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하게 될 거예요.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삶을 원하는 분이라면 <그럼에도 개를 키우려는 당신에게>를 꼭 읽어보셔요. 개를 키울 자격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고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반려견을 키우려는 사람들은 좋은 상상만 합니다. 막연히 반려견을 키우는 내내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있을 거라고, 사랑만 해주면 아무 문제 없이 잘 클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개를 키우면 자신 또한 행복해질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보호자라 생각한다면, 나 자신 보다는 내개 온 반려견을 행복하게 잘 살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보호자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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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옷을 입은 자들
최석규 지음 / 문학수첩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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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가 아닌 무궁화호를 타고 대전에 다녀왔습니다.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잠시 기차를 타고 싶었을 뿐입니다. 집에서부터 시작하면 정말 먼 여정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함께 하였기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최석규 작가의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은 범죄와 정의 그리고 사적 제제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가석방 혹은 형기를 마치고 세상에 나왔을 때 과연 그들은 갱생되었는지, 진정으로 반성을 했는지 종종 궁금합니다.

이와 관련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는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손이 가는 건 아마도 그들을 그리고 법적 제도를 믿기 힘들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 소설에는 묵자의 이념을 계승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악행을 저지른 자를 찾아가 한 번의 기회를 주고 거절하면 반드시 죽도록 만듭니다. 마치 마법이나 도술을 쓴 것처럼 대상자는 갑자기 스스로 괴로워하다가 섬망 증상을 보이기도 하고 발작을 하다가 죽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악과 그를 단죄하는 차악이 한눈에 보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은 다크 히어로나 비질란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결론을 내지 못한 제게는 차악으로 보였습니다. - 사실 그런 자들에게 매력을 느끼곤 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폭력조직의 조직원들을 대상으로 처단하는 과정들이 나와있지만, 이미 그들은 다양한 활동을 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조직원 중 하나인 데이비드 권은 묵자를 따르는 사람들을 추적합니다. 딱히 조직의 복수를 하겠다는 건 아니고, 신비한 힘 - 혹은 과학을 자신이 이용하겠다는 야욕입니다.

대전역에서 1부의 씁쓸함을 즐기고 다시 기차에 올라 2부를 열었습니다. 이전보다 더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내용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질만한 스토리였음에도 저는 여기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다음 편은 과연 언제 나오는 것일까... 책을 덮자마자 궁금해졌습니다.


작품을 읽으며 가장 고민했던 점이라면 법이 충분히 단죄하지 못한 범죄자를 사적으로 처벌해도 좋은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정의는 무엇이고 그의 이름을 빌린다면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사적 제재를 허용한다면 또 다른 범죄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가 만일 피해자의 입장이라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인가 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저는 조용히 다크 히어로의 편을 들게 되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자들> 은 범죄와 정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주제는 어두웠지만 작가의 필력이 좋은 탓에 책장은 쉴 새 없이 술술 넘어갔습니다. 사실 이 책은 기차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딱 알맞은 도서라는 생각도 듭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활자를 쫓다 보면 어느새 역에 도착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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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 - 셜록 홈즈부터 히가시노 게이고까지, 추리소설의 정수를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26
무경 외 지음 / 센시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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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었기에 추리소설을 처음 읽었던 게 몇 살 때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요. 그렇지만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을 열 살 무렵에 읽었던 게 떠오르는 걸 보면, 그때가 처음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시에는 에드가 앨런 포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도 몰랐고, 추리소설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전혀 몰랐었지만. 게다가 '반전'이라는 말조차 몰랐던 아이였음에도 '진실'이 밝혀졌을 때의 충격과 기쁨은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서점에서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같은 책이 또 없을까 기웃거리다가 사장님께 여쭤보니 한 코너를 가리키며 여기서 찾아보라고 하셨어요. 그런 게 저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코난 도일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이미 열 살 남짓해서 독서 취향을 결정하게 된 셈이었죠.

그 후로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 등 요즘 표현으로는 장르 소설에 빠지게 된 거 같아요. 가끔은 미스터리 마니아라고 하는 주제에 별로 안 읽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책 욕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아무튼 예전에는 작은 동네 서점이 많아서 한참 책을 들여다보다가 사장님께 궁금한 걸 여쭤보기도 하고 추천도 받았었는데, 요새는 그런 맛이 사라져버렸어요. 게다가 누군가에게 여쭤보자니 폐를 끼치는 거 같기도 해서 스스로도 위축되어 버러 웬만해서는 질문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쭉 책을 읽어온 저도 그런데 지금부터 추리소설을 읽어볼까 하는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블로그를 검색하거나 인터넷에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더라도 주관적인 이야기만 접하게 되니 판단도 잘 안 설 테고요.

고전이 취향인 사람도 있고 아니면 최근의 스타일을 즐기는 분도 있으니 어느 쪽이 내게 맞는지는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요. 셜록 홈스나 엘큘 포와로가 유명하니까 한 번 읽어볼까 했다가 실망하는 분들도 분명 계시거든요. 잡식성인 저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지만, 요즘과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에 답답하실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이제 막 추리물에 발을 들이려는 사람은 뭘 참고하면 좋을까요? <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를 만나보시면 시원하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은 걸작이라고 칭송받는 소설 중에서 엄선하고 또 엄선하여 선정한 도서에요. 물론 책을 꾸린 작가들의 주관적인 판단하에 고른 거긴 하지만,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함으로써 주관적인 견해를 많이 줄였다고 생각해요.

작가와 소설을 소개하고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나, 결이 비슷한 소설을 추천하기에 실제로는 50가지도 넘는 추리소설 리스트가 담겨있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책 서두에 작품 선정 기준을 소개하는데요,

1) 세월이 흘러도 읽을만한 가치가 높은 고전. 단, 어렵지 않을 것.

2) 추리소설 역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

3) 현재 구하기 (대체로) 쉬운 책.

하지만 워낙 고전이라서 구하기 힘든 책도 등장하기는 해요. 우리나라 추리소설 역사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작품이지만 현재 출판본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소개하고 있어요.


셜록 홈스 시리즈처럼 같은 작가와 주인공의 작품이 여럿이라면 추리소설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을 대표로 올렸어요. 그리고 연대순으로 정리해서 소개하니까 목차나 추리소설 계보도를 보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쉽게 살펴볼 수 있답니다.

의미 있는 작품의 제목 - 작가 소개 - 소설에 대한 이야기 - 작품 추천

: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방식이라 시간 없는 분들은 50개의 리스트를 한 번에 한 꼭지씩 살펴보아도 좋을 거 같아요. 구성도 좋고 흥미진진한 데다가 스포일러를 하지 않는다는 점까지 꽤 괜찮거든요.

정리가 참 잘 된 도서니까 지금 막 추리소설에 입문하려는 분은 <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을 참고하셔도 좋을 거 같아요. 흥미로운 소설부터 읽고 영역을 넓혀가는 데에도 좋은 길잡이가 될만한 도서니까요.


그런가 하면 오랫동안 추리소설을 읽어왔던 분들도 좋아하실 거 같아요. 저만하더라도 <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을 읽으면서 과거로의 여행을 할 수 있었거든요. 50가지의 소설 중에서 읽었던 것들을 만나면 어찌나 기쁜지, 맞아맞아 이거 읽었었지 하며 슬며시 웃게 되더라고요.

저는 이 중에서 31권을 읽었어요.

그런데 세상에.... 끝까지 기억나는 게 몇 편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리스트를 훑으면서 시간 나는 대로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특히 올해는 추리소설,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쪽으로 집중하기로 결심했거든요. 올해의 계획을 수행하는 데 기둥이 되어줄 책 <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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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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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유괴 범죄가 제법 많았습니다. 특히 1970년대에서 1980년 사이에는 공개수사로 전환된 사건도 있을 정도로 심각했었죠. 당시 유괴는 주로 금전을 목적으로 하거나 개인 원한으로 발생하였는데요, 골든 타임 내에 구하지 못하면 사망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분초를 다루는 사안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범인들은 주로 공중전화를 이용하여 몸값 전달 장소를 고지하곤 했는데요, 보호자들은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금전을 끌어모아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하였습니다. 김윤석, 유해진 주연의 극비수사라는 영화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공개 수사냐 극비수사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고 합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기에 한 가정과 사회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가까스로 돌아온 아이도 신체적 피해와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안기 때문에 법적으로 중범죄로 간주됩니다. 강력하게 처벌해야만 유괴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오타 다케시의 <존재의 모든 것을>은 유괴 사건 그 이후를 다룬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1991년 한 지역에서 두 명의 아동이 순차적으로 유괴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경찰들은 두 군데로 인력이 분산되었음에도 아이의 무사 귀환을 위해 노력합니다. 첫 번째 아이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발견되어서 한시름 놓았지만, 두 번째 아이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외할아버지는 비가 오는 날 무거운 돈 가방을 들고 범인이 유도하는 대로 온 힘을 다해 노력하였지만 결국 손주를 되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느꼈을 좌절감과 절망감이 제게도 파고드는 듯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도서의 뒷면에서 3년 만에 아이가 돌아왔다는 문구가 있으니 희망을 갖고 지켜보았습니다.

시오타 다케시는 신문 기자 출신으로 마치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처럼 소설을 풀어나갔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장면이 실재감 있게 다가왔고 그래서 다른 책에 비해서 속도가 더뎠던 거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장면을 꼬닥꼬닥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라니!


유괴되었던 네 살 난 소년은 3년 뒤 일곱 살이 되어 외할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소중히 길러지기라도 한 듯, 빠진 날짜까지 기록된 유치 박스까지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게다가 예의 바른 태도와 예절까지 갖춘 걸 보면 함께 살았던 사람이 나쁜 이는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아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며 경찰과 언론 모두에 더 이상 협조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비교적 재력이 있는 집안이었기에 아이는 조부모와 평화롭게 생활하며 어른이 되었고, 유명한 사실화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는 유괴 당시의 트라우마를 극복했을까요? 아니면 애초에 그런 거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걸까요.


1991년 신참이었던 한 기자는 당시에 유괴 사건 추적을 이끌었던 한 형사의 죽음 이후, 소년의 현재 모습을 통해서 과거의 사건을 추적하기로 했습니다. 그 형사와는 유괴 사건 그리고 건담이라는 공통점 밖에는 없었지만, 자신이 은퇴하기 전에 꼭 찾아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작가는 마치 이 기자와 같이 동시 유괴가 벌어졌던 공간 배경을 추적하며 자료를 모으고 경찰 관계자에게 수사 방법 등을 인터뷰하며 소설을 준비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배경과 현재를 잇는 과정을 직접 진행하였기에 소설의 주인공인 몬덴의 발자취를 저 역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돌아온 소년 료의 현재부터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은 잔잔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료를 찾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그를 좋아했던 리호의 여정도 좋았습니다.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료를 사랑하고, 료의 그림도 사랑했습니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이들의 발자취와 사랑이 좋았기에 내가 정말 유괴와 관련된 소설을 읽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공백의 3년'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시간을 따라 제 가슴도 짜르르 울렸습니다. 미스터리인 관계로 자세히 서술할 수는 없지만, 소년은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달라질만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존재의 모든 것을>을 관통하는 음악이 있습니다. 바로 조지 윈스턴의 Longing/Love입니다.

저는 마지막에 모든 이들이 모이는 장면에서 이 곡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습니다.

이 소설은 바로 이 곡과 함께 흘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와닿았습니다.

료에게 있어서 유괴의 시간은 하마터면 끝까지 경험하지 못할 뻔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시오타 다케시가 스토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상당히 섬세하고 리얼해서 소설 속의 두 화가가 세밀화를 그리며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긴 여정을 통해 진한 감동을 느끼고자 하는 분이라면 <존재의 모든 것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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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페어링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 2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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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수의 와인 사랑을 책으로 만난 건 벌써 두 번째에요. 전작인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도 즐겁게 읽었었는데 <와인과 페어링>은 좀 더 생활 밀착형인데다가 템포가 가벼워서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답니다. 와인 애호가가 읽는다면 적합한 페어링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을 테고, 저와 같이 술을 마시지 못하는 독자라면 맛도락을 즐기는 이의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요.

 

 

잔에 담긴 소비뇽 블랑의 향기를 맡고 있는데 번뜩 떠오르는 음식이 있었다. 바로 하와이 전통 음식인 포케다. 맞아, 이거야! 푸릇푸릇 개성이 강한 소비뇽 블랑에는 사군자 그림같이 차분하고 담백한 스시보다 조선 민화처럼 날것의 생명력과 신선함이 넘쳐흐르는 포케가 잘 어울리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p.19

 

 

<와인과 페어링>은 비싸고 접근이 어려운 고급 와인을 다루기보다는 마트나 주류 백화점에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타입을 소개해요. 아니, 생계형 작가의 와인 사랑이 담긴 에세이니까 소개한다기보다는 즐기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해야 좋을 거 같아요.

 

 

와인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음식과의 조화를 이야기하며 상호 보완 관계인 사이를 풀어나가거든요. 하지만 교과서처럼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 먹어보았던 경험과 상상을 바탕으로 와인에 맞는 메뉴 메뉴에 맞는 와인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줘요.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저 조차도 페어링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묘사가 좋답니다. 작가는 글을 향기롭고 맛깔나게 쓰는 재주가 있어요. 묘사력이 좋아서 마치 음식이 내 입안으로 들어온 거 같아요. 요새 진미를 먹어도 맛이 있는지 없는지 만족감을 잘 못 느끼는데, 임승수의 글을 먹으며 식욕이 돌았어요. 내 입안에 있는 거보다 글이 더 맛있다는 느낌이었죠.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제 혀와 코 끝에 와인의 풍미가 감도는 게 느껴졌어요. 가능하다면 추천해 준 대로 와인과 페어링을 해보고 싶을 정도였죠. 부담스러운 고급 안주가 아니어도 오봉집의 낙지볶음이면 족하니까요.

 

 

낙지볶음은 배달 앱으로 '오봉집'에서 주문했다. 배달이 가능한 인근 음식점 중에서도 맛이 괜찮아 종종 주문하는 곳이다. 일부러 신경 써서 리슬링과 낙지볶음의 조합을 준비했는데, 어머니가 드시더니 너무 맛있다며 활짝 웃으신다. 역시 한국인의 입맛에 최적화된 '꿀조합'이다

-p.121 : 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 브론즈락 리슬링 트로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량을 높여서 클래식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며 책을 읽었는데, 음악과 책의 페어링이 참 좋았어요. 특히 스카를라티의 Keyboard Sonatain B Minor, KK27과 정말 잘 맞았어요. 저자가 피아노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듯해요. <와인과 페어링>을 읽을 때 곁에 와인이 없다면 피아노곡을 준비해 보셔요. 더욱 맛있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예술로 인정받느냐와는 별개로 수많은 사람이 와인과 음식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미각적 성과물에 매료된다, 마치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에 매료되듯이. 물론 그 성과율이란 것이 느닷없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그 옛적 단선율 음악이 진화하여 화성 음악이 되고 어느덧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발전하듯이, 와인과 음식의 페어링 또한 나름의 진화 과정을 거치며 복잡하고 정교해졌다.

-p.40

 

작가는 책에서 와인과 음식의 페어링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해요. 예전에는 와인을 중심으로 해서 어울리는 메뉴를 찾았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메뉴가 중심이 되기도 하는 거죠. 그래서 대중적으로 가까이할만한 품목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던 거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육류 요리에는 레드, 해산물 요리에는 화이트라는 공식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그런 기준을 삼기보다는 매칭을 중시하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해요. 실전 페어링 찾기라는 기분으로 에세이를 읽다 보면 다양한 음식 매칭을 상상할 수 있어요.

 

 

작가는 와인과 메뉴 그리고 피아노, 강연과 함께 하는 인생을 살고 있어요. 물론 그 외에도 육아라거나 가족 간의 대소사 등 많은 일이 있겠지만, <와인과 페어링>에서는 얼마나 와인에 진심인지 초점을 맞추어 풀어내고 있어요. 가족을 포함한 사람들과의 소통이나 교감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 보니 맛을 즐기는 건 관계의 돈독함과 진한 관계가 있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어요.

 

<와인과 페어링>은 와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저자가 음식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에세이에요. 진심이 담뿍 담긴 글에 실용적인 조언을 몇 스푼 끼얹었기에 재미를 느낄 수 있었어요. 와인 초심자부터 애호가까지 아니 저처럼 아예 문외한인 사람 모두 재미있게 읽을만한 글이었어요. 이 책을 통해서 와인과 페어링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해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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