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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페어링 ㅣ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 2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2월
평점 :
임승수의 와인 사랑을 책으로 만난 건 벌써 두 번째에요. 전작인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도 즐겁게 읽었었는데 <와인과 페어링>은 좀 더 생활 밀착형인데다가 템포가 가벼워서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답니다. 와인 애호가가 읽는다면 적합한 페어링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을 테고, 저와 같이 술을 마시지 못하는 독자라면 맛도락을 즐기는 이의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요.
잔에 담긴 소비뇽 블랑의 향기를 맡고 있는데 번뜩 떠오르는 음식이 있었다. 바로 하와이 전통 음식인 포케다. 맞아, 이거야! 푸릇푸릇 개성이 강한 소비뇽 블랑에는 사군자 그림같이 차분하고 담백한 스시보다 조선 민화처럼 날것의 생명력과 신선함이 넘쳐흐르는 포케가 잘 어울리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p.19
<와인과 페어링>은 비싸고 접근이 어려운 고급 와인을 다루기보다는 마트나 주류 백화점에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타입을 소개해요. 아니, 생계형 작가의 와인 사랑이 담긴 에세이니까 소개한다기보다는 즐기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해야 좋을 거 같아요.
와인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음식과의 조화를 이야기하며 상호 보완 관계인 사이를 풀어나가거든요. 하지만 교과서처럼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 먹어보았던 경험과 상상을 바탕으로 와인에 맞는 메뉴 메뉴에 맞는 와인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줘요.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저 조차도 페어링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묘사가 좋답니다. 작가는 글을 향기롭고 맛깔나게 쓰는 재주가 있어요. 묘사력이 좋아서 마치 음식이 내 입안으로 들어온 거 같아요. 요새 진미를 먹어도 맛이 있는지 없는지 만족감을 잘 못 느끼는데, 임승수의 글을 먹으며 식욕이 돌았어요. 내 입안에 있는 거보다 글이 더 맛있다는 느낌이었죠.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제 혀와 코 끝에 와인의 풍미가 감도는 게 느껴졌어요. 가능하다면 추천해 준 대로 와인과 페어링을 해보고 싶을 정도였죠. 부담스러운 고급 안주가 아니어도 오봉집의 낙지볶음이면 족하니까요.
낙지볶음은 배달 앱으로 '오봉집'에서 주문했다. 배달이 가능한 인근 음식점 중에서도 맛이 괜찮아 종종 주문하는 곳이다. 일부러 신경 써서 리슬링과 낙지볶음의 조합을 준비했는데, 어머니가 드시더니 너무 맛있다며 활짝 웃으신다. 역시 한국인의 입맛에 최적화된 '꿀조합'이다
-p.121 : 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 브론즈락 리슬링 트로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량을 높여서 클래식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며 책을 읽었는데, 음악과 책의 페어링이 참 좋았어요. 특히 스카를라티의 Keyboard Sonatain B Minor, KK27과 정말 잘 맞았어요. 저자가 피아노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듯해요. <와인과 페어링>을 읽을 때 곁에 와인이 없다면 피아노곡을 준비해 보셔요. 더욱 맛있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예술로 인정받느냐와는 별개로 수많은 사람이 와인과 음식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미각적 성과물에 매료된다, 마치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에 매료되듯이. 물론 그 성과율이란 것이 느닷없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그 옛적 단선율 음악이 진화하여 화성 음악이 되고 어느덧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발전하듯이, 와인과 음식의 페어링 또한 나름의 진화 과정을 거치며 복잡하고 정교해졌다.
-p.40
작가는 책에서 와인과 음식의 페어링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해요. 예전에는 와인을 중심으로 해서 어울리는 메뉴를 찾았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메뉴가 중심이 되기도 하는 거죠. 그래서 대중적으로 가까이할만한 품목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던 거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육류 요리에는 레드, 해산물 요리에는 화이트라는 공식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그런 기준을 삼기보다는 매칭을 중시하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해요. 실전 페어링 찾기라는 기분으로 에세이를 읽다 보면 다양한 음식 매칭을 상상할 수 있어요.
작가는 와인과 메뉴 그리고 피아노, 강연과 함께 하는 인생을 살고 있어요. 물론 그 외에도 육아라거나 가족 간의 대소사 등 많은 일이 있겠지만, <와인과 페어링>에서는 얼마나 와인에 진심인지 초점을 맞추어 풀어내고 있어요. 가족을 포함한 사람들과의 소통이나 교감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 보니 맛을 즐기는 건 관계의 돈독함과 진한 관계가 있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어요.
<와인과 페어링>은 와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저자가 음식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에세이에요. 진심이 담뿍 담긴 글에 실용적인 조언을 몇 스푼 끼얹었기에 재미를 느낄 수 있었어요. 와인 초심자부터 애호가까지 아니 저처럼 아예 문외한인 사람 모두 재미있게 읽을만한 글이었어요. 이 책을 통해서 와인과 페어링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해 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