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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기담집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부커 / 2024년 7월
평점 :
에도가와 란포는 아시다시피 일본의 소설가입니다. 올해가 탄생 130주년인데요, 생전에 정말 많은 작품을 내었습니다. 그가 만든 다양한 장르의 스토리 중에서 '기담'만을 엄선한 <에도가와 란포 기담집>이 있습니다. 부커에서 내놓은 신간 소설인데, 정말 재미있습니다.
단편을 모아 엮은 책으로 한 편 한 편의 완성도가 높아서, 짧은 스토리를 좋아하지 않는 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장면과 배경 묘사가 얼마나 좋은지, 방안 편안한 자리에서 읽는데도 점점 이야기 속으로 스며들어 20세기 초반의 일본에 머무는 거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몰입감이 좋은 단편, 여름에 읽으면 좋을 기이한 이야기를 원한다면 바로 <에도가와 란포 기담집>입니다. 일본 호러라고 하면 귀신이나 살인마를 연상하게 되는데, 그와는 결이 좀 다릅니다. 정말 분위기 자체만으로도 기이하고 어쩌면 있을법한 스토리를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로 서술하기에 혹시 실화를 듣고 창작을 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책 표지 디자인이 생각보다 얌전한 거 같은데 - 역시 란포의 소설을 통해 사람은 겉만 보아서는 모른다는 걸 종종 느끼듯, 이 도서 역시 그렇습니다. 게다가 표지 후가공이 얼마나 좋은지 손안에 착 붙는 건 물론이고, 껴안고 가만히 쓰다듬으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정말 묘한 책입니다.
에도가와 란포는 일본 미스터리, 호러, 추리물의 대표 작가로 보시다시피 필명은 에드거 앨런 포에서 따왔습니다. 주요 작품은 이번 <에도가와 란포 기담집>에 수록된 거울 지옥, 애벌레, 인간의 자 등이 있는데요, 이 단편들만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했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추리물로는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 시리즈가 있는데, 미스터리 코믹스를 즐기는 분은 벌써 어? 하는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는 매력적인 경찰 캐릭터 아케치 켄고, 명탐정 코난에서는 미워할 수 없는 탐정인 모리 코고로로 활동 중입니다.
그 외에도 문호 스트레이독스에서는 에도가와 란포라는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능력은 초추리. 현장 정보 만으로도 빠르게 추리해 내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기담집에서는 아케치 코고로를 만날 수는 없지만 '메라 박사의 이상한 범죄'에서 작가 본인인듯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기담집"- 16편의 기이한 이야기
쌍생아 - 일란성 쌍생아로 태어났지만 성향과 품성은 너무 달랐던 남자의 이야기. 자업자득. 제 손으로 무덤 파기
붉은 방 - 99명을 교묘한 방식으로 살해한 남자 T의 고백. 그가 노리는 100번째 타깃은?
백일몽 - 늦은 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대중들에게 너무나도 당당히 살인을 고백하는 남자. 지어낸 이야기라 여기며 웃고 환호하는 사람들. 주인공이 본 밀랍 인형은 정말 3,721동안 남자가 천천히 시랍으로 만든 그녀의 아내일까
1인 2역 - 아내에게 장난을 걸고 싶었던 난봉꾼 남편이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침실에 잠입한다. 두려워하는 걸 보고 기뻤지만, 아내는 점점 그 가상 인물에 빠져드는데.
인간 의자 - 나에게 커다란 소파, 안락의자 두려움을 남긴 소설. 그녀에게 보낸 편지를 함께 읽다 보면 누구나 그럴 것.
가면무도회 - 자극을 추구하는 '20일회' 하지만 수많은 퇴폐, 파렴치함 속에서도 결코 용납 못 할 일은 존재했다.
춤추는 난쟁이 - 이토록 잔인하고 무례한 인간들이라니! 당해도 싸긴 하지만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애드가 앨런 포의 '절름발이 개구리'를 연상케 하면서도 결이 다른 스토리
독풀 - 낙태를 위한 풀이 필요했던 시절의 씁쓸한 이야기
화성의 운하 - 숲속에서 마주한 기묘한 감각과 경험. 소름 돋는 부분은 분명, 도입 부분의 "또다시 이곳으로 와버렸다는 소름 돋는 매력이 나를 떨리게 만들었다.-p.169" 일 것.
오세이의 등장 - 부유하지만 병약한 남편을 두고서 불륜 중인 오세이. 가쿠타로의 불운한 죽음. 만일 집 안에 골동품 궤가 있다면 두려워졌을만한 이야기. 물론 당시의 일본.
사람이 아닌 슬픔 - 부잣집에 시집가 시부모님과 남편의 사랑을 받은 교코. 밤마다 사라지는 남편의 뒤를 밟다가 외도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대화를 듣게 되고. 상대 여자를 찾으려 노력하는데... 결국. 비극.
거울 지옥 - 두려움과 궁금증.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 안쪽이 거울로 된 구체 안에 들어가면 정말 어떤 광경을 보게 될지.
목마는 돌아간다 - 기담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아내와 아이가 있는 나팔수 아저씨가 18세 아가씨에게 호감 혹은 연정을 가지고 혼자 썸을 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이하긴 하다.
애벌레 - 당시 일본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분위기를 가졌다며 금서로 지정했던 소설. 전쟁에서 팔, 다리, 청력을 잃은 남편을 돌보는 아내. 금지된 욕망만이 자신을 지배하는 걸 느끼며 아내/남편 모두 짐승이 아닐까 하는 감정에 빠져든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이지만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소설.
누름꽃과 여행하는 남자 - 기차 안에서 만난 노인이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는 한데, 어쩌면...이라는 가능성을 여는 건 에도가와 란포의 필력이 아닐까.
메라 박사의 이상한 범죄 - 한 건물에서 자꾸만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과연 자신이 직접 선택한 결과일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게 꾸며진 살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