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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평점 :
일본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작가들이 있죠. 그중 하나가 미쓰다 신조일 텐데요, 1994년 단편으로 데뷔한 이후 21세기부터 눈부신 활약을 벌여오고 있어요. 다양한 세계관이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 '미쓰다 신조'라는 작가가 주인공인 '작가 시리즈'를 좋아해요. 그리고 호러의 진수를 보여주는 '집 시리즈'도 퍽 좋아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사상학 탐정 시리즈'와 '도조 겐야 시리즈'는 읽지 못했어요. 앞으로 더 만나볼 작품이 남아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런데 이번에 '괴민연 시리즈'가 새로 나와버렸네요. 호러와 미스터리 둘 다 좋아하는 저는 콘셉트만 보고서도, 페이지를 열기 전부터 흥미롭겠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걷는 망자>를 다 읽고 났더니 '사상학 탐정 시리즈'와 '도조 겐야 시리즈'도 꼭 봐야겠다는 조급함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시면 돼요. 어쩜 이런 인연이 다 있을까, 미쓰다 신조 세계관의 확장인 건가!
<걷는 망자>는 명탐정 도조 겐야가 소속(?) 된 무묘대학교의 괴이 민속한 연구실에서 거의 붙박이처럼 생활+연구+소설을 쓰고 있는 덴큐 마히토와 대학생인 도쇼 아이의 인연으로 시작해요. 겁이 많은 덴큐 마히토는 도쇼 아이가 들려주는 괴이한 이야기를 듣고 지혜를 쥐어짜서 미스터리를 풀어내죠.
예전에 잠밤기(잠들 수 없는 밤의 기묘한 이야기)라는 블로그가 있었는데요, 주인장인 더링(송준의)님이 제보받은 이야기를 정리해서 올리곤 했어요. 정말 무서운 이야기들이 올라와서 읽기만 해도 소름이 오소소 돋았는데, 회원들은 필사적으로 이를 웃음으로 승화시키곤 했었어요. 그래야 잠들 수 있으니까요.
덴큐 마히토도 아마 그런 맥락이었던 거 같아요. - 본인은 절대 인정하지 않지만.
도쇼 아이는 그런 그가 은연중에 마음에 드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던 첫 번째 사건인 '걷는 망자'를 시작으로 계속 그를 만나러 와요. 물론 도조 겐야가 보낸 편지를 읽어주러 방문하기도 하지만, 싫으면 절대 찾아가지 않았을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도조 겐야는 아까 말했듯이 괴이 민속학 연구를 하잖아요.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온갖 괴이한 물건들이 쌓여있거든요. 이번의 이야기는 어떻게 추리해낼지 살짝 기대를 하기도 하면서 방문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한답니다.
도쇼 아이는 호러를 물어오고, 덴큐 마히토는 그걸 풀어나가는 콤비가 정말 멋들어진 소설이에요. 연작 단편으로 구성되었는데, 각각은 별개의 이야기이면서 완성도가 높아서 보는 즐거움이 있답니다. 처음에는 호러+미스터리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상학 탐정 시리즈'를 생각해 보면 - 어쩌면 러브 스토리일지도.
추천사 중에서 산케이 신문에서는 '도조 겐야 시리즈'의 스핀 오프라고 하는데, 저는 '사상학 탐정 시리즈'와 연계해서 깜짝 놀랐으니까. <걷는 망자>를 읽었다면 두 시리즈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거 같아요.
공포와 미스터리의 절묘한 조합!
<걷는 망자>만으로도 '괴민연 시리즈'를 계속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어요.
……머리가 없다.
대문 밖에 있는 사람 같은 형체에는 머리 부분이 없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이 강해서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흰색 바탕에 빨간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새빨간 구두 차림이었다. 짧은 옷소매에서 나와 있어야 할 두 팔도, 머리와 마찬가지로 없었다. 다만 가슴은 몹시 컸다. 두 다리는 붙어 있었지만, 그것도 어쩐지 이상했다.
닭 같은…….
-p.121
다섯 개의 무섭고 괴이한 이야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혹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들과 관련된 스토리를 대상으로 해요. 묘사가 절묘해서 살아있는 듯, 죽은 듯 걸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안갯속에서 흔들흔들하는 거만 같아요. 그런데 이런 두려움을 덴큐 마히토가 현실적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내면서 괴이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요.
하지만 저는 그게 더 무서웠어요.
차라리 괴이, 유령, 요물 같은 것이라면 판타지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을 텐데, 논리로 풀어 낸 결론은 너무나도 잔혹해서 두려웠어요.
<걷는 망자>는 김은모님이 번역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믿고 보는 김은모♥라고 여기는 터라. 이 책도 마음 놓고 재미있게 읽었어요. 파자를 이용하거나 이니그마도 제법 있었는데, 번역할 때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답니다.
스토리 구성력이 좋은 작가 미쓰다 신조와 믿고 보는 김은모 조합으로 재미있게 읽은 책 <걷는 망자>였습니다.